제407화
“나 잘못한 거 없다니까?”
“막주께서 이번에는 이를 잔뜩 가시고 계십니다. 까딱하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나 잘못한 거 없어! 학교에서 수련만 하고 있는데 생사람 잡지마.”
“전 분명 경고를 드렸습니다.”
살마의 수하와 조용석이 연무장에 들어섰다.
“아버…지?”
조용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아버지, 살마 조민석이 짙은 살기를 보이고 있었다.
“왔구나.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아들아.”
“왜, 왜 그러세요?”
“네놈이 아주 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니더구나.”
“예?”
“너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살마가 조용석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심지어 칼을 뽑으면서.
“아, 아버지!?”
“막주! 검을 거두어 주십시오.”
살마의 수하.
음살귀의 대장 마상훈이 살마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상훈아. 내 저 개망나니 자식의 성격을 고치고 말겠다. 아니, 대가 끊어진다 해도 XX를 뽑아 버리고 말겠어.”
“아, 아버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조용석이 뒷걸음질을 쳤다.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지만.
“어딜 도망치려고 해.”
살마가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조용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여자한테 들이대? 이 살마의 아들이? 아니! 파천자 님의 밑에서 수련할 기회를 얻었는데 눈깔을 돌릴 시간이 있단 말이야? 그 천금 같은 시간을 고작 여자 때문에 날리는 멍청한 자식새끼를 오늘 죽여 버리고 말겠다.”
살마가 조용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특별 1반에서 배운 훈련이 헛된 게 아닌지.
조용석은 아버지인 살마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워낙 실력 차이가 나서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사선으로 베어진 검에 가슴에 검상이 생긴 조용석이었다.
“큭! 아, 아버지 진정하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무려 SS급 무공이다. 파천자께서 무공을 공짜로 퍼 주는데 그것 하나 못 받아먹는 자식은 필요 없다!”
살마가 조용석을 향해 살초를 뿌려 댔다.
조용석은 살기 위해 보법을 펼쳐야 했다.
“마, 막주 님!”
“무슨 일인지는 모, 모르겠지만 잘못했어요!”
“닥치고 죽어랏!”
살마는 조용석을 몬스터 대하듯 살검을 휘둘렀다.
***
이른 새벽.
이준은 오랜만에 산보하듯 학교로 출근했다.
아직은 등교할 때가 아니라 학생들이 없었다.
잠도 안 자고 수련하는 학생들 몇몇만이 학교를 지켰다.
“열심히네.”
이준은 그들을 지나쳐 특별 1반이 쓰는 전용 운동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골탕 좀 먹여 볼까.”
선생님이 먼저 와서 대기한다.
그것도 파천자란 이명을 가진 각성자가?
특별 1반 학생들이 운동장에 들어선 순간 식겁할 것이다.
“기대되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운동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한 명이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으나.
졸린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조용석?”
아직 등교 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남았지만 미리 나와 있었다.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았나 보네. 큭.”
얼굴에 멍이 한가득이었다.
아들에게 엄하긴 하나 애정이 유별난 살마였다.
그런 그가 조용석의 몸에 직접 손을 댔다는 건 단단히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SS급 무공이 눈에 잡힐 듯 하는데 눈이 안 돌아갈 사람이 있나.”
특별 1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무공의 등급은 무려 SS급.
이준이 조용석에게는 못 주겠다고 하자 살마의 눈이 돌아간 것이다.
분명 쥐잡듯이 잡혔을 터.
그러니 등교 시간 2시간 전부터 나와 있는 게 아닐까.
이준은 구령대에 앉아 턱을 괴고 조용석을 봤다.
몸을 살피자 녀석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옷 안에는 상처로 가득한 게 이준의 눈에는 보였다.
SSS급. 생사경 정도의 고수라면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기가 지나간 경로를 알 수 있었다.
“아들의 가슴 부위에 칼침까지 놨어?”
정말 죽이려고 했는지 심장 부위를 가로지르는 검상이 있었다.
물론 도중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힘을 뺀 듯싶었다.
“아주 식겁했겠어. 그러게 어디서 지안이한테 들이대길 들이대.”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는 악마의 미소를 지은 채 학생들을 기다렸다.
8시가 되자 슬슬 등교하는 학생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특별 1반 학생들 또한 한 명씩 나타났다.
“서, 선생님!”
“형님, 아니 선생님이 이 시간에 왜?”
정예은과 허수가 화들짝 놀라 했다.
한동안 나사가 빠진 듯 행동한 이준이었기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먼저 나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난 이 시간에 나오면 안 되냐?”
“너무 일찍 나오셔서 놀랐어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을까.
꾸벅꾸벅 졸고 있던 조용석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이 있는 곳도 보지 못하고 냅다 고개를 처박는 조용석이었다.
“오셨습니까, 선생님!”
그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인 살마에게 된통 당해서인지.
확실히 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달까.
“여기가 네 집이냐. 꾸벅꾸벅 잘 졸더라?”
“아, 아닙니다!”
“아니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냐.”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딱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닙니다!”
삐딱한 이준의 말에 정예은과 허수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수야. 오늘 조심해야 할 듯싶어.]
[어. 상당히 저기압이신 것 같아.]
[빨리 와서 다행이다.]
[책잡힐 행동은 하지 말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운동장에 섰다.
다음은 진경수와 정예나, 홍원찬이 등교했다.
그들도 앞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놀랐지만, 허수의 전음에 재빨리 움직였다.
[선배님. 오늘 선생님께서 저기압이시니 조심하십시오.]
[아직도 진행 중이야?]
[그 정도가 아니십니다.]
[뭔데?]
[서서 기다리시면 아실 겁니다.]
“하암.”
이준이 하품을 했다.
그리곤 시계를 본다.
“8시인데 아직도 안 와? 다들 완전 빠졌네.”
그의 말이 끝나자 한지유와 이지안이 차례차례로 들어왔다.
마지막 인원까지 도착하자.
이준의 설교가 시작됐다.
“내가 요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고 너희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 차 선생님이 너무 풀어 줘서 그런가?”
“아닙니다. 어제도 저녁 늦게까지 수련하고 기숙사로 갔습니다.”
“학생들을 감싸줄 필요 없어요. 수련을 게을리했는지 안 했는지는 제가 직접 파악하면 되니까요.”
직접 확인하겠다는 말에 학생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조용석 너부터 나와.”
“제, 제가 첫 번째입니까?”
“네가 첫 타자니까 내가 불렀겠지?”
“아.”
조용석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했다.
공포의 비무.
특별 1반 학생들이 유독 꺼리는 수련이었다.
이준과의 1:1 비무는 구타가 기본이었으니까.
전신 혈도를 마구잡이로 때려 며칠은 앓아눕게 했다.
[준이 저기압이지?]
[저기압 정도가 아니야. 거의 꼬장 수준인데.]
[오늘 죽어 나가겠다.]
한지유의 전음에 박은비와 서혜지가 이준을 보며 말했다.
[준이가 어디를 집요하게 노리는지 잘 봐둬. 우리도 똑같이 공격할 거야.]
[응. 알았어.]
한지유의 경고에 박은비와 서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이준과 조용석의 비무가 시작됐다.
* * *
조용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빈틈이 많이 보이는데 노릴 수가 없었다.
모두 페이크였으니까.
빈틈을 노리고 공격했다간 골로 갈 수 있었다.
이준이 일부러 빈틈을 보이고 있는 것.
자신을 유인하고 있는 거다.
‘옷깃이라도 건드리지 못하면 난… 저 사람한테 죽을지도 몰라.’
가짜 빈틈이 아닌, 진짜 빈틈을 찾아야 했다.
살수의 감각을 총동원한 상태.
조용석이 집요하게 전신을 훑자.
이준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노려보면 뭐가 달라지냐. 재지 말고 그냥 부딪혀 보지?”
“…….”
“내공 안 쓸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이준의 도발에도 조용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살수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날 새겠다.”
이지안에게 추근대는 놈이긴 했으나.
살수로서 기본 소양은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훈련이라도 대적하지 못할 상대에게는 덤비지 않는 게 살수의 수칙.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면 검을 뽑지 않는 게 살수의 기본이었다.
“정말 안 올 거냐?”
“아직은 아닙니다.”
“내 약점을 찾을 수 있으면 공격은 할 거고?”
“예.”
“그 말 지킬 수 있냐?”
“전 정말 진지하게 비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핑계로 보이나 사실이었다.
조용석의 눈은 진심.
녀석은 전력을 다해 자신의 약점을 찾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네게 기회를 줄게. 오늘 하루 동안 언제든지 날 공격해 봐. 밥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 애들과 비무 할 때도 기회가 보인다면 공격해도 괜찮아.”
뜻밖의 제안에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잔뜩 저기압이라 조용석을 개 패듯 팰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왜 저러는 걸까.
이상한 거라도 먹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됩니까?”
“대신 성공 못 하면 넌 뒈지는 줄 알아.”
목소리에는 살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장난이 아닌, 진심.
조용석은 섬뜩함을 느껴야만 했다.
“다음. 허수 나와.”
이준의 호명에 허수가 잔뜩 긴장했다.
“수야. 무운을 빈다.”
“형님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진경수와 홍원찬이 격려를 보냈다.
말이 격려지 거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허수가 이준의 앞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준에게 인사를 한 후 참마도를 뽑았다.
“강하게 갈 거니까 맞대응해 봐.”
“예!”
허수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준이 발의 보폭을 넓혔다.
그리고 도를 잡는 듯한 모습을 취하자.
지잉-
그의 앞에 무형의 기가 생성되었다.
“세상에!”
“무형도는… 처음 봐.”
“나, 나도….”
학생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검강도 엄청난데 무형도라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지안은 저 사람이 자신의 가주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최연소 대한민국 최고 각성자.
세계 랭킹 3위에 오른 절대강자.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가주였다.
반면 한지유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의 무형도가 아니야.’
기를 똘똘 뭉쳐서 만든 게 아니었다.
이준의 내기로 기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기를 보충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어떻게 공기 중에 떠도는 기운으로 무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그녀의 깨달음으로는 도저히 저 무형도의 형성과 유지 과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간다.”
이준이 땅을 박차 허수에게 쇄도했다.
육중한 무형도가 바람을 가르며 우에서 좌로 휘둘러졌다.
쾅!
“윽!”
허수가 참마도를 들어 막았지만 충격을 전부 흘리지는 못했다.
“엄살은.”
이준은 한 손으로 무형도를 잡고 연신 휘둘렀다.
기로 이루어진 도라서 그런가.
그는 무형도를 검과 같이 사용했다.
“큭.”
“계속 막기만 할 거냐? 네 장점은 방어가 아닐 텐데.”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는데 허수가 어떻게 공격을 할까.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공격해야 하는데.’
허수도 안다.
자신의 장점은 방어가 아닌 공격임을.
하나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가 문제였다.
‘살을 내줘야겠어.’
허수의 생각을 읽은 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실전이야. 만약 살을 내준다면 난 네 목을 취할 거다.”
허수가 낭패 어린 기색을 보였다.
수가 읽힌 것.
공격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방어만 해야 했다.
“어서 활로를 찾아.”
허수에게는 방법을 알아내라고 했지만 이준은 지금보다 더 큰 공격을 펼쳤다.
무형도에 강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폭풍 같은 도압이 일어나며 허수를 향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