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0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주일이 지나자.
“관문엔 언제 들 예정이느냐.”
“안녕히 계세요.”
무극자가 관문 이야기를 꺼내면 게이트를 나가는 이준.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다시 무극자 곁으로 왔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이제 때가.”
“아 참! 가문에 일이 있는 걸 까먹었어요.”
이번에도 게이트를 황급히 나갔다.
이준이 관문 도전을 피하자 시험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무극자였다.
그 효력도 일주일.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한 번씩 무극자의 입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준은 무극자가 말을 꺼내기 전에 게이트를 나가려 했다.
“제자야.”
“사부님 저….”
“관문 이야기가 아니니라.”
“그러면 뭔데요?”
“네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떻더냐.”
“성장이 빨라요. 배우는 대로 흡수하기도 하고요.”
“가르치는 데 막히는 건 없느냐?”
무극자의 질문에 이준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있긴 있어요.”
“이 사부에게 말해 보거라.”
“사부님이 예전에 말씀해주신 한국의 오래된 문파 있잖아요.”
“뇌전검문 말이더냐?”
“네네. 허수는 광룡도문의 전승자라 특성이 늦게 생기는 걸 걱정하지 않는데 다른 애들이 문제에요.”
“뇌전검문과 장백검문은 계승자가 있으니, 금강권문과 수라독문이겠구나.”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개의 특성을 개화시키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악마 교관의 사기적이 특성으로 평범한 수련에도 한지유는 장백검문의 특성을 발현시켰다.
한데 다른 애들은 왜 안 되는 걸까.
계승자가 따로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준의 고민을 단번에 파악한 무극자가 바로 해결책을 냈다.
“수라독문은 정씨 자매에게 주고 싶은가 보구나.”
“맞아요!”
“허면 금강권문만 남았는데.”
“이것도 고민이에요. 진경수 학생에게 줄 생각하니 투존의 무공이 있고….”
“투존의 무공은 그냥 두거라.”
“왜요?”
“투존의 무공이 각성자 등급으로 S급이지?”
“네.”
“투존도 일가를 이룬 아이였느니라. 말년에 괜찮은 무공을 남겼으니 진경수란 아이의 재능이 괜찮다면 투존의 정수를 얻을 것이다.”
이준의 눈이 반짝였다.
무극자 사부가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 꽤 좋은 무공인 것 같았다.
원체 안목이 높은 사부였기에 고민 하나가 해결됐다.
“금강권문도 임자가 있는 것 같구나.”
“누구요?”
“아수라파천공을 익힌 각성자가 있지 않더냐.”
“아수라파천공이 금강권문과 관련있어요?”
“관련은 딱히 없지만, 무공을 뜯어보면 같은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아수라는 마기고, 금강은 불기 아니에요?”
이준의 물음에 무극자가 웃음을 흘렸다.
“끌끌끌. 대부분이 그리 알고 있지. 하나 아수라도 원래는 불기였느니라.”
“이해가 안 가요.”
“쉽게 말해 착한 놈이 악인을 징벌하기 위해 악당을 자처하는 것이니라.”
“아.”
이제야 이해하는 이준이었다.
아수라는 악신이자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도 했다.
원래는 불기를 지녔지만 악인을 처치하면서 점점 속성이 마기로 변한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이미 계승자는 정해졌으니 그에 따라 훈련을 시키면 되느니라.”
“그에 따른 훈련이 뭔데요?”
“이놈아. 이 사부가 그것까지 알려줘야겠느냐.”
“알려주실거면 화끈하게 다 가르쳐주세요. 애매하게 말씀하지 마시고요.”
“가아아아알!”
“억!”
이준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게이트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무극자 사부의 호통.
무슨 귀신이 이리 강력하다는 말인지.
관문을 마치면 혼이 소멸되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았다.
정정한 사부의 일갈에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현역 때도 이러셨어요? 호통만으로 게이트가 무너질 듯하잖아요.”
“커험. 목소리가 안 풀려서 힘이 턱없이 부족하구나.”
무극자 사부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자에게 칭찬과 같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쳇. 너무해.”
“이놈아. 다 가르쳐 줬는데도 뭘 투정을 부리느냐.”
“네네.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저 가요. 황금아. 나 없는 동안 사부님 말동무나 해드려.”
[걱정하지 마세요. 막내 공자님.]
이준이 4대 성지의 금역을 나갔다.
그는 3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게이트에 들렸다.
무극자도 이준이 왜 저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곧 있을 헤어짐을 직감했을터.
조금이라도 자신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일도 제쳐두고 오는 것이다.
[막내 공자께서 효심이 깊으세요.]
“왜 저 녀석은 이 늙은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지 모르겠구나.”
그 말을 남긴 무극자가 몸을 돌려 사신전으로 들어갔다.
황금이는 무극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전 무극자 님의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
깊은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 * *
‘사부님은 이미 나한테 특성을 개화할 방법을 알려주셨어.’
이준은 특별 1반 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사방환진에서 헤매는 아이들.
훈련 강도가 높아졌는지 전보다 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한번 시도를 해볼까.’
그는 정예나와 정예은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독가루가 든 병을 꺼내 두 사람의 사방환진에 뿌렸다.
그러자 사방환진이 변했다.
‘독연에 독 지대면 죽어나겠는데?’
독 지대만 있던 두 사람의 사방환진에 독연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예나와 정예은은 급하게 만류귀혼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그럼에도 독연에 닿은 피부가 검어졌다.
‘이제 어쩔 거지?’
수라독문의 특성을 개화시키려면 독에 면역이 되어야 할 터.
정예나와 정예은을 독에 중독시키는 게 먼저였다.
두 사람은 독을 해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방환진은 환영진이나 실체가 존재하기도 했다.
독에 닿으면 중독되기도 하고 불에 화상을 입기도 하는 진법.
환영진이라고 마음을 놓고 있다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해독은 잘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야.’
이준은 사방환진에 무극기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독연 사이로 그림자가 생겨났다.
무극기로 만든 환영들이 정예나와 정예은을 공격했다.
적이 나타나자 해독을 포기한 두 사람.
곧장 환영을 향해 쇄도했다.
정예나는 비사장을, 정예은은 비접과 이화정을 날렸다.
사방환진이 흔들렸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독 지대.
공기 중에 떠도는 가스가 폭발했다.
‘그 와중에 호신강기를 둘렀어? 역시 재능충이네.’
한지유와 이지안과 같은 부류.
만약 자신이 루트란 특성이 없었다면 저 두 사람의 성장을 따라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발 속에서도 적을 공격하는 강심장이라니. 다른 여자들이랑은 다르단 말이야.’
아무리 현대의 치료술이 뛰어나지만 자기 피부는 소중했다.
특히 여자는 피부가 생명.
몸에 생채기가 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어떤가.
몸에 상처가 나도 앞에 보이는 적을 죽이는 게 우선이었다.
‘강도를 조금씩 높여야겠어.’
이준은 한 단계 높은 환영으로 만들어 싸우게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정예나와 정예은을 환영과 싸우게 했다.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가르친 제자(정예나)가 SS급 특성을 개화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0,000p가 지급됩니다.]
[가르친 제자(정예은)가 SS급 특성을 개화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0,000p가 지급됩니다.]
드디어 정예나와 정예은이 SS급 특성을 얻게 되었다.
강제 특성 개방이 아닌, 두 사람에게 맞는 훈련으로 인한 획득.
그래서 패널티도 없었다.
[정예나 특성 – 수라독문(독)]
[정예은 특성 – 수라독문(암)]
원하는 걸 얻게 되자, 이준은 특별 1반의 수련을 중단시켰다.
“그만.”
내공이 담긴 목소리에 사방환진이 깨졌다.
“하악… 하악….”
“오, 오늘은 꽤 오래 버틴 것 같아.”
“어째 난 후욱… 적응이 안돼지….”
학생들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준은 땅을 보고 엎드려 있는 정예나와 정예은에게 갔다.
“축하해요.”
“…네?”
“메시지창 봐보세요.”
그의 말에 정예나가 허공에 손을 내리그었다.
“이, 이게…!”
“열심히 한 선물이에요.”
“너, 너무 과분한데….”
“괴개 어르신께 말씀해주세요. 허수에 대한 선물이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정예나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SS급 특성.
그것도 보통이 아닌 듯했다.
[특성 ‘수라독문(독)(SS)의 계승자’를 개화했습니다.]
[만류귀혼신공(S)를 초기화합니다.]
[앞으로 수라만독신결(SS)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경지에 때라 수라만독신결(SS)의 무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수라만독신결(SS))
-독황수(SS)
-봉인(?)
-봉인(?)
“이게 앞으로의 내 무공이라니…”
정예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 또한 박정연과 같은 SS급 무공을 얻게 됐으니까.
* * *
“사부니이임!”
이준은 혼원문에 올라 무극자를 불렀다.
하지만 무극자의 대답은 없었다.
횅한 혼원문.
사신전 앞에는 황금이 혼자 있었다.
“황금아. 사부님은?”
[안쪽에 계세요.]
이준은 사신전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갈게. 일이….”
[막내 공자님. 이제 들어가셔요.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무극자 님을 보지 못하실 거예요.]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하아아.”
[이겨내셔야 해요. 무극자 님도 억지로 슬픔을 참고 계세요.]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럴진데 사부는 어떨까.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저벅저벅-
사신전에 이준의 공허한 발걸음이 울렸다.
제1 관문을 지나 제2 관문에 도착하자.
무극자 사부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왜 여기에 계세요. 밖에서 공기도 쐬시고 하시지.”
“충분히 즐겼느니라.”
“꼭 가셔야 해요?”
“사부에겐 시간이 없다고 말했지 않느냐.”
“제가 사부님의 혼력을 높일 방법을 찾아볼게요. 아니 찾을 수 있어요!”
무극자가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준아. 사부는 원래 네 옆에 있으면 안 되는 인간이니라. 널 조금만 더 보고 싶어서 억지로 있었지만, 이제는 갈 때가 됐어.”
“왜 제 옆에 있으면 안 되는 건데요. 혼력 상승으로 몸도 생겼잖아요.”
“네가 이럴수록 운명의 굴레는 빨리 돌아갈 것이니라. 사부는 이제 천기에 순응할 터이니 준이 너도 따라줬으면 하는구나.”
“사부님….”
이준은 너무 슬펐다.
정말 헤어지는구나, 생각했다.
무극자 사부의 입에서 제자가 아닌 이름이 나왔다.
헤어지기 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배려 같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슬픔도 배가 되니 시작하자꾸나. 준비하거라.”
무극자가 뒷짐을 진 채 이준을 바라보았다.
고작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준의 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준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혼원신공으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준비 다 됐느냐.”
“네. 사부님….”
“그럼 준이 네게 사부의 힘을 보이마.”
펄럭-
무극자 사부의 장포가 바람에 휘날렸다.
고요한 미풍.
폭풍전야 같은 적막감이 흐를 때였다.
“무슨!?”
이준의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무극자 사부가 보인 기세에 소름이 끼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기본.
오랜만에 잊고 살았던 감정이 떠올렸다.
공포.
아니, 그보다 더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무극자 사부에게 느껴지는 건 절망이라는 단어였다.
“…맙…소사….”
이준의 몸이 떨렸다.
그가 여태껏 적에게 느끼게 한 감정을 무극자 사부에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사부의 힘은 이게 다가 아니다.
4대 성지의 금역을 무너트릴 것처럼.
폭풍같은 기세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이에 품속에 있던 파랑이도 두려움에 떨었다.
녀석조차 마주한 절망에 품에서 나올 생각을 못 했다.
이준이 입을 떡 벌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자.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