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9화
이사장실을 나온 이준이 특별 1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사고의 명물.
요정의 꿀이 함유된 아이스크림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기분도 꿀꿀한데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까?”
요정의 꿀은 안티에이징뿐만이 아니라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돌핀도 돌게 했다.
먹으면 안 좋았던 기분도 풀리게 하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려고 트럭에 접근하는데.
트럭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소리에 집중했다.
“내가 사 줄게.”
“괜찮아요. 준이 오빠가 아무한테나 공짜로 얻어먹지 말라고 했어요.”
“에이. 내가 아무나야? 같은 반 학우면서 게이트에서 함께 싸운 동료잖아.”
여자의 목소리는 이지안.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석이었다.
‘쟤도 여전하네. 의지 하나는 인정해 준다.’
이지안에게 껄떡대는 조용석.
가만히 보고 있을 이준이 아니었다.
일부러 한눈팔지 못하게 다른 아이들보다 훈련을 빡세게 시켰다.
기진맥진한 상태일 텐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힘이 남아 있을 리가.
훈련으로 녹초가 되어서 한동안은 이지안에게 눈길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한데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이지안에게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닌가.
‘경진 쌤이 많이 풀어 줬나 봐. 한가하게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 생각을 하고 말이야.’
특별 1반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갈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이 오빠가 어여쁜 동생에게….”
조용석이 말을 하다 말고 이를 떨어 댔다.
오한이라도 걸린 듯 부들거렸다.
뒷골이 서늘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조용석이 화들짝 놀랐다.
“으아악!”
“귀신이라도 봤냐.”
“서, 선생님….”
갑작스러운 이준의 등장에 조용석의 몸이 저도 모르게 경직됐다.
반면 이지안은 눈은 커졌으나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언제 오셨어요?”
“넌 오빠를 봐도 반갑지 않니?”
“저 지금 엄청 반가워하고 있어요.”
“전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표정에 변화가 좀 있어 봐. 어떻게 보면 네가 지유보다 더 감정이 없는 것 같냐.”
“…….”
이준의 말에 이지안이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굉장히 반가워했는데 이준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감정이 이준에게 전해졌을까.
그가 미안한지 이지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러도 해 보려고 노력해 봐. 천천히 잘 될 거야.”
“네….”
이준의 행동에 기분이 풀렸는지.
표정은 이전과 같지만, 그녀의 주변 공기가 변했다.
‘구음절맥의 특성 때문인지 오히려 지안이의 마음을 알기 쉽다니깐.’
그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있냐? 요즘 한가한가 보다?”
“아, 아닙니다. 휴식 시간에 짬을 내서 오, 온 겁니다.”
“호, 휴식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내 때는 5분 쉬는 것도 감지덕지였는데 말이야. 많이 좋아졌네.”
이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허억!”
“야. 왜 자꾸 놀라. 네가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것 같잖아.”
이준의 말에 조용석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저 미소.
진경수와 허수에게 귀가 따갑게 들었다.
악마의 미소라는 생각이 들면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그런데 그 미소가 지금 뜬 것 같았다.
“어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지안이는 열심히 했지?”
“네.”
“그래 넌 안 봐도 잘했을 거야. 다른 애들은 어떨라나.”
이준과 이지안이 특별 1반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석은 식은땀을 흘렸다.
“주, 죽었다!”
이준의 성격으로는 분명 훈련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할 터.
자신으로 인해 펼쳐질 지옥으로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할 것이다.
특히 군기 반장인 진경수와 허수.
두 사람이 제일 미친 듯이 갈굴 거라고 확신했다.
“그냥 자퇴할까?”
이대로 튈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조용석이었다.
* * *
특별 1반 학생들은 사방환진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차 선생님.”
“예. 가주님.”
“애들을 너무 풀어 준 것 같은데요?”
“마음에 안 드십니까?”
“발전이 너무 더뎌요.”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는 이 정도 난이도를 유지해서 훈련해 주세요.”
“가주님께서 직접 안 하십니까?”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 번만 나올 거예요.”
한민성의 예상대로 차경진 또한 이상해했다.
“혹, 일본에서 내상을 입으셨습니까?”
“아니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래요.”
“정말 몸은 괜찮으십니까?”
“튼튼해요.”
일본 대균열의 종식은 이준 혼자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작은 땅도 아니고 그 커다란 곳을 혼자 종횡무진했으니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한 일.
이준이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나온다고 하니 자연스레 몸에 무리가 온 거라 생각한 차경진이었다.
“가주님은 혼자가 아니심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알고 있어요. 제가 쓰러지면 사신가도 쓰러진다는 걸.”
“아시면 됐습니다.”
“그보다 저들 중 특성을 새로 개화한 사람은 없나요?”
“없었습니다.”
“이제 저 자매도 괜찮은 특성을 개화시켜 줘야 하는데.”
이준은 정씨 자매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한번 특성을 개화시켜 주긴 했으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일반 특성에 가까웠다.
천재적인 재능에 비하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들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한지유와 같은 장백검문의 특성을 얻을 터.
이준의 목표는 정씨 자매에게 수라독문의 특성을 띄우는 것이었다.
“낌새가 안 보이네.”
한참을 지켜보다가 발을 굴렸다.
쿵-
그러자 사방환진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죽는 줄 하악… 알았다.”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후욱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어.”
엉망이 된 학생들을 향해 이준이 큰 소리로 말했다.
“빠졌네, 빠졌어. 나 없는 동안 편했지?”
“아, 아닙니돠!”
진경수가 크게 소리쳤다.
허수와 남선호, 홍원찬도 따라 외쳤다.
조용석은 말할 힘도 없는지 엎어진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뭘 아니야. 제일 실력이 떨어진 놈이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갈 시간도 있는데 말이야.”
진경수와 허수가 조용석을 노려봤다.
그게 끝이라면 오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조용석에게 끝내기를 날렸다.
“연애도 하고 싶은지 어떤 학생이 지안이한테 들이대더라고. 그 끈기로 훈련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학생의 신변 보호를 위해 누군지는 말 안 할 거야. 대신 앞으로 훈련 강도는 방금 했던 걸로 고정. 이의 없지?”
“헉!”
“이, 이러다 다 죽어요.”
“설마 내가 너희를 죽이기야 하겠어? 딱 죽기 직전까지만 몰 거야.”
“컥!”
진경수는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허수와 그가 조용석에게 주의를 줬지만 그건 그때뿐.
도통 말을 들어 먹질 않았다.
꺾이지 않는 의지 하나는 인정이었다.
[저 새끼 죽일까?]
[아주 독종입니다.]
[저놈의 성격을 고칠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겠지?]
[저희만으로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여자한테 들이대는 성격 못 고치면 우리만 피해 볼 텐데 어쩌냐.]
[선생님께서 해결해 주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아아. 내 팔자야.]
진경수와 허수는 체념했다.
두 사람도 포기하게 만든 조용석의 행동.
그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이준뿐이라고 생각했다.
“자, 쉬었으니까 다시 시작해야지?”
이준이 박수를 치며 쉬는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아직… 10분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시이입 분? 나는 5분만 쉬고 훈련했어. 너희는 무려 5분이나 더 쉬었네. 빨리 일어나. 아니면 훈련 강도 더 높일까?”
“아닙니다!”
“바로 일어났습니다.”
“전 이미 사방환진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모두 진법에 들어간다. 실시.”
“실시!”
진경수와 허수는 조용석을 맹렬하게 노려보곤 사방환진으로 들어갔다.
* * *
오랜만에 특별 1반 학생들을 굴렸다.
운동장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악을 고래고래 지르자 타 학급의 학생들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구경까지 왔다.
대체 어떤 훈련을 하길래 그런 비명이 들릴까 궁금해하던 학생들은 경악했다.
특별 1반 학생들이 진법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엉망진창이 된 채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해일에 휩쓸린 사람.
번개에 처맞은 사람.
불에 삶아진 사람.
얼음에 몸 전체가 언 사람까지.
천재지변에 휩쓸리는 모습이 타 학급 학생들의 눈에 들어왔다.
수업의 수준을 보자 식겁했다.
고작 진법이라 생각했는데 안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다니.
바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는데 안에서 직접 겪은 학생들은 어떻겠나.
타 학급 학생들은 경악한 채 되돌아가야만 했다.
특별 1반의 훈련은 하교 종이 울리고도 계속됐다.
밤이 되어서야 끝난 수업.
얼마나 피곤한지 학생들은 그 자리 그대로 뻗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들은 내려다본 이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 자면 내일 몸에서 똥 냄새가 진동할 텐데. 뭐, 내가 아니니까 괜찮으려나.”
“이제 가시는 겁니까?”
“네. 일주일 뒤에 뵐게요. 아참, 차 선생님도 내일부터 수련에 참가하세요. 선생이 학생보다 약하면 안 돼요.”
“알겠… 습니다.”
차경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준이 없어 대리로 관리 감독하던 그녀였다.
사방환진 수련을 안 하니 몸은 편했던 그녀도 다음 수업부터는 아이들과 함께해야 했다.
이 수련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그녀였는지라 가슴이 떨려 왔다.
“그럼 다음에 봐요.”
이준이 게이트를 열어 흑염마조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닌가, 작은 주인?]
4대 성지의 금역이 아닌 흑염마조의 게이트로 온 이유가 있었다.
“물어볼 게 있어.”
[심각한 질문인가 보군.]
“사부님께서 사신전의 마지막 관문에 들라는데….”
[작은 주인은 관문에 도전하기 싫은가?]
“맞아.”
[큰 주인 때문이지?]
“어. 내가 관문에 도전해도 사부님이 소멸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미안하지만 없다.]
“사신수의 힘이라도?”
[우리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졌지만, 인력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 큰 주인이 지금까지 영혼이라도 남아 있는 건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더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
흑염마조의 단호한 말에도 이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백호의 퀘스트를 깨고 혼력이 상승했어. 혼력만 불어 넣으면 사부님의 영혼이 유지되지 않을까?”
[작은 주인의 마음은 알지만 혼력을 얻는 건 힘들다. 만에 하나 혼력을 얻을 방법을 찾는다 하더라도 사법. 큰 주인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흑염마조의 말이 맞았다.
사법을 배워 사부의 혼력을 늘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포기했다.
사법을 행했다간 사부가 자신에게 실망할 터.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차라리 관문에 도전하기 전까지 큰 주인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어때?]
“정말 방법이 없어?”
[없다.]
“하아아아.”
이준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게이트를 나가려 했다.
[어디 가?]
“사부님한테. 사신수도 방법이 없다는데 어쩌겠어. 관문에 도전 안 하고 옆에서 뻐팅겨야지. 나, 간다.”
그가 게이트를 나가자 흑염마조가 중얼거렸다.
[이겨내야 한다. 혼원의 계승자여. 네게 앞으로 닥칠 시련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