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9화
이준이 강시의 허리를 꺾어 버리곤 사사키 유우를 향해 말했다.
“제대로 해. 이러다간 다 뒤지겠다.”
“그 잘난 척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보자!”
“아까부터 말을 반복하네. 생강시가 되도 머리는 텅 비었나?”
“악!”
사사키 유우가 내공을 가득 담은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자기편이 채찍에 맞아 죽든 말든.
건물과 함께 닿는 건 모두 부쉈다.
퍼벅퍽퍽!
이준이 땅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의 반경에 있었던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가 폭죽처럼 터져 죽었다.
진각에.
무극기에.
무극장력에.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와 강시가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서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강해졌어? 저게 말이 돼?”
이준이 잠깐 사라진 사이 경지가 더욱더 상승해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은 분명 파천혈신의 무공.
절세의 신공을 얻는다 해도 익히는 게 극도로 까다로웠다.
대성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무림에서 제일가는 기재인 천주도 대성을 이루지 못한 게 바로 파천혈신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이준의 저 성장은 뭐란 말인가.
“혈신과 비견되는 자질인 거야?”
이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현경에 들면 경지를 올리는 게 더 힘들었다.
평생을 갈고 닦은 깨달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
그럼에도 이준은 잠깐 사이에 발전해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서단만이 이준의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알아볼 때 사사키 유우는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
그녀의 채찍이 땅을 강타할 때마다 흙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어딜 맞히는 거야. 에이밍이 엉망이구만.”
“아아악!”
사사키 유우가 악을 질렀다.
얼마나 분한지 눈에서 피눈물이 나왔다.
“나…도 있다…!”
사선이 이준의 등 뒤를 기습했다.
그의 검에서 흑매화가 폈다.
매화검형.
이준에게 펼쳤다가 죽음을 맞이한 무공이었다.
전보다 더 크고 개수도 많았다.
무려 여덟 송이였다.
“이건 위험한데.”
이준의 몸에서 무극기가 뿜어졌다.
몸을 감싼 무극기가 흑매화와 부딪혔다.
쿠웅!
거대한 폭발음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무극기와 흑매화가 힘겨루기하다가 흑매화가 뒤로 튕겨 나갔다.
“잘 가라. 내공을 소모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
“…안 돼…!”
사선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사용한 흑매화가 몸을 덮쳤다.
그의 곁에 있던 강시들도 여덟 송이의 흑매화에 휩쓸려 갔다.
사선의 힘을 역으로 이용한 수법.
반탄강기는 자기보다 하수를 상대할 때 굉장히 유용했다.
“어이쿠. 너희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도 포함되어 있네.”
이준의 계속된 도발에 사사키가 이성을 잃었다.
계속 웃고 있는 저 얼굴을 망가트리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는 그녀였다.
그래서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깔깔깔. 네가 아끼는 사람들이 강시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기고만장해 있다니.”
“뭐?”
“내가 이곳에 왜 온 것 같아? 널 죽이러? 난 널 찢어 죽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 그래서 결정했어. 네 마음을 찢어 놓기로 말이야.”
“뭔 개소리냐?”
이준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마음속에 싹트는 불안감이 저거였나?
“지주가 있는 곳으로 가 봐. 네가 반가워할 사람들이 있을 거야.”
“설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X발.”
이준이 욕을 했다.
드디어 지주의 특기가 나온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끼리 싸우게 하는 못된 짓거리였다.
“깔깔깔깔.”
“그 입 닫아라.”
와락 구겨진 이준의 얼굴에 사사키 유우가 통쾌하게 웃었다.
실력으로는 그를 이기지 못하니 이런 방법으로 엿을 먹인 것이다.
“어쩐지 X도 안 되는 것들이 깝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네 얼굴을 보니 이제 좀 기분이 풀려.”
“날 엿 먹인 각오는 되어 있지?”
“깔깔. 계속해 봐. 그럴수록 네 마음도 찢어질 거니까.”
“누가 더 개 같은지 결판을 지어 보자.”
이준은 손수 자신의 내공을 봉인했다.
내공을 사용해서 한 방에 죽이는 건 너무 자비스러웠다.
저들을 육체의 힘만으로 죽이는 것만이 공포로 몰아가기 안성맞춤이었다.
팟-
그는 사사키 유우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를 향해 쇄도했다.
* * *
도쿄 타워 위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딸랑!
지주에게만 들리는 종소리가 주위로 퍼졌다.
천둥과 번개가 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지주는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영혼을 불러내고 있었다.
딸랑!
부적이 덕지덕지 붙여진 바닥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곳에서 해골들이 올라왔다.
“호호호. 너희들이구나.”
지주는 해골들을 보며 웃었다.
수십 마리의 해골들이었지만 점점 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부와 머리카락까지 모두 재생되자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가지게 됐다.
“여…긴?”
“난 침입자의 손에 죽었는… 형님?”
“대식이?”
“현수까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사신가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인주를 막다가 죽게 된 이들.
“호호호. 내가 너흴 명계에서 데려왔어.”
깨어난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절세의 미녀로 보이는 여자.
요사스러웠으나 마음을 사로잡는 웃음이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명계의 문을 열어 너희를 데려온 주인.”
“우리의 주인은… 크윽!”
“억!”
“으으으….”
모두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하니까 생기는 현상이었다.
“옛 기억은 잊어버려.”
그녀의 미소에 아팠던 머리가 깔끔하게 사라지는 이들이었다.
“그러…죠.”
“알겠습…니다.”
“제 주인은… 앞으로 당신 입…니다.”
“주인께 충성을….”
되살아난 사신가의 각성자들은 지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지주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영혼을 불러와서 진혈천마강시로 만들 몸에 넣으려 했는데 역행술을 사용하길 잘했어.’
역행술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술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달가량 새 생명을 부여했다.
한 달이 지난 후에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원래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위해 탄생한 술법.
그러나 못된 용도로 사용되어 금지되었다.
사장되다시피 한 술법을 지주가 찾아내어 악용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명계에서 소환된 이들은 시선자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
“곧 손님이 올 거야. 맞이할 준비를 하자.”
“예. 주인님.”
그녀는 역행술로 살린 이들을 데리고 도쿄 타워를 내려갔다.
그 아래에 펼쳐진 역천진에서는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일본 내에 펼쳐진 역천진 중에 제일 중요한 지점.
너무 대놓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우려가 있었다.
“잘 돼가나요?”
“이준이 이곳으로 올 건데 이 역천진을 보여 줘도 괜찮을지….”
“그러라고 이곳에 펼친 거예요.”
역천진은 인간의 생명과 내공, 몬스터의 피와 마력.
그리고 마기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기의 충돌은 역천진이 가장 좋아하는 영양소.
이준이 이곳으로 온다면 큰 싸움이 일어날 터.
지주는 그 충돌을 자양분 삼으려고 도쿄 타워에 역천진을 펼친 것이었다.
“무너질까 걱정됩니다.”
“호호. 이준의 힘에 무너질 정도면 역천진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그의 힘이 상상 이상이라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역천진이 깨져도 백마존을 중국으로 소환될 수 있게 해 놓은 거예요.”
역천진이 열려도 백마존은 일본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신마회가 자리 잡았던 곳.
천산이 있는 신강에 소환될 터.
자신들은 이준의 힘을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빨리 이준을 보고 싶네요. 얼마나 강한지 직접 느껴 보고 싶어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갖고 싶은 게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 * *
“으으…!”
“인간이… 아니야.”
“각성자가 어떻게 저리 강할 수가….”
“사, 살고 싶으면 여기서 도, 도망쳐야 해.”
“…아아악!”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준의 처음 목표는 사사키 미나미였다.
그녀는 사사키의 당주.
유우를 흥분시키기 위해서는 엄마인 미나미를 잡는 게 제일 좋았다.
“당장 그 더러운 손 놓지 못해!”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는 이준이 두려워 도망치는데 사사키 유우만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이유는 이준의 손에 그녀의 엄마인 미나미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미나미가 저항해 보았지만 그녀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미나미는 이준의 고기 방패가 되었다.
촤악-
“아흑!”
사사키 유우의 채찍이 이준에게 휘둘러지자 그는 미나미를 앞세웠다.
“어머니!”
“패륜도 정도껏 해야지. 일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너 손가락질한다?”
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었다.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던 얼굴에는 감정이라곤 담겨 있지 않았다.
천살성처럼 감정이 없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악독한 짓도 서슴지 않아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으니까.
“악마 새끼!”
“누가 날 악마로 만들었는데.”
“정정당당히 나와 싸우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설마 날 겁내는 거냐.”
“너 따위에 겁낼 정도면 애초에 천외천과 싸우지도 않았지. 내 방식대로 네게 되갚아 주는 것뿐이다.”
“시간을 더 끌다간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그러겠지. 후회하는 김에 너희를 죄다 피눈물 흘리게 해 주려고. 그리고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야. 내 나라가 아니라 이 말이지. 여기가 어떻게 되든 나랑 상관없어.”
“그러고도 네가 창제로 추앙받을 자격이 있어! 넌 위선자야!”
“날 건드린 놈들에게 고통만 줄 수 있다면 악마가 되어도 돼.”
이준에겐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사사키 미나미는 이내 결심했다.
“유우…야 그만 도망… 가거…라.”
“무슨 소리예요. 제가 어머니를 두고 어딜 가요.”
“이 악마는… 네 상대가 아니다… 너라도 살아남아 첫째에게 가….”
사사키 유우는 미나미의 차녀.
장녀는 지금 서양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어서 도망… 쳐.”
힘겹게 말을 끝낸 미나미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미나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한 것이다.
“어머니이이!”
사사키 유우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미나미를 불렀다.
하나 아래로 떨어진 고개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이런, 여기서 끝내야 하나.”
이준은 쓸모없어진 미나미를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바닥에 처박혀 몇 차례 구른 미나미.
꿈틀거리는 기미도 없었다.
이준의 행동에 사사키 유우가 그를 향해 쇄도했다.
“악마! 널 죽이고 말 거야.”
“닥치고 너나 죽어.”
푹!
이준의 손이 사사키 유우의 심장에 박혔다.
너무도 쉽게 그녀의 목숨을 취했다.
마치 여흥을 끝낸 사람의 행동이었다.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그리고는 그녀에게 혼원신공을 주입해서 몸을 터트려 버렸다.
생강시를 확실히 처리하는 방법은 흔적도 없이 없애는 게 제일이었다.
그 많던 인원을 모두 해치운 이준이 미야와키 칸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도쿄로 가 볼까요?”
조금 전까지 수많은 생명을 거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아무리 이준의 팬인 칸나라도 그가 조금은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