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8화
이준은 제자리에 서서 미야와키 칸나의 기운을 찾았다.
게이트의 마기.
몬스터의 마기.
죽은 자의 귀기.
살아 있는 사람의 기.
여러 개의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야와키 칸나의 기운을 느꼈다.
팟!
이준은 땅을 박차고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키익!”
“케룩!”
도마뱀처럼 생긴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쌍머리 리자드맨?”
머리가 두 개 달린 몬스터.
피부도 초록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블랙급 몬스터 중, 유일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몬스터.
다만 블랙급답게 굉장히 강한 놈이었다.
“캬악!”
“취릭.”
쌍머리 리자드맨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무극장을 이용해 달려드는 놈들을 쳐냈다.
쌍머리 리자드맨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몬스터의 공격.
“이번에는 로드 뱀파이어냐.”
“인간이다!”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피를 가졌군.”
“내가 먼저 맛볼 거야!”
“선수 치는 놈이 임자지.”
하늘을 뒤덮은 수천 마리의 박쥐가 이준에게 다가왔다.
박쥐들은 그의 지척에서 하나로 합쳐지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때였다.
“하아악!”
이준의 품에 있던 파랑이가 하악거렸다.
“큭!”
“미, 미친…!”
로드 뱀파이어는 물론,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이 흠칫 놀랐다.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에 올라 꼬리를 활짝 폈기 때문.
몬스터들은 파랑이가 펼친 열 개의 꼬리를 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로드 뱀파이어들이 사색이 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박쥐가 되어 하늘로 도망치는 게 아닌가.
파랑이는 녀석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파랑이가 패시브 스킬인 혼돈의 마기(SS)를 사용했습니다.]
[혼돈의 마기(SS)가 광역으로 들어갑니다.]
[동시에 달빛구슬(SS)을 사용합니다.]
활짝 펴진 꼬리에서 생성된 열 개의 구슬.
그 구슬이 사방으로 퍼졌다.
몬스터에 닿은 순간, 마치 구슬에 흡수되는 듯.
몬스터가 블랙홀처럼 구슬로 빨려 들어갔다.
[파랑이가 블랙급 몬스터 로드 뱀파이어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7,000,000p가 지급됩니다.]
……
……
……
[파랑이가 블랙급 몬스터 쌍머리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7,000,000p가 지급됩니다.]
[파랑이가 대기에 퍼진 마기를 흡수합니다.]
같잖은 몬스터가 자기 주인에게 이빨을 보이니 격노한 파랑이였다.
열 개의 꼬리를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
등급에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우리 파랑이야.”
“뀨웃!”
이준이 흐뭇하게 웃고는 다시 경공을 펼쳤다.
파랑이가 존재감을 숨기자, 몬스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녀석들의 공격은 이준의 몸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여기 있었네.”
폐허가 된 건물 앞에 내려앉은 이준이 막힌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직-
스파크가 일어나며 접근을 불허했다.
환영결계였다.
아무래도 미야와키 칸나가 펼친 결계 같았다.
혼원신공으로 몸을 보호하자 너무도 쉽게 결계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준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
후지시마 스즈키도 함께 있었다.
“용케도 잘 버텼네요.”
“준 사마!”
은서단이 아니라 미야와키 칸나로 있어서 찾는 게 늦었다.
은서단의 존재감은 사이한 귀기만으로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창제!?”
“창제가 여기에 왜?”
“이제 안심해도 되오. 창제께서 일본을 구해 주러 오셨습니다.”
“맞아요. 준 사마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어요.”
스즈키와 칸나가 희망스러운 말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회의적이었다.
“창제 혼자뿐이지 않습니까.”
“월령검께서도 몬스터를 상대로 고전하는데 창제라고 다를까요.”
“목숨만 조금 더 붙어 있을 뿐입니다.”
“하아아. 희망은 없는 건가.”
“도와주러 오신 분께 실례입니다.”
스즈키가 당황해했다.
사람의 면전에 대고 무안을 주니.
그의 얼굴이 낯 뜨거워졌다.
이에 이준이 기름을 부었다.
“맞아요. 전 당신들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에요. 천외천의 지주를 죽이러 온 거죠. 제가 일본 지리만 알면 혼자 움직였을 테지만 길을 몰라 안내자를 찾으러 온 거뿐이에요.”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안내 좀 부탁해요.”
“네? 네!”
“스즈키 씨는 여기에 계실 거죠? 보니까 이곳이 환락상의 거점 같은데.”
이곳은 쉘터의 기능을 다 갖추고 있었다.
넉넉한 공간과 식량.
마정석으로 만든 단단한 벽.
밖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갈 필요가 없었다.
“전 사람들을 구하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이 모든 게 천외천이 벌인 짓.
지주만 처리하면 일본 전역에 퍼진 균열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에 스즈키가 알아듣게만 말했다.
“믿고 있겠습니다.”
“전 받은 만큼은 일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준과 칸나가 결계를 나가려는 그때였다.
콰아앙!
결계 안이 세게 흔들렸다.
“여길 찾았어?”
이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결계는 칸나가 펼쳤지만 은서단의 무공.
환환미러진이었다.
이준은 혼원신공이라는 절세의 무공을 익혔기에 결계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환환미러진은 결계를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공간을 통과시키는 최상의 결계.
이 결계를 찾았다는 건 밖에 꽤 대단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나가 볼게요.”
“저도 같이 가요.”
칸나는 이준을 따라 결계 밖으로 나갔다.
* * *
사사키 유우는 가문의 각성자와 사혈림의 강시를 끌고 나고야에 도착했다.
“끼엑.”
“취릭.”
“샤약!”
몬스터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다른 인간을 찾았다.
천외천이 불러낸 몬스터라 그런지.
그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준을 찾아 주세요.”
“그러마.”
유우의 어머니인 미나미가 공중에 사독연을 뿌렸다.
사독연은 음양사란 뱀으로 만든 독 가루였다.
이 독의 특별한 점은 추적술에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다.
위이잉-
바람이 불었다.
허공에 뿌려지며 독가루가 만든 하나의 인형.
죽은 영혼이 그녀를 안내했다.
“날 따라오거라.”
사사키 미나미의 눈에 음과 양의 기운이 나눠진 공간이 보였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사독연을 뿌렸다.
그 행동을 반복한 끝에 하나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인 것 같구나.”
그들의 앞에 허물어진 건물 벽면이 있었다.
이곳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파직-
사독연의 가루가 벽면에 부딪히자 스파크가 일어났다.
“공격하세요.”
사사키 유우가 고갯짓을 하자 사혈림의 강시가 움직였다.
도, 검, 창 궁.
각양각색의 무기를 든 강시가 벽면을 향해 기운을 쏟아 냈다.
콰아앙!
사혈림의 강시라 그런지.
굉장히 강했다.
미나미와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외천이 강한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무력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
강시의 강력함을 느끼자 너도나도 놀란 눈빛을 보냈다.
“여기에… 이… 준이 있… 다고 했느… 냐….”
한 강시가 사사키 유우를 향해 물었다.
이성을 가진 강시.
하나 말이 뚝뚝 끊기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생강시가 아니었다.
“확실해요.”
“이… 준…!”
강시의 검에서 검강이 치솟았다.
바람이 흩날리면서 나는 꽃 냄새.
사람들이 향기를 인지한 순간.
검강은 결계를 가르고 있었다.
쾅!
폭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과과광!
연달아 들리는 굉음에 지축이 흔들렸다.
강시가 재차 검강을 움직이려는데, 결계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인주가 살아났더니 이번에는 너냐 사선.”
이준이었다.
그의 주변에 회색의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강시의 검강을.
아니 강시가 된 사선의 매화를 무극기가 막은 것이다.
“이주우운!”
“인주도 너랑 똑같은 반응을 하더니 그 주인에 그 부하네.”
“…널 죽이… 기 위해서 지… 옥에서… 살아… 돌아 왔… 다.”
“응. 다시 죽어.”
어느새 2단계로 변신한 파멸겁이 사선을 찔러 갔다.
그런데.
까가가강!
사선의 뒤에서 날아온 채찍이 파멸겁의 창두를 강타하며 불꽃을 일으켰다.
“나도 있어, 이준!”
“사사키 유우? 너도 살아났냐?”
사혈림이 귀찮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죽었으면 잠자코 염라대왕에게 갈 것이지.
강시가 되어 돌아온다.
전생에는 이보다 더한 일을 겪어서 저게 얼마나 지독한 짓거린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 지인들이 아닌 게 어디냐.’
강시로 나타난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원한이 있던 이들이었다.
전생에는 가족이거나 친구 내지 동료가 강시로 변해 공격했다.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싸웠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자신은 정보 단체 소속이라 강시와 싸운 경험이 적었으나.
동료의 생생한 증언은 가슴에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너 때문에 당한 망신을 생각하면… 널 육시를 내도 모자라.”
“얼마나 날 죽이고 싶었으면 강시가 돼서 나타났을까.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봐.”
“그 잘난 척! 내가 꼭 피눈물 나게 해 줄 거야.”
“고정 멘트 진부하다. 좀 새로운 거 없냐.”
“이, 이! 뭐 해요! 공격하세요.”
사사키 유우의 명령에 사사키 가문의 가솔들은 미나미를 보았다.
가주는 그녀였기에 명령을 기다리는 거다.
미나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사사키의 각성자가 움직였다.
사혈림의 강시도 이준을 감쌌다.
그들 중에서도 몬스터를 다루는 자가 있는지.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이 병력만으로 날 치려고 생각했다는 게 참 어이없구만.”
이준이 회안을 번들거렸다.
천살성과 동화한 게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의 살기는 천살성의 살기이기도 했다.
강력한 살의에 모두 움찔했지만 이내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졌다.
“내공은 최대한 자제한 채 상대해 줄게. 들어와.”
* * *
이준이 6일 동안 운공을 해서 회복한 내공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혼원신공이 절세의 무공이긴 하나.
이준이 담을 수 있는 내공의 총량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내공을 회복하는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혼원신공도 단 6일 만에 내공을 전부 회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아끼는 게 좋았다.
눈앞에 보이는 천외천을 상대하고 지주를 만나러 가야 했으니까.
지주는 최고의 컨디션일 때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천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게 가능했다.
퍽!
이준의 주먹에 강시의 몸에 구멍이 났다.
“날… 상대하지 못… 하겠느… 냐….”
사선이 이준의 뒤를 쫓았으나 번번이 놓쳤다.
뒷북.
이준은 사선을 따돌리며 사사키의각성자와 강시를 상대했다.
으득.
“끄악!”
사사키 가문의 각성자가 주먹을 부여잡았다.
이준의 주먹과 부딪혔더니 팔의 뼈란 뼈는 모두 조각났다.
“이익!”
유우가 채찍으로 이준의 등을 후려쳤다.
하나 그는 채찍을 아무렇지 않게 낚아챘다.
이준이 채찍을 끌어당기자 유우도 힘을 주며 버텼다.
“멍청하긴.”
그럴수록 유우가 빠른 속도로 이준을 향해 날아왔다.
퍽!
“아악!”
이준의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유우가 건물 더미로 날아가 처박혔다.
“사선보다 단단한 신체와 정확한 언어라… 재밌네.”
사선의 무공과 경지는 모두 사사키 유우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든 면에서 사사키 유우가 앞섰다.
신체며 말투며 무공까지도.
그렇다는 건 사선은 미완의 생강시라는 것.
오히려 사사키 유우가 완벽한 강시였다.
이준은 저들과 싸우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에게 왜 이들을 보냈을까.
뻔히 질 걸 아는데 병력을 보냈다?
조금 이상했다.
사사키 유우가 사선보다 강해져서?
아니면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모두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사사키의 각성자와 강시를 죽이며 기감을 넓게 퍼트렸다.
자신을 감시하는 천외천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어. 여기에 있는 천외천은 이놈들이 다야.’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려고 보낸 놈들은 아니었다.
‘지주가 날 무시할 리 없어.’
인주가 아예 소멸됐다는 걸 지주도 알아차렸을 터.
이 병력으로 자신을 처치하기에는 무리라는 걸 지주도 잘 알 것이다.
‘이상해. 확인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