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7화
존자들이 방에서 다 나갔다.
지주 또한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데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주님.”
“응?”
“절 이준에게 보내주세요.”
“이준에게?”
“네. 복수하고 싶어요.”
지주는 사사키 유우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준에 대한 분노였다.
“네가 안 가도 놈이 알아서 우릴 찾아올 거야.”
“제가 직접 놈을 찢어 죽여버리고 싶어요.”
“생강시가 되어서 강해진 마음은 알겠는데, 너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지주가 반대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생강시인 인주도 죽었는데, 사사키 유우가 이준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길 확률은 단 1할도 없었다.
“진혈천마강시를 더 만들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네가 시간이라도 끌겠다는 소리야?”
“제가 그놈을 죽이지 못하면 고통이라도 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제가 시간을 끄는 동안 지주께서는….”
지주는 잠자코 사사키 유우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호호호. 재밌는 생각을 했어.”
“저를 보내주세요.”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할 거야.”
“감사합니다.”
“날 기쁘게 해준 대가로 사혈림의 강시를 내어주지.”
지주가 사사키 유우의 어깨를 툭툭 치고 방을 나갔다.
“호호. 내 머리도 이제 굳었나 봐.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지주의 사이한 웃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방에 혼자 남게 된 사사키 유우도 미소를 드러냈다.
“이준, 네 발목이라도 붙잡고 말 거야.”
그녀의 주변에 귀기가 일렁였다.
생강시인 진혈천마강시가 되어 살아나자 얻게 된 힘.
그녀가 지녔던 무공도 절세의 신공으로 변하게 했다.
신체는 금강불괴.
그 어떤 아티팩트로도 흠집을 낼 수 없었다.
무적에 가깝게 변했다.
그녀는 깨어난 그 순간부터 이준에게 복수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이제 그 뜻을 이룰 차례였다.
그녀가 어디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유우에요. 나고야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할 것 같아요. 지주께서 제게 부탁하신 일이에요. 어머니께서도 같이 가시겠어요? 사사키 가의 각성자 전원도 필요해요.”
[당연하지. 이 어미도 따라가마.]
“고마워요. 도쿄 타워 밑에서 기다릴게요.]
뚝.
사사키 유우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이준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 * *
세계에 연일 급보가 터져 나왔다.
[일본 전역에 출몰한 게이트, 이미 영토의 대부분이 균열로 잠기다!]
[세계에 도움을 요청한 일본, 이에 응답한 각성자는 창제뿐.]
그 강하던 일본이 게이트 균열로 인해 영토를 2/3나 잃었다.
그것도 단 3일 만에.
전 세계가 불안에 떨었다.
자신이 사는 나라도 몬스터로 인해 초토화될지 모르는 상황.
전 나라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일본과 가까운 한국도 비상 체제에 들어가자 커뮤니티가 시끄러웠다.
[ㅅㅂ. 이러다 우리도 일본처럼 되는 거 아님?]
[요즘 불안해서 뒤질 것 같아.]
[킹정. 집이 쉘터와 멀어서 근처에 균열이라도 일어나면 바로 뒤지는 목숨임.]
[2222.]
[지금이라도 쉘터 근처 아파트로 이사갈까?]
[쉘터 인근 아파트 가격 미쳤던데.]
[구축도 50억이 넘음.]
[평생 근처도 못 가겠다.]
균열로 세상이 시끄럽자 집값도 폭등했다.
최근 들어 일어난 징조들.
균열은 물론 천외천이란 제3의 세력으로 쉘터 근처의 집값은 고공행진했다.
실시간으로 가격이 오르는 상황.
부자들만 목숨이 안전했다.
[사신가 근처에 텐트라도 쳐야 하나.]
[그게 안 전할 수도….]
[ㄴㄴ. 창제가 일본에 갔는데 균열 못 막은 거 모름?]
[일본처럼 대규모 균열이 동시에 일어나면 아무리 창제라도 못 막음.]
[그러니까 더 불안해 뒤질 것 같다. 천외천의 인주도 막은 게 창제인데 균열은 못 막았잖아.]
[균열은 천재지변에 해당함.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수록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결국은 모두 균열로 죽는다는 이야기.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일어난 일본 사태, 천외천이 꾸민 짓이라던데?]
[개소리 ㄴㄴ. 인간이 균열을 어떻게 일으킴.]
[5대 가문에서 흘러나온 정보임.]
[레알?]
[천외천이 게이트를 열어 몬스터를 조종했던 거 기억 안 남?]
[…그, 그러네.]
[갑자기 무게감이 확 실리는데.]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더 있음.]
[뭔데?]
[빨리 말해. 궁금해 뒤지겠으니까.]
갑자기 고급 정보를 들고 등장한 익명의 사람에게 관심이 쏠렸다.
[천외천이 창제를 처리하려고 일본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소리가 있음.]
[구라치지마.]
[창제가 아무리 이름을 날렸다 해도 너무 스케일이 크잖아.]
[일본 영토의 2/3가 날아갔음. 장난 ㄴ.]
[참고! 창제는 천외천의 머리 중 하나인 인주를 죽였음.]
[충분히 말 되네.]
[천외천이 어디 보통 인간이냐.]
[괴물들이긴 함.]
[오대가문이었던 패왕도가가 천외천의 끄나풀이었던 것만 봐도 사이즈가 커.]
사람들은 어느새 익명의 사람에게 동조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긴가민가한 사실을 하나 던졌다.
[사신가에 괴한이 침입한 거 암?]
[ㅇㅇ. 그게 왜?]
[그 괴한이 침입해서 사신사 사람을 죽였는데 괴한의 정체가 창제가 죽인 인주였다 함.]
[인주였으면 목격자들이 얼굴을 알지 않았을까.]
[이혼대법이면… 가능하지.]
[요번 천외천은 사술을 주무기로 한다던데, 이혼대법이면 인주가 살아 있는 것도 쌉가능.]
거기까지 말하자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다 연결되는 것 같았다.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내용들.
이준을 일본으로 끌어들이고, 인주가 이준의 가문을 공격한다.
복수하기 딱 좋은 설계였다.
[개 위험한 놈들이네.]
[바로 응징해야하는 거 아니냐?]
[게이트도 천외천이 일으키는 거면 천외천을 제거하면 균열도 잠잠해질 것 같은데.]
[가문연맹은 뭐 하는 거냐.]
[마벽하고 합심해서 천외천 공격하자.]
[서명 운동하러 간다.]
[나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불안과 초조, 혼란으로 가득했던 커뮤니티가 똘똘 뭉쳐 분노를 터트렸다.
균열을 일으킨 범인에 대해.
창제를 죽이려는 비열한 짓거리에 대해 분노했다.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던 남자가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생각보다 어려워. 민성이는 이 짓을 어떻게 한 거지?”
기지개를 켠 사람은 다름 아닌 신기가주 한지웅이었다.
현시점에서는 혼란이 일어나면 안 됐다.
쉘터의 집값으로 인한 불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움직이지 않은 가문연맹에 대한 불신.
이런 빈틈을 천외천이 노리려 할 터.
그리된다면 한국도 일본 꼴이 날 수 있었다.
다행인 건 한국에는 창제라는 구심점이 있었으니.
그를 내세운다면 사람들이 끈끈하게 뭉칠 거라 여겼다.
한지웅의 생각은 귀신같이 맞아떨어졌다.
“이제 혁신할 때가 왔어.”
그는 이를 계기로 가문연맹을 재편할 생각이었다.
사마련도 무너지고, 마련도 생겼겠다.
가문연맹도 새로운 변화가 불어야 했다.
* * *
이준의 운기행공은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은 볼을 지나 아래로 떨어졌다.
“후우우….”
그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숨결에는 짙은 마기가 가득했다.
강력한 살기도 담겨 있었다.
‘내공이 바닥난 상태에서 천살성이 튀어나오는 건 위험해. 앞으로 자중해야겠어.’
가문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터졌다.
분노는 천살성에게 최고의 감정.
녀석과 동기화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 결과 인주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대신 대가도 치러야 했다.
무려 4일.
그동안 밥도 먹지 못한 채 꼬인 기혈을 풀어야 했다.
뿐인가.
들끓는 마기와 살기를 억제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컨트롤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다치기에 내공을 다스렸다.
다행히 지금은 막바지에 들었다.
“스읍!”
들숨과 날숨을 반복 끝에 겨우 안정을 찾았다.
번쩍!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이준이 드디어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얼마나 지났지?”
“운공에 들어간 지 오늘로 6일째입니다.”
호법을 섰던 사형준이 대답했다.
“이틀이나 더 지났네. 나 때문에 훈련도 못 했겠어.”
“주군의 몸이 더 중요합니다.”
“백호한테 훈련받을 기회는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하니까 열심히 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극대 모두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안 그래도 지옥 훈련을 시키는 이준을 무서워하던 그들이었다.
전에도 군기가 확실했는데, 천살성까지 마주했다.
그 짙고 강렬한 살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기운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또한 되살아난 인주를 그냥 찢어버렸다.
오체분시.
지독한 손속에 얼마나 놀랐던가.
아직도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려 왔다.
심지어 거슬리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준이 무섭지 않으면 뇌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준의 말에 큰 소리로 빠르게 대답한 무극대였다.
“뭐야, 왜 그래?”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봉팔이 테구르가 하는 짓을 했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비굴할 정도로 몸을 숙였다.
“누구의 명인데 불만을 터트릴까요.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
“예 그렇습니돠!”
군대의 이등병급 목소리였다.
“그래. 잘해. 난 일본으로 가볼게.”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이준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사형준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희생자 가족들 챙기는 거 잊지 마.”
“바로 처리해놓겠습니다.”
이준이 게이트를 열어 사라졌다.
털썩.
김봉팔부터 막내 세호와 현이까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오줌 지린 것 같다.”
“저도요. 팬티 갈아입어야 할 것 같은데….”
“평소의 말투셨는데 숨이 턱턱 막히오.”
“전 이미 등이 땀으로 범벅이에요.”
“사 대주는 괜찮습니까?”
이곳에서 사형준만 서 있었다.
모두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
무극대원들이 사형준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데.
털썩.
뒤늦게 쓰러졌다.
볼품없이 엉덩방아를 찧은 채.
“주군을… 호위하려면 죽도록 훈련을 해야 할 듯싶다.”
“사 대주도 저희랑 똑같군요.”
그들의 대화에 백호가 끼어들었다.
[이준의 무형살기를 느꼈더냐?]
“제가 느낀 게 무형살기였습니까?”
사형준도 무극대와 마찬가지로 그 전까지는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희생자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아주 잠깐!
뇌를 뒤흔드는 강렬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아찔했다.
살기로 인해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준이 널 아낀 이유가 있었군. 무형살기를 느낀 순간 죽어야 한다. 헌데 넌 살아 있어. 네 안의 천무가 무형살기에게서 목숨을 보호한 거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 네 재능도 어지간히 뛰어나다는 말이다. 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무형살기를 표출했거든. 넌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천무가 제 목숨을 살려줬다는 말이군요.”
[네 재능이 천무를 움직이게 한 거지. 아무튼 열심히 해 봐라. 이준은 넘지 못해도 미래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될 것이다.]
사신수 백호의 선언이었다.
* * *
이준은 게이트를 타고 일본으로 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지 6일.
일본은 지옥이 되어있었다.
균열로 가득한 땅.
메말라 있는 나무들은 이계의 것이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있는 열매에서 보라색 액체가 나와 땅을 적혔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로 변했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존 쉘터와 호텔은 모두 박살난 상태였다.
이제 몬스터에게 몸을 피할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도쿄로 가려면 길을 잘 아는 칸나부터 찾아야겠어.”
무턱대고 움직이면 길을 잃을지 모르니 안내자를 대동하는 게 시간을 절약하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