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4화
후지시마 스즈키는 경공을 하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폭음과 함께 절규가 가득한 뒤쪽.
섬뜩한 살기에 저도 모르게 몸을 돌린 것이다.
“……!”
그의 커진 눈동자는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경공을 펼친 사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우엑!”
그는 참지 못하고 토사물을 게워 냈다.
다행인 건 부축하고 있던 여자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강렬한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혼절한 거다.
“우에에엑!”
토사물을 여러 번 게워 내서야 진정이 됐다.
후지시마 스즈키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이준을 보았다.
땅에 박혀 있는 창에서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전율스러운 공포.
이보다 더한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바로… 한국의 창제라는 말인가….”
혼자 일본을 도와주러 온 이유가 저기에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
숫자의 열세는 그의 강함 앞에서 무의미.
몬스터를 죽이는 걸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눈에 보이는 참상만으로 창제의 강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수천의 몬스터가 끔찍하게 죽은 모습.
몬스터의 신체 일부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신체가 있는 건 그나마 양호했다.
끈적끈적한 혈수만 남은 채.
시체도 보존하지 못한 몬스터가 대다수였다.
몬스터들은 무너진 건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몬스터가 두려워하고 있어….”
창제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이 회색빛으로 반짝일 때마다 모여드는 몬스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두려움에 떠는 몬스터는 레드급도 아니었다.
무려 블랙급.
거기에 카오스 몬스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카, 카오스 몬스터는 공포를 모른다고 들었는데.”
후지시마 스즈키가 아는 지식 선에서는 그랬다.
하나 이준의 마기는 정점에 서 있는 기운.
그 어떤 마기도 무극기 앞에서는 공포을 느껴야만 했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어? 저들은!?”
후지시마 스즈키의 눈에 이준과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몬스터를 피해 무너진 건물 사이에 숨어 있었던 사람들.
건물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노출이 된 것이다.
“맙소사! 저들을 살리면서 공격을 했어?!”
경이로웠다.
수천의 몬스터를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생존자까지 살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무공을 가졌단 말이야!”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강력한 힘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건 경지가 높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자칫하다가는 기혈이 역류해 큰 내상을 입는다.
아니, 내상을 입을 확률은 100%.
몬스터의 등급은 최소 레드급.
블랙급에 카오스 종 몬스터가 섞여 있으니.
내공의 컨트롤로 몬스터를 죽이면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국은… 엄청난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었구나….”
대단하다고 표현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봐라.
일본을 도우러 혼자 왔다.
그리고 몬스터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창제 혼자서 해낸 성과는 수십 명의 S급 각성자가 필요한 일.
저 한 명으로 인해 한국에 떨어지는 이득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괜히 현대 사회에서 국가 전력급 각성자를 대통령급으로 대우할까.
서양은 이미 각성자가 연합군 사령관이나 대통령을 지내고 있기까지했다.
“한 회장님께서 몇 번을 당부하셨던 게 오버가 아니었어….”
그의 뛰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도륙됐는데 진정이 될까.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창제에 대한 두려움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졌으니까.
“사신가와 거래를 터놓은 게 내게는 천운이야. 저 무력을 보면… 내가 제시했던 수수료와 개런티가 적게 느껴질 정도니.”
그는 창제같이 강한 각성자를 본 적이 없었다.
일본의 월령검도 창제에 비하면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창제는 그 강하다는 서양의 각성자들보다 한참은 윗줄에 있었다.
앞으로 아시아 국가는 창제에 의해 움직일 거라고 확신했다.
후지시마 스즈키가 감탄하고 있을 때, 이준의 앞에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
“후욱… 후욱… 사부님의 무공은 어떻게 되먹은 후우욱… 게 죄다 내공이 많이 드냐 후욱….”
이준이 파멸겁을 지지대 삼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 속에 가득한 내공이 텅텅 빌 정도로 빠져나갔다.
SSS급 무공인 진천무의 위력이었다.
거기다가 무극기를 더하니.
블랙급 카오스 몬스터가 있다 하더라도 이준의 앞에서는 하루살이에 불과했을 거다.
“후우우… 혼원신공이 아니었으면 며칠은 누워 있었어야 했겠구만.”
천살성도 깨우지 않고 해낸 결과물이었다.
혼원신공이 10~11성 왔다 갔다 거렸지만 확실히 강해졌다.
그 누구에게도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만약 사신전의 관문을 통과한다면 완전한 11성에 올라설 터.
어쩌면 천주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던 그때.
탁탁탁-
이준의 앞에 세 사람이 내려앉았다.
“왔네.”
이만한 기운을 뿜어냈는데, 천외천이 안 나타나고 배길 수가 있나.
자신의 기가 불안정할 때 죽이고 싶겠지.
혼원신공을 돌려 빠르게 내기를 안정화시켰다.
저들은 서로 뭐라고 지껄이다가 각자 무기를 꺼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서 이빨을 보이냐.”
이준은 파멸겁을 지팡이 삼아 서 있는 상태로 세 존자를 향해 말했다.
“허세 부리지 말거라. 네 기운이 불안정한 거 다 알고 있느니라.”
음양존자가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투를 썼다.
이에 이준의 기분이 팍 상했다.
“있느니라… 크크. 나한테 그 말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사부뿐인데.”
고작 존자밖에 안되는 놈이 주제도 모르고 있었다.
“네가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도 철저히 준비했다.”
음양존자가 무건존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딸랑!
무건존자가 검을 흔들었다.
방울소리와 함께 이준의 앞에 블랙 오크 데란이 나왔다.
뿐인가.
세 존자의 호위대까지 모습을 보였다.
강시화된 블랙 오크와 원래 강시였던 호위대까지.
그 숫자는 천을 훌쩍 넘겼다.
이준이 전에 죽였던 몬스터보다 더 강한 놈들이었다.
“어떠냐. 이만하면 지금의 널 상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
“천외천은 병신밖에 없나.”
“뭬야!?”
무건존자가 빽 소리쳤다.
근 100년간 자신들에게 폭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림은 신마회의 세상이었으니까.
“너희는 이 병력으로 인주를 죽일 수 있냐? 그랬다면 너희 존자들이 벌써 인주를 처리했겠지. 지주에게 걸림돌이 된 인주를 살려 둘리 있나.”
“우리에 대해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구나.”
“흐응. 재밌어. 저 애 가지고 싶어.”
“역겨운 얼굴 치워. 내 취향 아니야.”
색안존자가 마안을 반짝였으나.
이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의 폭언에 자존심이 팍 상한 색안존자가 음양과 무건존자에게 말했다.
“저놈 잡으면 제게 주세요.”
“지주의 허락이 필요하오.”
“주세요!”
“떼를 써도….”
“주시라고요!”
색안존자가 억지를 부렸다.
음양과 무건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창제를 죽이거나 잡는다면 지주에게 바쳐야 한다.
창제는 파천멸기를 지닌 각성자.
실험체로 쓰기에 아주 좋은 대상이었다.
음양과 무건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알겠소.”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고마워요.”
색안의 억지를 들어줬다.
우선은 창제를 잡는 게 먼저였다.색안존자가 억지를 부리면 되던 일로 안 되는 일이 허다했으니.
불부터 끈 것이다.
“병신들. 내가 파천멸기와 비슷한 무공을 익혔으면 내 내공이 어떤 건지부터 알아봤어야 하지.”
이준이 파멸겁을 손에서 놓았다.
세 존자가 대화하는 사이 혼원신공으로 내기를 회복한 상황.
내공이 가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많이 모았다.
이준이 파멸겁을 놔두고 앞으로 한 발 움직였다.
화아악-
그의 몸에서 회색의 기운이 뿜어졌다.
무극기였다.
“파천멸기!”
“네놈! 파천멸기는 어떻게 얻었느냐.”
“알면 죽을 텐데. 가르쳐 줘?”
“이노오옴! 힘만 믿고 행동하나 본데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 주겠느니라.”
무건존자가 호통을 쳤다.
“저놈을 당장 죽여라!”
그의 명령에 따라 데란과 호위대가 이준을 향해 쇄도했다.
“지랄. 너처럼 말한 사람 다 지옥에 갔거든.”
이준도 무극기를 다리에 모아 앞으로 뛰어갔다.
데란과 호위대의 중앙에 뛰어든 그가 뒤꿈치로 땅을 강타해 버렸다.
쾅!
무극기가 담긴 공격이었다.
주위에 있던 몬스터의 호위대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강시라 몸이 단단하다 이 말이지?”
기파에 닿은 적들은 터져야 정상.
단단한 신체를 가진 강시들이라 상처만 난 것 같았다.
더 강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준은 양손에 장력을 모았다.
손으로 모여드는 기류는 칼날이 되어 몬스터를 난도질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양손에 모여든 장력을 가슴으로 가져왔다.
진천무 중 청룡계.
풍살.
“고깃덩어리가 되어라!”
이준은 두 장력을 한 대 모아 터트렸다.
가뜩이나 강맹한 기류로 인해 몬스터와 호위대가 난도질 되는 상황.
진천무의 중 풍살이 펼쳐지니.
폭풍이 지상에 내리쳤다.
이준의 주변에 있는 건 모두 소멸시켜 버리려는 듯.
칼날비가 멈출 줄 몰랐다.
“읏!”
“억!”
“내공을….”
“아니오! 저 와류에 닿으면 안 되오. 뒤로 멀리 물러나야 하오!”
세 존자는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몸을 빼려 했다.
하나 풍살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블랙홀이라도 된 것처럼.
세 존자의 몸을 끌어당겼다.
“안… 돼!”
“더는 버티기 힘드오!”
“무슨 무공이….”
“어억!”
“…음양존자아아!”
“크허어어억!”
결국 풍살은 세 존자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 * *
“끄윽….”
“괘, 괜찮소?”
“도중에 기의 폭풍이 멈춰서… 천만다행이오.”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고깃덩어리가 됐을 거예요.”
세 존자는 이준이 사용한 풍살에 휩쓸렸다.
하지만 천운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강력하던 폭풍이 어느 순간 멈춰 버린 것이다.
몬스터와 호위단을 갈기갈기 찢었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퉷!”
원인은 이준의 내상이었다.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해서 도중에 기혈이 꼬인 것.
혼원신공이 내상을 치유하려고 무공을 강제로 중단시켰다.
“젠장. 싹 다 죽여 버릴 수 있었는데.”
이준은 바닥에 피를 내뱉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적을 한꺼번에 처치하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래도 달라진 건 없었다.
내상은 입었으나.
적이 죽는다는 건 변함없었다.
뚜벅뚜벅.
이준이 세 존자에게 걸어갔다.
저승사자의 발걸음이었다.
“위…험한 것 같소.”
“그런 듯하오.”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마지막 패를 꺼내죠.”
이준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내공이 흔들리는 상태로도 이 지경인데, 정상이었으면 이미 염라대왕을 만나고 있었을 터다.
“우리를 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죽기 싫어서 발악하냐?”
“크크. 우리에게 손이라도 대면 네 가문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멈칫.
이준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반응을 보이자 비열한 미소를 짓는 세 존자였다.
“무슨 말이지?”
“우릴 건드리면 네 나라에 가 있는 인주가 움직일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 컥!”
음양은 말을 하다가 제 목을 붙잡아야 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음양을 놓지 못하겠, 억!”
“꺅!”
무건과 색안존자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있는 이준이 어떻게 자신들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눈에서 지독한 안광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다시 지껄여 봐. 누가 내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이준의 주변에 살기가 요동쳤다.
공기가 괴롭다면서 아우성치기까지 했다.
“켁!”
“꾸에엑!”
그 살기에 데란이 죽어 버렸다.
“곱게 죽고 싶으면 아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야 할 거야.”
이준의 회안이 일렁였다.
인주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내면에 잠들어 있던 천살성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