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8화
“기억이나 내놓고 죽어. 파랑아.”
“뀨!”
[파랑이가 혼돈의 마기(SS)를 사용했습니다.]
“으으으!”
요시오의 몸에서 빠져나온 내기가 파랑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준은 그런 요시오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모투술(S)이 발동했습니다.]
[상단전의 힘이 모투술(S)을 제어합니다.]
요시오의 지난 기억들이 이준에게 쏟아졌다.
‘고리의 게이트를 만든 게 천외천이 맞네.’
요시오의 기억 속에 나온 인물들.
사사키 가주와 천외천 놈들이었다.
그것도 요시오에게 힘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추령존자.
존자 중에서도 상위 서열에 있는 자였다.
‘고리의 게이트가 지주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
고작 요시오 회장에게 힘을 주려고 추령존자가 나선 것이다.
밑에 있는 존자들에게 맡겨도 충분한데, 그가 직접 나섰다는 건 그만큼 고리의 게이트가 중요하다는 걸 뜻하는 바이기도 했다.
‘천주를 소환하는 데 엄청난 내공과 몬스터의 마기, 인간의 피가 필요하니 그럴 만도 하지.’
요시오를 처리함으로써 천외천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터.
구멍이 난 곳을 후벼 파서 천외천의 계획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어느 게이트를 고리에 연결했는지 요시오에게 이미 확인을 한 상태.
연결된 게이트는 전생과 똑같았다.
이제 그 게이트만 없애면 천외천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털썩.
요시오가 바닥에 쓰러졌다.
내공과 생기가 전부 빨려 밀랍인형이 되었다.
“잘했어.”
“뀨뀨!”
요시오의 기운을 먹어 치운 파랑이가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칭찬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제 마력을 회수해.”
“뀨.”
파랑이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녀석의 입으로 공기가 빨려 오더니 얼음 감옥이 순식간에 녹았다.
파랑이는 제 할 일을 끝내고 이준의 어깨에 올라 의기양양했다.
“드디어 고이 간직한 전력을 활용할 때가 왔나?”
허공에 손을 내리긋자 커맨드 창이 떴다.
-몬스터
[제1군단 샤크로아] - 자율행동(전투 훈련 중)
[제2군단 페어리] - 자율행동(농사 중)
[제3군단 스케먼] - 자율행동(장비 제련 중)
[제4군단 웨어파드] - 자율행동(마정석 채집 중)
+수행할 수 있는 행동
자신에게 소속된 몬스터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 창이었다.
‘샤크로아나 페어리, 스케먼은 문제가 없는데 웨어파드가 불안하단 말이야.’
유일하게 웨어파드만이 계승의 꽃
을 먹지 않았다.
웨어파드 종족은 최근에 합류한 몬스터.
백호의 수호성이긴 하나 다른 세 종족보다는 약했다.
백호에게서 완전한 힘을 못 받았기 때문.
그래서 스케먼보다 더 약했다.
‘웨어파드는 집이나 지키게 해야겠다.’
손을 올려 수행할 수 있는 행동 앞에 있는 +를 눌렀다.
-수행할 수 있는 행동
[게이트 공격]
[게이트 방어]
[탐사]
[보급]
[자율행동](현재)
샤크로아와 페어리, 스케먼을 자율행동에서 게이트 공격으로 바꿨다.
[제1군단 샤크로아가 전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게이트를 공격할지 명령어를 입력하십시오.]
‘샤크로아는 오사카 성 게이트.’
[제1군단 샤크로아의 공격지는 레드존 카오스 게이트인 폐성터로 확정됐습니다.]
나머지도 설정했다.
페어리는 아베노 하루카스 게이트.
스케먼은 덴포잔 대관람차 게이트로 공격 커맨드를 바꿨다.
[제2군단 페어리의 공격지는 블랙존 게이트인 사우린 신전으로 확정됐습니다.]
[제3군단 스케먼의 공격지는 블랙존 게이트인 까마귀 무덤으로 확정됐습니다.]
모든 명령어를 입력하자 샥쿠와 로티틸, 테구르가 말을 걸어왔다.
[전쟁입니까?]
[상당히 강한 게이트 같은데 제가 끝내 놓을게요.]
[드디어 주인님께 제 능력을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요.]
‘잘할 수 있지?’
[예! 박살을 내 놓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주인님의 제1 충복인 저 테구르가 근심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몬스터들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피해 많이 입으면 알지? 국물도 없다.’
[옙!]
명령을 끝낸 이준은 미야와키 요코와 칸나에게로 갔다.
“움직이죠. 하루카스 전망대 쪽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것 같아요.”
“하루카스 전망대에서요?”
“그곳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거든요.”
하루카스 전망대는 고리로 연결된 게이트.
게이트가 불안정해지는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죽음이었다.
인간은 아니나 강시 수백 구가 이준의 손에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미즈노 뱅크 각성자도 그의 손에 죽었고.
근처의 게이트뿐만 아니라 멀리에 있는 게이트도 이에 반응할 터.
특히 이미 균열이 심한 하루카스 전망대에선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곳까지 기가 느껴지시나요?”
“보시다시피.”
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미야와키 요코는 입을 가리며 놀랐다.
적어도 9km는 떨어져 있는 거리였다.
그 먼 거리를 기로 읽는다는 건….
“괴물이군요.”
“그냥 기가 예민한 것뿐이에요.”
“역시 준 사마! 어쩜 겸손하시기까지 하셔.”
“가요. 늦으면 사람들의 희생이 커질 거예요.”
“타국 사람의 목숨까지 챙기는 인성이라니….”
미야와키 칸나는 이준의 굿즈를 꽉 쥔 채 몽롱한 표정으로 그를 봤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더욱 빠져든 칸나였다.
* * *
그 높은 하루카스 전망대가 무너져 내렸다.
그 아래에 깔린 건물들과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도와주세요!”
“그린 하피야 도망쳐!”
“아악!”
“가와사키!”
불바다 속에서 절규가 퍼져 나왔다.
지옥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인은 물론 각성자까지, 하늘을 선회하는 몬스터.
그린 하피에 의해 무참히 죽어 나갔다.
쉘터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
도망칠 곳은 없었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 숨어 있는 여자가 눈치를 보며 도망치려는 찰나.
“흡!”
그린 하피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여자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렸다.
그린 하피는 가차 없이 발톱으로 여자를 죽이려 했지만.
펑!
도리어 그린 하피의 몸이 장력에 의해 터졌다.
“괜찮아요?”
“요, 요령 님!”
“늦게 와서 미안해요. 쉘터는 어떻게 됐나요?”
“부서…졌어요. 흑!”
“큰일이군요.”
“여긴 지옥이에요. 요령 님이라도 어서 피하세요.”
“사람들을 놔두고 도망칠 순 없어요.”
미야와키 요코가 여자를 다독이고 있는데.
“살려 줘!”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칸나야. 이분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렴.”
“알겠어요. 어머니.”
칸나는 여자를 부축해 경공을 펼쳤다.
요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하늘에는 몬스터가 가득했다.
“하필 그린 하피라니.”
“게이트 밖에서 공중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빡세긴 하죠.”
이준은 상관없었다.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타국.
일본의 요청으로 지원을 왔지만 이 땅덩어리가 어떻게 되든지 알 바 아니었다.
자신은 균열만 닫으면 되고, 천외천의 계획만 방해하면 되니까.
“그보다 더 힘든 건 저 게이트를 어떻게 닫냐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 그 균열이 하늘에 열렸다.
그린 하피들이 하늘을 날며 검은색 게이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안쪽에서 게이트를 닫으면 쉬울 건데. 여길 로티틸이나 테구르한테 맞길 걸 그랬나?”
“네?”
“아니에요.”
사실 제일 간단한 방법이 있긴 했다.
천살성을 깨워 무극기로 게이트를 붕괴시키면 된다.
하나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고 손수 힘으로 붕괴시키는 건 리스크가 있었다.
게이트는 되도록 공략대로 무너트려야 했다.
“아, 좋은 방법이 있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빨리 움직이셔야 돼요.”
“전 따로 행동해야 할 것 같아요.”
“이유가 있으시겠죠? 알았어요. 각자 움직여요.”
“블랙급 몬스터니까 칸나랑 같이 다니세요.”
“그럴게요.”
이준은 미야와키 요코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찾았다.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이곳에 있을 거 아니야.”
고리의 게이트는 천외천에게 아주 중요했다.
이 중차대한 일을 요시오 회장에게만 맡겼을까.
분명 사혈림의 무인을 파견했을 것이다.
“놈들을 잡아다가 대신 게이트를 파괴시켜야겠다.”
인주의 세력보다 강한 지주의 세력.
널린 게 AA급 무인들이다.
놈들을 잡아다가 게이트를 파괴시키면 자신에게 떨어지는 리스크도 없을 터.
꽤 좋은 생각이었다.
“찾았다. 너희가 그린 하피를 조종하고 있었네?”
이준의 기감에 잡힌 사기.
소리 없는 기파가 그린 하피의 아래에서 나오고 있었다.
“응?”
더군다나 파천멸기의 기운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이건 역천진 같은데. 고리의 게이트랑 같이 펼쳐 놓은 건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역천진이 펼쳐져 있다면 자신 또한 생각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
* * *
“조장. 요시오한테서 연락이 끊겼어요.”
“단후한테서는?”
“단후도 연락이 안 돼요.”
“그 자식은 이 중요한 시기에 또 연구만 처하는 거냐?”
“그런 것 같습니다.”
“후우우. 일은 우리가 X빠지게 하고 포상은 나눠 가져야하다니.”
“추령존자께 드릴 명단에 단후의 이름은 빼고 올리시죠.”
“괜찮은 생각이다. 이번 기회에 교육을 단단히 해야겠어.”
남자의 손에서 종이 흔들렸다.
종이 흔들렸음에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종에서 흘러나온 기파가 그린 하피에게 전해졌다.
[끼에에엑!]
“죽여라. 인간은 너희를 없애려 하는 존재. 죽음으로 너희의 공포를 각인시켜라.”
조장이란 남자가 사용하는 건 사혈림의 금혼술.
그린 하피를 조종하는 술법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이곳에 펼쳐진 역천진에 마력과 인간의 생명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고리의 게이트가 폭발하면 임무는 완수.
그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후후. 어서 역천진에 피를 잔뜩 가져오너라.”
그린 하피들은 사람이 보이는 족족 공격했다.
비명이 들릴 때마다 귀기가 역천진으로 몰려들었다.
귀기와 수많은 사람의 피.
그리고 각성자의 내공까지.
역천진을 발동하는 요건을 거의 충족시켰다.
그때였다.
그들의 앞쪽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냐!”
조장의 호통에 하늘을 선회하던 그린 하피들이 내려와 경계했다.
“너희를 안 찾았으면 어쩔 뻔했어. 역천진을 그려 놨는지 몰랐잖아.”
이준이었다.
그는 사혈림의 무인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창제!”
이준은 천외천에서 요주의 인물.
모르면 간첩이었다.
“역천진에, 고리의 게이트에 가지가지 한다.”
“우리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구나!”
[끼에에엑.]
[끽끽.]
사혈림의 무인과 그린 하피는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명령만 떨어지면 곧장 움직일 것 같았다.
마침 조장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폭멸공을 허용한다. 놈을 죽여!”
폭멸공은 사혈림뿐만 아니라 천외천 소속 모두가 지닌 무공이었다.
잠재력을 폭발시키기도 했고, 자폭을 행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화아악-
사혈림 무인들의 몸에서 엄청난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들 모두가 AA급.
초절정에 있는 무인만 수백.
그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키면 능력에 따라 잠시나마 S급인 화경의 무인과도 싸울 수 있었다.
수백의 고수와 블랙급 몬스터인 그린 하피까지 있으니.
이준과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물론 사혈림 무인들만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이준을 S급 각성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준은 이미 S급을 넘어선 지 오래.
사혈림의 무인들이 폭멸공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하더라도 이준에겐 대적할 수 없었다.
쿵!
이준의 발이 땅을 울렸다.
“뭐, 뭐지?”
“폭멸공이 멈췄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눈을 깜빡이면서 서로를 바라봤다.
“폭멸공을 쓰면 죽어야 하잖아. 그렇게 놔둘 수 없지. 너희를 이용해서 저 게이트를 파괴시킬건데. 죽으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잖아.”
“……!?”
“폭멸공은 도중에 끊을 수 없는데….”
“난 가능해.”
혼원신공으로 안되는 건 없었다.
이준이 천고의 신공을 익혔다는 걸 모르는 사혈림의 무인들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조장! 추령존자께서 이곳으로 오신다고… 어?”
다른 지역에 있다가 조금 전 이곳으로 온 여자는 이준과 조장을 번갈아 가면서 보다가 소리쳤다.
“너는 창제!?”
“여기로 추령존자가 온다 이 말이지?”
이준이 씩 웃었다.
다음으로 찾아갈 사람이 바로 추령존자였는데 제 발로 찾아온다니.
직접 가야 하는 헛수고를 덜어 주는 추령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