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7화
“파랑아. 이곳에 있는 놈들 도망치지 못하게 가둬.”
“뀨!”
파랑이가 이준의 품에서 나와 바닥에 내려앉았다.
[파랑이가 혹한지옥(SS)을 사용합니다.]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한기가 주변을 덮쳤다.
쩌어억!
이준이 서 있는 주변은 순식간에 얼음 지대로 변했다.
“뭐, 뭐야!?”
“창제의 몬스터야!”
“이럴… 수가….”
미즈노 뱅크 각성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얼려 버리는 혹한의 추위였다.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 때아닌 겨울이 찾아왔다.
뿐인가.
“저, 저것 좀 보십시오!”
“이게… 무슨 마력이야….”
“말도 안 돼! 고작 청호인데.”
하늘에 쇠창살. 아니, 얼음 창살이 생겼다.
쿵쿵쿵 소리와 함께 사각형의 거대한 얼음 감옥이 그들을 감쌌다.
정말로 도망치지 못하게 할 작정인지 얼음 창살은 촘촘하기까지 했다.
강도는 어떤가.
깡!
“흠도 안 나!”
“젠장!”
가지고 있는 무기로 얼음 창살을 후려쳤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황당한 얼굴을 한 미즈노 뱅크 각성자들을 뒤로하고.
이준은 요시오 회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파랑아. 사냥을 시작해 볼까?”
“뀨!”
“기술 쓰지 말고 죽여. 내공을 흡수해도 상관없고.”
“뀨웃!”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달라는 행동이었다.
곧이어 파랑이가 땅을 박차며 사라졌다.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 네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한없이 약한지 가르쳐 줄 테니까. 어? 예전에도 했던 말 같은데 이런 말을 쓰게 만드는 놈이 또 있네.”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악마의 웃음.
그를 잘 아는 이들이 봤다면 치를 떨었을 터다.
팟!
이준도 움직였다.
대놓고 모욕을 들은 요시오가 발끈했다.
“이 어린놈이!”
이준을 따라 움직이려 했으나.
그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냐!”
요시오가 기감을 열어 이준을 찾았다.
세간에 알려진 요시오의 등급은 AA급 완숙.
하나 진짜 등급은 AA급 끝자락이었다.
천외천을 따르면서 얻은 보상.
이로 인해 AA급 끝자락이 되었다.
천외천의 힘은 각성자의 등급으로 따졌을 때 적어도 한, 두 단계 위.
요시오가 S급이라 알려진 이준에게 자신감을 표한 이유기도 했다.
그때였다.
“컥!”
“악!”
“윽!”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들렸다.
“거기냐!”
요시오가 비명이 난 곳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도착한 곳에는 이미 미즈노 뱅크 각성자가 죽어 가고 있었다.
그것도 단전이 박살 난 채.
“악!”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
요시오가 반대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큭!”
“쥐새끼 같은 놈!”
계속 허탕을 쳤다.
닿을 듯 말 듯.
간발의 차이.
시간이 지나도 그 차이가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으니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미즈노 뱅크 각성자는 모두 한곳으로 모여라!”
“넷!”
요시오 회장의 목소리에 미즈노 뱅크 각성자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흩어져 있으니 목숨을 잃는 것.
모여 있으면 위험이 덜할 거라 여겼다.
“아악!”
“사, 살려…!”
꽈득-
비명과 파육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것도 모두가 모여 있는 중앙에서.
그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두 구의 시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 분명… 내 옆에서 말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죽는 걸 느끼지도 못했다니….”
“모여 있어도 소용없는 거 아닐까?”
“지금도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어.”
미즈노 뱅크 각성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공포가 주변으로 전이된 거다.
수하들의 동요에 요시오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상대는 고작 한 명이다. 놈을 발견한 각성자에게는 10억 엔을 포상으로 주겠다.”
“헉!”
“10억 엔?”
10억 엔은 한화로 100억.
각성자라도 큰 액수였다.
돈에 눈이 돌아간 미즈노 뱅크 각성자들이었지만.
“아, 안 돼…!”
“우, 우아악!”
“여기…!”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들이 동료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시체로 변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려오는 비명은 짧아졌다.
계속 늘어나는 시체.
비록 10억 엔이란 돈이 크긴 했으나 죽음이란 공포보다는 못했다.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회장님도 못 찾고 있잖아.”
“우, 우린 정말 사냥감이 된 거야.”
불안, 초조, 동요, 혼란.
그들은 점점 패닉에 빠졌다.
이에 요시오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오냐.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
그가 품에서 헝겊에 감싸인 물건을 꺼냈다.
종이었다.
그가 손잡이를 잡고 종을 울리자 지하 밀실에 누워 있는 시체가 몸을 일으켰다.
“나의 군대여. 드디어 너희가 나설 때가 됐다. 나를 능욕하는 놈을 찾아 죽여라.”
요시오 회장의 명령에 수 백구의 시체가 일제히 땅을 박찼다.
* * *
지하 밀실의 시체가 움직였다.
그 모습에 미야와키 요코와 칸나가 소리쳤다.
“강시!?”
“어머니…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아요.”
“요시오의 비밀병기가 저 강시들이었어.”
미즈노 뱅크가 너무 막 나간다 싶었다.
아무리 뒤에 사사키 가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게 있다.
그러나 미즈노 뱅크는 국민의 원성에도 선 넘은 짓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이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 어머니! 저, 저길 보세요!”
칸나가 가리킨 곳에는 익숙한 소녀가 있었다.
“히토미?”
“네! 히토미예요. 히토미!”
칸나는 히토미가 반가운지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칸나야 안 돼!”
강시들 사이에 있는 히토미.
그렇다는 건 그녀 또한 강시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칸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히토미를 향해 뛰어갔다.
히토미란 여자는 칸나를 보다가 이내 손톱을 휘둘렀다.
요코가 다급히 막아서려는데.
그그그극!
쇳소리가 들렸다.
칸나의 손에는 어느새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이년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려고 해?”
칸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요화 은서단의 목소리였다.
칸나가 위험해져 은서단이 나온 것.
칸나는 은서단이기도 했으니, 자신을 공격한 강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죽엇!”
은서단이 히토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치려는 순간!
“안 돼요!”
칸나가 이를 방해했다.
히토미의 목 바로 앞에 검이 멈췄다.
“이년은 널 공격한 강시다. 네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야.”
“강… 시?”
칸나와 은서단이 이야기하는 사이 히토미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공격권에서 벗어난 히토미는 칸나에게 살기를 보이며 기회를 엿보았다.
“저것 봐라. 네게 살의를 보이는데 예전의 그 아이로 보이느냐?”
“그래도….”
“아까 창제가 네 어미에게 한 말 못 들었어?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다간 죽도 밥도 못 된다. 강시가 됐으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긴 힘들어. 죽여 주는 것만이 성불하는 것이야.”
옆에 있는 요코는 칸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두 개의 목소리.
하나는 딸 칸나의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요화 은서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인격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화의 말이 맞아. 히토미를 성불시켜 주렴.”
“어머니….”
“널 공격한 히토미도 괴로울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미야와키 요코의 시선은 저 멀리에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잘 아는 얼굴이 여럿 보였다.
모두 미야와키 가문 출신의 각성자들.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순간 끊겼다.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빠서 그런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저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한 강시가 되어 그동안 연락이 안 됐던 거다.
‘내가 우유부단하게 행동만 안 했더라면….’
자신의 앞에 강시로 안 나타났겠지.
“빨리 결정해.”
“…할게요.”
“네 손으로는 못할 테니 들어가 있어.”
“이번만 부탁드려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은서단이 공기를 들이마시며 좋아했다.
“흐음. 좋아. 처음부터 살육하는 건 달갑지 않지만 준비 운동으로는 제격이야.”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이에 히토미가 뒤로 물러났다.
은서단의 몸에서 풍기는 건 요사스러운 사기.
강시가 제일 무서워하는 기운이었다.
“넌 어디에 약점이 있을까?”
은서단은 히토미의 몸을 훑어봤다.
그녀의 눈에 요사스러운 사기가 맺힌 찰나!
히토미의 목 뒤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힘을 느꼈다.
요령심법의 최대 장점.
강시 같은 마물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커헉!”
히토미의 등 뒤에서 나타난 은서단이 손을 뻗었다.
새하얀 목덜미로 은서단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손이 히토미의 목덜미에 가까워질수록 검은 선들이 생기는 게 아닌가.
피부에 손이 닿자 검은 선들 중앙에 구슬이 나왔다.
은서단은 그 구슬을 손가락으로 확 잡아 뽑았다.
반발력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요령심법은 이런 반발력을 무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니까.
“이게 마정석이라는 건가?”
은서단은 마정석을 입에 넣고 씹었다.
“이 정도의 사기가 담긴 마정석이라면 내 양식으로 충분하겠어.”
그녀는 축 늘어진 히토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힘을 지탱하는 마정석이 없으니 부패가 되기 시작한 상황.
그녀의 손길에 히토미는 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다음 먹이는 누구로 정할까?”
은서단이 다음 목표를 찾는데 그녀의 눈에 이준의 움직임이 간혹 잡혔다.
보고 있자니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왜 자꾸 옛 생각이 떠오를까.
이상했다.
저 남자만 보면 꼭 마주 진무열이 떠올랐다.
“어쩌면 기운이 이렇게 판박이일 수가 있지…?”
말투, 언행, 심지어 적을 괴롭히는 것까지.
너무도 비슷했다.
“빌어먹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 자꾸 생각나.”
갑자기 화가 솟구치는 그녀.
안 좋았던 기억을 없애려고 강시들을 향해 쇄도했다.
* * *
“여, 여기서 나가고 싶어!”
“제발 살려 주세요!”
“아악!”
이준과 파랑이의 사냥은 한 명만 남을 때까지 계속됐다.
이제는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든 상황.
바닥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아니, 시체라고 보기 힘든 육편이 널려 있었다.
“악마… 저놈은 악마가 분명해!”
요시오 회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하나.
창제는 자신을 농락하기 위해 일부러 잡을 듯 말듯 곁을 내준 것이다.
이제야 창제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 도망치셔야 합니다!”
“…그, 그래. 사사키 가주께 창제의 경지를 알려야 해.”
수하의 말에 요시오가 몸을 돌렸다.
이준의 경지는 S급도 아닌, SS급에 닿아 있는 게 분명했다.
SS급이면 천외천의 존자나 지고무상한 지주 이외에는 상대할 수 없었다.
“어딜 가려고?”
“헉!”
“버, 벌써!”
분명 생각보다 많은 각성자가 남아 있었는데 이준은 그들을 다 처리하고 요시오 회장 앞에 나타났다.
“벌써라니 한참이나 걸렸구만. 안 그러니 파랑아?”
“뀨뀨!”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에 올라와 대답했다.
요시오 회장의 눈에 들어온 광경.
다 죽었다.
미즈노 뱅크 각성자며 비밀병기인 강시까지 싹 다.
모두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너무 창제를 얕봤어.’
“오, 오지 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국인이 일본인을 건드린단 말이냐!”
요시오 회장의 비서가 용기 내 소리쳤다.
“이미 다 죽인 걸 어떡하냐?”
이준이 씩 웃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표정.
정말 미친놈이었다.
요시오도 그를 향해 말했다.
“창제란 이명을 가지고 이런 참혹한 짓을 벌이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않은가가 아니고!”
쿵!
이준이 진각을 펼치자.
“억! 내, 내 팔이!”
요시오 회장의 왼쪽 팔이 터져 나갔다.
졸지에 팔을 잃어버린 그였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라고 해야지.”
곁에 있던 그의 비서는 사색이 되었다.
창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
여기에 있으면 목숨만 잃을 거라 생각했다.
“난… 나아아아안!”
비서가 경공을 펼쳐 도망쳤다.
하지만 비서의 앞을 가로막은 건 얼음 창살이었다.
그 좁은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얼음 창살을 맨손으로 잡았는데.
쩌어억!
얼음이 비서의 손을 타고 올라와 몸을 얼려 버렸다.
“안… 돼…!”
절규하는 상태 그대로 얼어 버린 비서였다.
“봤지? 도망치면 저렇게 돼.”
“사, 살려 주십시오.”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런데 어쩌냐. 이미 늦었는데.”
“절 죽이면 일본 국민의 원성을 살 겁니다.”
“왜 내가 널 죽였다고 생각할까? 넌 나한테 안 죽고 몬스터한테 죽을 건데. 넌 자기가 파 논 함정에 죽은 것뿐이야.”
일본 전역에 열린 게이트.
일본은 현재 전쟁 상태였다.
각성자가 어디서 죽었나 신경이라도 쓰겠나.
자기 목숨도 챙기기 힘든 게 지금의 일본이었다.
“천외천이 일본 전역에 게이트를 열었는지만 확인하면 넌 쓸모가 없어진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발악해봤자 넌 결국 죽게 되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