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8화
그림자가 무극대원을 스쳐 지나갔다.
콰직!
무극대원의 팔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찬영아!”
“형!”
무극대원의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근처에 있던 동료들은 다친 동료의 팔을 급히 지혈했다.
그러던 그때 또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커헉!”
다친 무극대원의 반대편에서 울린 비명이었다.
이번에는 어깨가 아닌 다리였다.
그림자는 허벅지 위에까지 통째로 뜯어갔다.
신체 중 일부가 사라진 무극대원들은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다.
이에 사형준과 김봉팔이 분노했다.
“감히!”
“이 개새끼가!”
당장이라도 그림자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이준이 목소리에 멈춰야만 했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찬영이가.”
“너희들 상대가 아니야. 달려들어 봤자 똑같이 다쳐.”
이준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감을 최대한으로 퍼트렸다.
하나 그림자의 움직임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럴진대 사형준이나 김봉팔이라고 다르겠는가.
흥분해서 덤볐다간 험한 꼴을 당할 게 뻔했다.
놈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였다.
혼원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무극기까지 끄집어내자 상대가 흥분했는지 괴성을 질렀다.
[쿠와아아아!]
“동물의 울음소리.”
기습한 놈은 오크 같은 인간형 몬스터가 아니라, 동물형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흥분한 녀석은 다시 무극대를 공격했다.
달려와 물어뜯는 게 아니었다.
푸확-
“억!”
“악!”
바닥에서 날카로운 송곳 모양의 돌이 솟구쳤다.
피하지 못한 무극대원들은 꼬챙이가 되어 즉사했다.
으득.
이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기감을 퍼트려도 움직임만 간신히 잡을 뿐.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자신이 함부로 움직이면 무극대가 더 위험해질 터.
무극대가 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내가 놈의 움직임을 파악할 테니 그때까지 버텨 줘.”
이준은 혼원신공을 전력으로 펼쳤다.
주변이 혼원신공의 내기로 인해 진동했다.
얼마나 강력한 기운을 발하는지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는 동안 무극대는 점점 죽어 나갔다.
30명 넘게 목숨을 잃었을 때쯤.
“크흑!”
“시, 시발!”
“으아아악!”
무극대원들이 참지 못하고 터졌다.
친했던 동료의 죽음.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정체도 모를 몬스터에게 몸이 뜯겨나갔다.
결국 이성을 잃은 무극대원들이 그림자가 나타났던 허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경거망동하지 마!”
김봉팔과 사형준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으나 소용없었다.
통제가 안 되는 상황.
무극대원들을 말리려고 직접 움직이려는데 이준이 먼저 움직였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달려든 무극대원들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당겼다.
쾅!
무극대원들은 이준의 힘에 의해 땅바닥에 처박혔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이준의 눈이 회안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그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무극대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각성자.
개죽음을 당하게 하려고 무공을 가르친 게 아니었다.
철컥-
이준은 파멸겁을 꺼내 들었다.
그림자는 분명 무극기에 잔뜩 흥분했다.
무극기로 자극을 하면 재차 공격할 터.
그때를 노려야 했다.
무극기를 운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림자가 무극대원을 향해 공격해 왔다.
“거기냐.”
이준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무극대원을 공격하는 그림자의 앞에 나타났다.
흑염이 타오르는 파멸겁으로 그림자를 공격했다.
까가가강!
이준의 눈앞에 스파크가 튀었다.
파멸겁이 단단한 강철에 가로막히며 마찰음을 냈다.
그림자와 이준이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누구냐.”
[크르르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정체가 드러날 법도 한데 그림자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색은 그림자의 이빨.
파멸겁과 충돌한 부분이었다.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으면 내가 직접 알아내지.”
쾅!
이준이 다리를 들어 올려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게이트를 붕괴시키려는 듯한 강한 파괴력.
진동과 함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중심을 잡으려고 뒤로 점프를 한 순간 이준의 파멸겁이 휘둘러졌다.
까강깡깡!
파멸겁이 그림자의 이빨을 연신 강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은 휘두른 듯해 보였다.
파멸겁과 그림자가 부딪힐수록 검은색이던 녀석이 제 색을 되찾고 있었다.
파멸겁에서 나온 불은 흑염.
지옥의 불꽃이다.
동시에 성화이기도 했다.
모든 악을 정화하는 기능도 있었다.
“설마.”
파멸겁을 휘두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색을 되찾고 있는 그림자가 꽤 익숙했다.
책에서 본 듯한 이미지였다.
파멸겁을 격렬하게 휘두른 끝에 접어든 소강상태.
색을 반쯤 되찾은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백… 호!?”
그랬다.
그림자는 다름 아닌 대지의 지배자이자 사신수 중 한 마리인 백호였다.
“꽤 강한 천외천 놈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전멸한 이유가 있었어.”
띠링-
이준이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내자 알림이 울렸다.
[서브 퀘스트 - 오염된 사신수.]
난이도: S
설명: 백호는 현무의 흔적을 찾다가 카오스들과 맞닥뜨려 전투를 벌였습니다. 카오스의 칠좌에게 공격을 당해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간신히 카오스들에게 벗어난 백호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회복에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칠좌에게 당한 상처가 깊어 자신을 봉인했지만, 도중에 정신을 잃고 균열 오염에 지배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혼원의 계승자로 사신수를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백호의 균열 오염을 제거해 온전한 상태로 돌려놓으십시오.
완료 조건: 백호 정화
실패 조건: 백호의 도망
보상: 수호혼, 호감도 MAX, 무극자의 혼력 상승.
퀘스트였다.
백호를 정화하라는 것.
하나 제일 눈에 들어온 건 사부에 관한 보상이었다.
‘혼력 상승은 뭐지?’
정보창을 열어 설명을 보았다.
[무극자의 혼력 상승]
설명: 무극자는 자신의 계승자를 돕기 위해 무리한 힘을 사용해서 계승자의 옆에 있었습니다. 하나 그의 힘이 천계에 닿았다지만 혼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계승자가 사신전에 든 시점부터 무극자는 점점 혼력을 잃어 갑니다. 혼의 소멸을 막기 위해선 백호의 힘이 필요합니다.
‘혼력만 있으면 사부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거네?’
수호혼이 보상으로 있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부가 오래 이승에 있는 게 가장 절실했다.
“넌 내가 꼭 정화하고 만다.”
이준은 기필코 백호를 원래의 상태로 만들 거라고 다짐했다.
사부의 혼을 유지하기 위해.
무극대원들의 복수를 위해.
백호는 정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우선 도망가지 못하게 문 닫아.”
[녹수림의 문을 강제로 닫습니다.]
[녹수림의 주인과 적대도가 최상으로 변했습니다.]
[녹수림의 주인이 광기를 뿜어냅니다.]
이준은 게이트를 닫고 백호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 * *
사신수는 인간이 대적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신적인 존재.
괜히 수호신이라 불리겠는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입김만으로 인간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능한 존재였다.
하나 옛날과는 달리 그 전능한 존재들의 힘은 많이 퇴색되었다.
이젠 상처가 난 것도 모자라 카오스 균열 오염에 지배되기까지.
광기에 휩싸여 정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과 대등하게 싸우는 백호였다.
사신수라 가능한 이야기.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진작 스러지고 말았을 테다.
쾅!
콰쾅!
이준과 백호가 서로를 죽일 듯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풀과 나무, 깨끗한 강으로 가득한 주변은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였다.
이준과 백호의 싸움으로 폐허가 된 녹수림이었다.
무극대는 그저 멍하니 멀리서 싸움을 지켜봐야만 했다.
“대주. 주군이 저놈을 보고 백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 같다.”
“백호라면 사신수일 텐데. 주군의 힘은 어디까지이신 건지…”
김봉팔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여태 많은 싸움을 본 그.
인주와도 싸우는 걸 봤지만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이준이 백호의 앞발에 치여 뒤로 나뒹굴었다.
곧바로 일어나서 백호를 향해 쇄도하는 이준.
파멸겁이 백호의 미간을 찔렀다.
백호는 창을 허용하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을 세워 공격했다.
뿐인가.
대지를 다스리는 신수답게 흙과 바위가 일어나서 이준을 압박했다.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도요.”
“뀨우?”
여자 대원의 품에서 잠을 자고 있던 파랑이가 일어났다.
“파랑 님. 저, 저걸 보세요.”
어느샌가 김봉팔은 파랑이를 상관으로 모셨다.
파랑이는 사신수 못지않은 지배자 몬스터.
무극대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존재였다.
“뀨!”
“파랑 님! 어디 가세요!”
김봉팔의 부름에도 여자 대원의 품에서 빠져나온 파랑이가 이준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파랑이.
원래의 거대한 크기로 돌아간 파랑이가 열 개의 꼬리를 활짝 펼쳤다.
녀석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일어났다.
이준이 위험해 보이자 뒤늦게라도 나선 것이다.
화르륵!
꼬리에 열 개의 파란 구체가 생기며 백호를 향해 쏘아졌다.
콰광쾅쾅-
파란 구체는 무자비한 폭격을 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랑이의 몸에서 한기가 나오더니 주변을 얼려 버렸다.
백호가 부리는 흙과 돌을 빙옥의 가시로 부수기까지 했다.
“파랑아!”
“뀨우!”
[크와아앙!]
이준과 파랑이 대 백호의 싸움.
2:1로 붙었다.
파랑이가 백호의 움직임을 봉쇄하면 이준은 파멸겁으로 녀석을 정화했다.
창에 무극기까지 집어넣으니 파괴력이 극대화가 됐다.
2:1로 싸워 그나마 우위를 점한 이준.
시간이 지날수록 백호는 지쳐만 갔다.
물론 이준과 파랑이도 똑같았다.
다만 이를 악물고 대항할 뿐이었다.
이준은 전신 내공을 소모하며 백호를 정화하는 데 힘썼다.
쿵.
거의 정화를 다 했을 때는 백호가 먼저 지쳐 쓰러졌다.
검었던 백호의 몸이 제 색을 되찾았다.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니 카오스에게 당한 상처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허억… 저 상처로 여태 싸운 거 허억… 야…?”
뒷다리와 등, 배 가릴 것 없이 치명적인 상처로 가득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
상처 부위에는 보랏빛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균열 오염이 된 피였다.
“후욱… 후욱….”
이준은 숨을 돌리면서 파랑이에게 말했다.
“파랑아 카오스의 마기도 먹을 수 있니?”
“뀨웃!”
파랑이는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활짝 벌렸다.
[파랑이가 패시브 스킬인 마기(S)를 사용했습니다.]
[파랑이가 혼돈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가 혼돈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
……
[혼돈의 마기로 인해 파랑이의 패시브 스킬인 마기(S)가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지금부터 혼돈의 마기(SS)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랑이가 혼돈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의 모든 스킬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킬이 업그레이드됩니다.]
[포식(SS) -> 포식(SSS)]
[죽음의 불꽃(S) -> 달빛구슬(SS)]
[빙옥의 가시(S) -> 혹한지옥(SS)]
질 좋은 마기를 먹었다고 파랑이의 능력이 수직 상승했다.
백호를 힘들게 한 마기이자 강한 힘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혼돈의 마기를 모두 먹어 치운 파랑이가 마무리로 트림까지 했다.
“꺽!”
작은 크기로 돌아온 파랑이가 이준의 주머니로 들어가 잠들었다.
자기는 할 일을 끝냈다는 표시였다.
이제 흡수한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잠에 든 것이다.
“수고했어.”
이준이 주머니를 툭툭 치곤 쓰러진 백호의 앞으로 갔다.
[서브 퀘스트 - 오염된 사신수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300,000,000p가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서쪽 지배자의 호감도가 MAX로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수호혼이 주어집니다.]
[특별 보상으로 무극자의 혼력이 상승했습니다.]
천외천은 청룡무의와 같이 이번에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무극자 사부도 자신과 더 오래 있게 됐으니, 천외천으로선 날벼락.
천외천의 계획을 한 번 물 먹였으니 됐다.
아쉬운 건 정찰병으로 온 지주 측 인원의 기억을 잃지 못한 거다.
꽤 높은 직책의 인물이 온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이곳에 와서 많은 걸 얻었으니 됐다.
이제 남은 건 백호와의 대화.
어쩌다가 카오스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볼 차례였다.
마침 백호의 눈이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