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6화
‘순순히 손을 내어 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강제로라도 피부에 접촉해야겠다.’
이준은 생각을 마치고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늙은 웨어파드를 향해 움직였다.
“……!?”
“파들락 님!”
“어서 파들락 님을 구해!”
“움직이지 마.”
파들락의 등 뒤를 선점한 이준이 경고했다.
“아프진 않을 거야. 가만히 있어.”
파들락에게 말한 후 모투술을 운용했다.
[음속의 귀신 파들락의 기억을 읽습니다.]
한민성에게 사용했을 때처럼 장면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혼원신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이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의 폭풍.
“억!”
“이, 이런 기운이!”
웨어파드들이 몸을 떨었다.
영양실조로 굶주려 있기도 했고, 블루급 몬스터가 이준의 기운을 감당하긴 무리였다.
이준은 혼원신공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을 붙잡았다.
‘제발.’
모투술의 경지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에겐 혼원신공이 있었다.
그 어떤 무공과도 잘 어울리는 혼원신공이라면 모투술도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인다!’
이준의 눈에 파들락의 기억이 느리게 흘렀다.
[모투술(S)의 경지가 2성으로 올랐습니다.]
[음속의 귀신 파들락의 기억을 읽습니다.]
……
……
……
[모투술(S)의 경지가 3성으로 올랐습니다.]
모투술의 경지가 급상승했다.
정신을 집중할수록.
혼원신공의 내기로 모투술을 운용할수록.
파들락의 기억이 선명하게 보였다.
‘카오스 종에게 쫓기고 있었구나!’
카오스 종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역부족.
애초에 웨어파드는 카오스 종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블루급 몬스터는 일반형 레드급 몬스터한테도 진다.
헌데 카오스 종 몬스터를 어떻게 이길까.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카오스 종이 왜 사신수의 흔적을 찾는 거지?’
카오스 종 몬스터는 파들락에게 백호와 현무의 행방을 물었다.
파들락은 모른다고 잡아뗐고.
그로 인해 원래 살았던 게이트에서 쫓겨나 지금의 게이트로 온 것이다.
파들락의 기억을 조금 더 읽었다.
시간이 흐르고 모투술을 중지했다.
파들락의 기억을 통해 얻은 건 꽤 있었다.
카오스 종이 사신수의 행방을 찾는 것.
그리고 파들락이 사신수 중 한 마리인 백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다.
‘천외천이 이젠 수호혼을 노리고 있어.’
수호혼은 백호의 힘이 담긴 신물이었다.
천외천이 부르는 이름은 호왕신.
카오스 종 몬스터의 입에서 저 호왕신의 단어가 나왔다.
‘파멸겁이랑 청룡무의도 노렸으니 수호혼이랑 혼원반지도 찾고 있었겠지.’
다행히 파들락은 입을 열지 않았다.
동족을 희생시키고 간신히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스탑 게이트는 이동이 가능한 균열.
그 덕에 카오스 종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네가 아주 큰 비밀을 알고 있어서 카오스 종한테 노려진 거네?”
“쿨럭쿨럭! 무슨… 말이냐?”
“백호가 어디에 있는지 알잖아?”
“난 모른 쿨럭… 다….”
“넌 백호의 수호성, 음속의 귀신 파들락이잖아.”
“……!?”
“그 콧대 높은 사신수가 블루급 몬스터 따위를 수호성으로 뒀다는 게 의아하긴 하네.”
사신수는 최하 레드급 몬스터를 자신의 측근으로 삼았다.
그런데 파들락은 블루급 몬스터였다.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사신수치고는 굉장히 관대한 선택이었다.
파들락에게 어떤 능력이 있길래 백호의 수호성이 됐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난 그런 사람 쿨럭쿨럭! 아니다….”
파들락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이준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죽으면 안 되지. 내가 요긴하게 써먹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는 파들락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몬스터가 가진 힘은 마력.
내공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었다.
하나 그의 내공에 파들락의 안색이 좋아졌다.
파들락의 마력도 이준의 내공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이제 좀 괜찮지?”
“인간이 왜?”
“백호의 수호성이면 나랑도 연관 있어서 말이야.”
이준이 손을 옆으로 뻗었다.
지잉-
허공에 게이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주인!? 어째서 인간이!”
파들락도 처음 보는 광경인 듯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나온 몬스터는 경악할 만한 존재였다.
“서, 성화!”
“남쪽의 지배자를 여, 영접하나이다!”
* * *
[이 상황은 뭐지? 작은 주인아?]
“얘가 백호의 수호성이래.”
[이 하찮은 것이 말이냐?]
흑염마조는 하늘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있었다.
어마무시한 존재감.
게이트에서 힘을 회복하더니, 지배종의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흑염마조는 파들락을 눈여겨보았다.
[백호의 힘이 미약하게 느껴지긴 한다. 어째서지?]
“내 말은 안 듣네. 네가 물어봐봐.”
[하찮은 웨어파드여. 네가 본좌의 질문에 대답해 보아라. 어째서 백호의 힘이 그리도 미약한 것이냐.]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게이트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웨어파드들은 두려운 얼굴을 하고 몸을 바짝 숙였다.
파들락도 아픈 몸을 이끌며 흑염마조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서쪽의 지배자께선 대지에 스스로 몸을 봉인하셨습니다.”
[어째서냐?]
“북쪽의 지배자를 찾다가 얻은 상처로 인해 힘이 약해지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카오스의 균열이 대지의 서쪽을 뒤덮었습니다.”
제 주인이 몸을 숨기자 수호성이던 파들락도 힘이 약해졌다.
원래의 등급인 블루급 몬스터로 돌아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머저리 같은 녀석!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급히 몸을 숨긴 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큰 상처를 입은 바람에….”
“상처가 났으면 치료를 해야지.”
[사신수는 상처를 치료하려면 스스로 몸을 봉인하는 수밖에… 아니, 작은 주인이 있었군.]
“응?”
[작은 주인은 우리를 치료해 줄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혼원신공이면 가능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파들락이 이준을 쳐다보았다.
주작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주인은 위험한 상태였다.
영영 못 깨어날 수도 있는 상황.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제 주인을 살려 주십시오!”
[큰 힘을 사용하기에 작은 주인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타격을 받아 봤자 능력 저하 페널티겠지.”
[그보다 더한 거다.]
“뭔데?”
[한동안 혼원신공을 사용할 수 없다.]
“미친! 안 해.”
혼원신공은 이준에게 있어서 생명이었다.
그 생명을 사용할 수 없다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잠깐, 내가 백호를 치료해 주면 녀석도 내 신수가 되는 건가?’
흑염마조처럼 자신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혼원신공을 쓰지 못하는 건 불편하지만 무려 사신수를 얻는 일이다.
페널티를 감내할 만했다.
‘혼원신공을 사용하지 못하면 조랑 파랑이의 호위를 받으면 돼.’
물론 어디까지나 백호를 얻었을 때의 일.
치료를 해 줬는데 입을 싹 닫으면 개손해였다.
‘어쩌지?’
무극자 사부님만 옆에 계셨더라면 해답을 내려 주셨을 터.
사부의 부재가 무척 컸다.
그런 이준의 마음을 눈치챈 흑염마조가 대신 답해 주었다.
[사신수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특히 생명에 대한 은혜는 사신수에게는 목숨과도 같지.]
“땡기긴 하네.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날 도와줘?”
[그놈이 날 비웃었다.]
“뭐라고?”
[인간을 주인으로 섬긴다고 얼마나 무시하던지. 한 번 당해 보라지 크크.]
“너한테도 계획이 있었구나?”
[당연하지 않느냐. 백호 그놈은 자기가 한 말에 굴욕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
“좋아! 백호가 어디에 봉인되어 있는지도 알았겠다 내가 구해 줘야지.”
[꼭 은혜를 입혀서 작은 주인의 밑에 두어라.]
“너보다 서열을 밑에 둘까?”
[작은 주인은 당연한 말을 자꾸 하는 경향이 있다. 크크.]
주작은 체통도 잊은 채 음흉하게 웃었다.
녀석이 웃을 때마다 하늘에 화염이 흩날렸다.
“접수. 내가 백호를 구해 줘야겠구만.”
“저, 정말이십니까?”
“한 입 가지고 두말 안 해. 대신 넌, 내 부하가 돼야겠다.”
“그건….”
“네 주인 살리기 싫어? 싫으면 말고. 나도 큰 희생을 하면서 도와주는 건데 쉬운 거래도 응하질 않네.”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이준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나쁜 놈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다시 재고를 해 주십시오.”
“왜 내 희생만 바라냐? 아주 이기적인 놈이구만. 됐다. 일꾼이 필요해서 왔는데 너흰 그냥 도둑고양이 짓이나 계속해라.”
이준이 몸을 돌렸다.
거래에는 밀당이 필요한 법.
연애는 못 해도, 억지와 줄타기는 잘했다.
그의 행동에 다급해진 건 파들락이었다.
“하, 하겠습니다!”
“뭘?”
“당신의 수하 말입니다.”
“뒤로 물리기 없다?”
“예!”
“쿨 거래 감사.”
이준이 손을 허공에 내리그었다.
홀로그램을 조작하자.
[게이트에 주인이 있습니다. 강제로 종속시키시겠습니까? (Y/N)]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예상하던 메시지와는 사뭇 달랐다.
“강제? 쟤가 내 밑에 온다는데? 야. 너 내 수하 할 거지?”
“네.”
메시지가 뜨고 파들락이 대답하니 그제야 원하는 글자들이 나왔다.
[게이트의 주인인 파들락을 종속시켰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30,000,000p가 지급됩니다.]
[웨어파드의 우호도가 생성되었습니다.]
[4대 성지의 금역과 합치시겠습니까? (Y/N)]
‘응. 합쳐.’
천지가 진동하면서 흔들렸다.
게이트가 무너지는 듯 세상이 뒤집혔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게이트를 삼키는 순간 지진이 멈췄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지진이라니….”
웨어파드들이 초조해하며 웅성거리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 *
테구르가 팔짱을 낀 채 도끼눈으로 파들락을 봤다.
“너 따위가 서쪽 지배자의 수호성이라고?”
“스케먼?”
“스케먼? 감히 어디서 내 종족을 함부로 지껄인단 말이냐!”
“찍찍!”
스케먼들이 테구르의 외침에 동조했다.
테구르의 고함에는 기개가 묻어나 있었다.
“그, 그린급 몬스터인 스케먼이…!”
“이상하겠지. 내 강력한 힘에 정신을 못 차리겠지. 우주 최강인 우리 주인님을 모신 경력의 차이가 여기서 나는 것이다.”
테구르의 기선제압을 보고 있던 흑염마조가 허공에 게이트를 열었다.
[작은 주인. 난 가서 쉬겠다.]
“오랜만에 봤는데 빨리 가네.”
[돌아가서 힘을 마저 회복해야지. 힘을 완전히 되찾으면 그때 오겠다.]
그 말을 남긴 채 흑염마조가 사라졌다.
테구르는 흑염마조를 향해 절을 했다.
“부디 힘을 회복하는 데 전념하소서. 주인님은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게이트를 떠났음에도 허공에 울려 퍼지는 흑염마조의 목소리.
지배자 종 몬스터라 가능한 능력이었다.
테구르가 일어나서 말을 하려는 찰나 이준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앞으로 너희랑 같이 생활할 녀석들이야. 친하게 지내 봐.”
“스케먼에 페어리… 샤크로아까지 있다니!”
파들락은 한 게이트에 이렇게 여러 종의 몬스터가 함께 사는 건 처음 봤다.
이들을 전부 아우르는 게 인간이란 건 더욱 놀라웠다.
“대단한 사람….”
“대단하시지. 볼 때마다 놀랄 것이다.”
파들락이 샤쿠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
“네놈이 그렇게 뚫어지게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당장 눈을 내리깔지 못하냐!”
테구르가 버럭 소리쳤다.
백호의 수호성이라지만, 현재는 그저 블루급 몬스터.
파들락은 4대 성지의 금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 샥쿠와 눈을 마주칠만한 군번이 아니었다.
“네? 예.”
쥐새끼같이 생기고 목소리가 경박해 보여도 테구르 또한 블랙급 몬스터였다.
그보다 약한 파들락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자기보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에게 절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몬스터의 숙명.
테구르는 파들락에게 두려움을 주는 몬스터였다.
“설명할 게 많아. 함께 살려면 꼭 알아 둬야 할 게 있다. 첫째, 주인님이 나타나시면 하던 일도 다 제치고 나와서 인사를 할 것. 둘째, 이 게이트에서 파랑 님의 영역은 침범하면 절대 안 된다.”
“테구르야. 쟤들 영양실조야. 밥부터 먹이고 가르쳐. 난 파들락과 약속한 게 있어서 간다.”
“넵! 주인님. 조심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요.”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테구르가 간사할 정도로 비굴하게 굴었다.
굉장한 태세전환.
파들락은 테구르같은 몬스터는 생전 처음 봤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주인님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넌 국물도 없었어. 모두 날 따라와.”
파들락은 웨어파드들과 함께 음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걸어가면서도 게이트를 살피는 건 잊지 않았다.
주변을 보면선 느낀 결론은 하나였다.
용담호혈.
용과 호랑이가 모여서 사는 게이트가 바로 이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