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5화
저녁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그전까지는 천막 본부석에서 학생들을 관찰해야 했다.
“어, 엄청나군요.”
“고스트웍이나 데스템플러를 상대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확실히 특별 1반의 수준은 넘사벽에 가깝습니다.”
“특별 2반 학생들이 공격을 주저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는 선생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이 흘러나왔다.
화면에 비추는 사람은 고작 세 명뿐.
한지유와 이지안, 조용석이 나무 앞에 꽂힌 깃발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4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검을 들고 경계만 할 뿐 공격을 하지 못했다.
“누가 용기 있게 나설지 궁금하군요.”
“흥미진진합니다.”
“저 모습을 보니, 저도 호기로웠던 학생 때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금 선생님도 그래요? 저도 저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선생들이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멋있지 않은가.
거점을 지키려고 검을 뽑은 모습은 당당했다.
자신들보다 머릿수가 많은 학생을 향해 투기를 뿜어내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용기 있어 보였다.
저 광경에 선생들은 옛 향수를 느꼈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모습을 보일 수 때가 있었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선생님들! 저기 좀 보십시오.”
“허, 한 마리 호랑이 같습니다.”
“투존의 무공은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진 가주님께서는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 저리 뛰어난 아들을 뒀으니 말이지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우리 경수가 좋은 스승님을 둔 덕분이지요.”
진병철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화면에 잡힌 아들의 모습은 양 사이에 뛰어든 호랑이였다.
진경수는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했다.
일권을 뻗으면 학생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지고 이권을 뻗으면 대지가 흔들렸다.
삼권은 어떤가.
하늘마저 비명을 질렀다.
네 번째 주먹을 날렸을 땐 서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를 쓰러트린 진경수는 당당하게 다른 반의 깃발을 차지했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그래요.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창제 님이라도 실력을 높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맞아요. 진경수 학생의 재능은 다음 대 왕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이준의 극찬이었다.
선생님들 앞에서 한 소리였다.
저들이 어떤 이들인가.
각 가문에서 파견되거나 후원을 받은 자들이었다.
창제의 입에서 나온 건 하나, 하나가 커다란 정보였다.
다음 왕의 칭호를 이을 자 중 한 명이 철룡이라면 그가 확실하다는 것.
진씨 가문의 위신과 명성이 치솟는 말이었다.
“모두 잘 봐 두세요. 선생님들의 학생이었다는 게 앞으로 자랑스러울 겁니다.”
이준이 가르치기 전, 특별 1반 학생들은 이곳에 앉아 있는 선생들의 지도 아래에 있었다.
현재는 이준이 전부 가르치지만, 전에는 선생들의 제자이기도 했다.
모두의 제자라는 말.
이준의 뜻을 이해한 선생들은 뿌듯한 얼굴을 했다.
“크흠. 제가 한지유 학생에게 검법을 가르치긴 했지요.”
“전 정예나 학생에게 보법의 기초를 강조했습니다.”
“매점에서 연애 상담을….”
선생들이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다.
특별 1반 학생들은 차세대를 이끌어 갈 재목들.
그들을 가르쳤다는 건 대대손손 자랑할 거리가 충분했다.
“학생들이 발전한 만큼 우리도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학생들보다 등급이 낮으면 안 되지요.”
“시간을 내서라도 수련을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나올 차세대를 위해 우리도 힘냅시다.”
특별 1반에 의해 선생들 또한 의욕이 불타올랐다.
강해지겠다는 목표가 생기니 동태눈깔을 하던 몇몇 선생들의 눈에도 활기가 돌았다.
* * *
저녁이 찾아왔다.
특별 1반 학생들의 기세는 아주 강력했다.
안 봐도 중간고사 1등은 확정이었다.
“나랑 이 선생님은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모니터 잘하고 계세요.”
한민성 이사장이 선생들에게 말한 후, 이준과 함께 신기지가로 향했다.
신기지가로 온 이준은 주변을 살폈다.
“가문에 쳐 둔 결계에 구멍이 생겼네요.”
“구멍이라니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절 따라 와 보세요.”
이준은 한민성을 이끌고 가문의 외곽으로 갔다.
두 사람은 담장을 타고 걸었다.
신기지가의 담장은 무공이나 마법에 버틸 수 있는 마정석으로 만들어졌다.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담장.
심지어 결계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무적의 방어를 갖춘 것과 다름없었다.
한데 그 담장에 틈이 생겼다.
“여기예요.”
두 사람이 온 곳은 신기지가의 남문 쪽이었다.
“다른 곳과 똑같은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요?”
“네.”
결계에 구멍이 났다면 담장 벽에 이상이 생겼을 터.
한민성의 눈에는 다른 담장과 똑같아 보였다.
“위쪽은 이상이 없죠. 하지만.”
이준의 손에 내공이 뭉쳤다.
내공이 깃든 손을 담장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쾅!
흙과 돌이 하늘로 치솟았다.
바닥에 자그마한 웅덩이가 생기면서 담장 아래가 훤히 보였다.
흙 아래까지 설치된 두꺼운 벽.
“여기에는 이렇게 개구멍이 있죠.”
그 벽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헉! 정말입니다!”
“놀라긴 일러요.”
이준은 다시 한번 웅덩이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큰 충격과 함께 흙이 위로 우수수 튀었다.
작았던 구덩이가 커졌다.
그러자 개미들이 사는 집처럼 흙 속에 통로가 있었다.
“여태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흙 아래에 있으니 모르는 건 당연했다.
항상 결계를 새로이 보수한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사례였다.
눈에는 결계가 튼튼해 보이니 괜찮다고 생각했을 터다.
“첨단 장비의 문제점이기도 해요.”
현대 장비로 결계, 진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각성자의 내공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내공을 돌려 결계를 활성화하고 보수를 진행하는 게 아닌가.
마정석으로 만든 담장은 그저, 주입한 내공이 흩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면 매일 매일 땅속까지 들춰서 확인하던가.
보이는 곳만 보수를 하니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여기를 통해서 고기랑 생선을 훔친 거예요.”
“이런 짓을 벌이는 놈들이라면… 스케먼입니까?”
“스케먼이 잘하는 행동이긴 한데 다른 몬스터예요.”
“누구입니까?”
“웨어파드. 놈들이 신기지가를 목표로 삼은 것 같아요.”
“……!”
웨어파드는 한 번 목표로 삼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놈들의 특징이었다.
그걸 알기에 한민성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그래서 제가 해결해 드리려고 왔잖아요?”
이준이 빙그레 웃으며 웅덩이에 흙을 덮었다.
원래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몸을 돌렸다.
“경계를 느슨하게 하라고 말해 주세요. 고기랑 생선도 많이 준비해 주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민성은 비선에게 이준이 주문한 사항을 그대로 전했다.
이준은 신기지가 중앙 건물로 왔다.
“우리 일꾼들이 어떻게 고기를 훔쳤는지 알아볼까?”
혼원신공을 끌어 올려 주변으로 퍼트렸다.
존재감을 표출하지 않을 만큼, 아주 은밀한 기운을 내보냈다.
기감을 활짝 열자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민성이 전음을 보내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제가 놈들을 잡을 테니 평소처럼 행동하세요.]
[그러면 저는 가문의 일을 보고 있겠습니다.]
한민성의 전음이 끊기고 이준은 눈을 감았다.
바닥에 앉아 있길 3시간.
어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드디어 기감에 잡힌 움직임이 있었다.
‘왔네.’
아주 잠깐 북쪽에서 기척이 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장 흙을 들춘 곳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땅이 헤집어진 것을 느꼈는지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서성였다.
‘북쪽에서 느껴졌던 기운이 남쪽에서 곧장 나타났어?’
웨어파드들의 은신처는 다른 게이트와는 달리 요란하게 열리지 않았다.
행동대장만 나올 수 있게 잠깐 열렸다가 사라지는 게이트.
이걸 스탑 게이트라고 불렀다.
이제는 북쪽에서 선명한 균열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존재감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머리 좀 썼네.’
웨어파드의 기척은 남쪽에서 느껴졌는데 균열은 반대편인 북쪽에서 느껴졌다.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땅을 박찬 순간!
신형이 북쪽에서 번쩍하고 나타났다.
느껴졌던 균열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준은 걱정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게이트를 열어서 반대쪽으로 순간 이동한 후에 파놓은 땅을 이용해 내부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야.”
몬스터가 순간 이동하는 건 고위 스킬.
블루급 몬스터 따위가 할 만한 스킬이 아니었다.
웨어파드는 페이크와 현혹, 은신 기술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신기지가에 쳐진 결계를 이용한 게이트 감추기였다.
순식간에 느껴졌다가 사라졌던 북쪽에서의 기운.
웨어파드가 나온 신호였다.
다른 각성자였다면 못 느꼈을 테지만, 상대는 이준이었다.
기에 무척이나 예민한 그였기에 웨어파드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거다.
게이트가 열리자, 결계를 이용해 균열을 감추고 웨어파드는 은신 상태로 이동.
그리고 곧바로 남쪽에서 기척을 드러낸 것이다.
바닥에 새겨진 희미한 발자국만 봐도 놈들이 어디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사라지는 이동 기술이라. 신기한데?”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족적이었다.
이준이라 웨어파드의 사라지는 족적을 볼 수 있었다.
“고기랑 생선을 훔치는 데 쓰기에는 과분한 스킬이네.”
이 모든 게 웨어파드의 빠른 움직임과 은신으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됐을 순간마저도 대비하는 머리라니. 사람보다 낫다.”
이러니 신기지가의 비선이 웨어파드를 못 찾은 거지.
적어도 어떤 몬스터인지 알았다면 찾기 훨씬 수월했을 터.
몬스터의 정체를 모르니 계속 허탕만 친 거다.
이준은 균열이 일어난 허공에 손을 뻗었다.
[타 게이트를 발견했습니다.]
[닫혀 있는 게이트를 여시겠습니까? (Y/N)]
‘열어.’
[경고! 주인이 있는 게이트입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침입하면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도 강제로 여시겠습니까? (Y/N)]
‘어.’
* * *
[블루존 게이트 ‘웨어파드의 숲속’에 입장하셨습니다.]
[게이트의 주인이 당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이준은 메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명이 가득한 나무와 덩굴과는 달리, 공기 중에는 죽음의 기운이 풍겼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죽음의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적대감을 보였으면 공격할 법도 한데 말이야.”
웨어파드는 호전적인 성격을 지닌 몬스터였다.
적의 침입이 있는 걸 알면 바로 대응을 할텐데 전혀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네.”
자신의 기감에 잡힌 무리들.
블루급 몬스터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형편없는 기운을 가졌다.
숲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거처가 분명할 터.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들은 인간이 나타났음에도 기침을 콜록일뿐.
저항은 일체 없었다.
그저 불안한 얼굴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바닥에 처박는 몬스터까지 있었다.
그중에 병색이 완연한 웨어파드가 힘겹게 일어나 말했다.
“언제까지 우릴 괴롭힐 쿨럭…! 거냐. 난 너희…에게 복종할 생각 따윈 없… 다… 쿨럭쿨럭!”
딱 보니, 대표로 말하는 몬스터가 이곳의 보스 같았다.
말하는 블루급 몬스터.
이 웨어파드들은 로티틸과 같은 희귀 몬스터였다.
“무슨 말이야?”
“이젠 도망칠 곳도 쿨럭… 없다… 그냥 죽여 쿨럭쿨럭! 라…”
천외천이 웨어파드를 복종시켰을 때도 이랬나?
전생을 떠올려 보면 웨어파드의 힘은 넘치는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병약해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니까 우선 상황부터 파악하자.’
전생의 기억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남은 건 하나.
모투술을 써서 웨어파드의 기억을 읽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