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화
결과는 뻔했다.
남선호의 승리였다.
조용석의 특기는 암살.
약점을 파고 들거나 기습을 해야지만 그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데.
등급이 높은 상대이면서 방어에 특화된 남선호는 조용석에게 최악의 상대였다.
서로 보고만 있는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얼굴에 흐르는 땀이 귀에 들릴 만큼 조용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용석은 무리한 공격을 감행했지만.
남선호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틈을 파고들어도 못 이길 판국에 조용석의 자멸로 남선호는 쉽게 승리를 가져왔다.
홍원석은 어떤가.
셋 중 제일 약한 각성자로 서혜지를 보다가 끝났다.
막상 그녀를 마주하니 공격할 용기가 안 난 것이다.
B급 완숙 각성자에게 AA급 초입은 넘볼 수 없는 대상이었으니까.
이준에게 기를 숨기는 훈련을 철저히 받은 덕분에 이런 사달이 난 건지도 모른다.
누가 저들을 모두 AA급 이상의 각성자로 보겠나.
끽해봐야 A급 완숙이나 끝자락이라 여겼을 터.
한데 막상 겪어보니 모두 다 괴물들이었다.
말로만 듣던 특별 1반의 실체였다.
무엇보다 특별 1반 학생들이 어디 가서 등급을 자랑할 아이들도 아니니.
그들의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했다.
홍원석은 공격도 잊은 채 탄성을 질렀다.
“믿을 수 없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가 안경을 올리며 특별 1반 학생들을 향해 존경 어린 시선을 보냈다.
눈에는 순수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를 누가 사마련 소속이라고 생각하겠나.
겉모습만 보면 오히려 가문연맹회 소속이 더 어울렸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야. 안 그러냐, 수야?”
“제가 한 번 입김 좀 넣어 보겠습니다.”
“그래. 너도 막내 라인 벗어나야지.”
진경수와 허수가 홍원찬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는 사이, 한지유가 이준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쟤들은 특성 개방 안 시켜?”
“훈련에 믿음이 없으니까 특성 개방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리고 아직 가르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재능은 있지 않아?”
“셋 다 있어. 빡세게 시키면 무럭무럭 잘 클 것 같아.”
“그렇구나.”
“장백검문의 무공은 익힐만해?”
“좋아. 엄청 강해.”
“그래 보여. 3개월 만에 AA급 초입의 벽을 깨려고 하잖아.”
“네 눈에는 내 벽이 잘 보이나봐?”
“그냥 느껴지는 거지. 사방환진을 잘 겪어봐. 혹시 알아? 벽을 깨줄지.”
이준이 사방환진에 아이들을 밀어 넣은 이유는 하나였다.
보다 더 정교하게 기운을 느끼라고.
사방환진은 네 가지의 기본 속성을 담고 있으며, 내공의 강함에 따라 효과가 변한다.
진법 속에서 강, 유, 변, 환 모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어느 유형의 깨달음과 몇 개의 깨달음을 얻냐, 가 관건이었다.
“사방환진에 답이 있다 이 말?”
“응.”
“알았어. 열심히 찾아볼게.”
한지유가 민트 초콜릿을 까먹으며 해맑게 웃었다.
이준도 같은 웃음을 보였다.
***
다음 날.
이준은 특별 1반이 있는 운동장이 아닌, 선생 회의실을 찾았다.
드르륵-
이준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실에 있던 선생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창제께 인사 올립니다.”
“창제를 뵈어요.”
“안녕하세요. 아직 다 안 모였나 보네요.”
별 뜻 없이 말한 게 파장을 일으켰다.
“빠, 빨리 모이라고 연락 돌리겠습니다.”
“어서 전화를!”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과 달라진 선생의 태도들.
왜 그러는 걸까.
3개월 전, 창제로 불릴 때도 저들의 반응은 이러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 과했다.
“민 선생님 먼저 와 계셨… 억!”
“빨리 와서 앉게! 창제께서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나.”
“시, 실례를 했습니다.”
“전 괜찮은데요.”
“아, 아닙니다.”
뒤이어 들어온 선생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음 선생도 마찬가지.
그들은 앉아 있는 이준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한민성 이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선생님께서 꽤 빨리 오셨군요. 늦지 않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빨리 온 거예요. 모두 신경 쓰지 마세요.”
이준이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태도에 선생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게이트를 무려 다섯 개나 동시에 파괴한 무력을 가졌으면서 저렇게 겸손하기까지.’
‘괜히 창제, 창제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야.’
‘저 나이면 허례허식에 찌들만도 할 텐데. 대단해.’
‘아이들에게 창제를 본받으라고 가르쳐야겠어.’
이준이 인주를 죽였다고 해도 선생들의 뇌에 인식되는 건 ‘강한 자를 이겼구나’였다.
등급을 들어도 생각은 똑같았다.
하나 게이트를 다섯 개나 동시에 파괴했다는 건 가슴에 와닿는 게 달랐다.
몬스터의 거처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게이트.
그것도 레드존 게이트를 동시에 파괴하는 힘은 강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그 때문에 선생들은 창제를 극진히 대한 거다.
자신들이 마주한 이준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도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저… 시작 안 하나요? 왜 다들 저만 보세요?”
“아, 바로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한민성이 마이크를 잡고 회의를 진행했다.
내용은 중간고사에 관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실력이 작년보다 훨씬 상승했습니다.”
“작년에는 A급에 오른 학생들이 몇 없었지만, 지금은 꽤 많아진 상태예요.”
“학생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진 것 같아요.”
“인정합니다. 다 창제님 덕분입니다. 특별 1반을 따라잡는다고 학생들이 분발했습니다.”
“좋은 경쟁의식이에요.”
한민성이 이준을 학교에 남게 하려 했던 이유였다.
그가 학교에 있으면 많은 학생의 훈련 욕구를 자극할 테니까.
한민성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무사고 수준이 1년 전보다 훨씬 상승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말인데 중간고사의 난이도를 높일까 합니다.”
“찬성이에요.”
“작년과 똑같은 시험을 치르면 학생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겁니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학생들의 수준이 하향됐다면 몰라도 현재는 상향된 상태.
중간고사의 난이도를 높이는 게 맞았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중간고사에 점령전을 추가 하고 반대항으로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한민성의 의견에 선생들의 눈이 커졌다.
팀을 이뤄 주어진 게이트를 점령하고 깃발을 지키는 경기였다.
“게이트에서 말입니까?”
“난이도를 너무 높이신 게 아닌지.”
“전략적인 요소, 변수 다 좋으나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서 점령전을 하는 건…”
“난이도를 조금만 더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선생들의 제안에 이준이 반대했다.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한 만큼 강한 훈련이 필요해요. 안전한 시험만 치르면 무사고가 존재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자기 가문에서 가솔들의 보호 아래에 성장하면 되는 거죠. 전 점령전 추가에 찬성합니다.”
이준의 말이었다.
어느 누가 대놓고 반대하겠나.
그냥 수긍하기에 바빴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도 같습니다.”
“학교 측에서 최소한의 안전만 준비해야겠군요.”
“괜찮은 의견입니다.”
“중간고사가 한 달 남았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네. 이사장님.”
회의가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학생들의 등급과 랭킹 보고를 끝으로 회의가 끝났다.
***
회의가 끝난 이준은 바로 특별 1반으로 왔다.
중간고사까지 한 달.
특별 1반의 실력을 공개할 때였다.
짝!
그의 손뼉에 운동장에 내려앉은 안개가 사라졌다.
그 안에는 엉망이 된 아이들이 있었다.
한지유는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 있었고, 이지안은 옷이 물에 홀딱 젖은 상태였다.
“내공 회복하면서 들어.”
이준의 말에 학생들이 철퍼덕 자리에 앉았다.
내공을 사용하니 한결 나아진 표정들을 했다.
“중간고사 시험이 정해졌다.”
“뻔하지. 게이트 공략 아니야?”
“정답. 거기다가 점령전까지 추가됐어.”
“어? 우린 인원이 후달리는데.”
진경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고사는 다섯 명이 조를 이루어 게이트를 공략했다.
점령전이 추가된다면 다섯 명으로 게이트 공략과 방어, 타 게이트 점령까지 다 해야 하는 걸까.
진경수의 우려를 이준이 불식시켜줬다.
“반대항으로 진행될 거야. 우리 특별 1반은 인원수가 적지만 잘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선생님. 저 진경수만 믿어주십시오. 특별 1반의 명예를 걸고 1등을 하겠습니다.”
“우선 포지션을 짜기 전에, 너희는 어떻게 공략과 점령을 할지 말해봐.”
이준은 학생 전원을 보며 말했다.
그때 정예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제가 말해도 될까요.”
“네. 말해보세요.”
“정연이랑 혁진이가 없는 지금 여기서 특별 1반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지유니깐 반을 이끄는 대표를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반대항이라 지휘관을 먼저 뽑았네요. 아주 좋습니다. 지유의 의견은 어때?”
“난 상관없어.”
“그러면 대표가 됐으니 네가 포지션을 정해봐.”
이준은 뒤로 슬쩍 빠졌다.
선생의 역할은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길을 인도해주는 역할이다.
자기들 스스로 지휘관을 뽑았으니 이제 그 대표가 알맞게 자리를 정해주는 것만 남았다.
한지유가 학생들을 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게이트 공략은 안전하게 11명이 다 같이 할 거야. 우리 거점을 방어할 인원과 공략할 인원만 나누면 돼.”
“나나! 공격 포지션 할래.”
진경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권법과 각법을 익힌 그는 전형적인 전사 타입.
다르게 말하면 닥치고 돌격하는 선봉장이 어울렸다.
“그럼 진 선배가 공격 1조로 들어가세요.”
“공격 1조? 다른 조가 더 있어?”
“저희의 등급을 생각했을 때 공격 조는 2조로 나눌 거예요. 공격조에 총 여섯 명. 정찰조에 두 명. 방어조에 세 명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공격조 하나 당 세 명의 인원이라 이건가? 차라리 게이트 공략을 끝내면 공격조를 두 명으로 해서 3조로 나누는 게 낫지 않나? 아니지 한 명씩만 타 점령 게이트로 가도 되겠는데.”
“타 점령 게이트 공격보다 거점 방어가 더 중요해요. 점령전은 거점을 잃는 순간 모든 점수를 잃잖아요.”
류가을과 조용석, 홍원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고에서도 점령전은 수시로 진행했다.
그러니 어떻게 점수가 카운트되고, 탈락하는지 세 사람도 알고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 다 포지션을 짜 놨네.”
“공격 1조는 진 선배님, 홍원찬, 은비가 한조가 되고, 공격 2조는 예나 언니, 혜지 그리고 류가을이 맡는 게 좋겠어요.”
“밸런스 좋다.”
“정찰조는 허수랑 예은이가, 방어는 저와 지안이 그리고… 조용석과 함께하면 될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자 정예나가 의문을 표했다.
“지안이는 의외인데? 공격을 시켜서 경험을 쌓는 게 좋지 않아?”
“경험을 쌓을 필요 없지만 방어하는 쪽에서 싸움이 더 많이 일어날지 몰라요.”
“어째서?”
“저희 인원을 보고 덤빌 거예요. 거점 방어 인원이 3명밖에 없단 소식은 다른 반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거든요.”
“머릿수로 거점을 뺏으려 들겠구나. 어차피 깃발만 획득하면 되니깐.”
“네. 방어할 숫자를 늘리면 타 점령 게이트를 공격할 시간이 늦어지니 이 인원이 딱 적당해요.”
“일리 있는 말이야. 너희 의견은 어때?”
정예나가 다른 아이들에게 물었는데 다른 아이들도 불만은 없었다.
적은 인원수로 딱 알맞게 편성했으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누님. 예은이랑 같은 조를 하게 해주셔서요.”
“크크. 난 지안이… 억!?”
조용석이 기쁜 듯 웃고 있었는데 이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정신 못 차리네. 중간고사까지 굴려야겠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포지션도 다 짰겠다. 빨리 밥 먹자. 야간 수업하려면 빠릿하게 움직여야지.”
이준의 말에 학생들이 흠칫했다.
일을 일사천리로 끝내도 문제였다.
그들에게 기다리는 건 지옥 훈련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