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7화
“서, 선생님 정말 내공을 제한한 채 기, 기마 자세를 해야 하나요?”
홍원찬이 전신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류가을과 조용석이 이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특별 1반의 첫 수업은 기초 체력 단련이야. 먼저 들어온 쟤들도 다 한 훈련이니 토 달지 마.”
“너, 너무 힘들어요.”
홍원찬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찡찡거렸다.
그의 등급은 B급 완숙.
각성자 등급으로 보면 내공이 없어도 1톤 무게는 충분히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과 비슷한 상태였다.
각성자 시스템만 믿고 성장한 세 사람.
심, 기, 체 중 신체가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그 어떤 무거운 물건도 모두 내공을 사용해서 들고,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내공에 의지해서 싸운 결과였다.
내공을 끌어 올리면 피로와 육체의 능력이 초월적인 존재로 변하니 각성자는 내공 사용을 당연시했다.
그 때문에 체력이나 신체 능력이 떨어진 것.
심, 기, 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상위 각성자가 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넘어지면 한 시간 추가야.”
“히익!”
“내공을 사용하면 두 시간 추가고.”
“악!”
세 사람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30분도 힘든 기마 자세를 1시간이나 더 추가한단다.
절대 못 한다.
억지로 버티다간 뼈가 부러질 지경.
차라리 정해진 시간을 완료하는 게 나았다.
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 이준이 악마의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뼈가 부러지면 치유해 줄 거야. 여기에 유능한 치유 계열 각성자가 두 명이나 있거든.”
그는 이지안과 서혜지를 가리켰다.
한 명은 신의 이의태의 손녀였고, 한 명은 특성 전부를 치유계로 도배한 각성자였다.
이 둘보다 치유 스킬을 잘 쓰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없었다.
“으으….”
“이, 이것도 후, 훈련이 되는지…?”
“훈련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너희가 나중에 직접 확인해. 난 계속 기초 체력 단련만 시킬 테니까.”
이준은 세 사람의 뼈가 부러져도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부러진 뼈는 붙이면 그만.
뼈가 아작 났다고 목숨에 지장이 있을까?
없었다.
그저 조금 아플 뿐.
그의 감독하에 오전 수업이 지나갔다.
“허억… 허억….”
“도, 돌았어.”
“지옥 훈련도 단계가 있었다니!”
“초식 훈련과 보법 수업은 양반이었습니다. 형님.”
사방환진에서 나온 학생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흙탕물에 세수라도 했는지 때가 잔뜩 끼었다.
교복은 걸레짝이 된 지 오래.
학생들이 교복을 입었는지 거적때기를 입었는지 분간이 안 갔다.
이준은 수업에 참여한 차경진에게 다가왔다.
“차 선생님. 진법을 경험해 본 소감이 어때요?”
“두려웠습니다.”
“구체적으로요.”
“각성자라고 해도 천재지변은 이길 수 없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공을 끌어 올릴수록 천재지변도 세졌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가주께서 진법의 세기를 조절한 게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럼…?”
“잘 생각해 보세요.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지안이는 이번에 꼭 알아내 봐.”
“네.”
그의 말에 차경진과 학생들이 생각에 잠겼다.
사방환진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만 안다.
내공을 극성으로 펼칠수록 천재지변도 강해진다는 것을.
‘왜 그러는 걸까?’
‘내공과 사방환진의 천재지변이 무슨 상관관계에 있는 거지?’
‘흐음.’
‘내공과 천재지변이라….’
무극대의 사형준도 아직 알아채지 못한 정답.
과연 아이들이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준은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를 피했다.
혼자 생각하게끔 놔둔 것이다.
‘저 쉬운 걸 모른다. 그치 파랑아.’
“뀨!”
내공은 자연지기였다.
심법의 속성은 제각각이지만 자연에서 힘을 얻는 건 모두 똑같았다.
다만,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다를 뿐.
사방환진은 사신수의 힘을 가진 진법이다.
쉽게 말하면 네 가지 속성을 지닌 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의 힘을 담은 내공을 사용하면 사방환진의 반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의 말이 정확하다는 말이야. 각성자는 무림인과는 달리 각성자 시스템에만 의지해서 깨달음의 이치가 부족하다는 게 맞아.’
그도 무극자가 아니었다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다.
그런 마음을 지닌 채 학생들을 보고 있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류가을이었다.
특별 1반에 들어 오기 전의 화사한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초췌한 모습만 남았을 뿐.
그녀도 관리하는 걸 포기한 듯 싶었다.
“왜?”
“그 품에 있는 동물… 몬스터예요? TV에서 나왔던?”
“맞아. 만져 볼래?”
“그래도 돼요?”
“그럼. 이 녀석 여자 무지 밝혀.”
“뀨!”
파랑이가 이준의 몸을 타고 어깨로 올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그의 얼굴로 들이박았다.
“미안, 농담이야.”
파랑이의 성화에 이준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 모습을 보던 류가을의 눈은 하트로 가득 찼다.
그녀가 팔을 뻗자 파랑이가 가만히 있었다.
“귀여워요.”
“몬스터치곤 귀엽긴 해.”
“선생님, 저도 만져 봐도 돼요?”
홍원찬이 은근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준이 살짝 고민했다.
파랑이는 자신 이외의 남자에게는 곁은 잘 내주지 않았다.
“음, 내 허락이 아니고 파랑이 허락을 받아야 해. 남자들은 말이야.”
“이름이 파랑이군요. 파랑아, 이 형이 아얏!”
홍원찬이 손을 뻗었지만 파랑이가 앞발을 들어 할퀴었다.
홍원찬의 손바닥에 난 상처.
아군으로 판별해서 그런지 피부만 까진 정도였다.
“내가 말했지? 남자는 파랑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내가 괜찮다고 해도 이 녀석이 싫어해. 이래 봬도 너보다 똑똑하다?”
“절 싫어하는 동물은 처음이에요. 분석할 필요가 있군요.”
홍원찬은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파랑이를 요리조리 살폈다.
파랑이에게 홍원찬은 관심 외 인물.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 * *
이준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며칠이 지났다.
무맹과 사마련이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간 후, 그들이 점령했던 곳은 아주 난장판이 됐다.
“사람 살, 컥!”
“크크. 어딜 도망치려고 해.”
“야야. 그 새끼 장기 안 다치게 해야 돼.”
“알고 있어.”
양아치 복장을 한 무리는 기절한 남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길거리의 조명은 모두 부서진 상태.
도시는 암흑 천지였다.
사람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는 곳.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X발. 괘, 괜히 들어왔어. 여긴 완전 무법천지잖아!”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 있는 한 남자.
그의 직업은 각성자 스트리머였다.
등급은 D급.
각성자 중에서도 중간 계층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가 컨텐츠를 만든다고 들어온 이 도시 때문이었다.
“여, 여길 빠져나가야 돼.”
명색이 D급 각성자인데 이 유령 도시에서만큼은 하위 각성자에 불과했다.
여길 난장판으로 만든 자들은 악질 중에서도 악질.
사마련에서도 통제가 안 된 범죄자들이었으니까.
그는 이 사실을 밖에 알려야 했다.
지방 여러 도시가 난장판이 되었지만, 오히려 소문이 축소된 격.
직접 겪어 보니 이곳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악질 범죄자들이 도시를 점령한 덕택에 지방에 있는 가문 연맹 산하 길드도 손을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
유령 도시를 정화하기 위해선 적어도 A급 완숙 각성자는 되어야 했다.
아니면 도리어 저들에게 잡아 먹힐지도 모른다.
숫자도 숫자지만 범죄자들은 이 도시를 완전히 자기네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동영상부터 업로드해 놓자.”
남자는 자기가 찍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움직였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이동했다.
발소리도 안 들리게끔 조심하는 남자.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범죄자들이 있는지, 자신을 감시하는 이가 있는지 말이다.
유령 도시를 거의 벗어나려고 할 때쯤이었다.
“빠져나왔…!”
남자가 환호하려는 순간, 그의 앞에 한 무리가 공중에서 떨어졌다.
“쥐새끼처럼 어딜 가시나.”
“내가 잘 찾아보자고 했지? 이쪽 소식이 바깥에 전해지면 우린 X된단 말이다.”
“앞으로 조심할게.”
“겁대가리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히에엑!”
범죄자들을 마주한 남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남자가 엉금엉금 뒤로 물러났다.
범죄자들의 손에 든 도끼.
무기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누군가의 피를 보고 온 것 같았다.
“사, 살려 주세요.”
“네 몸 전체가 돈인데 우리가 왜?”
“우린 너 안 죽여. 산 채로 일본에 넘길 거야.”
“이, 일본엔 왜…?”
“최근 우리한테 대량으로 사람을 매입하는 큰손이 일본에 계시거든.”
“야. 그런 말을 왜 해.”
“상관없잖아. 어차피 누구한테도 못 말할 텐데.”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일이나 하자.”
“정 없긴.”
“시, 싫어어어!”
남자가 비명을 질렀지만 범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기절시켜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 * *
너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러워졌다.
-인신매매 실제로 처음 봄.
-개무섭다.
-머리끄댕이 잡고 개처럼 끌고 가는 것 봐.
-살벌하다.
-우리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님?
각성자 커뮤니티에선 논쟁이 일어났다.
너튜버가 올린 동영상의 도시로 지원을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 너튜버 D급이다. 여기서 구라 안 치고 자신 있게 C급 이상이라고 외칠 놈 있냐?
-나 C급이긴 함.
-난 B급.
-2222.
등급을 알리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하나 이곳은 익명 각성자 게시판.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는 곳이었다.
-B급이 여기에 왜 있냐?
-킹정. B급이면 가문도 고를 능력자 아님? 게시판에서 놀고 있는 게 이상하지.
-다 닥치고 이 영상 어쩔?
-당연히 가문연맹회에 말해야지.
-오대 가문이 외부 활동 다 끊어서 가문연맹회에 말해 봤자 소용없을걸?
-오대 가문이 일 안 한다고 대한민국이 안 돌아가는 꼴이라니.
-몰랐음? 지금까지 걔들이 우리 나라 지탱함. 각성자면 당연히 알아야 될 상식 아닌가.
-지방에 있는 사촌한테 들어 보니까 탈주 범죄자들이 세력을 늘리고 있다함. 지방에 있는 각성자는 서울로 상경하는 게 상책임. 아니면 동영상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감.
어정쩡한 각성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먹고 살려면 게이트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마련의 탈주 범죄자들에게 잡아 먹힐 판이었다.
비단 각성자들의 문제만이 아닌 상황.
그들은 대항할 수단인 무공이라도 지녔지만, 일반인들은 달랐다.
탈주 범죄자들의 눈에 띄는 날이면 그냥 인신매매를 당하면 된다고 봐야 했다.
삽시간에 화제로 급부상한 동영상으로 인해 곳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문연맹회의 게시판은 아예 초토화 수준.
제발 오대 가문에서 외부 활동을 다시 시작해 달라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심지어 신력권가 앞에는 사람들이 진을 쳤다.
“우리의 목소리가 창제 님께 들리길 바라면서 외칩시다. 우리 원스피릿은 창제 님을 지지합니다!”
“지지합니다!”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마세요!”
“흔들리지 마세요!”
이준의 팬들이 신력권가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과 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팬카페 회원들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너희가 뭔데 창제의 외부 행사를 막는 거야!”
“이게 애들 장난 같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사람들의 말에 원스피릿 회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네요. 왜 항상 필요할 때만 찾는 거죠?”
“있을 때 잘했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거 아니야.”
“국가 전력급 인사의 대우를 개판으로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지.”
원스피릿의 비웃음에 뚜껑이라도 열렸는지.
“장난도 정도껏 쳐!”
“미친 빠순이 년들이!”
“빠순이? 우리끼리는 빠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신들은 뭔데 우릴 모욕해 X발!”
원스피릿과 항의를 하러 온 사람들이 뒤엉켰다.
그때 신력의 문이 열렸다.
신권 사형준의 등장.
그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그의 손에서 날아간 풍압으로 인해 사람들이 넘어졌다.
원스피릿인 이들만 멀쩡했다.
어느새 나타난 무극대가 한 명씩 그녀들을 잡아 줬기 때문.
거기에 더해 사형준의 대답은 더욱 압권이었다.
“여긴 신력권가다. 너희 따위가 항의하러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신력의 영역을 밟고 싶다면 숙이고 또 숙여라. 그게 너희가 주군께 할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