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다음 날.
인터넷에는 무맹 측의 입장문이 올라왔다.
무맹의 영역 포기 선언.
그동안 충돌로 늘려 놓았던 땅을 포기한다는 기사였다.
뜬금없는 기사에 기자들은 패닉이 왔다.
무맹이 영역을 포기한다는 정보는 없었기 때문.
자다 일어난 기자들은 황급히 무맹으로 움직여야 했다.
혼란에 빠진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무맹을 지지한 국민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맹주가 머리에 총 맞은 건가?”
“그동안 점령했던 땅들을 내놓는 다고?”
“미친 거 아니야? 더 늘려도 모자랄 판국인데.”
무맹의 공식 입장이라 거짓 기사도 아니었다.
무맹이 왜 이런 입장을 냈는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걱정거리도 있었다.
“그러면 점령했던 영역은 누가 가지는 거지?”
“빈 땅으로 남나?”
“그럴 리 있겠어? 사마련 아니면 가문 연맹회가 차지하겠지.”
“또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거 아니야?”
“100 프로 영역 다툼 일어날 것 같다.”
“우리 일반인만 죽어 나가겠구만.”
“각성자 시대에 우린 천민과 다름없으니, 하.”
일반인들은 하나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들이 몬스터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긴 하지만 영역 다툼은 지겨웠다.
재벌들이 이권 다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서로의 이득을 위해 중간에서 희생되는 건 일반 국민들이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영역을 두고 다투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더욱이 가문 연맹회가 점령하는 게 아니면 사마련이 점령할 터.
그때는 지옥이 펼쳐진다.
사마련의 영역은 무법지대.
범죄자가 판을 치는 도시로 변하게 될 텐데 그 누가 좋아하겠나.
손해를 보거나 신변에 위협을 받지 않으려면 이사를 가는 게 최선이었다.
“오대 가문이 활동을 안 하니까 세상이 더 개판이 될지 누가 알았겠어.”
“자기들끼리 땅따먹기하고 배를 채운다고 싫었는데 그 시절이 천국이었지.”
“내가 오대 가문을 지지할 줄이야.”
“무맹이 무책임하게 나올 줄 알았냐.”
오대 가문이 내실을 다진다는 명목하에 활동을 최소화한 게 고작 3개월밖에 안 된다.
이 3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
영역 다툼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무맹과 사마련이 싸웠다.
밤이 되면 잠이라도 자야 할 텐데 해가 뜰 때까지 교전은 계속됐다.
일반인들은 미칠 지경.
잠을 자다가 싸움의 여파로 죽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그들은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창제가 와서 싸그리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패왕도가랑 도련처럼?”
“어. 어디 소속인지 안 가리고 깽판 치잖아.”
“하긴 그게 속 시원하겠다.”
“오대 가문의 억제력이 이렇게 클 줄 상상도 못 했어.”
“인정.”
오대 가문의 힘이 왕성할 때는 영역 다툼이 없었다.
죄다 자기 땅만 지킬 뿐,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기를 꺼내 드는 상대는 오직 몬스터뿐.
이권 다툼이 일어나는 낌새가 보이면 가문 연맹회에서 중재했다.
그도 모자라면 오대 가주들이 나서서 말렸다.
이로 인해 무려 50년간 평화가 지속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서울은 좀 낫지. 지방은 죽어 나가겠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괜찮으시려나?”
“한 번 전화해 봐.”
“그래야겠다.”
회사원들의 말과 같이 남쪽 지방은 난장판이 되었다.
사마련 출신의 범죄자들이 이때다 싶어 기승을 부렸다.
무맹 산하 길드가 손을 떼니 경찰 역할을 할 이들이 사라진 것.
시민들을 지켜 줄 이들이 사라지자 범죄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각성자가 사라지자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당일 오후쯤 됐을까.
사마련 또한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열더니 폭탄 발언을 했다.
-혈마련과 살막, 뇌전홍가는 창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혈마련, 살막 뇌전홍가의 각성자들은 대외 활동을 전부 중단하고 가문으로 돌아올 것을 명합니다.
* * *
사마련 총본부.
원형 탁자에는 사마련의 우두머리들인 육악이 앉아 있었다.
쾅!
멋들어진 하얀 수염을 가진 노인이 탁자를 강하게 치며 소리쳤다.
“빨리 해명해 봐!”
설악문의 문주인 빙악이었다.
그는 혈마악과 살악, 마뇌악을 죽일 듯 노려봤다.
검악과 음악도 빙악과 똑같은 눈빛을 했다.
“말한 그대로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혈마악!”
빙공의 각성자답게 빙악이 화를 내자 주위가 얼어붙었다.
그가 짚고 있던 탁자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했다.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혈마악이 빙악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말했다.
이준 앞에 있을 때의 비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단체, 그것도 사마련을 이끄는 수장의 모습.
위엄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연하지! 가문 연맹회의 창제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소리 아니냐!”
“내 말 어디가 창제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느껴지는지 말해 봐라.”
“창제와의 약속으로 대외 활동을 중단한다. 이 말은 곧 그에게 숙이고 들어갔다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검악과 음악은 어떻게 생각해?”
“나도 빙악의 말에 동의한다.”
“나 음악 또한 빙악의 편이다.”
세 사람이 혈마악을 압박했다.
하지만 혈마악은 개의치 않았다.
저들이 압박해 봤자 그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더욱 확신이 들었다.
‘그래. 이 느낌이다. 내가 위에 서 있다는 우월감. 하지만 창제의 앞에선 그러지 못했어.’
창제는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앞에 서 있으면 옛날 무공을 처음 배웠을 때의 느낌이 났다.
하수가 고수를 처음 보고 벽을 느낄 때처럼.
하나 눈앞에 있는 빙악을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50합 이내로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말이다.
“너희들의 아이들은 무사고로 전학을 안 갔잖나. 나와 살악, 마뇌악의 아이들은 적진 한복판에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각성자인 창제가 있는 무사고에 말이다.”
“누가 무사고로 전학을 보내라고 했냐.”
“너희들이 손수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해서 안 말린 것뿐이야.”
쾅!
살악이 얼음 탁자를 손으로 치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마고와 무사고를 합친 학교를 만들자는 신기지가의 제안은 너희도 수락하지 않았나!”
“이를 수락하려면 우리 자식 중 몇 명은 무사고로 가야 했소.”
마뇌악이 말을 보탰다.
그럼에도 빙악은 비난을 계속했다.
“그래도 가문 연맹회에 고개를 숙이는 처사는 아니다!”
“네 자식이 무사고에 있어도 그딴 말을 지껄일 것 같은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난 아이들을 무사고에 안 보낸 것이다.”
“말은 쉽군. 그랬다면 애초에 신기지가에서 제안이 왔을 때 반대했어야지. 우리 애들이 무사고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지켜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뒤늦게 보낼 수작 아니었나?”
“말 다 했어?”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혈마악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의미한 논쟁은 그만하지.”
“아직 이야기 안 끝났다!”
빙악이 그를 잡고 늘어졌다.
빙악은 사마련이 가문 연맹회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사마련의 세력은 굉장히 커진 상태.
그런데 혈마련과 살막, 뇌전홍가가 외부 활동을 중단한단다.
남은 가문은 설악문과 음양배가 그리고 흑검장가뿐.
이 세 가문만 앞에 서서 싸우면 전력 낭비가 불가피해진다.
외부 활동을 중단한 나머지 세 가문만 이득을 볼 터.
이기적인 빙악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혈마악이 붉은 눈을 빛내며 나직하게 말했다.
“너는 창제를 직접 보기는 했나.”
“보나 마나 애송이일….”
“방송에 나왔던 천외천과의 싸움을 보고도 애송이라… 설악문도 문을 닫을 때가 왔군.”
“뭐야?”
“그딴 눈으로 나와 같은 칭호를 어떻게 가졌는지 의문이다.”
혈마악의 조롱에 빙악의 얼굴이 붉어졌다.
빙악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날 능멸한 것이냐!”
내공을 끌어 올려 두 손에 장력을 가득 모으려는 찰나.
혈마악이 팔짱을 낀 채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 그 잘난 빙백신장을 쏠 수 있나 보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에서 적색 기운이 뿜어졌다.
그들이 있는 공간을 지배하는 적색 기운.
모든 걸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혈마악의 무지막지한 내공에 빙악은 물론 남은 사악의 눈이 커졌다.
“이런!”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설마… S급?”
모두의 눈이 흔들렸다.
특히 혈마악의 기운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빙악은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이 내가! 여전히 저놈에게 밀린단 말이냐!’
빙악은 혈마악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든 자신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는 미소였으니까.
“그래.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어라. 아니면 네 대갈통을 부숴 버릴 테니까. 죽으면 네가 좋아하는 그 변태짓도 못하지 않나.”
혈마악이 기운을 풀었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때 빙악을 향해 말했다.
“내가 본 창제는 괴물이다. 그자야말로 천외천이란 단어과 잘 어울리지. 내가 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지 잘 생각해 봐라. 그에게 창제란 이명이 붙은 시점에 우린 선택의 기로에 선 거나 마찬가지다.”
* * *
“이제 곧 반응이 오겠구만.”
이준은 무맹과 사마련의 입장 기사문을 봤다.
원하는 방향대로 잘 갔다.
먼저 도발한 무맹을 놔둔 것도 원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내지 않았을 거다.
“3개월의 봉문이 짧긴 한데 이로써 사람들이 우릴 찾게 될 거란 말이야. 여기서 딱 게이트가 열리면 완벽하고 음, 이건 너무 양아친가?”
3개월 만에 봉문을 깨고 나오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봉문은 적어도 1년은 해야 했다.
3개월은 봉문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인터넷 시대가 인심을 더 팍팍하게 만든단 말이야.”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도 다시 활동할 거다.
전보다 더 조롱하겠지.
하나 상관없었다.
조롱하는 이들보다 자신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을 테니까.
무엇보다 요번 일을 크게 만든 건 지주와 싸우기 전 준비 과정이다.
내부의 통제 불가한 이들을 싸그리 제거하는 것.
대한민국이 하나로 합쳐 대항해도 모자랄 판국에 통제가 안 되는 각성자를 끌고 갈 순 없었다.
무맹과 사마련이 이에 해당했다.
“무맹은 풍운왕 이놈이 꽉 잡고 있는 거 같고, 문제는 사마련인데 누가 튀어나올 거냐.”
분명 혈마악의 결정에 불만을 토해 내는 악인이 있을 거다.
무맹의 맹주는 욕심이 많은 자일뿐이지 악인도 아니고 천외천과 손을 잡지 않았다.
신력을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맹주를 죽인다면 민심이 요동칠 거다.
어쩌면 독재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악인을 죽이는 건 달랐다.
오히려 흉악한 범죄자를 죽였다고 좋아하겠지.
“우선 반응이 나오기 전에 애들 좀 굴려 볼까.”
이준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가 있는 곳은 구령대 위.
밑에는 특별 1반 학생들이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딱 세 명.
특별 1반의 기준에 못 미치는 류가을과 조용석, 홍원찬만이 손과 발목에 철근을 달고 기마자세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