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화
-이 선생님. 지금 전화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선생님! 제 아이 좀 봐주세요!
-한 번이라도 좋아요. 선생님 밑에서 배우게 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말입니다… 특별 1반 정원 수를 늘려 달라는 학부모님들 성화에…
이준은 한민성 이사장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자기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황.
전화기 너머의 그 장면이 잘 그려졌다.
-이 선생님 듣고 계십니까?
“네. 들었어요.”
-제 선에서 해결하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 바쁘시면 학교로 한 번 와 주시겠습니까?
한민성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준은 선생직을 맡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성자였다.
검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창제.
아니, 이제는 검제보다 명성이 더 높았다.
그 누구도 이준의 앞에서만큼은 조심해야 했다.
게다가 현재 신력권가는 봉문을 한 상태.
신력권가의 가주인 이준 또한 바깥출입을 끊었다.
그런 그를 학교로 부른다는 건 큰 실례였다.
“그러죠.”
듣고만 있던 이준이 대답하자 한민성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어려운 걸음을 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곧 가겠습니다. 그럼.”
뚝.
이준이 전화를 끊었다.
“참 행동들이 뻔뻔하네요. 그쵸? 사부님?”
그리고 무극자 사부에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이제는 무극자 사부가 곁에 없는데 습관이 돼서 말을 건 것이다.
“아, 사부님 안 계시지….”
기분이 급격히 내려갔다.
무극자 사부가 곁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됐다.
안 그래도 사신전을 나온 뒤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한민성 이사장의 전화를 받고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이에 반응한 살기.
이준의 기분이 나빠지면 천살성의 살기는 자동으로 발산됐다.
삽시간에 주변이 살기로 넘실거렸다.
그의 존재감은 혼원신공이 10성에 오르자 더욱 커졌다.
“하, 사부님이 안 계시니 벌써부터 쓸쓸하네.”
이준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혼원문을 나갔다.
4대 성지의 금역을 통해 바로 서울로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꿀꿀한 기분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기엔 산책이 최고.
무극군림보를 펼치며 천천히 서울로 이동했다.
설악산에서 무사고가 있는 용산까지의 거리는 대략 190km.
자동차로는 2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무극군림보를 이용하면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산책하듯이 가서 20분이 넘는 것.
경공을 정상적으로 펼친다면 15분 내외로 끊었을 터다.
무사고 근처에 도착한 이준은 4대 성지의 금역을 소환해 파랑이를 불렀다.
“뀨우!”
이준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파랑이가 어깨에 올라 볼을 비비적거렸다.
“너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뀨뀨!”
자기는 계속 옆에 있겠다는 듯이 우는 파랑이였다.
은근히 외로움을 타는 이준.
파랑이를 품고 무사고 정문을 지나쳤다.
신입생 정원을 두 배 넘게 늘렸다고 하더니, 학교에 학생들이 넘쳐났다.
운동장하며 교정하며 학생들이 안 보이는 곳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여긴 활기가 도네.”
풋풋한 느낌이랄까.
산뜻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청춘의 느낌?
기분이 절로 풀렸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이유에 있었다.
“저기 이준 선생님 아니야?”
“어디 어디?”
“진짜 이준 선생님이다!”
“어쩜 저렇게 잘생기셨을까?”
“아, 특별반 선배님들은 좋으시겠다. 저런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선생님 품에 있는 몬스터는 파랑이지?”
“파랑이는 듣던 것보다 더 귀엽다아.”
“저 앙증맞은 모습으로 천외천을 씹어 먹었다며?”
“귀엽고 강하기까지. 난 언제 저런 몬스터 키우냐.”
“이참에 테이밍하게 야수공이나 익힐까?”
“난 이미 야수공 선택했어.”
학생들의 시선은 온통 이준과 파랑이에게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주목받는 건 언제나 좋아. 그치 파랑아.”
“뀨우!”
파랑이가 얼굴을 위로 치켜올렸다.
녀석도 이준에게 물들었는지 행동이 비슷해졌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받은 채 이사장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이준이 사라지자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학교에 왜 오셨지?”
“개학식 때 안 오셔서 학교 그만둔 줄 알았는데.”
“아줌마들이 이사장실로 몰려온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특별 1반 정원 말이지?”
“응. 이사장님께 건의한다고 학부모들이 매일 몰려오고 있잖아.”
“하긴 아까도 엄청 몰려왔던데.”
“저기 저 사람들도 이사장실로 가는 게 아닐까?”
학교 정문에서 올라오는 많은 이들.
전부 학부모들이었다.
전투를 벌이러 가는 듯 비장감을 지닌 채 건물로 들어갔다.
“야, 그게 뭐가 중요해.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셨다는 게 중요하지.”
“맞아! 지원이한테 알려 줘야겠다.”
“나도.”
학생들은 저마다 폰을 들어 깨톡을 날렸다.
이준이 학교에 강림했다는 내용.
그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 * *
학교 이사장실은 학부모들로 미어터졌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오시는 거야.”
“우리 셋째 검법 과외 선생님 올 시간인데.”
“이사장님! 이 선생님 오시는 거 확실해요?”
“곧 오신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 어, 마침 오셨습니다. 이 선생님!”
한민성이 이준을 반갑게 불렀다.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한민성의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이사장님. 잘 지내셨죠?”
“잘 지낸 얼굴로 보이십니까?”
“아니요. 못 지내신 걸로 보여요.”
“아주 죽겠습니다.”
한민성이 은근슬쩍 학부모를 보며 말했다.
이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눈빛을 보냈다.
자기가 처리하겠다는 신호였다.
“특별 1반 정원을 늘려달라고요?”
이준이 학부모들을 향해 말하자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슨생님! 제발 제 아이를 맡아 주세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 제발…!”
“특별 1반 정원을 늘릴 이유가 없습니다.”
한민성과는 달리 이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딱 잘라 말하자 학부모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한테 이사장도 쩔쩔맸는데, 선생이 단호히 말하자 뇌가 정지된 거다.
“학교가 대학 커리큘럼처럼 되어 있으면 강의 하나는 맡아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들어 보니 이 선생님은 특별 1반만 가르친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그 외의 수업은 들어가지 않아요.”
“유독 특별 1반과 이 선생님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학부모 대표로 보이는 한 여자가 가시 돋게 말했다.
“어떤 학생의 학부모님일까요?”
“혈마련의 장명희예요.”
이준이 두뇌가 돌아갔다.
장명희의 이명은 수라마녀.
혈마악의 아내이기도 했다.
과거의 등급은 A급 끝자락.
‘지금은 AA급 완숙에 있어.’
과거와는 전혀 달랐다.
이준이 활약하고 창제란 이명을 가졌으니, 그동안 많은 것이 변한 건 당연했다.
“이사장님. 사마고에서도 전학 왔어요?”
“각성자 대학 설립을 위한 시범으로 사마고의 학생들이 대거 전학 왔습니다.”
사마련이 범죄자 집단이긴 하나 그들의 자녀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모두 부모가 저지른 짓.
자식들은 죄가 없었다.
물론 자라 온 환경은 무시할 수 없지만, 색안경을 끼고 봐선 안 됐다.
“그 내용은 몰랐네요.”
“선생님도 이사장님의 원대한 꿈에 동참해 주시는 게 어때요?”
“그게 특별 1반 정원을 늘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하지만 편견과 특별 1반 정원을 늘리는 건 달랐다.
“편견 없이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받는 게 학교 측에도 좋은 게 아닐까요?”
“재능이라….”
이준은 장명희의 딸을 떠올렸다.
나이는 열아홉 살.
자신과 같은 나이였다.
이름은 류가을.
이때쯤 사마고에서 혈희이란 이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등급은 A급 초입.
사마고에서도 최상위 랭커에 속했으며 재능 있는 각성자라고 소문이 났다.
하나 딱 거기까지.
이준의 눈엔 류가을만큼의 재능을 가진 학생은 무사고에 차고 넘쳤다.
“그 정도 재능 가지고는 제게 못 배웁니다.”
그가 학부모들에게 폭탄을 투하했다.
만약 교육부가 아직도 존재했다면 신고 넣을 감.
학부모의 자식을 대놓고 무시하는 말과 같았다.
“제 딸은 선생님의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말인가요?”
장명희가 노골적으로 되물었다.
일부러 유도하는 말.
그럼에도 이준은 그녀의 질문에 확고히 대답했다.
“네. 그리고 재능 있다고 해도 가르칠 생각 없어요.”
“뭐라고요?”
장명희가 이준을 향해 쌍심지를 켰다.
타인에게서 딸이 재능 없다는 말을 들으니 꼭지가 돈 것이다.
“너! 말 다 했어?”
“아직 안 끝났어요.”
이준이 장명희에게 한 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저에게 자식을 가르쳐 달라는 부모의 태도가 그게 뭐죠? 대가리를 처박아도 가르쳐 줄까 말까 하는데 너라니요. 선생에 대한 존중이 없으시네요.”
이준의 착 가라앉은 음성.
학부모들에게 똑똑히 박혔다.
모두에게 하는 경고의 목소리였다.
“자식이 재능 없다는데 화 안 나게 생겼어? 야! 네가 부모된 입장이 돼 봐!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선생이 돼가지고….”
장명희가 선을 세게 넘었다.
그녀의 발언에 한민성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직도 이준을 창제가 아닌 무사고 소속 선생으로만 생각했다.
적어도 이준을 봐 온 사람이라면….
‘꺼림칙한데…’
절대 쉽게 건드려선 안 됐다.
특히 그는 일을 크게 만드는 걸 꽤 좋아했다.
이번에도 일을 키울 거라고 장담한 한민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이준의 눈이 회색으로 번들거렸다.
그 기점으로 이사장실 창문의 유리가 전부 깨져나갔다.
“계속 반말하시는데… 내가 언제까지 당신을 예우해 줘야 하지”
“흡!”
장명희의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숨을 못 쉬는지 쓰러져 발버둥을 쳤다.
“당신 남편이 직접 온다고 해도 나한테 기어야 할 판국에 뭐 하는 행동이지?”
“어어억!”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
이사장실에 있는 학부모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무사고 선생이 학부모를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
모두의 눈과 입이 커졌다.
기겁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이준을 말리지 못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칼날같은 기세 때문에 전신이 굳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혈마련, 뇌전홍가, 살막, 무맹에 가서 전해. 너희들 대가리 당장 학교로 오라고. 30분 내로 안 오면 내가 어떻게 나갈지 기대해도 좋다고 해.”
이준의 말이 끝나자 학교 밖에 대기하고 있던 그림자들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그의 행동에 한민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일부러 학부모가 자기에게 시비 걸게 만들었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 * *
“그 빌어먹을 여편네가 진짜! 빨리 밟아 뭐 해?”
“예!”
자동차 안에 있는 중년 남자가 기사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연식 씩씩거렸다.
무사고 앞에 도착한 운전기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사고는 모두 이 문 앞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썅! 지금 바빠 죽겠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가!”
“예!”
검은색 외제차가 무사고 본관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안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사마련의 최고 우두머리인 혈마악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무사고에 올 줄이야.”
예전이라면 이런 곳에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고작 고등학생의 부름에 말이다.
하지만 이준은 그냥 고등학생이 아니라 창제였다. 지금도 강하지만 앞으로 더더욱 강해질 자였다. 각성자들의 사회에선 힘이 곧 권력이었다. 괜히 자존심을 내세웠다가 밉보일 짓을 하면 안 됐다.
특히 지금처럼 그의 심기가 상해 있을 때 말이었다.
그 뒤로 쭉 혈마련의 각성자들이 내렸다.
그들뿐인가.
살막과 뇌전홍가의 막주와 가주까지 급히 왔다.
“어디라고?”
“이사장실입니다.”
“가자.”
혈마악과 살악, 그리고 마뇌악이 이사장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자신 있게 걸어가던 혈마악 류한길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X발.”
“오늘 최악의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마누라를 그냥!”
세 사람은 이사장실로 가기 꺼려졌다.
저 안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살기에 이미 등이 젖어버렸다.
하필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창제의 심기를 어지럽힌 건지.
마누라가 학교에 가서 이사장에게 건의를 한다고 했을 때 말려야 했다.
가문의 정보대로라면 창제의 성격은 그야말로 폭탄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자식이 창제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욕심에 그만 실수를 했다.
성격이 지랄맞은 마누라에게 알아서 하라고 한 것.
덕분에 이 사단이 났다.
‘봉문을 푼 지 얼마나 됐다고! 안 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세력을 이만큼이나 넓혔는데 다 잃을 순 없어. 혈마련도 양지로 나와야지.’
언제까지 범죄자 취급당하며 살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딸 만큼은 범죄자란 탈을 벗었으면 했다.
혈마악이 봉문을 깨고 세력을 넓힌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딸을 보호할 커다란 울타리가 있어야 했기에.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세력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보단 낫다.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거야.’
혈마악 또한 이준이 인주와 싸우는 걸 봤다.
대적 불가.
이후부터 그의 머릿속엔 창제는 논외의 인물이 되었다.
대한민국 랭킹에서도 아예 제외 시켜야 했다.
천외천 놈들과 따로 랭킹을 만들어서 분류시키는 게 옳았다.
그만큼 창제는 자신들과 격이 다른 존재였으니까.
‘한 번의 창피로 혈마련을 지키는 거다.’
세 사람은 겨우 발걸음을 떼고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정확히 21분. 생각보다 늦었네.”
청년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차가 막혀서….”
“일 도중에 바로 왔는데….”
“대한민국 최고 각성자인 창제를 이리 보다니 영광입니다.”
혈마악과 살악 그리고 마뇌악이 이준의 눈도 못 맞추며 말했다.
“내가 왜 당신들을 이곳으로 부른지 보고 받았겠지?”
“제 아내가 실수를 했다고….”
“전 창제께서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혹, 제 마누라가 실수라도…?”
“이야기를 하기 전에 누가 본관 건물까지 자동차를 끌고 오라고 했지?”
세 사람은 아뿔사했다.
설마 이 문제로 트집을 잡을 줄은 몰랐다.
“죄, 죄송합니다.”
“차 빼고 와. 아니면 저거 다 폭파시켜 줘?”
“빼고 오겠습니다.”
세 사람은 황급히 이사장실에서 나갔다.
무려 사마련을 대표하는 각성자 중 세 명이 이준에겐 쪽도 못 썼다.
그의 위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학부모들은 수십 년은 늙은 얼굴을 했다.
그들은 무려 창제에게 찍힌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