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2화
“좋구나. 흐흐.”
검종이 입맛을 다시자 옆에 있던 동료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검종. 이곳은 신력권가의 앞마당이다. 그리고 저 문에서 나왔다는 건 신력권가 소속 아이라는 것이고.”
“크크. 그게 왜?”
“멍청한! 신권과 창제가 있는 호랑이 굴이란 소리야.”
동료가 말림에도 검종의 뜻은 굽혀지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넘보지도 못한 신력권가.
하나 현재의 신력권가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다.
“흑검장가가 한남동을 들쑤시고 다녔어도 신력권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몇몇은 이 앞마당에서 무맹 놈들을 쳐 죽이고 희롱했다던데 그럼에도 신력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처음으로 문이 열리지 않았나.”
“적검아. 딱 보면 모르겠냐? 저 귀여운 아이는 지금 학교 가려고 하는 중 아니냐. 신력이 봉문을 깼다곤 생각하지 않아. 맞지?”
검종이 이지안을 보며 물었다.
이지안은 그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 줬다.
“맞아요. 신력은 아직 봉문 중이에요.”
“넌. 새 학기를 맞이해서 등교를 하는 것이고?”
“네.”
전부 대답해 주는 이지안이었다.
그 모습에 기겁한 벽검 탁우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해! 저놈들은 극악무도한 흑검장가의 검종과 적검이야!”
하지만 이지안은 멀뚱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런!”
탁우진은 그녀의 몸이 굳은 걸로 착각했다.
검종과 적검.
그들은 흑검장가를 대표한 각성자이자 범죄자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A급 완숙에 들어서 더 활개를 치고 다니는 마인이기도 했다.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니 두 사람의 이명에 겁을 먹은 건 당연했다.
탁우진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신력의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소용없어요. 신력의 문은 열리지 않아요.”
“안으로 들어가든지 도움을 청해야 돼!”
“가주 오빠의 명이라 열리지 않을 거예요.”
이지안의 음성은 매우 차분했다.
눈앞에 A급 완숙의 각성자가 있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검종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내 말이 맞지?”
“으음….”
검종과는 달리 적검은 신중한 성격을 지녔다.
어떤 미친놈이 신력의 앞에서 그것도 신력의 가솔을 건드릴 생각을 하겠나.
이곳은 S급 각성자인 검제보다 더 강한 창제의 집이었다.
아무리 봉문을 했다고는 하나 가솔이 당한다면 신력에서 가만히 있을까?
복수하겠다고 봉문을 깨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뭘 걱정하는지 안다만, 다른 애들도 이 앞에서 여러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 하더군.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검종이 적검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적검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지안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무표정.
마치 따분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천을 등 뒤에서 꺼냈다.
천을 벗기자 새하얀 창신이 드러났다.
한눈에 봐도 귀한 아티팩트였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돈이 엄청 많다고 하더니 정말이었어.”
“고등학생한테 쥐여 준 아티팩트가 저 정도 일 줄이야.”
“적검. 저 물건 탐나지 않아?”
“당연히 탐나지.”
“난 저 애를 가질 테니 넌 아티팩트를 가져라. 어떠냐?”
검종이 제안했다.
경계하던 적검도 이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이 오직 이지안이 들고 있는 저 아름답고 새하얀 창에 꽂혔으니까.
“좋다! 대신 여기서 빨리 벗어나자.”
“그건 내가 양보하지. 크크큭.”
검종의 설득에 이젠 적검까지 합류했다.
* * *
신력권가 건물 위.
김봉팔과 무극대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호로 잡놈의 새끼들이 누굴 건드리려고 하냐?”
“시팔. 전 저놈의 음흉한 눈깔을 팔까 깊은 고민이오.”
“듣보잡 새끼가 감히 우리 지안이를 넘보고 있습니다. 형님들.”
“제가 나설까요?”
“아니면 저라도?”
무극대 막내 라인인 현이와 세호였다.
“아서라. 봉문 했다고 온 동네에 알렸는데 밖으로 나가면 주군만 욕먹는다. 그리고 우리 지안이가 저 떨거지들한테 지겠냐?”
“개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오.”
“지안이 쟤, 사 대주랑 비슷한 과잖아.”
“구음절맥이란 특성은 어떻고요.”
“지금 성장만 봐서는 1년 안에 우리도 지안이한테 따라잡힐지 몰라.”
무극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지안의 등급은 A급 초입이었다.
이준이 가르쳤지만 어째서인지 경지가 잘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신수호무인 천무 때문.
SS급에 있는 무공답게 기존에 배웠던 무공과는 격이 달랐다.
각성자 시스템 없이 쌩으로 익혔다면 절대 익히지 못했을 무공.
난해하고 어렵기 그지없었다.
이지안이 A급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기적.
무한한 내공과 완벽한 육체, 천재성이 더해지니 그녀는 일반 각성자보다 훨씬 강했다.
검종과 적검?
놈들이 익힌 무공의 등급은 끽해봐야 A급.
이지안이 익힌 무공과 등급 차이만 해도 최소 세 단계였다.
그러니 무극대가 보고만 있는 것이다.
굳이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됐으니까.
“오, 지안이가 백설을 꺼내 들었어요.”
“캬아. 멋지다.”
“우리 동생이지만 참 매력적입니다.”
“막내들. 지안이한테 흑심 품은 건 아니지?”
“부대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저 입만 아니면 가주께 참 예쁨 받으실 텐데 말이에요.”
현이와 세호가 한마디씩 했다.
막내들이 팩폭을 날리자 김봉팔이 씩씩거렸다.
무극대는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였다.
“거 조용히 합시다. 우리 지안이가 싸우고 있잖소.”
모두의 눈이 이지안에게로 향했다.
쩍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지안이 선택한 계열은 현무.
구음절맥의 특성을 가진 그녀에게 최고의 파트너였다.
현무는 치료계였으나 공격계 또한 강했다.
특히 지금처럼 상태 이상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쩌적쩍쩍-
한기는 그녀의 주변을 온통 얼려 버렸다.
마치 샥쿠가 얼음 마력을 선보인 것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다리를 얼려 버리는데 어떻게 움직여.”
“그게 다라면 당황하지도 않아요. 빙판에 보법을 완벽하게 밟을 수 있는 각성자가 어디 있어요. 쟤들은 끽해 봐야 A급 완숙인데.”
“이미 지안이가 이겼구만.”
“그래도 좀 치고받고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싱겁다.”
“이러고 보니까 사신수호무가 밸런스 붕괴를 가져왔네요. 대륙 무공은 그냥 찜쩌먹으니.”
“사신수호무는 무슨! 천무라고 부르라니까.”
“아차차. 천무요.”
무극대는 사신수호무를 천무라 불렀다.
김봉팔의 지시였다.
사신수호무보다 천무가 더 강렬하다나 뭐라나.
이준도 김봉팔을 말리지 않았다.
사신수호무로 불리는 것보다 천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주군의 뿌리 무공이니깐 밸붕일 수밖에.”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 무공은 다 비슷비슷한데 왜 가주님의 무공은 다를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네.”
“한 번도 그 생각은 못 해 봤어.”
무극대가 이지안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생각에 잠든 그때였다.
“주군께서 말씀하지 않았나.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면 각자의 길로 빠지게 되어 있다고. 주군은 사부라는 분께 완성된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게 아닐까 싶다.”
기척도 없이 유령처럼 나타난 사형준의 대답이었다.
“악!”
“노, 놀래라.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
“까,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놀랐다면 미안하군.”
김봉팔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주군 사부가 불완전한 무공을 자기 방식대로 완전하게 만들어서 주군께 전수를 해 줬다?”
“그래.”
“일리 있는 말이네요.”
“우리가 익힌 천무는 불완전하면서도 그 어떤 무공보다 완전하다. 너희도 익히면서 느꼈겠지? 약점이 있는 대륙의 무공과는 달라. 오히려 완벽에 가깝지. 그저 천무가 가진 특징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이지. 너희는 저게 불완전한 무공으로 보이나?”
이지안의 창에서 하얀빛이 뿜어졌다.
날카로운 반원 모양의 창기였다.
불완전한 무공이었다면 기운을 응집하지 못하고 날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지안은 한 개도 아니고 여러 다발의 창기를 날리는 게 아닌가.
무공이 불완전했다면 저러다가 기혈이 역류해 큰 내상을 당할지 모른다.
“가주께서 불완전한 무공을 전수해 주셨겠어요?”
“우리가 해석을 잘못한 거였어요.”
“어딜 봐서 불완전한 무공이야. 아주 완벽한데.”
“각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지 못해서 불완전한 무공이다라고 하신 것 같다.”
사형준의 말을 듣고 바로 이해한 무극대였다.
* * *
“이, 이럴 수가!”
벽검 탁우진은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의 눈동자에 보이는 광경은 적검와 검종이 꼼짝 못 하는 모습이었다.
두 발이 땅에 얼어붙은 두 사람.
안간힘을 쓰며 얼어붙은 발을 바닥에서 떼어 내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검으로 얼음을 부수기도 했다.
그러면 뭐 하나.
얼음을 부술수록 몸을 얼려 가는 한기는 더욱 거세지는데.
뿐인가.
그들의 수하는 내공이 약해서 몸을 덜덜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동사했다.
B급 이하 각성자들이 버틸 만한 한기가 아니었다.
반대로 탁우진에겐 전혀 영향이 가지 않았다.
“극, 극한에 가까운 내공 컨트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이지안의 등을 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긴 했다.
굉장히 성숙해 보이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났다.
마치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여자아이의 모습.
그런데 그 아이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아직… 고등학생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서걱서걱-
육체가 깔끔하게 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안이 날린 창기 다발에 의해 마인들의 몸이 잘려 나갔다.
“선명한 창기라니!”
흐릿한 창기도 아니었다.
자신도 깔끔하게 만들지 못하는 기를 너무도 쉽게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탁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대 가문은 괴물만 산다더니… 사실이었어.”
정확히는 오대 가문이 아니었다.
그들도 강하지만 유독 신력권가가 강한 것이었다.
“무맹은… 아무것도 아니야….”
탁우진은 신력권가에서 왜 창을 쓰는지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의 무력으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것.
무맹이 그동안 해 왔던 노력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무맹은 죽었다 깨어나도 오대 가문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검은 얼어붙은 다리가 부서져 불구가 되었고, 검종은 오른팔이 창기에 의해 잘려 나간 상태였다.
저항이 약해진 틈에 두 사람에게 창을 찔러 넣은 이지안.
푹-
“커헉!”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푸확-
적검의 심장에 박아 넣은 창을 뽑았다.
피가 얼굴에 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적검의 허무한 죽음.
다음은 검종이었다.
몸을 틀어 도망치고 싶어도 다리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검종은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내, 내 뒤에는 흑검장가가 이, 있다!”
“그래서요?”
“후, 후환이 두렵지 않느냐?”
“제 뒤에는 신력권가가 있어요. 한 번 붙어 보시겠어요? 흑검장가는 가주 오빠한테 30분도 안 돼서 다 쓸릴 것 같은데. 그리고요….”
이지안이 검종의 앞에 서서 하던 말을 마저 했다.
“가주 오빠가 말하길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고 오리발 내밀면 된다던데요?”
“이 미, 미친년이!”
검종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 순간!
푹-
“크아아악!”
이지안의 창이 그의 중심부를 뚫어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극대 전원이 제가 아픈 것처럼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