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1화
신력권가에서 공식 입장문이 나왔다.
창제의 은퇴.
그와 함께 신력권가도 대외 활동을 전부 끊는다는 전언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이준과 신력권가의 보호 아래에 있던 시민들에겐 절망적인 말이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아니 ㅅㅂ 이게 말이 되냐? 왜 창제가 은퇴하냐고.
-다 관종 새끼들 때문이지.
-킹받네. 신력권가 덕분에 집값 떡상했구만. 이제 다시 원상 복구할 판이네.
-ㅋㅈ. 우리 집 집값만 안정적이어서 개 좋았는데 분란충 덕분에 떡상한 집값 반납하게 생겼음.
균열이 생기고부터 대한민국 집값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균열.
비싼 집을 사도 보호할 장치가 없어 파괴되기 일쑤였다.
가문이 자리 잡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땅으로 꺼지던 집값이 안정을 찾았다.
오대 가문을 지지한 이들은 그들의 비호 아래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할 수 있어 굉장히 좋아했다.
신력권가의 영역인 한남동은 어떤가.
이준이 창제란 이명을 달았을 때는 모두가 환호했다.
안 그래도 안정된 주거 공간을 가졌는데 창제의 위명으로 인해 집값까지 더욱 올랐으니.
이사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지역.
그 옛날 역세권, 숲세권, 학세권 등이 있었던 곳보다 요즘은 비균세권이 최고였다.
신력권가의 영역인 한남동은 비균세권 중에서도 최고에 달했으니.
돈 많은 이들이라면 너도나도 이사를 오고 싶어 했다.
물론 이는 신력이 활동할 때의 이야기.
지금처럼 대외 활동을 전부 끊으면 비균세권은 있으나 마나였다.
한남동에 거주하는 이들에겐 각자도생만이 살길이었다.
-집값이 문제냐. 신력이 관리하던 균열 어쩔 거야.
-ㅅㅂ 그러네? 우리 좆된 거임?
-설마 관리하던 균열 지역을 방치할까.
-기사 못 봤음? 그 어떤 대외 활동도 다 끊는다잖음. 집콕 모름?
-하. 댓글 달다 보니 좆된 거 맞네.
-제일 안정적이었던 한남동이 이젠 제일 위험하게 생겼다.
-지금이라도 철혈이나 만독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하나?
한남동 주민들은 한숨이 계속 늘었다.
신력이 언제 봉문을 깰지 모르니 이곳을 떠나기도 애매했다.
만약 창제와 신력이 세상으로 나온다면 한남동이 제일 안전한 지역이 될 테니까.
땅에 떨어졌던 집값은 다시 떡상하게 될 터.
떠나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안 떠나자니 목숨이 위태로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신력의 비호 아래에 있던 이들과는 달리 분란종자들은 이때다 싶어서 다시 나타났다.
-와, 사람 목숨가지고 협박하는 인성보소?
-원래 저랬음. 가주가 바뀌었다고 달라지겠음?
-쓰레기네.
-사회에서 매장하는 게 답이다.
-힘 있다고 협박하는 그들의 자세. 이참에 신력 참교육 가자.
-ㅋㅋㅋㅋㅋ 난 신기지가가 담당하는 여의도라 괜찮.
무지성 댓글에 한남동에 사는 시민들이 폭격을 했다.
-너 여의도 어디서 사냐. 나 증권가에서 근무하는데 나 보면 피해라. 손가락 잘라 버릴 테니까.
-저새끼들 아직도 저러고 있음?
-싹 다 고소당한 걸로 아는데.
-캡쳐하고 가문연맹회에 증거로 보내는 중.
-난 ip따고 있다. 어떤 놈들인지 찾아가서 직접 얼굴 보려고.
-신상 공개 추천함.
그때였다.
-크, 큰일 남!
-뭔데?
-기, 기사 떴어.
-무슨 기사?
-링크
커뮤니티 회원들이 링크를 누른 순간!
댓글이 주르륵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실화냐?
-조졌다.
-오대 가문이 신력처럼 대외 활동을 다 끊는다는 소리임?
-ㄴㄴ. 철혈, 신기, 만독, 진씨는 균열 관리는 한대.
-그럼 저건 무슨 소리냐?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고 훈련에 매진한다는 이야기지.
-이번에 무능력하다는 걸 느꼈나봐.
-창제가 가르쳐 준 수련법이 있어서 그걸 하려고 최소한의 활동만 한다네.
-휴우. 다행이다. 오대 가문이 봉문하면 그냥 망하는 거야.
-킹정.
-그래도 안심할 건 아님.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활동이라잖아. 지금처럼 안전하게 우릴 보호해주겠다는 소리가 아님.
-상황이 수시로 변하니까 개같네. 우린 어떻게 대응하라고 이러는 거냐.
-다 저 분란충들 때문이니까 쟤들을 욕해.
이때부터 사람들은 다시 각성자라는 존재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인식하게 됐다.
신력이 봉문하고 남은 사대 가문이 최소한의 활동만 한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거리는 개판이 되었으니까.
물론 이때를 기회로 자기 영역을 넓히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무맹과 사마련이었다.
그들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에 허구한 날 영역 다툼을 벌였다.
저들이 싸우건 말건.
오대 가문은 신경 쓰지 않고 수련에만 집중했다.
* * *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신력이 봉문하고 사대 가문이 최소한의 활동만 했던 날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이 3개월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세력이 작았던 무맹은 국민을 등에 업고 활개 쳤다.
국민은 오대 가문에 청원을 넣으며 제발 예전으로 돌아와 달라고 외쳤으나 무의미.
오대 가문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렇다고 15가문 연맹회가 손가락만 빨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남은 열 가문이 몸을 쪼개어 활발하게 행동했으나 역부족이었다.
15가문 연맹회의 진정한 힘은 오대 가문에서 나왔으니.
그들이 없는 연맹회는 속 빈 강정과 다름없었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무맹.
무맹은 국민에게 호의적이었다.
15가문 연맹회 대신 국민을 보호해주었다.
그들의 편의도 최대한 봐주었다.
이로인해 국민의 지지를 얻은 무맹이 승승장구하게 됐다.
사마련은 어떤가.
이준이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문을 걸어 잠갔던 사마련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서울 강북의 땅은 거의 차지한 것.
게이트 통행세는 기본, 사마련이 차지한 곳은 무법지대가 된 지 오래였다.
사마련의 악행은 나날이 심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범죄자들의 집단.
살인, 방화, 강간, 인신매매 등.
돈이 되는 거라면 가라지 않고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단체는 없었다.
사마련에는 악인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까.
국민의 지지를 받은 무맹은 사마련의 공격을 방어하기 급급하기만 했다.
말릴 사람이 없으니, 제 세상이라도 된 듯 날뛰는 사마련이었다.
이게 오대 가문이 봉문한 지 고작 3개월 만에 일어난 일.
오늘도 어김없이 뉴스가 나왔다.
[무맹과 사마련 중구에서 충돌!]
[무맹은 중구를 방어할 수 있나?]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또 싸우냐?”
“아주 개판이야.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무맹이 밀리려나?”
“벽검이 나섰는데 질까.”
“하긴 요새 벽검의 주가가 한창이긴 해.”
벽검은 무맹에서 밀어주는 각성자였다.
나이는 23살.
등급은 A급 초입.
무맹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남자였다.
“아차! 이럴 시간 없다. 빨리 가자. 또 균열 일어나면 어떡하냐.”
“아, 알았어.”
남자들은 이야기하다 말고 냅다 뛰었다.
그들이 이러는 이유는 최근 들어서 균열이 더 많이 일어났기 때문.
3개월간 제일 큰 변화는 바로 균열의 속도였다.
예전에는 그래도 게이트가 열리는 신호라도 보내왔었다.
하지만 현재는?
신호가 없이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가 쏟아졌다.
국민이 오대 가문을 간절히 찾은 이유였다.
옛날과는 달리 거리가 휑한 것도 균열 때문이었다.
남자들이 사라지고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대거 나타났다.
“스으읍! 얼마만의 공기인가.”
“후방에만 빠져 있어서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진작 불렀으면 무맹 놈들은 내가 아주 맛있게 요리해 줬을 텐데 말이야.”
“천하의 검종이 후방에 빠져 있었으니 어련할까.”
“크크. 피 맛 좀 제대로 보자.”
“실컷 봐라. 네가 중구를 점령하면 검악께서 큰 상을 내린다고 하셨다.”
“상은 무슨. 난 피 맛만 보면 돼.”
“큭. 미친 살귀 놈.”
그들의 몸이 빌딩을 타고 빠르게 올라갔다.
빌딩 옥상을 밟으며 날아가는 이들.
사마련 소속 흑검장가의 각성자들이었다.
오른쪽 눈에 검상이 있는 애꾸눈 남자.
그는 검종이란 이명을 가진 살귀였다.
여태껏 후방인 연천군에만 있다가 드디어 전방에 배속된 것이다.
그의 목표는 무맹의 벽검이 방어하고 있는 중구였다.
* * *
“큭!”
금발의 젊은 남자가 어깨를 부여잡고 도망치고 있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그의 얼굴은 다급했다.
“…검종이 허억… 이렇게 강할 허억… 줄이야….”
남자의 이름은 탁우진.
무맹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벽검이었다.
“잡아!”
“놓치지 마라!”
“벽검은 내꺼다.”
마인들은 그의 뒤를 쫓았다.
“검종… 허억… 나타났어…. 무맹에 지원 요 허억… 청을 해야 돼….”
탁우진은 사마련의 마인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도망치는 중이었다.
마인과 싸우기 전에는 자신했다.
사마련의 수뇌부인 악인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중구를 방어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뒤늦게 지원 나온 검종은 그야말로 검의 귀신.
전장의 유령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강했다.
검종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무맹 소속 각성자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귀신같은 솜씨였다.
상대를 너무 얕보았나.
무맹의 각성자가 검종에게 전부 썰리자 깨달았다.
자신은 그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도망칠 수 있게끔 몸으로 막는 무맹의 각성자들이 없었다면 검종에게 벌써 죽은 목숨이었다.
“허억 연락할… 곳이….”
탁우진은 계속 앞으로 질주했다.
여기로 쭉 내려가면 한남동이 나왔다.
한남동은 신력권가의 영역.
“신력… 권 허억 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 허억… 어.”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은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지만, 주변엔 신력 말고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현재 신력은 봉문을 하고 있지만 다친 사람까지 무시할 정도의 가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여기서 도주 경로를 바꿔 봤자 추격대에 의해 잡힐 게 뻔했으니, 선택지는 신력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탁우진은 최대한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그는 겨우겨우 신력권가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문.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쿵쿵쿵.
“계십니까! 도움이 필요합니다!”
탁우진이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추격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크크. 여기까지 잘도 도망쳤구나.”
검종이 입술에 묻은 피를 핥으며 웃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그러니 순순히 잡혀라.”
“네놈에게 잡힐 바에는 싸우다가 죽겠어.”
“그것도 좋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거니까.”
검종이 탁우진에게 다가갔다.
탁우진은 검종에게 검을 겨누며 곁눈질을 했다.
여전히 문 안쪽에선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력권가쯤의 가문이라면 밖의 소란을 바로 알아차릴 터.
듣던 대로 신력은 밖의 일에 일체 관여를 안 하는 모양이다.
안쪽에 기척이 없으니 탁우진은 희망의 끈을 놓았다.
“여기까지인가…?”
“당연하지 않느냐. 크크.”
탁우진이 체념하며 검종에게 달려들려던 순간!
끼이익-
얼마나 오랜 시간 문을 닫아 뒀으면 대문에서 소리가 나는지.
잘 열리지 않은 문을 열고 은발의 여자가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은발의 머리가 그녀를 더욱 신비하게 해 주었다.
“누구신데 여기서 싸우는 거죠?”
외모에 걸맞게 목소리 또한 청명했다.
모든 게 완벽한 여자.
무사고의 교복을 입은 모습은 검종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성년자를 보면 흥분하는 변태 성욕자였으니까.
“여신이 이곳에 있었어!”
검종의 음흉한 눈빛에도 전혀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여자.
그녀는 중학생에서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이지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