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과거 괴개가 만독암가에서 몇십년 간 칩거한 이유는 만류귀원신공과 백사편법의 무공서를 얻었기 때문이다.
두 무공 다 발견 당시엔 불완전한 무공서였으나, 현재의 괴개는 만류귀원신공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백사편법은 1, 2초식 밖에 얻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다행인 건 그에게 무공서가 있다는 것.
백사편법의 무공서를 구하러 게이트에 갈 필요가 없었다.
“무공서가 필요하오?”
“복원하려면 당연히 있어야죠. 가문에 두고 온 건 아니죠?”
“품에 있소.”
괴개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백사편법을 꺼냈다.
온전한 서책이 아닌, 반으로 찢어져 있는 무공서.
과거에도, 현재에서도 불완전한 책은 실제로 처음 봤다.
“저에게 주시겠어요?”
“여기 있소.”
괴개는 스스럼없이 이준에게 찢어진 무공서를 건넸다.
백사편법은 만류귀원신공이 있어야지만 펼칠 수 있었고, 구결도 완벽하지 않았다.
또한 이준의 무공은 이 백사편법보다 더 강했기에 그가 굳이 무공을 강탈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흐음, 3초식까지 복원하시다가 말았네요.”
이준은 무공서를 훑어보며 말했다.
“무공을 완성하실 수 있겠소?”
“문제없어요. 바로 시작하시죠. 검제님과 무극대는 계속 훈련하시고요.”
이준과 괴개가 연무장의 한쪽 구석으로 갔다.
“2초식 사룡까지 펼쳐보세요.”
“알겠소.”
괴개가 고개를 끄덕이곤 채찍을 움직였다.
내공이 주입된 채찍이 빳빳하게 펴졌다.
펑!
그가 허공을 향해 채찍을 움직였다.
허공을 연타할수록 보라색으로 물드는 주변.
채찍에서 독연이 피어나온 것이다.
이게 바로 백사편법의 1초식 독연편.
첫 초식부터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공이었다.
이어서 2초식이 펼쳐졌다.
사룡.
죽어 있는 용이 꿈틀거리듯 채찍이 허공에서 요동쳤다.
‘연검이랑 비슷하게 공격 루트가 상당히 복잡하네요.’
[익히기 어려운 무기에 속하기도 하지. 연검과 편법을 대성하면 검과 도보다 유하고 파괴적이니라.]
괴개의 움직임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백회연.
채찍이 회전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려는데.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준이 괴개를 말렸다.
미완성된 무공을 잘못 펼치면 기혈이 꼬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
괴개가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사이 이준은 무극자와 대화를 했다.
‘사부님. 2초식에서 3초식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뭔가 어색했는데 왜 그런 거예요?’
[2초식 사룡과 3초식 백회연은 한몸이니라. 죽어가는 용이 승천하지 못하다가 하늘에서 용을 가엽게 여겨 데려가려는 게 백회연이다. 사룡의 채찍이 흐물거리는 상태로 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건 맞지 않느니라.]
2초식에서 3초식으로 이어지는 장면.
괴개는 흐물거리는 채찍을 하늘을 향해 움직였다.
하나, 이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흐물거리는 게 아닌, 1초식 때처럼 채찍이 칼처럼 단단하게 쫙 펴져야 하는 것.
이게 바로 백회연의 본래 모습이었다.
“와!”
무극자의 말이 끝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초식 중간 부분이 끊어져 있는데 무공서에 새롭게 글자가 쓰이는 게 아닌가.
“됐다.”
무공을 새로 만들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천강마멸진과 전륜살상진을 합칠 때와 똑같았다.
무공서에 3초식 구결이 완성되자 빛났다.
[백사편법의 일부 구결을 복원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00p가 지급됩니다.]
[백사편법의 정수 일부분을 흡수합니다.]
[편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신지체(SS)에 편법 요체가 각인되었습니다.]
[마신지체(SSS)의 마안이 눈을 떴습니다.]
[마안]
등급: EX
설명: 세상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눈이다. 오로지 마신지체를 지닌 자만 가질 수 있다.
효과: 세상 만물 판별 가능.
“미친!”
이준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왜 그러시오?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했소?”
“아, 아닙니다.”
이준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테크트리 보상은 이미 예견한 결과.
하지만 마신지체에 각인된 편법의 요체는 뜻밖이었다.
거기다 마안이란 신규 특성까지.
백사편법을 복원해주는 선택을 하길 정말 잘했다.
‘이건 미쳤어.’
이준이 괴개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느꼈다.
[끌끌. 마안이 주어진 걸 보니 마신지체가 이제야 기능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이게… 사부님이 보시던 시야였어요?’
[홀홀.]
이준의 눈에 잡힌 흐릿한 모습의 괴개는 3초식 백회연을 펼치고 있었다.
자신이 말해준 구결을 펼치는 게 보였다.
마치 몇 분 뒤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구결대로 움직여 보라고 하거라.]
이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괴개를 향해 말했다.
“괴개 님. 2초식에서 3초식 넘어가는 부분을 다시 펼쳐주시겠어요? 3초식 때는 흐물거리는 채찍을 쫙 펼쳐주세요. 그리고 하늘로 채찍을 회전시켜주는 식으로 가볼게요.”
그 말을 들은 괴개가 2초식부터 펼쳤다.
이준이 마안을 얻고 잔상으로 봤던 움직임이었다.
정말 몇 초, 몇 분 뒤의 미래를 본 것.
가슴이 두근거렸다.
괴개의 행동이 3초식으로 넘어갔을 때는 자지러질 정도로 흥분됐다.
‘저기서 채찍에 내공을 가득 넣어야 부드럽게 이어질 거야.’
백사편법의 길이 눈에 보였다.
아주 선명하게.
“괴개님 채찍에 내공을 가득 실어서 하늘 위로 올리세요.”
뚝뚝 끊기며 부자연스러웠던 부분에서 말하자, 괴개는 이준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휘이잉-!
그때 거센 바람과 함께 주위에 퍼진 보라색 연기가 하얗게 바뀌었다.
그 속에서 채찍은 회오리치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 결과.
채찍 주위로 몰려들었던 하얀 연기가 하늘에서 쫙 퍼지는 게 아닌가.
[저 독기가 퍼지지 못하게 제어 하거라.]
‘네? 네.’
감탄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괴개는 현재 백사편법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
3초식 백회연을 풀 파워로 펼쳤으니.
자칫하다간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위험해질 지도 모른다.
이준은 무극기를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나온 폭발적인 기운이 하얀 독기가 퍼지는 걸 가로막았다.
쿵!
두 기운이 연이어 충돌하며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물론 백회연의 기운은 무극기의 상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했으나 나중에는 무극기가 백회연의 기운을 잡아 먹어 버렸다.
깔끔하게 사라진 하얀 연기.
이준의 몸에서 나온 무극기도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괴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이지?”
“3초식 백회연을 완성하신 걸 축하드려요.”
“백회연? 지금 내가 선보인 게 백회연이란 말이오?”
“아직은 내공 조절을 더 하셔야겠지만 이대로 연습만 한다면 완벽해질 거예요.”
“허, 허허… 수십 년간 이 무공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리 쉽게 얻을 줄이야….”
괴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한 무공이었는데, 한 시간도 안 지나서 3초식을 복원한 게 아닌가.
이준이 백사편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다음 4초식도 하셔야죠?”
“창제는… 천재인 것이오?”
이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과거에는 절대 듣지 못했던 말.
이번 생은 참 많이 듣는 단어였다.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천재라는 말까지 하는지 원. 내 제자들이 저런 걸로 천재 소리를 들었다면 내가 한 소리 했을 것이니라.]
‘저도 사부님 제자인데요.’
[크흠. 넌 여태 못 들어 봤을 터이니 마음껏 즐기거라.]
참 아량이 넓은 사부님이었다.
자기도 실상은 좋으면서 괜히 퉁명스럽게 말한다.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는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사람이 이렇게 투명할 수가.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 사람이 파천혈신이었다는 게 참 믿기지 않았다.
‘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이신 거야’
시간이 갈수록 혼란스러운 건 이준이었지만.
‘나랑은 상관없으니까 괜찮으려나?’
단순하긴 무극자나 이준이나 도긴개긴이었다.
* * *
이주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3초식에 이어 4, 5초식까지 얻은 괴개는 백사편법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일주일간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 괴개.
그도 다시 지옥의 초식 훈련에 참가했다.
그는 백사편법 덕에 일주일을 단체 초식 훈련에서 빠졌다.
반면 검제와 무극대는 어떤가.
무려 이 주일을 지옥의 초식 훈련만 했다.
그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주구우운! 초식 훈련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봉팔 형님. 조용히 하시오. 그러다 가주께서 헤까닥 돌아서 이것보다 힘든 수련을 시키면 어쩌려고 그러오.”
김봉팔이 흠칫했다.
이 지옥의 초식 훈련보다 더 힘든 수련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몸을 떨었다.
악마 같은 이준이라면 충분히 더 힘든 수련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불만이 많은 것 같네.”
“아, 아닙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좋아. 봉팔이의 뜻에 따라서 다른 훈련으로 바꾸자.”
이준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는 게 무극대의 눈에 잡혔다.
사형준의 눈썹도 꿈틀거렸다.
그의 눈은 김봉팔을 향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형준마저 진저리치게 만든 지옥의 초식 훈련.
그래도 묵묵히 참고 견뎠는데, 이준의 저 미소를 보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은 그였다.
저 말아 올려진 입꼬리는 분명 자신들을 골탕 먹이려는 미소였으니까.
[저놈은 항상 제 무덤을 파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발전이 없어요. 덕분에 재밌어지겠네요.’
[저놈 아니어도 어차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 아니었느냐.]
‘그렇긴 해요. 흐흐.’
[참 못됐구나.]
‘다 사부님한테 배워서 말이죠.’
이준은 사부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는 사부와 이야기를 그만하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 수련으로 넘어갈게요. 다들 절 봐주세요.”
“저, 정말 괜찮습니다. 초식 훈련을 계속 하셔도 되는데….”
주변에서 쏘아지는 시선 때문에 김봉팔이 이준을 만류했지만, 그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초식 훈련과 똑같은 수련이라 생각하시면 편하십니다.”
이준은 손수 시범을 보였다.
팟-
이준의 신형이 공중으로 떴다.
“X발! 저걸 어떻게 해?”
김봉팔은 이준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을 해버렸다.
이준이 한 행동은 중력을 거스르는 일.
허공에 뜬 신형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잡힌 거다.
이준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몸을 내공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아.”
“주, 죽었다….”
“봉팔이 형님 때문에 돌아버리겠네.”
탓-
무극대가 투덜거리는 사이 이준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어때요? 쉽죠?”
“창제께 묻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하세요.”
“이 훈련은 어디에 도움이 되는 것이오?”
“앞서 했던 훈련이 초식 수련이었다면 이건 보법과 신법 훈련이에요.”
“그렇군. 보법을 천천히 시전하면 되겠소?”
“보법을 시전하되 두 발을 땅에 안 닿게끔, 허공이 땅이다 생각하고 하세요.”
“어려운 수련이지만 하겠소이다.”
무극대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을 대신해 검제가 한 소리 할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했다.
“초식 훈련은 도움 되셨죠?”
“물론이오. 처음에는 창제의 수련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소. 내공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 같고.”
“게으름 안 피우고 열심히 하셨나보네요.”
“큼큼. 내 지금까지 게으름이란 단어는 들어보지 못했소이다.”
검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냥 힘든 수련이 아닌, 초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훈련.
거기다 내공을 얼마나 잘 조절하고 분배하는 걸 겸했다.
더해서 체력과 인내심까지.
지옥의 초식 훈련이 얼마나 많은 걸 얻게 해주는지 새삼 깨달았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전 가솔을 모아 이 훈련을 하게 해야겠어.’
‘춘식이 이놈. 창제의 훈련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은 것 같은데 가문에 가면 분명 모든 인원을 불러 모아 똑같은 훈련을 시키겠지? 나도 질 수 없다.’
괴개도 검제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이 훈련은 미친 듯 힘들지만,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다.
창제가 가르친 대로 수련을 안 하는 게 멍청한 짓이었다.
괴개와 검제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모두 각자 알고 있는 보법을 펼치세요. 땅에 닿으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봉팔아. 네가 원하는 다른 훈련이다. 재밌을 거야.”
그가 으름장을 놓자 모두가 훈련을 시작했다.
김봉팔의 표정은 아예 죽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