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5화
“크응…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입 좀 닥치거라 심호야. 말하기도 힘들다.”
괴개와 검제는 낙성각 연무장을 내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손목과 발목에 차여진 철환.
무게가 거의 1톤에 육박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게를 지며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내공은 일절 사용하지 않은 채 온전히 순수한 힘으로만 달렸다.
무려 일주일째 말이다.
“첨단 체력 단련실을 놔두고 이 무슨 원시적인 방법인지.”
괴개는 입을 쉬지 않고 놀렸다.
불알친구인 검제와 함께 수련한다는 사실이 그가 떠드는 것에 한몫했다.
“정신없으니 좀 닥치란 말이다!”
괴개뿐만이 아니라 검제도 이게 맞나 싶었다.
한 달이라는 중요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일주일 동안 기초 체력 단련만 하고 있으니.
이준의 수련에 의심이 생겼다.
자신들의 경지는 S급이다.
무림의 경지로는 화경.
기초 체력 훈련을 하기보다는 깨달음이 필요할 때였다.
한데 예상과는 정반대로 이준은 기초 체력 훈련만 시켰다.
“네가 포기하지 않고 해서 나도 계속한다만 후욱… 정말 모르겠다 후욱….”
검제는 괴개의 말을 무시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수련법이 맞길 바랄 뿐이었다.
“헤엑헤엑… 1톤이라니! 주군은 우릴 죽일 셈인 거야?”
검제와 괴개의 뒤를 따르는 이들.
무극대도 같은 상황이었다.
부대주인 김봉팔이 비틀거렸다.
거친 호흡에 하옇게 뜬 얼굴.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가, 강도가 허억… 더 높아진 것 같소.”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습… 하악… 니까….”
“요번 훈련은 후욱…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무극대의 말을 들은 괴개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창제는 원래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느냐?”
“그, 그럼요 허억…. 그런데 좀 강도가 지나친 것 같기도 합 허억… 니다.”
“신력권가에는 첨단 체력 단련실이 없어?”
“있습죠.”
“헌데?”
“헤엑… 훈련을 시키는 사람 헤억…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첨단 장비도 있는데 굳이 원시적인 방법을 택할까.
달리면서도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한편 이준은 파라솔 아래에 앉아 흐뭇해했다.
연무장을 달리고 있는 이들이 아닌, 홀로그램 때문.
[박춘식의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박춘식의 정신력이 +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정심호의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정심호의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
......
[사형준의 정신력이 +1 상승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포인트가 쭉쭉 오르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검제와 괴개, 무극대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활력탕을 먹이고 체력을 채웠다.
그리고 기초 체력 훈련을 시작.
체력의 한계 지점에 도달하면 활력탕을 마시게 하고 다시 훈련을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은 정확히 두 시간.
그 이외에는 전부 훈련에 할애했다.
“어째 검제 님과 괴개 님이 무극대보다 더 능력치가 잘 오르냐.”
[기초 단련을 등한시했을 것이니라.]
“S등급인 화경에 오른 사람들인데 그게 가능해요?”
[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기억하죠.”
[그때 사부가 뭐라고 했느냐.]
“너무 많아서 어떤 걸로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곳의 각성자와 무림인들의 수준 말이다.]
“아, 각성자들이 스킬에만 의존해서 무림인보다 경험이나, 임기응변이 부족하다고 하셨죠?”
[그래. 저놈들은 뛰어난 재능과 무공을 가지고 있어서 화경에 오른 것이다. 애초에 강한데 기초 훈련을 할 생각을 하겠느냐. 그 시간에 무기나 더 휘둘렀을 테지.]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극자 사부가 처음 자신을 가르쳤을 때도 기초 훈련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 어떤 훈련보다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성자 시스템은 밑바탕이 없어도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고 있어. 무림과는 완전히 달라. 그 때문에 저놈들이 순탄히 S급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니라.]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일반인과 다른 초월적인 힘을 가진 게 바로 각성자였다.
“사부님이 말씀하시는 부분만 채워 주면 등급은 알아서 상승하겠네요.”
[상승은 하겠지. 네가 원하는 강함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이준은 검제와 괴개가 적어도 S급 끝자락에는 도달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야지만 남은 십선을 상대로 큰 성과를 낼 거니까.
그는 이번 대장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바랐다.
그래야지만 지주 측 인원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다.
“제가 원하는 경지까지 도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네가 가장 잘하는 것 있지 않느냐. 그것대로 하면 되느니라.]
“굴리는 거요?”
[한번 지독하게 굴려 보거라. 사부가 첨언하자면 저 기초 훈련보다 지독히도 힘든 게 있느니라.]
“뭔데요?”
[그건 말이다….]
이준은 무극자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번뜩이는 혜안을 들은 사람 같달까.
이준은 무극자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연무장을 향해 악마처럼 웃었다.
* * *
세상에서 제일 힘든 훈련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훈련은 바로 초식 수련이다.
일반적으로 초식을 펼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느리고 천천히.
그렇다고 아예 초식이 안 이어지게 펼치는 것도 안 됐다.
“미, 미친! 움직일 때마다 손이 떨려서 초식의 경로를 벗어나고 있어.”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가주께 들키면 안 됩니…다….”
“현이는 다시 패권을 펼치도록.”
“예!?”
“되물었으니 열 번 반복 추가.”
“헉!”
무극대의 막내, 현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패권의 초식을 한번 펼치는 데만 족히 30분은 걸린다.
이것도 대충 넘어갔을 때의 이야기.
이준이 원하는 속도와 정확성을 선보이려면 패권을 펼치는 데 2시간은 걸렸다.
그런데 이걸 열 번이나 더 하란다.
기초 체력 훈련 때는 잠이라도 재웠지.
지금은 아예 잠을 안 재울 생각이었다.
“X팔. 난 절대 열 번 못 해.”
“한 번으로 끝낸다!”
무극대는 떨리는 손끝을 부여잡고 패권을 펼쳤다.
아주 정성껏.
온 신경을 주먹에 집중했다.
“이, 이게 바로 창제의 수련법이었군.”
검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검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자로 내리긋는 데만 한 세월.
일 톤짜리 철환을 차고 뛰는 것보다 이 일검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벗어나는 경로.
50년 가까이 사용했던 초식은 펼칠 때마다 경로가 미세하게 달랐다.
이 수련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정확성.
같은 초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펼치느냐였다.
더해서 집중력과 체력 상승은 덤이었다.
“검제 님과 괴개 님도 예외는 없습니다. 제가 두 분의 무공을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아주 크게 다칠 겁니다.”
괴개가 뜨끔했다.
그가 펼치는 건 백사편법.
굉폭뢰와 더불어 가문에서 복원한 무공 중 하나였다.
수십 년 동안 처박혀서 이제야 빛을 보는 편법이었다.
이준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 초식까지 알고 있을까.
하나 그건 괴개의 오산이었다.
“괴개께서 사용하시는 무공은 백사편법으로 만류귀원신공의 단짝이라 불린 무공입니다. 독사가 아가리를 벌려 먹이를 향해 순식간에 접근할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졌지요. 하지만 백사편법은 쾌보다 변에 중점을 뒀습니다. 1식 독연편, 2식 사룡, 3식 백회연, 4식 화접참, 5식 천독열. 다섯 초식 중 천독열이 펼쳐져야지만 독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다고 하지요?”
이준의 곁에는 고금제일인인 무극자가 있었다.
그의 머리는 무공의 보고.
그가 알지 못하는 무공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어, 어떻게 아셨소.”
“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준은 빙그레 웃을 뿐 괴개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괴개께서는 1, 2식인 독연편과 사룡 밖에 쓰지 못하고 계시네요.”
“부끄럽지만 완전한 복원은 하지 못했소.”
“그 무공 제가 완전한 모습을 찾아드릴게요.”
“서, 설마 창제가 백사편법의 무공서를 가지고 있으시오?”
“그건 아니지만 더 완벽한 걸 알고 있어서요.”
이준의 말에 괴개가 동요했다.
만독암가의 최후 무공이라 알려진건 만천화우였다.
하지만 괴개는 이 백사편법이야말로 만독암가의 최고 무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무공을 완전히 복원해 준다는데 동요가 안 생길까.
괴개는 펼치던 초식을 멈췄다.
집중하고 있던 검제와 무극대도 초식을 중단하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자 이준이 모두를 향해 씩 웃었다.
“자, 전부 동작을 멈췄으니 처음부터 초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 번 추가.”
“악!”
“안, 돼!”
“이러다 죽을… 거야….”
모두가 절망에 빠진 표정을 하고 있을 때 괴개만이 흥분 가득한 얼굴을 했다.
“창제가 정말 백사편법을 완성해 준다면 내가 그 어떤 것도 다 드리겠소.”
S급 무공은 가치로 따지면 몇천억은 훌쩍 넘는다.
하나의 기업을 사고도 남을 만한 보물.
그런 무공을 완성시켜 준다 하니 흥분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래요? 그 어떤 부탁도 괜찮나요
?”
“백사편법만 완성시킬 수 있다면 내 목숨도 내어 드리겠소.”
괴개의 눈은 진심으로 가득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이준은 속에 담아 뒀던 말을 했다.
“괴개님 둘째 손녀 있죠.”
“예은이 말이오?”
“네.”
“사귀고 있는 사람 있는 거 아세요?”
“모르오. 우리 예은이가 남자를 사귄단 말이외까!”
괴개는 전보다 더 흥분했다.
그가 제일 아끼는 손녀 중 하나가 정예은이었으니까.
“흥분하지 마시고요. 그 사귀고 있는 애를 제가 잘 알거든요.”
“누구요. 내 흥분 안 할 터이니 말씀해 보시오.”
“같은 1학년인데 허수라고 들어 보셨을까요?”
“허수? 아, 이번에 광마도란 이명을 얻은 아이 말이오? 그 녀석이 우리 예은이의 짝지란 말이외까?”
재차 흥분한 괴개였다.
차세대 유망주의 이름을 들어도 그에겐 성에 차지 않았다.
정예은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였으니까.
“네. 맞아요. 그 애 좀 좋게 봐주세요. 괴개 님의 눈에는 안 차시겠지만 괜찮은 놈이거든요.”
[훈련하다 말고 중매서는 것이냐? 제자는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착한 건지, 성격이 통통 튀는 건지, 행동이 참 즉흥적이구나.]
‘사부님? 사부님이 말씀하시기에 좀 찔리지 않으십니까.’
[사부가 말이냐? 금시초문이구나.]
무극자는 시치미를 뚝 뗐다.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이준은 말을 이어갔다.
“제가 형제처럼 아끼는 동생이에요. 제 등을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이죠.”
“가주님! 저도 수처럼 가주님을 보좌할 수 있어요!”
김봉팔이 손을 흔들며 자신을 어필했다.
“쉬고 있어? 넌 10회 더 추가.”
“엑!? 너무합니다!”
김봉팔의 행동에 무극대가 웃었다.
“인성이나 실력은 괴개 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곧 오왕의 자리도 노려볼 만한 아이예요.”
17살에 오왕의 자리를 노려볼 만한 건 재능충에 가까웠다.
검제도 17살에는 A급밖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이준이 가르친 덕도 있지만 17살의 나이에 AA급이 된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창제가 그리 말한다면 알겠소. 내 허수란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리다. 예은이를 지킬 정도의 능력을 보유했다면 우리 만독암가로썬 손해가 아니지.”
각 가문의 자식은 거의 정략결혼 대상이었다.
강한 가문일수록 이 현상은 뚜렷했다.
오대가문 중 한 곳인 만독암가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거면 됩니다.”
좋아하는 여자로 인해 무리를 한 허수.
녀석의 성격이라면 정예은이 위험에 처하거나 난처한 상황에 빠져들었을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놈이다.
그 때문에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만독암가라는 울타리가 녀석을 보호해 준다면 크게 무리하진 않을 테다.
괴개의 승낙이 떨어지자 마음이 편해진 이준이었다.
“그러면 무공 복원을 해 볼까요? 불완전한 무공서 가지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