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화
전륜마멸진은 현존하는 최고의 진법이다.
왜?
고금제일인인 무극자의 이론이 들어갔으니까.
[전륜마멸진을 펼쳤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두배로 상승합니다.]
[살상력이 100% 증가했습니다.]
괴개를 상대하게 된 사형준은 무극대를 향해 외쳤다.
“주 속성은 금, 부 속성은 목으로 한다.”
그러자 무극대의 발밑에 펼쳐진 진이 노란색으로 빛나며 그들의 홀로그램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 속성을 ‘금’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속성이 금속성으로 전환됩니다.]
[부 속성을 ‘목’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금속성 공격력 +250%]
[수속성 저항력 –100%]
[목속성 공격력 +100%]
[화속성 저항력 –50%]
무극대의 기세가 다시 한 번 변하자 괴개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치겠구나. 굉폭뢰도 꺼낼 수 없고, 원.”
무극대가 펼치는 진법을 부수려면 폭우이화정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굉폭뢰는 되어야 무극대를 뒤흔들 판.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굉폭뢰 마음껏 쓰셔도 돼요.”
“이들이 다칠지 모르오.”
“제가 다 책임질 테니 괴개께서는 무극대를 쓰러트리는 것만 신경 써 주세요.”
“죽어도 내 탓하지 마시오.”
괴개가 엄지손가락만 한 구슬을 꺼냈다.
폭우이화정과 같은 크기였다.
기존 굉폭뢰보다는 훨씬 작았다.
검은색 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괴개가 만류귀원신공을 꺼냈다.
만류귀원신공은 사천당가의 무공을 계승한 만독암가의 S급 신공이었다.
“하앗!”
괴개가 기합성과 함께 손에 끼워진 굉폭뢰를 집어 던졌다.
괴개의 손을 떠난 열 개의 구슬이 허공에서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고작 열 개의 암기로 시작된 폭풍.
만천화우의 수법이었다.
구슬이 전륜마멸진을 펼치는 무극대를 강타했다.
공기며 사람이며 부딪히는 모든 걸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한 기운을 뿜어 대는 구슬.
‘너무 힘을 줬나?’
괴개는 만천화우를 사용해 놓고 막상 너무 힘을 준 게 아닌가 싶었다. 하나 그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사형준과 무극대의 손에 맺힌 강맹한 기류들.
붉은 기운이 응집되어 굉폭뢰를 향해 부딪혀 갔다.
퍼벙펑펑!
곧이어 들려오는 폭음소리.
굉폭뢰와 장력이 충돌해 터지는 굉음이었다.
무극대는 굉폭뢰가 터지면서 남긴 충격을 호신강기로 막았다.
팟-
연기가 나서 시야가 가려진 상황.
그럼에도 그들은 괴개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괴개는 암기만 잘 사용하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독장인 비사장도 잘 구사했다.
우웅!
괴개의 손에 초록색 기운이 뭉쳐지자 바로 무극대를 향해 뿌렸다.
펑펑-
벽력신장과 비사장의 충돌에 의해 주변은 불바다가 되었다.
벽력신장이 가진 속성은 불.
그에 반해 비사장은 독이었다.
두 개가 충돌하면 폭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이 폭발 속에 멀쩡히 살아남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괴개와 무극대가 어디 일반인인가.
그들은 불바다를 뚫고 충돌을 반복했다.
얼핏 보면 용호상박.
누구 하나 밀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물론 외부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괴개는 현재 죽을 맛이었다.
‘이 진법이 무엇이기에 날 이리 몰아세운단 말이냐.’
칠십 평생 보지 못했던 진법이다.
진법의 대가라 불리는 신기지가에도 이런 괴이한 진은 없었다.
동귀어진과 같은 폭발적인 공격력.
그렇다면 방어는 어떤가.
모든 걸 도외시하고 공격력에 올인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진을 이루는 이들이 서로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었으니.
진을 뚫는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러다 내가 먼저 당하겠어. 제일 약한 놈부터 노려야 한다.’
괴개는 사형준을 아예 빼고, 허점으로 삼을 만한 무극대원을 찾아 쇄도했다.
* * *
“꺄아아아!”
“사, 살려 줘….”
“악마들!”
“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인주는 그들의 앞에 미소를 지은 채 그저 바라보는 중이었다.
“제물은 얼마나 있지?”
“차고 넘쳐요.”
당소미의 말에 인주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후후. 우리가 살던 시대에도 필요 없는 목숨은 무수히도 많았지.”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성도의 낙산대불.
그들은 잡아 온 사람들을 죽여 강에 밀어 넣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어갈수록 낙산대불에 그려진 진법은 빨갛게 빛이 났다.
“오랑캐 땅에 펼칠 역천진은 준비해 뒀지?”
“네. 이 낙산대불과 연결되게끔 갖춰 놨어요.”
“잘했다. 창제를 만나기 전에 역천진이 색을 갖추게 만들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차고 넘치는 게 제물들이니까요.”
인주는 흐뭇해했다.
“오랑캐 땅을 피로 물들이면 둘째 사형 측 인원들은 전부 소환할 수 있겠군.”
“한국이 생각보다 강한 힘을 보유해서 가능할 거예요.”
“빨리 소환 안 했다고 뭐라 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소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주군.”
“말해.”
“한국 쪽에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뭐라더냐. 무릎을 꿇는다더냐?”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그림자가 우물쭈물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 안 왔나 보군.”
“그렇…습니다.”
“뭐라고 연락이 왔느냐.”
“한국 측에서 저희 쪽과 대장… 전을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대장전?”
“예….”
대장전이란 말에 당소미와 그림자가 인주의 눈치를 봤다.
이건 명백한 한국 측의 도발이었다.
“크하하하!”
인주가 떠나가라 웃었다.
그 웃음엔 같잖다는 느낌이 물씬 묻어 나왔다.
웃음이 뚝 끊기고 한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손해 보는 제안을 해 왔구나.”
“하시면 안 돼요.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주의 옆을 보좌했던 당소미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성격이 폭급한 데다 오만하기까지 했다.
파천혈신의 막내 제자.
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굽어보기에 충분했다.
위에 두 명의 사형에게 기가 눌려서 그렇지.
그들을 제외하곤 인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기에 당소미는 급히 인주를 말렸다.
오만한 성격 때문에 적의 도발을 알고도 넘어가 줄 테니까.
“대장전을 받아 주겠다고 전해라.”
“인주!”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였다.
인주의 오만한 성격이 발동한 거다.
“소미야.”
“네. 인주.”
“적이 도발했다고 도망치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저희에겐 임무가….”
“임무는 어떻게든 달성할 생각이다. 거기에 날 도발한 놈들까지 전부 죽여놓을 테다. 그러니 더 이상 이 일로 왈가왈부하지 말아라.”
“예….”
당소미는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 인주의 자존심을 더 긁었다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이곳은 우리가 잘 아는 무림이 아니다. 저 서양은 우리와 달리 마법을 쓴다고 하지 않았더냐.”
“맞아요.”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일만 벌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오히려 대장전으로 명분을 취하는 게 우리 입장에선 좋아.”
인주는 서양의 마법을 경계하긴 했으나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래 봤자 무공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명분이라는 건 타국이 전쟁에 끼어드는 걸 막는 조치에 불과했다.
“오랑캐에게 제안을 승낙하겠다고 해.”
“그리고 꼭 전해 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대장전에 나갈 검제와 괴개의 부상이 심각하지만, 저희를 상대로는 이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하니, 날짜는 저희 쪽에서 정하랍니다.”
“크크. 죽으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인주의 웃음에는 살기가 넘실댔다.
심사가 제대로 꼬인 거다.
“정확히 한 달을 기다려 주겠다. 그때까지 부상을 완치하고 최상의 상태로 싸움에 임해야 할 거라고 전해. 내 성에 안 차면 그 작은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야.”
“존명!”
그림자가 사라졌다.
인주는 낙산대불 밑에 있는 강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인내심은 딱 한 달이다. 그때까지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모두의 심장을 도려내 주지.”
인주의 오만으로 많은 시간이 한국에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앞당겨질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이준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엄청나게 길었으니까.
* * *
“허억… 허억… 말년에 이게 무슨 망신… 허억 인지….”
괴개가 털썩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토했다.
김봉팔이 이끄는 무극대를 상대하던 검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찌 이리 강력한… 후욱… 진법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은 무극대를 직접 겪어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진법을 이루는 각성자 중 약한 이들을 찾아 공격할 때마다 어김없이 사형준과 김봉팔이 나타나 번번이 막혔다.
한두 번 맞춰 본 솜씨가 아니었다.
“창제가 자신만만 할 만해.”
“다른 놈들이 안 봐서 다행이야. 안 그러냐 춘식아.”
“후우우. 말할 힘도 없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을 향해 이준이 다가왔다.
“어땠습니까?”
“죽을 맛이었소.”
“대체 이 진법의 이름이 뭐요?”
“전륜마멸진입니다.”
“전륜마멸진?”
“이름 한번 살벌하군.”
두 사람의 상식 속에 전륜마멸진은 없었다.
아니, 검제의 머리에 딱 하나가 있긴 하나 이름이 조금 달랐다.
“혹, 천강마멸진과 관계가 있는 진법이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천강마멸진과 전륜살상진을 분해해서 만들었거든요.”
“허, 허허.”
검제가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이준을 봤다.
천강마멸진은 신기학사 한지웅이 만들다가 포기한 진법이었다.
이전에 미완성된 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청난 힘을 느꼈었다.
그러나 미완성된 진법은 존재하나 마나였다.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진법이기에 기억에서 지웠는데, 다른 진법과 합쳐 놨다니.
이준을 괴물 같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법까지 손댔다고 하니 너무도 놀라웠다.
“창제의 끝은 어디요? 지금까지 보여 준 게 오 할도 안 되는 거 아니오?”
검제의 극찬에 이준이 빙그레 웃었다.
겸손 또한 떨지 않았다.
“저도 모르겠네요. 제 능력의 한계를.”
사실 이준이 한 건 무극자 사부의 말을 따라 한 것뿐이었다.
천강마멸진과 전륜살상진을 합친 건 자신이긴 하나 이론은 전부 사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니까.
[홀홀. 당연하지. 누구의 제자인데. 이 무극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건 후세에 길이 남을 일이니라.]
검제와 괴개의 놀람에 도리어 무극자 사부의 어깨가 올라갔다.
제자가 들은 칭찬은 그 사부에게도 해당했으니.
이준이 클수록 무극자의 위상은 당연히 올라갈 터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세상에 무극자란 이명이 알려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훈련이 끝난 걸 보니 시간을 맞춰서 잘 온 모양입니다.”
이의태의 손에 약재가 한가득이었다.
그의 뒤로 동의각 인원들이 약그릇을 들고 왔다.
“모두 나눠 주세요.”
“약이오?”
“네. 몸이 산뜻해지는 약이니 어서 드세요.”
검제의 물음에 이준이 음흉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약은 이의태가 개발한 활력탕으로 마시면 훈련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해 준다.
기력, 활력, 내공력을 모두 회복시켜 주는 특제 탕약.
신력권가의 인원만 먹을 수 있는 보약이었다.
“독이 든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찜찜한지.”
괴개는 이준의 음흉한 표정을 보고 탕을 먹는 걸 주저했지만 이내 쭉 들이켰다.
탕이… 달달 했다.
여태 먹었던 보약 중에 이런 단 맛을 내는 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효과도 금방 나타났다.
“어?”
“내공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어.”
“훈련하기 전의 체력으로 돌아갔지요?”
“허. 이런 약이 있다니! 우리 철혈검가에 납품하지 않겠소?”
“신의께서 손수 달이시고 재료도 아주 귀한 걸 써서 가격이 꽤 됩니다. 그리고 인맥 DC도 안 돼요.”
이준이 약을 팔기 시작했다.
활력탕이 좋은 건 이의태의 배합 솜씨 덕분.
요정의 꿀이 들어가나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하등급 재료였다.
기타 재료도 흔해서 이준이 말한 것처럼 값이 나가진 않았다.
“얼마든 좋소. 이것만 있으면 쉬지 않고 무공 수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검제의 말에 이의태가 기겁한 표정을 했다.
“혀, 형님.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니오.”
“동생. 내 말이 틀렸는가?”
“그게 말이오….”
이의태는 왜 자신이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 설명하려고 할 때였다.
띠리링-
이준의 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끊었다.
“아주 좋은 소식이 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중국 쪽에서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저희에게 준답니다. 그때 동안 부상을 완벽히 치료하라네요.”
검제와 괴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은 시간은 한 달.
두 사람은 이때 동안 수련을 강도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무극대는 달랐다.
“아, 죽었다.”
“잠도 못 자고 지옥이 펼쳐지겠구나.”
“보충된 대원들은 그냥 뒤졌다고 해야지.”
“하. 그냥 귀농이나 할까.”
“젠장.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네.”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지옥 훈련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