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화
이준과 무극대는 서울숲을 나와 서울 전역을 누볐다.
소림과 무당의 주축이 무너지니 전보다 빠르게 적들을 소탕할 수 있었다.
적들은 사람을 찾아 죽이려 했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없어!?”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거야!”
“미리 알고 도망친 건가?”
천외천은 죽기 전,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 땅을 밟고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들을 단 한 명도 죽일 수 없었다.
이준에 의해 모두 다 쉘터로 숨었으니까.
“젠, 컥!”
무승의 등에 창이 꽂혔다.
천외천의 앞에 나타난 이준이 등에 박힌 창을 뽑아 휘두르자.
“억!”
“악!”
주변에 있던 천외천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더럽게도 많네.”
“주군! 이쪽은 다 처리했습니다.”
“강남쪽으로 이동하자.”
“예.”
서울 숲 인근에 있던 천외천과 몬스터를 모두 처리한 이준과 무극대가 강남으로 움직였다.
“일선과 이선이 돌발 행동을 해 줘서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끝났어. 마조가 있는 게이트로 사람들을 안 옮겨도 되겠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한지유를 비롯한 특별반 아이들의 가문은 전부 흑염의 거처로 이동시키려 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한 보금자리였다.
천외천과 같이 싸울 일선과 이선은 그만큼 위험했으니까.
또한 청룡무의를 얻을 생각도 못했을 거다.
검제와 같이 적에게 대항하기 바빴겠지.
일선과 이선이 돌발 행동을 해 줬기 때문에 일을 쉽게 끝낼 수 있었다.
“가주! 저기 앞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강남에 진입하자 몬스터들이 건물을 때려 부수는 게 보였다.
인간들이 없으니 더 흥분한 모양.
건물을 아예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죽여.”
이준의 명에 무극대가 몬스터들을 향해 쇄도했다.
한편 흑염의 거처에선 마조가 입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작은 주인한테서 연락온 거 없어?]
거대한 모습으로 위압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흑염마조가 테구르에게 물었다.
“신호를 주면 문을 열라고 하셨는데….”
[흐음.]
흑염마조가 다시 입구를 응시했다.
인간들이 온다고 한껏 깃털을 가꾼 그였다.
찬란하고 위대한 신수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건만.
기대하던 인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수의 눈만 개방했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아깝군.]
“오오, 역시 절대 신에 있는 존재답습니다요.”
테구르는 연신 허리를 꺾으며 아부를 떨었다.
[흥. 네놈만 내 지고한 위치를 알면 뭐 한단 말이냐. 인간 모두가 알아야지.]
“물론입습죠. 곧 흑염의 위대함을 모두가 알게 될겁니다요.”
흑염마조는 테구르의 아부가 성에 차지 않았다.
빨리 저 닫힌 입구가 열려 사람들이 쏟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작은 주인의 일 처리는 정말 답답하군. 이래서 본좌가 옆에 있었어야 하건만 쯧.]
흑염마조는 이준을 욕하며 깃털을 다듬었다.
언제 저 문이 열릴지 모르는 상황.
사신수의 위엄을 곧바로 보이기 위해선 몸을 단정히 해야 했다.
[하루만 더 기다려 주지.]
인내심이 썩 좋지 않은 흑염마조였으나 참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사신수인 그조차도 몰랐다.
저 입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이나 더 늦게 열릴 거란 사실을.
* * *
서울에서 몬스터 소탕을 한 지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이준과 검제, 괴개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다른 이들이었다면 대항도 못하고 지옥도가 펼쳐졌을 터.
그들이라 이만큼 수습을 한 것이다.
“몬스터도 전부 소탕한 듯싶네요.”
무사고 정문 안쪽에 쳐진 간이 천막에서 이준이 지도에 X 표시를 하며 말했다.
서울을 나타내는 지도에는 X표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고생 많았소이다.”
“네. 제가 봐도 고생 많이 한 것 같아요.”
검제의 말에도 이준은 겸손을 떨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제일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니까.
“허, 이제 다 끝난 거요?”
반말하던 괴개 또한 이준에게 말을 높혔다.
창제가 없었다면 이번 싸움은 더욱더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있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
천외천의 무력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소름이 끼칠 지경.
그 많은 이들이 전부 다 AA급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괴개가 안도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끝났다고 볼 수 없어요.”
“2차 침입이 또 있단 말이오?”
괴개의 눈이 커지면서 되물었다.
자신들이 소탕한 건 엄연히 1차 침입.
만약 2차 침입이 있다면 1차보다 더 강한 자들이 오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한 괴개였다.
“위험한 인물인 일선과 이선을 죽였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이 있어요. 그리고… 저들이 섬기는 인주란 사람도 남아 있고요. 일선과 이선이 죽었다는 걸 알면 이제 마지막 보스가 움직이지 않을까요?”
과거 인주의 성격을 보면 백 프로 움직일 게 뻔했다.
인주는 이선과 마찬가지로 폭급했으니까.
일선과 이선의 죽음에 격분할 것이다.
사흉수를 얻었다면 자신과 함께 한국을 쓸어버리려 할 터.
진짜 전쟁은 인주가 한국 땅을 밟을 때부터였다.
“첩첩산중이구먼.”
“살아생전 내 자신이 무력하다 느낀 건 처음이다.”
검제와 괴개가 중얼거렸다.
그들의 등급은 S급.
타국을 가도 국빈급의 대우를 받는 무력을 지닌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천외천을 상대하다 보니, 자신들이 C급에 있는 것만 같았다.
각성자 등급에서 C급은 어정쩡한 포지션이었다.
강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약하지도 않은 느낌.
딱, 이도 저도 아닌 등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도 창제의 아래에서 배워야 하나?”
“그게 무슨 말이냐, 춘식아.”
괴개가 뜨악한 표정으로 검제에게 말했다.
“지금 이대로 더 강한 자들을 상대하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괴개가 이준을 향해 곁눈질했다.
일주일 전에 겪었던 이준의 성격.
어른이라도 빼는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관철시켰다.
그런 자의 밑에서 수련을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괴개는 검제의 말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 그렇게 넘어가기엔 뭔가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듣기론 창제의 밑에서 배운 아이들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데… 춘식이가 창제에게 수련받으면 나보다 강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가문에만 처박혀서 수련한 세월만 어언 20년.
드디어 검제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다시 따라 따라잡히면 뒷목잡고 쓰러질 것이다.
‘절대 그럴 순 없어!’
절치부심해 겨우 오른 S급이다.
소문이 맞다면 창제는 가르치는 것에 도가 튼 선생.
그 옛날 대치동의 유명한 1타 강사였다.
‘강해지면 그까짓 체면… 버릴 수 있지. 절대 춘식이 놈한테는 밀리지 않겠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검제의 밑에 있었던 괴개였다.
그는 친구에게 다시 앞질러 갈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네가 안 한다면 나 혼자라도 부탁해 봐야겠다.”
“누가 하기 싫다냐. 그냥 생각 좀 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면 할 테냐?”
“무, 물론!”
괴개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이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준이 화들짝 놀랐다.
“제가 이상한 소릴 들은 것 같은데?”
“잘 들었소.”
“정말 제 밑에서 수련하시게요!?”
“아니 되겠소?”
“큼큼. 부탁 좀 합시다.”
“S급 각성자가 왜 제 밑에서 배워요. 그냥 홀로 수련하세요. 전 못 해요. 그리고 체통이 있으신데 철혈과 만독의 태상가주가 제게 무공을 배운다고 소문이 나 봐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준은 격렬하게 거부했다.
애들만 해도 힘들었다.
여기서 가르칠 사람을 더 늘리고 싶진 않았다.
[제자가 아직 가르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구나.]
‘제가 뭘 모르는데요?’
[너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 보지 않았느냐?]
‘그렇죠?’
[어떻더냐?]
‘똑같았는데요?’
[그놈들을 굴릴 때 어땠냐는 말이다.]
‘아.’
이준은 특별반 아이들이 아닌, 김봉팔을 굴릴 때를 떠올렸다.
무극대 전원의 고통받은 얼굴이 보이자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 상쾌함이니라.]
‘굴릴 맛이 더 나긴 했죠.’
[또한 쟤들은 S급 각성자다. 한 단계만 성장시켜 줘도 너한테 떨어지는 포인트는 어마어마할 것이니라.]
‘하긴. 정연 누나랑 혁진이가 AA급으로 올라설 때 1억에 가까운 포인트를 얻었는데 S급은 얼마나 줄까요.’
적어도 그 배가 되는 포인트를 얻게 될 것이다.
많으면 세, 네 배도 가능하겠지.
무엇보다 이건 어디까지나 경지가 올랐을 때의 이야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발전한다면 포인트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사부님 말씀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검제, 괴개란 대한민국 최고 각성자를 굴릴 맛도 있을 거고, 포인트도 얻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구미가 당겼다.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시오. 창제가 말하는 수련은 그 어떤 것도 받겠소. 기본부터 하라면 그리하리다.”
검제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강해지겠다는 의지.
박정연과 박혁진 남매와 똑같았다.
무공에 미친 귀신들.
누가 핏줄 아니랄까 봐 판박이였다.
“사안이 큰 만큼 좀 생각해 볼게요.”
“꼭 좀 부탁하겠소.”
“나도….”
괴개가 은근슬쩍 꼈다.
이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포인트를 빨아 먹을지로 가득 찼다.
* * *
그 무렵.
중국의 곤륜산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일선과 이선이 내 말을 안 들었더구나.”
“죄, 죄송합니다. 그들의 뜻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두 사람의 기운마저 끊겼어.”
“예!?”
“그게 무슨…!?”
십선들이 인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인주는 곤륜산 게이트에서 사흉수인 혼돈을 얻어 나오는 길.
그 아래에 있던 모든 인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일선과 이선의 기가 끊긴 걸로 보아, 또 이준의 짓이겠군요.”
당소미가 당돌하게 말했다.
그러자 십선들이 그녀에게 쏘아 댔다.
“당치도 않다!”
“화경의 경지를 뛰어넘지 않은 이상 그 누가 일선과 이선을 상대한단 말이냐.”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십선들은 일선과 이선이 죽어서 화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 이준의 무력에 버럭 소리친 것이다.
화경을 뛰어넘은 경지는 현경밖에 없다.
일선과 이선의 경지는 화경의 끝에 달해 있었으니까.
이쪽 등급으로는 S급 끝자락.
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인주와 같은 경지인 현경 급이 아니면 무리였다.
실제로 이준이 두 사람을 죽였다 치자.
그게 어디 보통 일이겠는가.
약관(20살)도 안된 나이에 현경에 들었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천주를 가뿐히 뛰어넘은 재능.
그야말로 악마의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때문에 부정한 것이다.
“두 분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창제밖에 없어요.”
“음….”
“누가 일선과 이선을 죽였던 건 간에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인주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들거렸다.
당소미와 십선은 그 눈을 마주하고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그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 경지에서 더 강해지실 수가 있는 거지?’
‘이젠 지주도 인주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의 눈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두려움과 환희.
인주는 자신들을 위쪽으로 인도해줄 사람이었다.
“오랑캐 땅을 폐허로 만들 것이다. 모두 전쟁에 나설 준비를 하라.”
“존명!”
천외천의 목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인주가 하얀 무복을 펄럭이면서 눈밭을 걸었다.
그 뒤를 당소미와 십선이 따랐다.
‘너희들의 복수는 내가 해 주마. 편히 눈 감아라.’
인주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일선과 이선을 죽게 만든 놈을 찾아 잘근잘근 씹어 먹으려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