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도철을 깨울 생각을 했다면 인주가 도올도 깨웠을 테지?”
“네, 네가 어떻게?”
“역시.”
도올은 사흉수 중 한 마리다.
사람의 얼굴을 가진 몬스터로 호랑이의 몸을 가지고 있다.
보통 3m의 긴 꼬리를 가졌지만 욕망이 강할수록 더 길어진다.
도올은 평화를 싫어하는 몬스터.
그 때문에 깨우기도 굉장히 쉽다.
1만 명의 목숨을 바치기만 하면 도올을 만날 수 있었다.
도철을 깨울 정도면 이미 도올은 얻은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
“너희들이 도철을 깨우러 온 걸 보아하니 인주는 도올을 이용해 곤륜산에서 혼돈을 깨우고 있으려나?”
“너 따위가 인주를 어떻게 아느냐!”
“잘 알지. 사흉수를 다 깨우면 한국부터 짓밟을 생각 아니야? 제일 먼저 신기지가 그다음 만독, 철혈. 원래의 계획이었으면 패왕과 신력, 검산을 선봉으로 세울 생각인데 그 뜻은 이루지 못했네?”
자기들이 계획한 그대로 이준이 말을 하자 삼선의 눈이 커졌다.
전부 다 맞는 말이다.
자신들이 오기 전 귀살대와 혈불, 독나찰을 시켜 미리 길을 닦아 놓으라고 했다.
일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몇달 전부터 계획이 하나씩 틀어졌고 한국에 만들어 놓은 천외천의 세력은 괴멸해 버렸다.
이 모든 게 눈앞에 있는 이준 때문.
녀석이 두각을 드러내고 음지에 숨어 있던 자신들의 세력을 걷어 냈다.
“그러면 이건 알아? 도철을 깨우는 마지막 조건을 말이야.”
“내가 가르쳐 줄 성 싶으냐!”
“너희는 강력한 뇌기만 필요로 하는 줄 알겠지. 하지만 아니야. 도철이 마지막에 원하는 건 너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의 목숨이거든.”
삼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녀가 도철을 얻고 나왔을 때는 아미파 문도는 다 죽은 상태일 테니까.
과거처럼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도철을 깨우러 온 것이다.
“너희 아미파는 인주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받은 거야.”
“아니야! 인주께서 그러실 이유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겠지.”
“이익! 네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본녀를 희롱하지 말고 빨리 죽여라.”
“그럴 생각 없다니까.”
이준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손을 타고 빠져나온 아지랑이가 삼선의 목을 감쌌다.
“너희가 아는 건 하나도 안 뱉었잖아. 내가 알고 있는 걸 확인만 했지. 안 그래?”
“크흡… 너 따위에게 가르쳐… 줄 건 없다.”
“그래? 이 여자는 아닌 것 같은데….”
손, 발이 잘린 임정이 삼선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사저….”
“사매… 저 악적에게 우리의 일을 절대 말하면… 흐윽!”
“그, 그만둬!”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 내가 다 말하겠어.”
“아… 안 돼… 사….”
과거 삼선은 도철을 깨우고 악마가 되었다.
모든 감정을 죽이고 인주만을 따랐던 그녀.
하지만 사매인 임정한테만은 온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왔던 두 사람.
친자매 같은 임정을 도철에게 제물로 바쳤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국의 각성자를 학살하면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너희 때문에 내가 사매를 도철에게 바쳤다’였다.
마치 미친년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던 그녀.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알고 있는 거다.
“틀렸어.”
이준은 오직 삼선만 노렸다.
콰직!
삼선의 무릎을 부쉈다.
“아악!”
내공으로 몸을 보호도 할 수 없으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비명에서 얼마나 아픈지 느껴졌다.
“하지 말라고 개자식아!”
“그게 아니라니깐.”
이준의 손이 움직였다.
삼선의 쇄골로 간 손에 힘을 주었다.
“끄어어억!”
손가락이 쇄골을 파고들며 뼈를 으깨 버렸다.
“사저! 흐윽… 죽어서도 널 저주할 테다.”
임정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20대의 고운 피부를 가진 사저가 아닌.
60대의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몸에선 피가 줄줄 흐르며, 하얀 뼈가 살 위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네. 더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한 번씩 고통을 주던 이준이 연속적으로 행동했다.
삼선의 몸에 있는 뼈란 뼈는 모두 아작을 냈다.
살점을 도려내고 손톱을 뽑았다.
이젠 삼선이 고통에 몸부림치지도 못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입에선 침이 흐르며 정신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차마 못 보겠는지 임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되지. 이게 다 네게 보여 주려고 하는 짓인데.”
“악마…!”
“말했잖아. 너희들한테는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어이가 없네.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싸움 아닌가?”
“너와는 하등 관계없는 일 아니냐! 검왕이 네 핏줄도 아니고!”
“내 친구의 아버지. 이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개입할 이유야. 그리고 너희로 인해 내 어머니가 죽었다. 귀살대를 다 지옥으로 보냈지만 그 뒤에 있는 너희까지 모조리 죽여야지만 내 분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거든.”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어찌 이런 강력한 살기를 지녔을까.
계속 쳐다보다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천외천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겠지?”
“어어억!”
삼선의 내공이 무극기로 빨려 들어갔다.
이젠 60대도 아닌, 70대의 피부가 됐다.
삼선의 얼굴엔 검버섯이 가득 피었고, 피부엔 주름이 가득했다.
내공으로 유지하던 젊음은 진작 깨진 상황.
삼선의 모습에 임정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제, 제가 다 말하겠습니다. 제발 사저는 그대로 놔두세요.”
손으로 싹싹 빌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손목이 잘려 나가 엎드려 고개를 숙이는 게 다였다.
“사…”
삼선이 입을 열지 못하게 무극기로 틀어막았다.
“너희의 위치는 내게 딱 그 정도야. 내가 밟으면 꿈틀거리는 벌레 말이야.”
이준의 번들거린 눈을 마주한 임정이 몸을 떨었다.
“사저… 미안해요. 사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요.”
임정이 눈물을 흘리며 삼선을 봤다.
삼선은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발버둥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무극기에 온몸이 속박된 상태였으니까.
임정은 피눈물을 머금으며 천외천이 벌이고 있는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 * *
천외천의 계획은 하나로 연결됐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
게이트 균열을 만드는 것.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을 이용해 역천진을 펼치는 게 1차 목표.
그 역천진으로 무림에 있는 지주와 천주를 이 세계로 소환하는 게 2차 목표였다.
‘지주가 넘어오지 않았다는 걸 보면 아직 시간은 있어.’
사흉수는 그 계획을 최대한 빨리 앞당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인주는 혼돈을 깨우고 그 다음에 궁기에게로 간단다.
궁기는 사흉수 중에 제일 강했다.
사신수의 청룡 같은 존재.
악을 먹이로 삼는 궁기는 굉장히 위험한 사흉수였다.
‘내가 삼선을 죽이면 인주가 바로 알아차릴 거야. 천외천과의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해야겠어.’
삼선은 인주와 령이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죽으면 곧바로 인주에 전달될 터.
사선은 몰라도 삼선이 죽으면 인주도 상당히 경계할 거다.
그가 유일하게 믿는 이들이 바로 삼선이었으니까.
‘우선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어.’
이준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도철의 입구를 봉인하는 것.
사흉수는 깨어나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것은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나 가장 좋은 몬스터였다.
천외천이랑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녀석들.
중국에 있는 사흉수는 모르나 도철만큼은 이준이 봉인할 수 있었다.
“이제… 그만 죽여 주세요…”
임정은 삶을 포기했다.
더는 고통을 받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긴 죽음보다 못한 괴로움을 느꼈으니 살고 싶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젊음을 잃는 걸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다.
막강한 내공으로 젊음을 유지했는데 한순간에 폭삭 늙었으니 얼마나 타격을 받았겠는가.
손이 잘려 검을 들지 못하는 것보다 이런 외적인 요소가 그녀의 정신을 더 크게 무너트렸다.
“약속은 지켜 줄게.”
이준은 두 사람을 들고 몸을 날렸다.
그가 경공을 펼쳐 도착한 곳은 몬스터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
“서, 설마!”
“네 생각이 맞아. 몬스터들의 먹이로 던져 줄 생각이야.”
“약속이 틀리잖아!”
“내가 직접 괴롭히지 않겠다 했지 몬스터들의 먹이로 던지지 않는다곤 말 안 했어.”
“이,이! 악마 같은 새끼.”
“그럼 안녕이다.”
이준은 정신 나간 삼선과 그녀의 사매인 임정을 몬스터들 한복판에 던져 버렸다.
인간이 날아와 바닥에 처박히자 처음에는 경계하는 녀석들.
“오, 오지 마!”
임정은 바닥을 기면서 삼선에게로 갔다.
“사저! 정신 차리세요!”
하지만 삼선은 이미 정신이 붕괴되어 임정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녀들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공포에 질려 있자.
몬스터들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악!”
가죽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맛있는 인간 고기를 먹는 듯.
몬스터들은 서로 나눠 갖겠다고 싸우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몬스터가 달려든 순간 목숨을 잃었다.
천외천을 전부 처리하자.
[마신지체와 천살성의 동화를 풉니다.]
[깨어났던 천살성이 다시 단전에 잠들었습니다.]
[경고! 내공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경고! 혼원신공을 운기하십시오.]
“허억… 허억…!”
이준이 허리를 숙이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온통 붉었던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대신 공허함에 휩싸였다.
강력한 힘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 힘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체력에 한계가 부딪힌 듯, 손이 덜덜 떨렸다.
[바로 혼원신공을 돌려야 하느니라.]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있다.
혼원신공을 돌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그래도 안전한 보험은 있어야 하기에 손을 뒤로 뻗었다.
파멸겁이 허공을 날아와 손에 들어왔다.
퍽!
파멸겁을 땅에 박아 넣은 후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혼원신공을 운용합니다.]
[혼원신공이 내공을 안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불안정한 내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호흡도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천살성을 너무 오래 유지했느니라.]
‘그런것… 같아요.’
[더 유지했더라면 사단이 일어났을 게야. 앞으로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거라.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명심할게요.’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천살성을 깨우는 것에 동의한 사부였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걱정을 한듯 싶었다.
목소리에 안도가 깃들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때였다.
[사흉수 도철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사흉수 도철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도철이 말을 걸어왔다.
[마음에 드는 인간을 발견했군. 네 마음에 탐욕이 들어 있다. 어떠냐 나와 함께 가지 않을 테냐? 내가 그 감춰진 탐욕을 충족시켜 주겠다.]
들려오는 도철의 음성에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왜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는지 모르지만 필요 없다.
자신에겐 사신수인 주작이 있었으니까.
사흉수 중 한 마리인 도철 따위의 유혹에 넘어갈 정도로 정신력이 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