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화
“이 사부님이 정말….”
이준이 버럭 소리치려다가 참았다.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가 무극자 사부의 호통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퀘스트를 띄웠다.
[서브 퀘스트 - 천룡의 무복을 입을 자격]
난이도: S
설명: 천룡무의는 말 그대로 사신수 중 청룡의 힘이 깃든 물건입니다. 또한 혼원문의 4대 기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혼원문의 후인에게 전해주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동쪽을 관장하는 청룡은 당신이 청룡무의를 입을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합니다.
완료 조건: 1. 성화의 반쪽 격파, 2. 태양지체 or 마신지체, 3. 혼원신공 8성 개방 4. 위 세 가지 동시 조건 달성
보상: 청룡무의가 봉인된 장소
“혼원반지는 현무, 청룡무의는 청룡이면… 파멸겁은… 주작과 백호 중에 하나인가?”
[홀홀홀.]
무극자 사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부정을 안 하는 걸 보니 맞는 듯했다.
파멸겁의 파괴력과 특성을 볼 땐 백호의 힘보단 주작의 힘이 깃들었다고 하는 게 맞았다.
사신수의 물건을 가졌던 무극자.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정말 사부님의 정체가 뭐예요? 파천혈신 말고도 다른 이명 있는 거 아니에요?”
[홀홀. 고수는 제 입으로 올려치는 짓은 안 하느니라.]
거짓말.
여태껏 자기 입으로 자랑한 게 얼만데 저러는지.
입에 침이나 바르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신선계에 못 갔다고 얼핏 들었는데 정말 마신 같은 나쁜 놈 아니었죠?”
[가아아아알!]
신선계의 이야기를 꺼내자 곧바로 호통을 치는 무극자 사부였다.
귀가 떨어질 것같이 아팠다.
정신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부의 호통에 아찔했다.
“악! 왜요!”
[이 사부가 말하지 않았느냐! 신선계에 못 올라간 게 아니고 그 빌어먹을 도사 새끼들이 내가 무서워 거부한 것이다! 이 육시랄놈들.]
얼마나 억울한지 사부의 분노가 자신에게까지 전해졌다.
음성이 간혹 떨리기까지 했다.
‘신선계 얘기는 꺼내면 안 되겠다. 내가 골로 가겠네.’
이준은 속으로 다신 신선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사부님 같은 사람한테 왜 사신수가 힘을 줘요? 그것도 물건에까지?”
[상당히 거슬리는 말투구나. 제자야. 사부가 어때서 고딴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겠구나.]
“제 말은 인간에게 수호신 같은 존재가 사신수인데 사부님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 파멸겁 같은 마병에 힘을 부여해 줬냐 이 말이죠.”
[이 사부가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절대자라 그런 것이니라.]
언제는 자기 입으로 올려치는 짓은 안 한다면서.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가르쳐 줄 생각이 없는 모양.
물어보는 걸 포기했다.
대신 퀘스트 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깨지? 너무 까다로운데.”
성화의 반쪽은 어차피 이겨야 할 존재라 패스.
문제는 두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부터였다.
현재 가진 테크트리 포인트는 2억.
태양지체나 마신지체를 얻으려면 1.5억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러면 내공을 찍을 포인트가 부족했으니.
은거자 루트나, 능력자 루트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청룡의 힘이 담긴 무복을 거저 주겠느냐. 끌끌.]
옆에서 속을 긁는 무극자 사부의 말을 무시했다.
‘다 양보해서 위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달성한다고 쳐, 그런데 동시 달성은 절대 불가능하단 말이야.’
대놓고 퀘스트를 실패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S급 난이도인지.
SS등급이라 해도 될 정도로 어려웠다.
[S급도 많이 쳐준 것이니라. 쉬운 퀘스트인 것을 쯧쯧. 어찌 이리 생각이 없을꼬.]
“저 생각 중이니깐 가만히 계셔 주시겠어요?”
[그 돌대가리 돌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그러면 사부님은 해결책이 있어요?”
[끌끌끌.]
무극자 사부가 웃음을 흘렸다.
마치 가소롭다는 웃음이었다.
“해결책…이 있으시네요?”
[당연하지 이눔아! 이 사부를 무엇으로 보고.]
“사부니이님!”
곧바로 존경하는 눈빛을 보냈다.
혼자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현재는 시간이 없었다.
얼마 있지 않아 성화의 반쪽과의 전쟁.
솔직히 퀘스트를 보고 있으면 안 됐다.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조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봐야 했으니까.
[일 없다, 제자야.]
“존경하는 사부님!”
[사부가 누구냐]
“위대한 파천혈신이라 불리는 분이요.”
[고금제일인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극자요.”
[고금제이인은?]
“혼원신공이란 희대의 무공을 만든 천재 무극자의 제자인 저 이준이죠.”
이준은 무극자 사부에게서 퀘스트를 깰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말을 했다.
얼굴이 낯 뜨거워지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뱉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러지 않으면 사부가 입을 열지 않았다.
입에 발린 말을 계속한 결과.
사부가 퀘스트를 깰 방법을 누설하기 시작했다.
[홀홀. 조금 전 했던 말들을 가슴속에 새겨 놓거라. 그럼 퀘스트를 완료할 방법을 말해 주겠노라.]
이준은 사부의 목소리를 귀에 새기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S급 난이도를 높게 쳐줬는지.
방법을 듣고 나서 알았다.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각성자 시스템의 원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정말 미스테리한 사람이었다.
* * *
[경고! 성화의 반쪽이 금역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경고! 성화의 반쪽이 금역의 문을 강제로 개방합니다.]
[경고! 성화와의 적대도가 MAX에 도달했습니다.]
[경고! 블랙존 게이트인 ‘사막의 소용돌이’와의 통로가 연결되었습니다.]
[경고! 블랙존 게이트인 ‘황폐한 땅’과의 통로가 연결되었습니다.]
[경고! 레드존 게이트인 ‘여덟 갈래 협곡’과의 통로가 연결되었습니다.]
……
……
……
경고음이 미친 듯 울려 퍼졌다.
게이트 간의 통로가 연결된 상황.
허공에는 포탈이 열렸다.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은 공간을 비집고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주인니이이임! 몬스터가 쳐들어왔습니다요.”
테구르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녀석은 전투를 단단히 한 모습이었다.
각종 방어구에 스케먼의 창, 그리고 등에 석궁까지 장착했다.
“우선 원거리로 공격해.”
“알겠습니다요.”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지기 전에 공격을 퍼부어.”
“옙! 주인님이 공격하라신다!”
테구르가 스케먼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방책 앞에 있던 녀석들이 석궁을 꺼내 들고 일제히 사격했다.
푸슉!
수백 개의 화살이 몬스터를 향해 쏘아졌다.
“케엑!”
“킥킥!”
“우억!”
게이트에서 나오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스케먼의 공격이 통했다.
“마력 화살인가?”
그저 마력을 실어서 날린 것과는 좀 달랐다.
블루급 몬스터는 화살에 맞아 즉사했지만 그 이상의 등급은 경직 상태만 걸렸다.
그것도 몇 초 있다가 상태 이상을 벗어났다.
“큰 거 갑니다요!”
테구르의 신호에 석궁에서 쏘아진 화살이 일자가 아닌 하늘 높이 쏘아졌다.
석궁은 거리가 짧은 만큼 파괴력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그래서 하늘 높이 쏘면 위력이 형편없어지기에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는데.
콰광!
콰과광쾅!
포물선을 그리며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화살이 땅에 닿는 순간 굉음을 일으키며 몬스터를 휩쓸어갔다.
사막 모래가 바람에 나부끼었다.
시야를 가린 모래가 걷히자 시체가 한가득 했다.
“위력이 거의 마력 포탄급 인데?”
마법 공학으로 만든 대포에서나 있을 법한 위력이었다.
블랙존 몬스터는 그저 약한 상처만 났지만 레드급 몬스터는 몸 일부가 분리될 정도였다.
이준이 화들짝 놀라자 테구르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저희가 대포는 잘 못 쓰는지라 석궁을 개조해서 대체 했습니다요.”
“잘했어. 계속해.”
“헤헤. 감사합니다요.”
스케먼의 활약은 대단했다.
석궁을 장전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으며, 교대로 화살을 쏴 대니 적의 몬스터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좋아. 잘한다!”
이준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 몬스터가 죽을 때마다 보상을 줬다.
[레드급 몬스터 화염사귀를 죽였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지급합니다.]
[레드급 몬스터 외눈박이 오우거를 죽였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300,000p를 지급합니다.]
[블루급 몬스터 활지네를 죽였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지급합니다.]
몬스터를 죽이면 얻는 테크트리 포인트가 현저하게 줄긴 했지만 괜찮았다.
일반 몬스터를 죽이는 것만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어딘가.
어느 순간부터 이름 있는 몬스터를 죽여야만 포인트가 주어졌다.
이렇게 일반 몬스터를 죽이는 것만으로 포인트를 주는 건 오랜만이었다.
처음 무공을 배울 때 말고는 거의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금역에 모이고 있는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거의 군단급.
이 정도의 숫자라면 1.5억 포인트를 모으는 건 껌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포인트를 모으는 건 해결이고 남은 건 성화네?”
무극자 사부가 말하길 성화의 목숨은 3개라 했다.
처음 상대할 때는 자신이.
그다음은 흑염마조에게 맡기라 했다.
어차피 두 번째부턴 자신이 성화를 상대하지 못한다나.
2페이즈에선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했으니, 자신은 뒤로 빠지면 된다고 했다.
지잉-
성화의 반쪽 진영도 드디어 고위급 몬스터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플레임 오크 주술사의 마력 방벽으로 인해 스케먼의 화살이 막혔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역 하늘.
거대한 원 안에서 노란 불을 태우고 있는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드디어 보는구나 인간.]
성화의 반쪽이 붉은 눈을 번들거리면서 이준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반갑다? 감히 사신수인 나를 건드리고 여유를 부린단 말이냐?]
화르륵!
성화의 반쪽이 분노했다.
녀석의 몸에 붙은 불꽃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땅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야이씨! 여기 내 게이트야! 자기 땅 아니라고 아무 곳에서나 싸지르지 말란 말이야!”
[정신 나간 인간이군. 각성자란 하찮은 힘 때문에 기고만장한 건가?]
“그 빌어먹을 불 안 거두면 너 곱게 못 뒤질 줄 알아.”
[예전에도 너 같은 망종이 하나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군. 하긴 인간 따위를 기억할 정도로 내가 한가하지 않으니.]
성화의 말에 무극자 사부가 열을 내었다.
[저, 저! 찢어 죽일 닭 새끼가 있나!]
고상한 말투를 집어치운 채 저잣거리 왈패나 하는 말투로 버럭 소리쳤다.
[내 앞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해 마조의 심연으로 숨었던 닭대가리가 저따위 망발을! 제자야! 뭐 하느냐, 어서 저 닭대가리를 잡아서 통구이로 만들지 않고!]
이준이 신음을 내었다.
사부의 살기가 자신에게 전해져 왔다.
만약 영혼이 아닌, 육신이 있었다면 저 성화의 반쪽은 사부에게 찢겨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으니까.
“너 아주 미친놈이구나? 건드릴 사람을 건드리지. 에휴. 조야 내가 먼저 상대한다?”
[그 몸으로 괜찮겠나? 상대는 최상위 블랙급 몬스터다.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막강해.]
“사부가 2, 3페이즈만 너한테 맡기래.”
[제 제자는 참 아끼는군. 좋다. 알아서 해 봐라. 난 옆에서 구경하지.]
“그러지 말고 애들 좀 도와주지?”
[힘 아껴야 해서 안 된다.]
“단호하네.”
[틈틈이 전장을 살펴보긴 해 주지.]
흑염마조 치고는 많이 양보했다.
신수의 강함은 수하들의 숫자에서 나온다고 했다.
흑염마조의 수하들은 성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니.
현재로선 성화가 흑염마조보다 더 강했다.
녀석의 입장에선 성화를 꼭 이겨야 했기에 힘을 아끼는 게 옳았다.
“최상위 블랙급 몬스터랑 싸우려니 살짝 떨리네.”
이준의 몸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상대는 사신수다.
여유로운 척 했으나 성화에게 느껴지는 기운에 몸이 굳은 상태였다.
놈은 몬스터를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였으니까.
혼원신공을 끌어 올려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켰다.
내공으로 인해 긴장이 조금은 완화되었다.
“후우우.”
파멸겁을 꼬나 쥐며 긴 숨을 내뱉었다.
‘무극군림보로 녀석에게 접근한다.’
무극군림보라면 하늘에 떠 있는 성화에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