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흑염마조가 검은 불꽃의 신봉자들을 소환했습니다.]
[흑염마조의 숨겨진 패시브 ‘징벌’이 발동했습니다.]
[흑염마조에게 복종한 몬스터의 화염 공격력이 200% 상승합니다.]
[흑염마조에게 복종한 몬스터의 화염 저항력이 400% 상승합니다.]
[화륜의 신전 소속 몬스터가 흑염의 무구 세트를 입었습니다.]
[흑염마조가 곁에 있는 한 흑염의 무구 세트가 계속 유지됩니다.]
“와….”
이준이 입을 떡 벌렸다.
무슨 놈의 패시브가 공격력을 두 배, 저항력을 네 배나 올리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반쪽짜리 사신수의 능력이 이럴진대, 완전한 사신수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저, 정말 신급 능력인데…?”
이준이 정면을 보고 중얼거렸다.
흑염마조는 하늘에서 고고하게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 아래는 소환된 화륜의 신전 소속 플레임 오크들이 불의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했다.
눈으로 봐도 굉장히 강해 보이는 녀석들.
자신과 흑염마조가 학살했던 오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저 녀석들과 싸운다면 이길 자신이 없을 정도.
이게 바로 흑염마조가 곁에 있는 플레임 오크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끌끌. 제자가 많이 놀랐나 보구나.]
“저 광경을 보고 어떻게 안 놀라요.”
[그냥 받아들이면 속이 편하느니라. 마조는 전설상에 나오는 영물. 우리 인간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이니라.]
“저 대단한 마조가 대체 왜 사부님을 주인으로 인식해요?”
[지금 이 사부의 능력이 마조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렷다?]
“그, 그게 아니고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돼서 그렇죠.”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사부는 선계도 아연실색하게 만든 장본인이니라. 사신수를 길들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무극자 사부가 대단한 건 알지만 저 말을 믿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흑염마조가 더 대단해 보였다.
현재는 화륜의 신전 소속 몬스터밖에 없지만 이후로 부하를 더 늘린다면 일인 군단이었다.
한 나라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전력.
그런데 고작 인간을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사부는 무슨 괴물이셨던 거야? 과거가 정말 궁금하네.’
흑염마조에게 사부의 과거를 대충 들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이번처럼 사부가 사라졌을 때 마조한테 살짝 물어봐야겠다.’
귀찮게 굴면 이야기해 주겠지 하고 다시 전장을 주시하려는데.
[흑염지옥(SS)의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흑염지옥(SS)이 활성화됩니다.]
주작의 깃털을 먹고 얻은 SS급 기술이었다.
“어? 징벌이 발동되서 마조한테 남은 기운이 없을 건데?”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흑염마조의 체력 바를 살폈다.
빨간색 게이지 밑에 있는 파란 게이지 통이 완전히 빈 상태였다.
애초에 흑염지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 남지 않았었다.
[징벌의 2차 효과이니라.]
이준의 의문을 무극자가 풀어줬다.
“징벌의 2차 효과요? 메시지에 안 나왔는데요?”
[시스템도 파악하지 못한 힘일 테지.]
“헉.”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
각성자는 시스템을 전적으로 믿었다.
이 시스템이야말로 신이 준 선물.
전능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한데 그 시스템조차 흑염마조의 숨겨진 힘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준이 전장을 보면서 입을 떡 벌린 사이.
주변으로 불길이 솟아났다.
이 근처를 전부 뒤덮은 불꽃.
마치 불의 장막을 연상케 했다.
더 장관인 건 빨간색이 아닌 검은 화염.
스킬 이름 그대로 지옥을 그대로 옮겨 온 느낌이었다.
[이것 말고도 더 남아 있느니라.]
“네에에?”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 대미를 장식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흑염지옥(SS)으로 인해 필드 안에 있는 적들에게 약화가 걸립니다.]
[태초의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적의 등급은 두 단계 하락시킵니다.]
[흑염마조가 징벌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와 X발. 실화냐.”
또 욕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개사기? 취소다.
사기라고 표현한 것도 민망했다.
흑염마조가 사용하는 건 그냥 신급 스킬 그 자체였으니까.
“조가 왜 지켜보라고 한지 알겠다.”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점점 달아오른 이준이었다.
흑염마조 앞에서 어깨를 한껏 올렸던 게 떠올라 쪽팔려 죽을 지경이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다고 할까?
아니, 주작 앞에서 좀 한다고 주름 잡은 것이다.
* * *
덜덜덜.
플레임 오크가 몸을 떨었다.
흑염은 지옥의 불꽃.
한 번 닿으면 소멸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흑염을 잠재울 수 있는 자는 태초의 불을 다루는 주인뿐이었다.
공포에 젖어든 플레임 오크들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하나 소용없는 짓.
흑염을 두른 플레임 오크가 1차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들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흑염의 방벽이 있었다.
도망칠 퇴로 따위는 없었다.
“취췩!”
“취릭취릭!”
“꾸에에엑!”
약화가 걸린 덕에 혼란에 쉽게 빠진 게드락의 플레임 오크들.
패닉 상태가 되었다.
“진정하라!”
게드락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군단장.
성화의 밑에서 사대종의 직책을 맡았다.
지옥의 불꽃이 타오른다고 수하들같이 행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드락의 통제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은 플레임 오크들.
설상가상으로 적의 명령이 떨어졌다.
[본좌를 배신한 하찮은 것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소멸시켜라.]
흑염마조의 음성에 흑염을 두른 오크 전사들이 움직였다.
안 그래도 버프 효과 때문에 강해졌는데 여기에 흑염의 무구 세트까지 더해지니 엄청난 무력을 뽐냈다.
뿐인가.
게드락의 플레임 오크는 등급이 두 단계나 내려간 상태.
예전의 위용은 어디 가고 오합지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푸확!
“꾸엑!”
서걱-
서걱-
여기저기서 살이 베이는 소리가 난무했다.
공포에 걸려서인지 저항도 못 한 채 많은 플레임 오크들이 죽어 나갔다.
전쟁이 아닌, 학살에 가까운 현장.
흑염마조 쪽 진영의 오크들이 게드락의 오크를 무차별적으로 도륙했다.
허공에는 초록색 액체가 분수같이 터져 나왔다.
“꾸에에엑!”
흑염으로 인해 고통에 울부짖으며 쓰러진 플레임 오크.
흑염마조 측 진영의 오크가 쓰러진 플레임 오크를 밟자 육체가 모래알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아, 안 돼!”
쓰러져만 가는 동족을 본 게드락이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군막에서 회의하던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도 죽었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한 명도 남지 않고 싸그리 몰살될 것만 같았다.
“이, 이럴 순 없다! 난! 성화의 사대종이란 말이다!”
게드락이 분노를 터트렸다.
[플레임 오크 족장 게드락이 대분화를 시전합니다.]
그의 손에 들린 도끼를 땅바닥에 내리쳤다.
쿵!
거대한 울림이 땅에 전해졌다.
대지에 숨어 있는 불을 터트리는 기술로 광역기에 해당했다.
많은 적을 상대할 때 쓰기 적합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먹혀들지 않았다.
[지옥의 화염으로 인해 대분화 스킬이 캔슬되었습니다.]
“크아아악!”
게드락이 포효하며 화를 내었다.
어떤 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를 보며 흑염마조가 코웃음을 쳤다.
[하찮은 네놈 따위가 아무리 커 봤자 본좌의 종, 평생을 거역할 수 없는 굴레다.]
퍽퍽퍽!
게드락의 등에 대검과 도끼, 창, 활이 일제히 박혔다.
전이었다면 공격한 적을 단숨에 제압하고 몸에 박힌 무기를 뺐을 터.
“끄어억….”
지금은 무력하게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게드락이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서걱 소리와 함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흑염이 녀석의 몸을 뒤덮으며 시체를 소각시켰다.
[플레임 오크 대족장 게드락이 죽었습니다.]
[흑염마조가 게드락의 영혼을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75,000,000p가 지급됩니다.]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보여준 흑염마조 측 플레임 오크들.
보스 몬스터가 죽자 적은 해일같이 쓸려나갔다.
[모든 몬스터를 해치웠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00p가 지급됩니다.]
흑염의 군단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자신들의 임무를 모두 마친 것.
흑염마조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다시 부를 때까지 게이트에서 대기하라.]
[그러겠나이다. 남쪽의 진정한 주인이시어.]
플레임 오크들이 화염의 소용돌이가 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까아아안!”
[뭐냐?]
“멈춰봐 쟤들한테 시킬 게 있어.”
[잠시 귀환을 멈추거라.]
흑염마조의 말에 귀신같이 행동을 멈춘 플레임 오크들이었다.
[시킬 게 뭐지?]
“별건 아니고, 저기 빛나는 것들이 바닥에 널려 있잖아?”
[아티팩트들 말이냐?]
“어. 나 혼자 저 많은 걸 언제 다 수거해? 쟤들 좀 시키자.”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다 들었으면 움직여라.]
[주인의 명을 받듭니다.]
플레임 오크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티팩트를 주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한쪽으로 모으는 녀석들.
이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흑염마조에게 말했다.
“너 부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뒀구나?”
* * *
[플레임 오크의 피(A)를 획득하였습니다.]
[플레임 오크의 피(A)를 획득하였습니다.]
[플레임 오크 주술사의 송곳니(AA)를 획득하였습니다.]
[데락의 도끼(AA)을 획득하였습니다.]
[쉬로드의 활(AA)을 획득하였습니다.]
……
……
……
메시지 창이 주르륵 내려오고 있었다.
플레임 오크들이 아공간 주머니에 떨어진 아티팩트를 담고 있기 때문.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준은 게드락이 죽은 자리로 와서 허리를 굽혔다.
이곳에서 제일 반짝이는 물건.
게드락이 죽으면서 남긴 아티팩트였다.
과연 블랙급 몬스터는 어떤 아티팩트를 남겼을까.
[게드락의 소환 목걸이(S)를 획득하였습니다.]
[게드락의 3종 세트(S)를 획득하였습니다.]
[사대종(불)의 표식(S)을 획득하였습니다.]
역시나 전부 S급 아티팩트였다.
“사대종의 표식은 뭐지?”
이준은 게드라의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방어구와 무기, 장신구는 어느 몬스터나 잘 드랍하는 아티팩트다.
하나 사대종의 표식은 처음 보는 물건.
어떤 건지 궁금해 바로 정보 창을 열었다.
[사대종(불)의 표식]
분류: 증표
등급: S
설명: 사신수에겐 네 명의 종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제일로 충성하는 이들을 종으로 삼고 그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부여합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며 이를 어길 시 사신수가 목숨을 거둬갈 수 있습니다.
옵션: 불의 주인과의 계약
“호, 좋은 물건인데? 조야 이 표식 플레임 오크한테 먹여야 되겠지?”
[필요 없다.]
“넌 사대종 안 키워?”
[이 녀석들은 내 힘으로 소생시켰다. 죽었던 놈들은 사대종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
“보니까 전투 귀신들이던데 사대종 지위를 부여하면 더 강해질 거 아니야? 아까운데…”
[이놈들은 내 흑염을 지녀 사대종과 맞먹는 힘을 가졌으니 아까워할 필요 없다.]
“아, 그런 거야? 그러면 이건 언제 쓰지?”
이준이 사대종의 표식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한 마리 있네.”
[뭐지? 그 기분 나쁜 미소는?]
“너 아주 말 잘 듣는 놈을 밑에 둘 생각 없냐?”
[제자야. 그 생각은 아니니라. 그러다 마조가 지랄할 수 있느니라.]
무극자는 이미 이준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을 할 때면 항상 짓는 미소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떤 놈을 말하는 것이냐.]
“너도 잘 알걸?”
[별로 내키지 않는군.]
“눈치도 빠르고 말 하나는 기똥차게 잘 듣는 놈이라고. 불과도 엄청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야.”
[바로는 못 정하겠다.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을 할 사항이야.]
흑염마조는 무극자 사부님처럼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사부처럼 단순했으면 바로 수락했을 텐데 녀석은 여간 깐깐했다.
“그러면 직접 보고 잘 생각해봐.”
[제자가 험한 길만 골라가는구나. 쯧쯧.]
이준을 본 무극자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사대종으로 어떤 몬스터를 만들려고 하는지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