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268화 (268/705)

제268화

화륜의 신전에서 나온 이준이 악어형 몬스터인 크록을 상대하려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물 안에는 크록이 없었다.

기감을 퍼트려 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 몬스터.

의아함을 느끼며 호수 밖으로 나왔다.

젓은 옷을 내공으로 말리며 맑은 하늘을 본 이준이 중얼거렸다.

“뭐냐 이건?”

하늘은 맑지만 그의 눈엔 수 많은 검은 실선들이 보였다.

검은 실선들 속엔 보랏빛 선도 섞여 있었다.

검은 선은 마기, 보라색 선은 균열 오염.

하늘에서 느껴져선 안 되는 기운들이었다.

[성화의 기운이다.]

“성화의 기운? 반쪽이 움직이려면 아직 시간이 있는데?”

[본좌가 주작의 깃털을 먹어서 심기가 불편해졌겠지.]

“4대 성지의 금역을 노리면 경고 메시지라도 뜰 건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

이준이 걸음을 옮겼다.

주변으로 기감을 최대한으로 펼치며 이동했다.

몬스터의 기는 느껴지지 않고 서울대공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주인의 게이트를 향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겠지. 성화의 밑에 있는 놈들이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기습 공격을 할 머리는 있다.]

하긴 언제까지 메시지로 경고를 주겠나.

생사의 대결에서도 나 공격할 테니 방어해라 라고 말해 줄까.

흑염마조와 성화의 대결에서 진 쪽이 소멸될 터.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일일이 경고를 할 리가 없었다.

“내가 게이트에 들어간 사이에 날뛸 줄 몰랐지. 그런데….”

그렇다고 걱정하진 않았다.

경공을 사용하면서 본 인터넷 뉴스.

안 좋은 기사로 덮여 있을 줄 알았건만, 좋은 소식들로 널려 있었다.

검룡 박혁진에 관한 기사였다.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구만?”

검룡이 나타날 때마다 몬스터가 우후죽순 죽어 나간다는 내용.

일당백, 아니 일당천의 기백으로 자신의 무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고 하니.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다 자신의 노고였다.

옆에서 잔소리하며 갈궜던 결과물이랄까.

이제는 정말 뒤를 안 봐줘도 될 것만 같았다.

“홀가분해. 마음 한구석에 담아뒀던 빚을 전부 털어 낸 느낌이야.”

이준이 경공을 멈췄다.

레드급 몬스터라는게 걸렸지만, 박혁진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여겼다.

SS등급에 있는 뇌신공이 있는 한 녀석은 몬스터에게 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크게 다치겠지.

이 많고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목숨을 내놔야 했으니까.

큰 시련이 닥치겠지만 이번 일을 넘긴다면 실력이 무섭게 늘어나 있을 거다.

그래서 박혁진을 도와주지 않기로 했다.

“흐음….”

[무슨 생각이냐?]

“기사를 보니까 이놈들 부산에서부터 진격했다 하더라.”

[본진이 있나 살펴본다?]

“정답.”

[좋은 생각이긴 하다.]

“내 느낌상. 최상위 몬스터일수록 지능이 굉장히 높아서 무턱대고 난리를 치진 않을 거란 말이야. 특히 사신수의 꼬봉 되는 놈들이라면 더 머리가 좋지 않을까?”

[작은 주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놈들은 머리가 좋지 않아.]

흑염마조는 말을 하면서도 무안해했다.

성화를 받드는 몬스터들은 대체로 높은 무력을 가졌지, 머리를 사용하는 놈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준은 오해를 했다.

최상위 몬스터의 지능이 높다고 말이다.

“에이. 널 배신했다고 너무 깎아내리네. 내 지식으론 레드급 최상위 몬스터 중에는 전략과 전술을 사용한 몬스터가 파다했었다고.”

전생에 몬스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 중 하나였다.

파괴적인 무력 하나만으로도 공포스러웠는데, 몬스터가 전술까지 사용했으니.

인간이 당해낼 리가 없었다.

여기다 천외천까지.

그들의 손에 최상위 몬스터가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기도 했다.

[가 보면… 알겠지.]

흑염마조는 이곳에 지휘관 격인 몬스터가 없다고 느꼈다.

이미 몬스터는 패배했다고.

게이트 밖으로 나온 순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균열 오염을 시키면서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가는 전략.

두 번째는 전 병력을 투입해 속전속결로 목표를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성화의 수하들은 이 두 방법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짬뽕으로 섞여 나머지 전술마저 애매해진 느낌이랄까.

이도 저도 아닌 방법.

여기서 이미 성화의 수하들은 패배를 한 거다.

만약 이준이 나오기 전 몬스터들이 전 병력을 투입해서 속전속결로 공략했다면 서울은 지옥이 됐을 터.

흑염마조는 이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 멍청한 몬스터들은 자신의 수하이기도 했으니까.

* * *

콰릉!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와 몬스터를 직격했다.

벼락에 맞은 테노용은 끈 떨어진 연처럼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허억… 허억….”

박혁진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약을 먹고 자라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단전에 내공이 빈 상태였다.

무지막지한 내공을 사용하는 뇌신공.

박혁진이라도 무리였다.

“도련님! 이젠 저희 무적검대가 상대하겠습니다.”

“괜찮… 허억… 습니다….”

그의 뒤에 철혈검가에서 지원 나온 부대가 있었다.

하나 그는 무적검대를 나서지 못하게 했다.

자신 혼자 이 많은 몬스터를 처치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절대 다른 각성자에게 뺏길 수 없었다.

“이제 무리입니다!”

“그러다 단전이 다칠 수도 있어요.”

“부대주님 말씀 듣고 뒤로 빠지시면 나머진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럴 수… 허억… 없다… 말했습… 허억… 니다….”

박혁진은 천월을 지팡이 삼으며 힘겹게 말했다.

그의 기백에 현재 몬스터들의 진격이 막힌 상황.

박혁진으로 인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몬스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러다 몬스터가 더 모여듭니다.”

“다른 방향으로 갔던 플레임 오크도 돌아오고 있어요.”

“숨을 돌린 후에 다시 싸우는 게 어떨까요?”

무적검대의 간곡한 요청에도 박혁진은 모두 거부했다.

그는 현재 하나에 꽂혀 있었다.

자신 혼자 성화의 수하들을 모두 상대하고 천상의 동쪽에게 호감을 얻는다.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몸은 이미 망신창이가 된 지 오래.

무사고의 특수한 교복은 걸레가 되어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깊은 상처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지 모르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혁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으면 초식을 사용했고, 어느 정도 회복하면 내공을 사용해서 적을 무참히 격살했다.

그의 모습은 굉장히 처절했다.

“아아…”

“도련님…”

“우리가 저 몬스터에게 희생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으셔.”

“우릴 그렇게나 생각하시다니.”

“예나 지금이나 마음씨가 착하십니다.”

무적검대가 박혁진의 모습에 감격했다.

그들은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박혁진이 자신들을 위해 홀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

철혈검가에 소속된 각성자를 끔찍히 아끼는 도련님으로 비춰졌다.

허나 박혁진은 오로지 자신의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철혈검대가 나선다면 밥그릇을 뺏길 터.

그는 꼭 천상의 동쪽에게 신뢰를 얻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던 무적검대였다.

그때 검제가 나타났다.

다른 장소에서 몬스터를 해치우고 손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박춘식이었다.

“허. 저 많은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고 있더냐.”

“검제님을 뵙습니다.”

“영수는 어디 가고?”

박영수는 검제의 차남이자 무적검대의 대주였다.

현재는 그를 대신해 부대주가 무적검대를 이끌고 있었다.

“가주를 보필하고 계십니다.”

부대주의 대답에 박춘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말해 보거라.”

“도련님께서 몬스터들을 혼자 상대하신다고 나서지 말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변의 상황과 도련님이 다칠 때를 대비만 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이 극구 나서지 말라고 하셔서…”

“너희는 저 아이의 말을 따랐을 뿐이지 않느냐. 미안해할 필요 없다.”

박춘식은 일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

끔찍이 아끼는 손자가 위기의 상황임에도 얄짤없었다.

‘혁진이의 대에서 철혈검가는 완전히 세상에 우뚝 설 것이다. 이번 기회에 가솔들을 완전히 제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게 좋겠어.’

손자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조금만 건드려도 쓰러질 상태.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철혈검가의 가솔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

저들이 손자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명령도 뿌리 칠 것이다.

“철혈의 검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여기서 꺾이겠지. 모두 자리를 지켜라.”

검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무적검대뿐만 아니라 철혈검가의 다른 부대들도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박혁진의 상처는 커져만 갔다.

플레임 오크의 몽둥이질에 밀리고, 테노용의 화염에 화상을 입었다.

크록의 강철같은 턱 힘은 어떤가.

살점이 통째로 안 뜯기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대로 두다간 정말 박혁진이 죽을지 모른다고 여긴 무적검대가 나섰다.

“죄송합니다. 검제님의 명령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내 명을 어기겠다는 소리냐?”

“벌은 이후에 달게 받겠습니다. 무적검대는 나를 따라 도련님을 보호한다!”

“예!”

무적검대가 빠르게 박혁진을 둘러쌌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섬전단, 천풍단, 창궁무애단까지.

검제의 직속인 제왕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박혁진을 구하려고 나섰다.

“안… 돼…!”

하지만 박혁진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다 내 거라고! 나 천상의 동쪽과 안면트고 싶단 말이야!’

목구멍까지 이 말이 나왔지만 할 수가 없었다.

싸움의 피로로 인해 너무 힘들었기 때문.

흐려지는 시야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박혁진이 끝까지 혼자 상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기절을 하자.

철혈검가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누가 봐도 지금 박혁진의 모습은 철혈검가 각성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이었으니까.

* * *

서울대공원에서 방향을 튼 이준이 부산 외곽에 도착했다.

부산과 가까워질수록 균열 오염이 많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 안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주변에 마기가 넘쳐났다.

“플레임 오크들이 진을 쳤네.”

이준의 눈에 거대한 나무 성체가 눈에 들어왔다.

높다란 망루가 수십 개.

계속해서 건물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예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려는 건가?”

플레임 오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저 멀리 보이는 성체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오크가 눈에 들어왔다.

흉폭하게 생긴 돼지.

해골 갑옷을 걸치고 있는데 여태까지 봤던 몬스터 중에 제일 강한 것 같았다.

“조, 네 말이 맞았다. 저놈들이 여기에 진을 안쳤다면 X될 뻔했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 게 우리에겐 행운이야.”

숨이 턱턱 조여오게 하는 압박감이 해골 갑옷을 입은 오크에게서 느껴졌다.

녀석은 블랙급 보스 몬스터였다.

[본좌가 왜 녀석들이 멍청하다고 이야기했는지 알겠지?]

“어. 저 무력이면 정말 큰일 났을 거야.”

큰일뿐인가.

서울이 불바다가 됐을 거다.

저 정도의 지능에 무력을 가졌으며 숫자도 엄청 많았다.

여기에 있는 놈들만 천 마리는 훌쩍 넘어 보였다.

서울로 진격한 놈들까지 합하면 거의 군단급.

마력을 가진 몬스터가 서울을 박살내는 건 길어봐야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을 거다.

[내가 다 쪽팔리는군.]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모두가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

[아니. 내 수하라면 집이나 짓겠단 생각은 집어 치워야 한다.]

“안전주의자 아닐까?”

[X신이다. 자기의 장점을 포기한 채 적과 싸우는 격이야.]

“그런거야?”

[남쪽의 지배자는 공격에 특화된 몬스터를 데리고 있다. 저 멍청한 놈이 하는 건 방어력이 높은 북쪽의 지배자나 하는 짓거리지. 차라리 진군했다면 어이없게 죽을 확률도 줄어들었을 거다.]

“누구한테 죽을 확률이 줄어드는데?”

[작은 주인에게.]

“나?”

[그러면 저놈을 안 죽이고 놓아줄 건가?]

“당연히… 죽여야겠지?”

[어차피 죽을 목숨. 원 없이 사람의 피를 보며 죽는 게 좋지 집만 지키다가 목숨을 잃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같은 부류라 그런가 몬스터의 입장을 정말 잘 대변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둘러봤으니 이제 싸움을 시작해 볼까?”

이준이 한쪽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 준비 운동.

처음으로 블랙존 게이트의 몬스터와 싸운다.

아무리 S급 각성자라지만 블랙급 몬스터와 혼자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이준은 여타 S급 각성자와는 다르지만 그라도 이번은 좀 무리였다.

블랙급 몬스터는 레드급 몬스터에 비해 적어도 다섯 배는 강했으니까.

준비 운동을 끝낸 그가 파멸겁을 꺼내려는 찰나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주인은 나서지 마라.]

“응?”

[이 놈은 본좌가 끝내지.]

뜻밖의 소리였다.

“깃털을 먹어서 성장은 했다고 하지만 아직 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잖아?”

[본좌의 밑에 있었던 놈이다. 불의 속성을 가진 몬스터는 더 강한 힘에 짓눌리기 마련이야.]

흑염마조의 성장도는 40%.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사신수가 블랙급에선 최상위의 존재라 하나 성장을 다 하지 못한 상태인데 괜찮을까.

걱정이 됐다.

중국에서 흑염을 사용했을 때는 레드급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했다.

블랙급 몬스터에게 통할지 의문이었다.

[더는 말리지 마라.]

그 말을 남기곤 날개를 펼쳐 날아간 흑염마조였다.

“조야!”

이준이 녀석을 부른 그때였다.

[말리지 마려 무나. 흑염마조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놈이니라.]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던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은 기쁜 마음에 무극자를 불렀다.

“사부님! 어디 가셨다가 이제야 나타나신 거예요!”

[큼큼. 잠시 생각을 정리했느니라.]

“무슨 생각요?”

[제자는 알 것 없다.]

“뭘 알 필요 없어요. 정리할 거라곤 사형들밖에 없으면서 괜히 뻘쭘하니깐 신비로운 척….”

[가아아아알!]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뇌를 강타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노성.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찔함이었다.

그런데 어째 전보다 더 호통이 강해진 느낌인지.

쉬다 오니까 소모했던 힘을 되찾은 것 같았다.

아니, 남몰래 폐관수련을 한 느낌이랄까.

노성에서 느껴지는 힘이 대단했다.

아무튼 속이 울렁거리며 몸에서 힘이 쏙 빠져나갔다.

“아악! 그, 그만하세요…!”

귀를 틀어막고 몸을 요리조리 비튼 사이, 무극자 사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큼큼. 오랜만에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칼칼하구나.]

무극자 사부가 없어서 허전했던 건 취소다.

호통이 그리웠던 것도 취소.

오랜만에 들어보고 싶은 건 무슨, 사람을 거의 반 죽음으로 만드는데.

사부의 호통을 그리워했단 생각에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끌끌. 제자야. 넌 어찌 날이 갈수록 허약해지느냐. 고금제이인이 되려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느니라.]

“사부님이 괴물이라고요!”

이준이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이번 호통은 정말 자신이 이대로 죽나 싶을 정도로 아찔했다.

이런 호통을 두 번만 더 듣는다면 저승을 구경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사부의 정신교육이 없어서 그런지 싹퉁머리가 없어졌구나. 이참에 참 훈련을 해 볼 터냐?]

나왔다.

고고한 말투를 때려치운 저잣거리 왈패의 말투.

심기가 불편할 때만 등장했다.

만약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 터.

급히 몸을 낮추었다.

“사부님! 괴물은 말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천재를 표현하는 아주 기막힌 단어라고요. 고금제일인. 얼마나 지겹게 들으셨어요. 제자는 사부님과 걸맞은 호칭을 부른 겁니다.”

되도 않은 변명이었다.

변명거리가 없어서 아무말이나 내뱉은 이준.

제발 넘어가라 속으로 천만번을 되뇌였다.

[크흠. 괴물이란 표현도 귀가 따갑게 들었느니라. 사부가 워낙 뛰어나야지. 홀홀.]

다시 말투가 점잖아 진 무극자 사부였다.

이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 먹힌 것.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단순한 사부의 비위도 못 맞춘 사형들은 뭐지? 벽창호인가? 아니면 감정이 없는 기계? 와, 모르겠다.’

무극자의 반응에 그의 제자들을 싸잡아 흉을 보는 이준이었다.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누누이 말하지만 사부가 소싯적 한 위엄을 했느니라. 그러니 네 사형들이 사부를 무서워했지. 홀홀홀.]

이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부의 성격.

과연 괴짜 같은 사부를 누가 맞춰주겠나.

‘사부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준아. 힘들어도 불쌍한 사부를 위해 쫌만 참자.’

이준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 * *

흑염마조가 나무 성채 앞으로 날아왔다.

“취익?”

“췩췩.”

망루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플레임 오크가 흑염마조를 가리키며 활을 겨눴다.

팡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는 화살.

목표는 흑염마조였다.

하나 화살 따위에 맞을 흑염마조가 아니었다.

화르륵!

날아가던 화살에 불이 붙더니 그대로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취익?”

재차 화살을 날렸지만 그 전과 상황은 똑같았다.

화살은 흑염마조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때 나무 성채가 세워진 주변에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울렸다.

[게드락을 불러오라.]

지옥의 저편에서 갓 올라온 음성.

사람이 들었다면 공포에 미쳐 백치가 될 만큼 심령을 뒤흔드는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몬스터는 어떨까.

화살을 쏘던 플레임 오크의 눈이 까뒤집혔다.

기절은 하지 않고 정신이 사로잡힌 듯 흑염마조의 명령을 따랐다.

망루에서 내려온 플레임 오크가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성채 안.

여전히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중앙 한가운데 쳐진 큰 군막을 향해 들어간 플레임 오크.

대족장인 게드락은 지휘관격 오크들과 작전을 짜고 있었다.

“췩췩!”

졸병의 무단침입에 지휘관격 오크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군막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자신들처럼 높은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다.

“취익!!”

한데 졸병이 기척도 없이 들어오자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가 격분했다.

코에 큰 링을 박은 녀석이 놓여 있던 쇠몽둥이를 잡고 졸병을 향해 다가가는데.

“멈춰.”

게드락의 명령에 코에 링을 박은 녀석이 멈췄다.

“여기에 왜 왔는지 이유를 말해라. 만약 이유가 시원찮다면 네 대가리를 깨부술 거다.”

그와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들의 눈빛이 졸병에게 쏠렸다.

화르륵-

갑자기 졸병의 몸에서 검은 불꽃이 일어났다.

[게드락. 많이 컸구나. 사대종에 끼지도 못한 네가 여기서 왕 노릇을 하는 걸 보니.]

졸병의 입에서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게드락은 그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먼 발치에서 모셨던 주인.

이제는 아니지만 잊을 만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 가짜!?”

[감히 너 따위가 본좌에게 가짜라 지껄이는 것이냐!]

흑염마조가 소리치자 검은 불꽃을 토해내던 졸병의 몸이 터졌다.

주위로 옮겨붙은 검은 불꽃.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들이 불을 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꺼지지 않았다.

죽은 졸병의 자리에 하나의 형상이 떠올랐다.

새의 형태.

작은 두 개의 붉은 눈이 번쩍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네 옛 주인이 명한다. 나무 성채에서 나와 본좌에게 무릎을 꿇어라. 옛정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흑염마조의 경고였다.

“취릭!?”

“췩췩!”

“취직췩췩!”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들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말했다.

그 소리를 못 알아들을 흑염마조가 아니었다.

그는 사신수.

남쪽을 지배하는 자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었다.

또한 생물과도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그였다.

[멍청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지휘관격 플레임 오크는 이참에 반쪽을 없애 버리자고 제안했다.

온전하지 못한 힘 가지고 어떻게 자신들을 이길 수 있냐고 의견을 냈다.

예전 무시 받던 자신들이 아니라고 하는 건 덤.

현재는 사대종에 든 상태이니 반쪽 따위는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네게 주어진 시간은 1분. 그사이에 대답을 가져와라. 본좌는 인내심이 없다는 걸 명심해라.]

이 말을 끝으로 새의 형상을 띄던 검은 불꽃이 허공에 흩어지면서 사라졌다.

* * *

이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흑염마조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무극자 사부가 나타나서 그런지 말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쟤 뭐 하는 거래요?”

[안쪽으로 들어간 플레임 오크가 나오길 기다리는 거겠지.]

“흠….”

대체 뭘 할 생각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중국 때처럼 흑염을 뿌려댈까.

과연 완전하지 않은 흑염에 블랙급 몬스터가 죽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궁금한 게 생겼다.

그동안 사부에게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사부님. 사신수는 동양에서 전설로만 내려온 영물이잖아요.”

[그렇지.]

“플레임 오크는 서양쪽 몬스터인데 어떻게 사신수의 부하가 될 수 있어요?”

[…….]

어려운 질문이었을까.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사부님?”

다시 부르자 그제야 사부의 음성이 들렸다.

[…이 세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보느냐, 제자야?]

“비정상적이죠?”

[우리가 못 본 사이 세상이 꼬일 수도 있느니라. 사신수와 몬스터의 관계가 그런 거지.]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스템 창이 각성자에게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주작의 밑에 오크가 있을 수 있는 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엉켰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모르는 게 없으셔.”

[끌끌.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거라. 어떤 질문이든 해답을 낼 수 있는 게 바로 이 사부이니라.]

무극자가 허허롭게 웃는 사이.

나무 성채의 문이 열렸다.

코뿔소를 탄 플레임 오크가 나무 성채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플레임 오크들.

전 병력이 집합한 것 같았다.

그들의 손에는 각자의 무기가 들려있었다.

플레임 오크 주술사는 언제든 공격이 가능하도록 손에 마력을 모았다.

[그게 네 대답인가? 게드락.]

“내 주인은 성화다. 완전하지 않은 반쪽에게 무릎 꿇을 생각은 없다.”

[그 멍청한 판단이 너를 죽게 만들 것이다.]

“여기는 내 영토. 힘이 정상적이지 않은 놈이 뭘 믿고 기고만장하는 거냐.”

플레임 오크가 흑염마조를 둘러쌌다.

한꺼번에 공격하려는 듯 천천히 거리를 좁혀갔다.

[게드락아. 그 멍청한 머리 때문에 네가 사대종에 못 들었던 거다. 성화 그놈은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어찌 너 같은 멍청한 놈을 사대종에 두는지. 쯧. 나에게는 좋지만 이로 인해 너희는 재앙을 맞이할 테다.]

“네가 옛날처럼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지 않았겠지. 우리가 네 꼬임에 넘어가지 않아서 아쉽겠구나. 큭큭.”

플레임 오크 대족장인 게드락이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얼마 가지 않았다.

[네 소원대로 빨리 끝내주마.]

흑염마조의 몸이 타올랐다.

자신의 몸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처럼 불을 뿜어냈다.

이름과 어울리듯 검은 불꽃을 토해내는 흑염마조가 날개를 펄럭였다.

공중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마조.

한 지점에서 멈춘 녀석의 눈이 검게 번들거렸다.

[검은 불꽃에서 다시 태어난 나의 종들이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라.]

흑염마조의 읊조림이 끝나자.

화륵!

주변에 검은 불꽃이 소용돌이쳤다.

하나, 둘, 다섯, 열…

검은 소용돌이가 분열하듯 숫자가 늘어만 갔다.

수백의 소용돌이가 쳤다.

일정한 숫자에 도달한 순간!

화르륵-

검은 화염을 두른 오크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플레임 오크와 똑같은 모습.

다른게 있다면 녀석들이 지닌 불의 색깔이었다.

게드락의 플레임 오크가 빨갛다면 흑염마조가 불러낸 오크는 짙은 검정색이었다.

그들은 흑염마조의 손에 새롭게 태어난 화륜의 신전 소속 플레임 오크들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