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푸확!
창강이 허공을 갈랐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의 몸이 두 동강 났다.
많은 내공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레드급 몬스터 ‘테노용’을 처치했습니다.]
[레드급 몬스터 ‘플레임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레드급 몬스터 ‘플레임 샤먼’을 처치했습니다.]
[레드급 몬스터 ‘플레임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는 오크였다.
일반적인 오크가 아닌 플레임 오크.
불을 신성시하는 종족답게 몸의 색깔이 빨겠다.
뿐인가.
화염 인간처럼 온몸에 불을 두르고 있었다.
공격할 때면 몸에 둘러진 불이 더욱 활활 타오른다.
“후욱…”
창강으로 인해 상대는 일시적으로 그로기 상태가 됐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
숨을 크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일반 오크와는 다르게 겁나 단단하네.”
창강은 내공 소모가 극심했다.
원래 창기로 녀석들을 천천히 상대하려고 했지만 나가떨어지기만 할 뿐.
다시 일어나서 돌격해 왔다.
녀석들이 죽지 않고 달려오니 자신만 손해였다.
내공은 내공대로 소모하고 적을 죽이지 못했으니까.
때문에 창기 대신 창강을 선택했다.
창강은 확실히 플레임 오크를 벨 수 있었다.
강하기도 했고.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백의 목숨을 취했다.
단점으로는 이 창강은 기존의 창강과는 달리 내공 소모가 심했다.
하루 종일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
속전속결로 적을 섬멸해야 했다.
물론 이준에겐 다른 방법도 있었다.
바로 죽이지 않은 건 플레임 오크가 일반 오크와는 어떤 다른 점이 있나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였다.
전생에 들었던 소문보다 훨씬 강한 놈들.
흉악한 몬스터지만 탐이 나기도 했다.
“강한 종족이야.”
플레임 오크는 전투력이 뛰어났다.
지능도 꽤 높아 인해전술을 사용했다.
약한 놈을 제일 먼저 고기 방패로 보내고 강한 놈들은 뒤에서 지휘만 했다.
자신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다.
자신이 강한 플레임 오크를 치기 위해 움직이려 해도 샤먼들의 주술로 결계를 쳐 막았다.
대응이 좋았다.
싸움에 능하다고 해야할까.
저런 머리를 가진 몬스터는 회귀 후에 처음 봤다.
아니, 자신의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결이 달랐다.
테구르는 중학생 정도의 지능에 눈치가 빠르긴 했지만 보조적인 일을 잘하는 것뿐이지.
플레임 오크처럼 전술을 사용하지 못했다.
샥쿠는 오로지 강한 힘을 믿고 날뛰는 경향이 있었다.
그나마 제일 지능이 높은 건 로티틸.
하나 페어리 종족도 플레임 오크에는 한 수 접어야 했다.
흑염마조를 상대하는 걸 보면 확실히 플레임 오크가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감히 본좌의 화염을 뭐로 보고!]
흑염마조는 공중의 테노용을 상대하면서 플레임 오크를 향해 성화를 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녀석의 불을 플레임 오크가 흡수를 해 버린 탓이었다.
샤먼이 들고 있는 투명한 유리 쟁반에 의한 것.
그 유리 쟁반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흑염마조가 뿜어내는 불이 닿는 즉시 소멸됐다.
“아마도 저게 깃털의 힘을 사용해 만든 물건이겠지?”
화염류 무공을 쓰는 각성자가 수십 차례 도전했지만,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고 고인이 된 이유.
저 유리 쟁반이 불 속성 공격의 카운터였다.
주작은 불의 주인이었으니까.
“저걸 부숴야지만 화염이 먹힐 텐데.”
똑같은 불 속성으로는 주작의 힘이 담긴 물건에 손상을 가할 수 없었다.
자신이 파괴해 줘야 고생을 덜 할 테지만, 흑염마조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뭐, 알아서 하겠지.”
이준은 자신의 일을 했다.
많은 내공을 소모했으니 이제 채워야 할 차례였으니까.
팔을 앞으로 뻗었다.
[흡성공(S)을 사용했습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을 내공으로 전환합니다.]
소모했던 내공이 빠르게 차올랐다.
혼원신공과 흡성공의 시너지 효과.
이건 명백한 사기였다.
원래라면 두 내공이 충돌해야 하는 게 정상.
하지만 혼원신공은 모든 기를 품을 수 있는 천고의 무공이었다.
S급 흡성공을 보듬는 건 혼원신공에게 굉장히 쉬운 일이다.
혼원신공이 뒤를 받쳐주니 흡성공의 효과는 미쳤다.
사라졌던 내공의 회복.
얼마 안 지났음에도 내부에 내공이 가득 찼다.
무거움을 느꼈던 몸은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웠다.
힘이 충만한 느낌.
꼭 전투를 시작하기 전과 같았다.
“개꿀.”
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는 플레임 오크에게 재앙이었다.
* * *
그 시각.
박혁진은 특별반이 쓰는 연무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가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 뇌령석.
박물관 지하동에서 얻은 아티팩트였다.
감정이 안 된 물건이라 정보를 알 수 없어서 그는 지금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끄응….”
눈에 힘을 빡 주며 뇌령석과 기 싸움을 했다.
그가 가진 특성은 명안.
그 어떠한 것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었다.
웬만한 물건은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는데 뇌령석은 달랐다.
전혀 정보를 토해 내지 않았다.
“너 나한테 왜 이러니? 난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친해지고 싶다면서 눈은 부릅뜬 박혁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박혁진이 뇌령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박정연이 다가왔다.
“야. 너 정말 안 가?”
“응. 안 가. 나 지금 바쁘니까 말 걸지 마.”
그는 박정연을 바라보지 않고 대답했다.
온 신경이 뇌령석에 가 있었다.
“나중에 안 데려갔다고 징징대지 마.”
“…….”
이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박정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병은 못 고치는 불치병이라는 걸 알기에 그녀는 박혁진에게서 몸을 돌렸다.
“우리끼리 가자.”
그녀의 말에 한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허공에 대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특별반 아이들은 실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차경진에게 이야기하고 게이트 공략 허락을 맡았다.
그들이 가려는 곳은 레드존에서 최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
그들끼리 가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정말 안 데려가도 돼?”
“쟤 저기서 빠져나오려면 한참이나 걸려. 그냥 놔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우리끼리 레드존을 갈 수 있을까?”
정예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AA급 아티팩트를 가져서 자신감이 솟아났지만 자신들이 갈 곳은 레드존 게이트다.
레드존 게이트가 어떤 곳인가.
아무리 최하 난이도를 자랑한다해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괜히 고위 각성자가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하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만큼 어려운 레드존이란 게이트다.
고작 아홉 명으로 깰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이 언니만 믿어.”
박정연이 정예나를 다독였다.
여기에 있는 애들은 전부 A급 각성자.
제일 실력이 뒤처졌던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도 엄청난 성장을 했다.
자신들이 B급에서 A급으로 올라섰을 때 세 사람은 D급에서 A급으로 올라왔다.
성장으로 따지면 재능은 저 세 사람이 더 높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봤을 때.
그동안 박정연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벽을 깨려고 무수히 노력했으며 뇌신공이란 SS급 무공을 얻었다.
그리고 왜 각성자들이 높은 등급의 무공에 목숨을 메는지 알았다.
차원이 다른 힘의 차이.
SS급 무공을 A급 각성자가 가지고 있다면 등급은 최소 AA급이 된다.
그만큼 각성자에게 높은 무공은 필수였다.
여기다 재능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벽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즉 박정연도 최소 AA급은 된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위의 모든 조건을 충족했으니까.
여기다가 아티팩트도 무려 SS급 벽운이랑 AA급 폭풍도를 소지하고 있었다.
최상급에 달한 무기를 두 개나 소지한 박정연.
실 등급으로 측정하면 정말 최소가 AA급 각성자였다.
그녀뿐만이라면 레드존 게이트에 가자고 안 했을 터.
이곳엔 2차 각성을 한 한지유도 있었다.
허수는 애초에 A급 각성자인 패력진권을 이길 정도로 강했고 말이다.
지금은 도왕의 도법보다 더 강한 힘을 구사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전력이라면 최하 레드존 게이트는 클리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수까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진경수는 이 자리에 없었다.
박정연도 그 부분을 아쉽게 여겼다.
가문에서 급히 불러 빠진 상황.
박혁진을 비롯해 두 명이 빠져서 차경진을 포함해 열 명이 가게 되었다.
“우리끼리 부딪쳐 보자!”
“잘 생각했어.”
박정연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수가 은근슬쩍 정예나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철룡 선배님을 대신해 제가 독화 선배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동생인 정예은과 단짝인 허수의 말에 정예나가 그를 뚫어지게 봤다.
그러다가 정예은에게 눈을 돌리자 서로 마주친 두 사람.
정예은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우물쭈물한 행동.
어쩐지 수상해 보였다.
물론 동생과 허수가 상당히 가깝다는 사실을 모를 정예나가 아니었다.
“말을 얼마나 잘 지키는 남잔지 지켜볼게.”
“맡겨 주십시오.”
허수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했다.
특별반 아이들이 운동장을 떠났다.
홀로 남은 박혁진.
그는 여전히 뇌령석만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무런 반응도 없던 뇌령석이 스파크를 튀기 시작했다.
* * *
[레드급 중간 보스 몬스터인 ‘샤드론’을 처치했습니다.]
[모든 플레임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오크 정착지는 불에 타고 있었다.
망루나 천막은 허물어져 불의 장작이 된 지 오래였다.
전멸.
서 있는 오크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조야. 내기는 내가 이겼지?”
[인정할 수 없다.]
“어?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녀석이었어?”
[흥. 본좌의 흑염이면 모두 죽을 놈들이다. 흑염만 사용이 가능했다면 승부는 본좌가 이겼을 것이야!]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네 사정이고 내가 더 몬스터를 많이 죽인 건 맞잖아?”
[끄응.]
“천하의 영물이 거짓말을…”
[그래! 작은 주인 놈아가 이겼다. 됐냐.]
이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흑염마조가 부들대고 있었다.
엄청 분한 모양.
여기서 더 놀린다면 100%로 삐질 게 뻔했다.
이준은 녀석을 살살 달랬다.
“흑염을 썼으면 당연히 내가 내기에서 졌지. 플레임 오크들이 네 화염을 막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냐?”
[작은 주인 놈아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저 때 보니까 흑염에 최상위 레드급 보스 몬스터가 살살 녹던데? 플레임 오크는 껌 아니야?”
[크흠. 당연하다. 본좌의 흑염은 그 무림의 절대자인 큰 주인도 꺼려 했다.]
그럴 만했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레드급 몬스터들을 도륙했겠나.
심지어 거기엔 보스 몬스터가 무려 네 마리나 있었다.
몬스터의 숫자도 많았고 말이다.
흑염마조의 강력한 흑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오오, 역시.”
[큼큼. 이번 내기는 친히 본좌가 졌다고 말하자.]
“그래그래.”
[저어얼대! 본좌가 약해서 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알았다니깐.”
[흠… 아닌 것 같은데.]
흑염마조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무극자 사부처럼 단순히 넘어가지 않는 녀석.
조금만 더 개발 연기였다면 바로 들켰을 것이다.
사부와 단련된 연기로 인해 그나마 녀석을 속일 수 있었다.
이준은 화제를 빠르게 돌렸다.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 네 영역 줘야 한다.”
[내 영역을 돌려받으면 가져가라.]
“네 영역이 어딘데?”
[…작은 주인 놈아가 밟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어디?”
[…이곳.]
“응?”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준은 재차 흑염마조에게 물었다.
“제대로 말해 봐.”
[…여기다.]
“엉? 화륜의 신전?”
[그래. 정확히 말하면 화륜의 신전을 포함한 남쪽 땅 전부가 본좌의 영역이다.]
흑염마조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쪽 게이트.
그곳은 바로 주작이 다스리는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