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광극? 각성자가 정말로 인주 님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믿기지 않았는데 사실이었어.”
사선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홀로 중얼거렸다.
중원의 무신이라 불리는 사마영의 무공.
무림맹의 맹주이자, 정도의 빛인 사람의 무공이었다.
무림인들은 그가 누구의 무공을 이었는지 안다.
또한 누구의 제자인지도 알고 있었다.
고금제일인, 무림제일괴, 파천 등등.
여러 칭호로 불린 파천혈신의 막내제자였다.
인주의 무공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 명. 아니, 백만 명 중 한 명꼴로 태어나는 천재 중의 천재만이 그의 무공을 익히는 게 가능했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그의 무공을 익힌다면 1할도 터득할 수 없는 게 바로 백영창법이었으니까.
“놀라긴 이른데?”
사선의 검강에 주르륵 뒤로 밀린 이준이 먼지를 헤치며 나왔다.
고작 한 합을 교환했을 뿐인데 이준의 상의가 너덜너덜해졌다.
확실히 십선과 구선보다 훨씬 강한 사선이었다.
“더 보여 줄 게 있더냐? 어디 한 번 재롱을 부려 보거라.”
사선의 검이 흔들렸다.
김환국이 선보였던 흑매화가 허공에 똑같이 피어올랐다.
다른 게 있다면 선명도.
김환국의 흑매화도 굉장히 선명했지만, 사선이 펼친 흑매화는 엄청 짙었다.
뿐인가.
매화의 향기가 퍼지면서 주변을 가루로 만들었다.
냄새만으로 건물을 초토화시키는 힘.
매화를 절정으로 피울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커다란 흑매화 일곱 송이가 이준을 향해 날아갔다.
이준은 흑매화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검은 그림자.
무극창법 마지막 초식 진환이었다.
이준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같은 행동을 하는 그림자였다.
진환을 사용하고 전3식이나, 후1식을 사용하면 그 효과가 엄청난 무공이다.
하나 그는 무극창법이 아닌 다른 무공을 꺼냈다.
그의 양손에 가득 맺힌 강대한 기운.
소용돌이치는 회색의 기류가 가득 맺히자.
“이것도 막아 봐.”
이준은 쌍장을 사선을 향해 뿌렸다.
무극장법은 주위의 모든 걸 파괴했다.
창법과 마찬가지로 무극장법은 무신의 무공이다.
파멸겁이 없던 무신은 오히려 무극장법을 최후 무공으로 여겼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사선.
자신에게 날아오는 사선의 눈이 전보다 더 커졌다.
“설마! 묵룡장?”
사선은 기겁하면서도 방어를 단단히 했다.
묵룡장의 무서움은 파괴력에 있었다.
백영창법도 강하다면 강할 수 있는데 묵룡장과 비교하면 질이 떨어졌다.
묵룡장의 무서움은 연속성.
사용할 때마다 장법이 강해졌다.
심지어 내공이 떨어질 때까지 강해진다는 것.
인주도 내공이 떨어질 때까지는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게 바로 묵룡장이었다.
‘저놈이 묵룡장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각성자의 시스템에는 무공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왔다.
허나 높은 등급의 무공일수록 각성자 시스템은 무공의 특별함을 숨겼다.
각성자가 깨달아야지만 보이는 설명들.
사선은 이준이 묵룡장의 비밀을 모르기만 바랄 뿐이었다.
아니라면 그는 정말 큰 낭패를 볼 거라고 생각했다.
쿠와아앙-!
두 개의 쌍장이 바람을 찢어발기며 용울음을 내었다.
사선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자신에게 날아온 쌍장을 향해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지잉 소리와 함께 잘린 쌍장.
하지만 잘린 쌍장의 힘은 소멸되지 않고 사선에게 계속 접근해 왔다.
사선도 이 일 검으로 안 끝날 것을 예상했다.
그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매화가 여덟 송이가 피어났다.
매화의 꽃이 무극장과 부딪힌 결과.
콰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다.
사선이 들고 있는 검을 내렸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쌍장을 소멸시켰더니 곧바로 날아오는 또 다른 기운.
심지어 그 구체가 회전하는 게 아닌가.
“내가 저놈을 너무 얕보았구나. 묵룡회류장까지 사용하다니.”
파괴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장법이 묵룡회류장이었다.
묵룡장의 업그레이드 버전.
앞서 두 개의 장을 날렸으니 그 파괴력은 한층 더 강해진 상황.
거기다 회전력까지 더해지니 막는 게 족히 세 배는 어려워졌다.
“사선. 저희가 돕겠습니다.”
“모두 매화검진을 펼쳐 막아라. 내가 중심을 잡겠다.”
한 번만 더 막으면 된다.
파괴력이 강한 만큼 내공도 굉장히 많이 소모했을 터.
이 공격으로 어쩌면 내공을 전부 사용했을 수도 있었다.
분명 내공을 다 사용했을 것이다.
이준이 현경에 들지 않은 이상 말이다.
“예!”
사선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이 진을 이루었다.
그들의 발밑에 붉은 매화가 그려졌다.
화산이 자랑하는 진짜 매화검진이다.
자신들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한 진법.
매화검진을 펼친다면 적어도 한 단계 차이 나는 적을 이길 수도 있었다.
거기다가 이곳에 있는 이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인가.
이쪽의 등급으로 치면 죄다 AA급 초입은 됐다.
이준이 인주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곤 하나 자신들이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매화검진을 펼친 사선의 앞에 붉은 막이 생기자.
“출!”
사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매화검진을 펼친 이들이 한 몸인 양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그들의 검에서 나간 검기가 붉은 막의 기운과 합쳐져 앞으로 뻗어나갔다.
이준이 쏘아 보낸 회류장과 정면으로 부딪친 기운.
쿵 소리와 함께 빛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 * *
가문에서 수련하고 있던 검제 박춘식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 무슨 무지막지한 기운이란 말이냐.”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김혜연이 달렸다.
“느끼셨지요?”
“느꼈소. 굉장히 안 좋은 느낌이오.”
“가 보실 거죠?”
“그렇소.”
“저도 함께 가요.”
“됐소. 검을 놓은 지 오래되지 않았소? 애들이 올 때까지 집에 있으시오.”
철혈검가는 현재 가주인 검왕과 정예들이 집을 비운 상태였다.
신기지가의 요청으로 로열바이오에서 만든 알약의 유통 경로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서 가문이 비어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검제와 철혈여검인 김혜연이 가문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정예 병력이 나가 있어도 괜찮았다.
“혼자 가시면 위험할 거예요.”
“괜찮을 거요. 방금 느낀 기운에는 창제의 기운도 섞여 있으니 말이오. 금방 다녀오리다.”
박춘식은 벗어 놓은 겉옷을 챙겨 입고는 경공을 펼쳐 철혈검가를 나섰다.
그가 향한 방향은 검산 그룹이 있는 곳이었다.
주변의 빌딩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S급 각성자의 경공은 검산 그룹이 있는 서초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검산 그룹 빌딩이 세워진 반경 10km 부근.
가문 연맹에서 나온 각성자들이 시민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안쪽에선 경계진법을 담당하는 각성자들이 황급히 달려와 다시 진법을 발동시켰다.
박춘식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헉!”
“거, 검제 님!”
“안쪽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시민들까지 대피해?”
“차, 창제가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상대는?”
“아직 파악이 안 됐습니다. 처음에는 검산의 회장이랑 싸웠는데 지금은 도중에 난입한 이들과 싸우는 중입니다.”
“난입한 이들? 창제와 싸울 수 있는 각성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던가?”
검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게 창제였다.
그런데 이 정도의 충돌을 보이는 거라면 꽤 격전을 치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 보겠네.”
가문연맹 각성자는 검제를 막을 수 없었다.
괜찮겠냐는 말도 검제에게는 실례였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그를 걱정하겠는가.
그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각성자들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이곤 각자 할 일을 했다.
박춘식은 경공을 펼쳐 안으로 접근할수록 피부가 따끔거림을 느꼈다.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자신에게까지 전해진 것.
박춘식은 뒤늦게서야 창제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기운! 천외천이구나!”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피부를 자극하는 살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 깊숙이 들어간 박춘식.
거의 다 왔을 즘에야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허…”
박춘식이 입을 떡 벌렸다.
그의 앞에 보이는 광경.
검산 그룹이 서 있던 자리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주변의 건물도 똑같았다.
마치 지구가 종말을 했을 때의 광경이랄까.
무너진 건물의 잔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위에는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피 냄새가 공기를 타고 진하게 전해져 왔다.
쿵 소리와 함께 주위로 퍼진 충격음.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충격파로 인해 가루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놈들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대놓고 싸움을 걸어온 적이 없거늘. 어떻게 된 일인지.”
박춘식이 검을 뽑았다.
천외천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저들은 존재만으로 세상에 위협이 됐다.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이들이라 해도 될 정도.
천외천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최대한 많이 없애야 했다.
“저 검진부터 부숴야겠군.”
파직-
박춘식의 몸에서 전류가 흘렀다.
그가 천뢰기를 꺼내 든 것.
그는 검진을 향해 가볍게 검을 그었다.
* * *
“후욱… 후욱….”
이준이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극장법을 오래 사용한 나머지 내공이 점점 동났다.
그의 내공이 약해질수록 천외천은 악착같이 버티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허억… 허억… 끈질긴… 놈… 허억….”
“후욱… 오래도 살았으면서 죽기는 싫은…가 보지?”
“다 죽어 가면…서 주둥아리는 아직도 나불대는구나.”
이준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가슴이며 팔이며 옆구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피를 잔뜩 흘렸다.
간간이 파랑이도 옆에서 도왔지만 역시나 숫자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숫자뿐인가.
저들 모두가 괴물 그 자체였다.
무려 AA급 각성자만 수백 명.
사선 혼자였다면 이미 죽이고도 남았을 건데 저들 모두를 상대하는 건 아직 역부족인 듯싶었다.
중국 청도에서처럼 사냥을 하면 모를까.
정면 대결을 한 자신의 실수였다.
“죽일 수 있으면 어서 죽여 봐. 나처럼 너도 힘든가 보지?”
이준은 힘겨워하면서 웃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의 미소에 사선이 발끈했지만 힘들긴 마찬가지.
매화검진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하들 모두가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괴물이야. 저 어린 나이에 화경을 밟고 있다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가장 큰 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무엇보다 보통의 무공을 가졌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터.
인주의 무공이기에 더욱 경계가 됐다.
만약 무공의 숙련도가 더 높아지고 내공이 지금보다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꼭 죽여야만 해.’
어쩌면 인주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괴물같이 강하지 않나.
당소미가 괜히 저놈을 위험하다고 가리킨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 몬스터! 삼선조차 블루급 이상은 제어하지 못하는데 레드급 이상의 몬스터를 가지고 있어. 위험해.’
사선은 오늘 꼭 이준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오늘 못 죽이면 천추의 한을 남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선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한편 이준은 사선을 도발하면서 내부를 점검하는 걸 잊지 않았다.
‘혼원신공이 빠르게 내공을 채워 주고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어. 역시 아직은 천외천을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야. 계획대로 이번 일이 끝나면 혼자 수련을 해야겠어.’
로열바이오의 일이 터져서 계획이 틀어졌다.
오늘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아직은 기고만장할 때가 아니라고.
적어도 혼원신공이 8성에 올라야지만 그나마 사람 구실 한다고 했던가.
무극자 사부의 말이 옳았다.
이대로면 인주를 만나기도 전에 그의 수하들에게 쓰러지게 생겼다.
그 전에 앞에 있는 놈들만은 전부 쓸어버려야 했다.
오늘같이 적의 전력을 대량으로 깎을 기회는 없을 테니까.
정 안되면 금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죄다 불러다가 쓸어버릴 생각까지 했다.
이준도 사선과 같은 생각을 하며 혼원신공을 재차 끌어올리고 있을 때.
파직-
쾅!
저 뒤편에서 번개가 쳤다.
검제 박춘식이 푸른 뇌전을 몸에 칭칭 두르며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