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속보입니다. 대구의 로열바이오 공장이 누군가의 습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마치 몬스터가 출몰해서 파괴한 지역의 모습과 같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가 로열바이오 공장의 상황을 뉴스에 보내고 있었다.
넓은 공장에 아홉 개의 거대한 구덩이.
마치 아홉 발의 미사일을 쏜 듯한 흔적이었다.
빌딩에 걸려 있는 전광판을 본 시민들은 누구의 소행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저 정도의 위력이면 레드급 몬스터겠지?”
“응… 그런 것 같아. 또 라이거 떼가 출몰한 거 아닐까?”
라이거는 레드급 몬스터 중 하나였다.
사자의 탈을 쓴 인간형 몬스터로 일반인이 접한 놈 중 제일 강한 놈이었다.
라이거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던 부산.
아직도 폐허의 도시로 있었으며 가문 연맹회에서 수복하지 못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부산 출신들은 라이거를 보면 치를 떨었다.
시민들이 겪은 최악의 몬스터.
지금 전광판에 보인 로열바이오의 공장이 처음 라이거가 등장했을 때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지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부산에 이어 대구까지?”
“대구에 대피령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친척이 대구에 사는데 빨리 피난 오라고 전화해야겠어.”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다.
부산에 이어 대구에 라이거의 흔적 같은 게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였다.
방송을 하고 있던 기자가 당황해했다.
“저거 방송 사고 아니야?”
“뭘 들었길래 저래?”
화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의아해할 때.
“어? 가문 연맹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데?”
“어디?”
“진짜네. 철사자가 기자 회견을 하나 보구나.”
철사자는 진씨 가문의 가주인 진병철의 이명이었다.
빌딩에 있는 전광판이 죄다 가문 연맹회의 기자 회견 장면으로 전환됐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보던 방송을 끄고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하던 일까지 멈추고 모두가 진병철의 말에 집중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진씨 가문의 가주 진병철입니다. 다름 아니라 가문 연맹회의 자리를 빌려 제가 기자 회견에 나선 이유는 로열바이오의 사건 때문입니다.]
“가문 연맹회에서 입장을 발표하나 보다.”
“부산의 일을 생각하면 빠른 조치네.”
부산에 라이거가 출몰했을 때는 대처가 굉장히 늦었다.
한 구역이 먹힐 때까지도 가문 연맹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해운대를 비롯한 해안가 쪽이 전부 균열 오염이 되어서야 뒤늦게 나섰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때의 사건을 비교해 보면 로열바이오의 일은 굉장히 빠른 처신.
이제야 좀 가문 연맹회가 일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진병철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로열바이오는 가문 연맹회에서 파견한 각성자로 인해 파괴된 것입니다.]
“응?”
“또 영역 다툼이라도 했나?”
“저건 심한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가문 연맹회를 통해 기자 회견을 하는 거야?”
영역 다툼을 하면 대체로 가문의 이름으로 기자 회견을 연다.
지금처럼 가문 연맹회를 통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곧이어 그 이유가 나왔다.
[로열바이오에선 아주 위험한 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약을 먹은 각성자는 마인처럼 마기를 사용했으며 성격이 파괴적인 성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약에는 섭혼 효과가 있어서 약을 복용한 사람은 금령술사에 의해 꼭두각시가 됩니다. 로열바이오에서 만든 위험한 약이 얼마나 유통됐는지 확인 중이오니, 로열바이오에서 유통한 약은 절대 먹으시면 안 됩니다.]
진병철이 계속 말을 이어 갈 때마다 사람들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일반인이 복용한다면 일시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가진다는 내용.
하나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종래엔 뼈만 남기고 죽는다고 했다.
“로열바이오에서 만든 약 우리 집에도 있는데?”
“저기에 나온 약 맞아?”
“그건 모르겠는데 찜찜해.”
“그러면 그냥 버려. 우리 같은 일반인이 먹으면 위험하다잖아.”
“그래야겠다.”
끝으로 진병철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가 로열바이오에서 찾은 단서는 하나입니다. 로열바이오는 한국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제3의 세력이 만든 회사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검산 그룹쪽에 대량으로 약을 유통했다는 것입니다. 저희 가문 연맹회에서는 검산 그룹을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 적임자로 창제 이준 님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이준이란 이름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피 냄새가 진동을 했으니까 이번 일도 심상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어제랑 같이 날씨 참 좋구만.”
이준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해가 쨍쨍하게 떠 있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서인지 날씨 한번 기똥찼다.
이준이 거대한 빌딩 앞에 섰다.
“재벌이 참 좋아. 이런 고급진 곳에서 살고 말이야.”
그 또한 재벌과 다를 게 없었다.
한남동이라는 금싸라기 땅이 전부 다 가문의 것.
그는 신력권가의 가주였다.
그저 한옥 집에서 살 뿐이지.
오히려 검산 그룹보다 돈이 많은 곳이 신력권가였다.
괜히 오대 가문이겠나.
권왕이 가주일 때는 가문이 점점 쇠락했으나 이준이 가주가 돼서는 돈을 끌어모았다.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요정의 꿀 아이스크림.
이준에게 거의 모든 로열티가 돌아갔으며 최상위 요정의 꿀은 아직도 각 가문의 사모님들이 환장하고 찾았다.
심지어 검제의 부인인 철혈여검 김혜연까지 요정의 꿀을 구했다.
돈을 갈퀴로 끌어다가 쥐어 줘도 못 구하는 게 바로 최상위 등급의 요정의 꿀이다.
뿐인가.
이준은 암상의 은인이었다.
암상의 회장인 한금만은 뒤에서 신력권가의 자금을 직접 불렸다.
도왕에게 복수를 해 준 보답이라나.
무튼 예전의 신력권가가 아니라, 현재는 금력, 무력, 심지어 권력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게 이준이었다.
“때마침 방송도 나오네.”
그의 눈에 전광판이나 TV가 보이진 않았지만 가문 연맹회에서 기자 회견하는 게 들려왔다.
이제 검산으로 들어갈 차례.
이준은 회전문을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의 분위기는 상당히 흉흉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의 옆구리에 차여진 검.
검산 그룹의 각성자였다.
“소요검대인가?”
소요검대는 검산 그룹의 보안을 담당하는 부대였다.
외부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달까.
C에서 B급 각성자로 이루어진 이들로 검산 그룹의 문을 지켜 왔다.
그들은 이준의 등장에 바짝 경계를 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위에서 지시가 안 내려온 거야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날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지?”
이준이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소요검대는 그의 발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용무를 말하십시오.”
“내가 이걸 속아 줘야 하나 아니면 입 아프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나.”
이준은 앞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각성자인 소요검대가 그의 목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멈추십시오. 용건을 말하지 않고 접근한다면 저희도 공격할 수… 컥!”
소요검대의 대장이 말을 하다 말고 켁켁거렸다.
그 원인은 바로 이준 때문.
언제 움직였는지 이준의 손에 소요검대 대장의 목이 붙잡혀 있었다.
“손님이 왔으면 말이야. 정중하게 대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아무리 검산 그룹과 사이가 안 좋다지만 살기부터 드러내는 게 정상이야?”
이준의 눈이 회안으로 번들거렸다.
고저 없는 목소리도 아닌, 평상시의 해맑은 음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요검대의 인원들은 그에게 바짝 쫄았다.
“그, 그 손 놓지 못해?”
“대장을 놓아라!”
“안 그러면 우리도 너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소요검대는 자신들이 위축되어 있다는 걸 인지한 건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저 봐. 제 주제도 모르고 살기를 보이잖아.”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심사가 뒤틀릴 때만 보이는 표정.
무극대나 특별반 학생들이 봤다면 기겁할 얼굴이었다.
“그냥 싸그리 매장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내가 너무 살인자 같고 그러니까 살려는 줄게. 대신.”
콰직!
이준의 손가락이 소요검대 대장의 단전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단전이 깨진 고통에 소요검대 대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를 내팽개친 이준이 보법을 펼쳐 소요검대의 사이를 종횡무진 다녔다.
이준이 다가온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검을 뽑은 소요검대.
검신이 다 드러나며 이준을 향해 휘두르려는 찰나.
“커억!”
“악!”
“푸웁!”
백 명이 넘은 인원이 일제히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단전을 부여잡고 있었다.
“파랑아. 흡수해.”
“뀨.”
[파랑이가 패시브 스킬인 마기(AA)를 사용했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이준의 어깨에 앉아 있는 파랑이가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를 먹었다.
그들의 단전에 있던 마기가 그릇이 깨지니 대기로 나온 것이다.
‘소요검대까지 마기를 지닌 걸 보니, 검산 그룹 각성자는 전부 알약을 먹은 것 같아.’
소요검대는 검산 그룹에서 가장 약한 부대.
이들까지 마기가 깃든 알약을 먹었다는 건 전부가 먹었다는 사실과 같았다.
“죽기 싫으면 여기서 누워 있어.”
이준이 소요검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은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호출용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 버튼 누르지 말고 그냥 검산 회장 오라고 연락해요.”
호출용 버튼은 검산의 방패라는 매화검대를 부르는 장치였다.
그래 봤자 이준에겐 무의미했다.
매화검대라고 해 봤자 B에서 A급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
이준에겐 소요검대나 매화검대나 매한가지였다.
“네, 네? 아, 아닌데… 전 아무 짓도…”
“무공도 모르는 사람을 죽일 만큼 나쁜 사람 아니거든요. 검산 그룹 회장한테만 연락하고 여길 나가는 게 좋겠어요. 곧 큰 소란이 일거거든요.”
이준이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무서움에 몸이 굳어 버렸다.
소요검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력화시킨 이준이었으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소요검대도 괴물이었는데 그런 이들을 이준이 단박에 눕힌 것이다.
“호출기 줘 보세요. 제가 직접 할게요.”
이준은 안내 테스크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검산 그룹 회장에게 연락할 버튼을 누르려는데.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검산 그룹 회장인 김환국이 나타났다.
“배짱 한번 좋네. 가문 연맹회 기자 회견도 봤을 텐데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했대?”
“내가 너를 피할 이유라도 있나?”
“지은 죄가 없다 이건가?”
“증거를 가져와야지. 무턱대고 쳐들어와서 깽판을 부리는 건 무슨 경우지?”
“증거라면 당신네들이잖아?”
“심증이 아니라 물증을 가져와. 네가 하는 행동은 무지성으로 우릴 핍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잡아떼는 전략으로 가는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잡아떼는 게 아니라 우린 로열바이오에게서 약을 받지 않았다.”
“이미 다 복용했겠지.”
“그러니까 물증을 내보이라고. 그러면 내가 순순히 가문 연맹회로 찾아가지 않겠나.”
김환국이 시치미를 뗐다.
때마침 검산 그룹으로 카메라와 기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검산 그룹 산하 KSN은 물론 각종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온 것 같았다.
그들의 눈에 소요검대가 쓰러져 있는 게 들어왔지만, 제일 중요한 건 검산 그룹의 회장과 이준이었다.
이번 일의 중심에 서게 된 두 사람.
“회장님. 가문 연맹회의 기자 회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로열바이오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약을 구매하셨습니까?”
“말씀 좀 해 보십시오.”
기자들은 소요검대를 무시한 채 김환국에서 질문을 쏟아 냈다.
“기자양반. 가문 연맹회에서 증거를 들고 기자 회견을 했습니까?”
기자들이 웅성댔다.
그들은 가문 연맹회의 기자 회견만 듣고 달려온 것이다.
아니,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장비만 챙겨서 왔다.
증거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한 상황.
“그렇긴 하지만…”
“증거도 없이 몰아붙이는 건 가문 연맹이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와 검산그룹이 창제에게 밉보였다고는 하나 가문 연맹회와 손을 잡고 모함을 하는 건 어떤 경우입니까. 혹, 이를 계기로 우리 검산그룹을 없애버릴 계획인 건 아닙니까?”
김환국이 울분을 토해 내며 소리를 높였다.
기자들도 김환국의 외침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근래에 들어 가문끼리의 전쟁이 없다지만, 옛날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다.
누명을 씌워 가문을 없애는 건 허다했으니.
김환국의 말도 얼추 맞는 말이었다.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자 그가 이준을 슬쩍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란 표정.
그의 시선에 이준의 입매가 비틀렸다.
‘여론을 등에 업고 설치겠다? 증거도 없이 쳐들어온 내가 악역이 되는 거야?’
하나 김환국은 이준의 성격을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때는 무극자의 성격에 물들어가는 시점.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무극자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상태였다.
이준에게 논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