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드래곤의 심장은 또 뭐냐?]
“어? 사부님이 모르시는 것도 있네요.”
[사부는 무림과 관련된 것만 안다.]
“아하, 전 다 아시는 줄 알았죠.”
[그래서 드래곤의 심장은 뭔지 말해 보거라.]
“음… 청룡의 정수 같은 거요?”
[먹으면 내공이 늘어나거나 하는 걸 말하는 것이냐.]
“네. 드래곤의 심장은 내공이 아닌, 마력이 생겨요.”
마력은 마법의 근본이 되는 힘. 동양권의 사람들이 무공을 익힌다면 서양권 사람들은 주로 마법을 익혔는데, 마력은 그들에게 내공과 같은 개념이었다.
[……]
무극자 사부가 조용해졌다.
잠시 흐르는 침묵에 이준이 그를 불렀다.
“사부님?”
설마 마법이 뭔지 잘 모르는 건가?
뭐, 과거의 무림인이라면 현대의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를 수도 있는 건데.
조용해진 사부를 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무극자 사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천주가… 드래곤의 심장을 먹었다? 설마 천주의 몸에 마력이 자리잡은 것이냐?]
“네. 왜 그러세요?”
[아니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평상시 괴짜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무저갱 속에 숨은 괴물의 음성 같았다.
마치 죽음의 기운이 흐른달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왔다.
회귀한 후, 그 누구에게도 느껴 보지 못했던 무력감이 찾아왔다.
‘영혼밖에 없는 노인이 정말 맞아…?’
전신의 털이란 털은 모조리 치솟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부의 살기는 일반인이 대할 힘이 아니었다.
S급에 있는 자신조차 숨을 쉬기 힘들었으니까.
“사부… 님!”
그 짧은 시간,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었다. 미안하구나. 잠시 혼자 있을 테니 넌 일을 마저 하거라.]
사부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사부는 천주가 마력을 가졌다는 부분에서 반응했어. 무엇 때문이지?’
무극자 사부는 아직도 비밀이 많았다.
특히 천주에 대해서.
자신의 첫째 사형이라는 것.
무공에 관해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것 이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야.’
사부가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천주를 직접 만나지 않은 이상.
사부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드래곤의 심장을 얻고 나면 이유를 알겠지.’
이준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속 생각한다고 답을 찾지 못한다.
천외천의 일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천주를 직접 마주한다면.
사부가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호리병 모양의 증기 기관 앞에 선 이준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무턱대고 증기 기관을 부술 수도 없었다.
이걸 부쉈다간 공장이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마기는 걷잡을 수 없이 대기 중으로 퍼지게 된다.
“마기가 새어 나가게 구멍을 뚫어 볼까? 조는 어떻게 생각해?”
[난 잘 거니까 말 시키지 마. 작은 주인 놈아.]
마조가 쌀쌀맞은 말투로 대답했다.
흑염 마조는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잠을 자면서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기에 더 이상 마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음… 이 마기를 다 흡수할 방법이… 아!”
이준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제일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정말 멍청했네.”
이준은 창고 밖으로 나와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건물 위, 여러 개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파랑아 네가 제일 큰 굴뚝의 연기를 마셔.”
“뀨뀨!”
파랑이가 좋다고 이준의 어깨에서 팔짝 뛰어올랐다.
조잡한 마기지만 그 양이 어마무시했다.
이 정도의 양이면 아무리 조잡한 마기라도 파랑이와 이준에게 큰 도움이 된다.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에서 폴짝 내려 커다란 굴뚝에 도착했다.
“먹어도 돼.”
“뀨!”
파랑이가 굴뚝으로 올라가서 섰다.
검은 연기가 파랑이의 몸을 집어삼켰다.
시야에서 사라진 파랑이.
곧이어 이준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파랑이가 패시브 스킬인 마기(A)를 사용했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
……
……
파랑이가 마기를 잘 먹고 있는지.
똑같은 메시지가 주르륵 나왔다.
“이제 나도 마기를 흡수해 볼까?”
이준이 자리를 옮겨 파랑이가 올랐던 굴뚝보다는 작은 곳에 도착할 때였다.
[파랑이의 패시브 스킬인 마기(A)가 AA등급으로 상승했습니다.]
마기를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한 등급이 올라 버렸다.
* * *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
……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혼원신공이 조잡한 마기를 정화합니다.]
……
……
이준은 파랑이와 함께 검은 연기를 거침없이 먹어 치웠다.
아니, 이준과 파랑이뿐만 아니라 파멸겁도 한몫 거들었다.
[파멸겁(기본)이 조잡한 기운을 머금었습니다.]
[파멸겁(기본)이 조잡한 기운을 머금었습니다.]
[파멸겁(기본) - 제2단계 형태까지 남은 경험치: 15.2%(100%)]
[형편없는 기운에 파멸겁(기본)이 떨떠름해합니다.]
[파멸겁은 파천멸기의 기운을 원합니다.]
“조금만 참아. 여긴 파천멸기를 지닌 놈들이 없어.”
웅웅.
파멸겁이 투정을 부렸다.
녀석은 아주 고상했다.
파랑이는 잡식이었는데 파멸겁은 파천멸기 이외의 기운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입맛이 참 까다로운 녀석을 달래 보았지만.
[파멸겁(기본)이 조잡한 기운을 머금었습니다.]
[형편없는 기운에 파멸겁(기본)이 당신을 경멸합니다.]
[파멸겁(기본)이 당신에게 말을 전해 옵니다.]
[파멸겁(기본): 다음에도 이딴 더러운 기운을 먹인다면 널 잡아먹고 말겠다.]
이준은 어이가 없었다.
도움 좀 요청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
한 번만 더 조잡한 기운을 먹였다간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만 같은 말투였다.
“처음으로 한 말이 날 죽이겠다니. 마조도 그렇고 사부 곁에는 정상이 없네.”
인간도 아닌, 고작 무기 따위가 주인을 죽이겠다고 협박이나 하고.
막말했다고 화를 내야 했지만 이준은 꾹 참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파랑이보다 파멸겁이 흡수하는 마기의 양이 더 많았다.
“너 츤데레냐?”
[파멸겁(기본)이 당신에게 말을 전해 옵니다.]
[파멸겁(기본): 츤데레가 뭐냐. 뭔진 몰라도 좋은 말은 아닌 거 같다!]
[파멸겁(기본): 이 빌어먹을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으니 닥쳐라.]
[파멸겁(기본) - 제2단계 형태까지 남은 경험치: 16.0%(100%)]
츤데레라는 말에 파멸겁이 발끈했으나 마기 흡수를 그만두지 않았다.
파멸겁의 성격은 아무래도 츤데레인 것 같다.
투덜거리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성격이라고 할까.
검은 연기 중에서도 이질적인 기운은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녀석이 막았다.
그 이질적인 기운은 섭혼 효과가 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그런 기운 말이다.
자신에겐 다가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전부 차단하는 게 파멸겁이었다.
“그래, 무럭무럭 먹고 자라라. 빨리 2단계 형태로 가야지.”
SSS급 무기에서 더 업그레이드되면 얼마큼 강해질까.
정말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증기 기관에서 뿜어 나온 마기.
대기에 흩어졌던 마기까지 전부 흡수하자 어느새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주변이 맑아졌다.
지금은 밤이라 그렇지, 낮이었다면 대낮처럼 환했을 것이다.
“후우. 다 끝냈다.”
“뀨우!”
파랑이가 폴짝폴짝 뛰어와 어깨에 앉았다.
혀로 발을 할짝이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울었다.
“파멸겁도 돌아와.”
공중에 떠 있던 파멸겁이 이준의 손으로 날아왔다.
창으로 변해 있었던 파멸겁이 원래의 형태인 짧은 단봉으로 돌아갔다.
“고생했어.”
웅웅.
파멸겁에서 작은 떨림이 전해졌다.
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준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파멸겁을 허리춤에 찼다.
“생각보다 내공이 꽤 늘었네. 파랑이도 그렇지?”
“뀨우!”
[성장도 - 90%]
파랑이의 성장도도 드디어 90%가 되었다.
그동안 정말 찔끔씩 밖에 오르지 않았던 성장.
로열바이오 공장의 마기를 먹고 큰 성과를 내었다.
이제 남은 성장도는 10%.
이 10%만 올리면 드디어 파랑이가 블랙급 몬스터로 변하게 된다.
십미호란 종.
과연 기존의 파랑이와는 어떤 차이가 날까.
기대됐다.
파랑이뿐만 아니라 자신과 파멸겁도 이득을 봤다.
한국을 혼돈으로 빠트릴 계획을 하다가 도리어 자신을 도와준 천외천 놈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참 애매했다.
“여긴 폭파해야겠지?”
이준은 로열바이오의 공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넓었다.
무공을 사용해도 꽤 큰 위력을 가진 기술을 써야 할 듯싶었으나.
“그래. 파랑이에게 시켜야겠다.”
이준이 파랑이를 보며 말했다.
“뀨우!”
파랑이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이준이 공장을 파괴할 자리를 찾았다.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이 좋겠다.”
경공을 펼쳐 산을 올랐다.
로열바이오의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한 이준이 파랑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랑아. 시작해.”
“뀨!”
파랑이가 고개를 들어 울었다.
녀석의 발 맡에서부터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기에 몸을 맡긴 파랑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앙증맞은 송곳니가 날카롭고 거대해졌다.
작았던 앞다리와 뒷다리가 커지면서 몸집을 불린 파랑이.
녀석의 꼬리가 아홉 개로 펼쳐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산 중턱을 다 차지하고도 남을 만한 덩치에 이준이 입을 떡 벌렸다.
“우리 귀여운 파랑이 어디 갔어! 빨리 돌려내!”
이준이 파랑이의 밑에서 목청껏 외치는데도 파랑이는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아홉 개의 꼬리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불덩이들이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며 올라갔다.
“크아아악!”
파랑이가 포효하자 검은 불덩이가 로열바이오 공장을 향해 폭사했다.
콰광쾅쾅!
파랑이의 기술인 죽음의 불꽃이었다.
암화는 공장 안에 있는 모든 걸 지상에서 소멸시켰다.
모든 걸 깨끗이 소각하려는 듯.
암화는 공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 * *
“오미연이 죽어?”
“예….”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몸을 돌렸다.
십선의 회의에 있었던 이들 중 한 명인 사선.
그는 매화의 주인이었다.
“어쩌다가?”
“주영재가 일을 크게 벌이다가 꼬리를 밟힌 듯싶습니다.”
“멍청한지고. 쯧쯧. 안타까운 인재가 죽었구나.”
사선이 혀를 찼다.
말과는 달리 전혀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누구한테 죽었느냐.”
“들리는 바로는 창제에게 죽었다 합니다.”
“또 그놈의 이름이 나오는구나.”
아시아 학원 대항전을 망친 장본인.
천외천의 대계를 뒤로 미루게 한 범인이었다.
“어떤 조치를 취할까요?”
“곧 인주께서 나오실 시간이다. 우리가 그동안 일을 실패했다는 걸 아시게 된다면 크게 실망하실 게야.”
실망만 할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게 할 것이다.
“십선과 구선도 놈의 손에 죽었다 하니, 한국을 관리하지 못한 나를 나무라실 거다.”
사선이 이를 뿌득 갈았다.
한국에 자신들의 세력을 숨겨 놓았었다.
귀살대가 설쳤을 때도, 도왕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자신들이 키워 놓은 세력은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세력 라인이 일시에 무너졌다.
인주의 명으로 한국에는 손을 뗐지만 사선으로선 아주 아까운 일이었다.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 기회였으니까.
“인주께서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다.”
“한국으로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야겠어. 창제란 놈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참에 녀석을 만나야겠다.”
삼선을 제외한 가장 강한 사선.
인주 사마영의 측근이자 매화의 주인이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