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사 대주는 두 분을 서울로 모셔다드려.”
“가주께서는 같이 안 올라가십니까?”
“난 이걸 해결하고 바로 올라갈게.”
이준은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투병한 호리병 모양의 기계를 가리켰다.
천외천 측 인원이 죽었다곤 하나 대기를 오염하는 이 기계는 남아 있었다.
이걸 부숴야 대구의 일은 마무리가 됐다.
“같이 마무리를 하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병철이 함께 하자고 했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먼저들 올라가 계세요.”
“우릴 구하러 와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또 어려운 일을 맡깁니다.”
“다 제가 잘난 덕분이지요.”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이준은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행동.
무극자의 성격이 그에게도 전염된 듯하다.
“아 참. 두 분의 상세는 완전히 호전된 게 아니에요. 내공을 일으키지 마세요. 자칫 상처가 덧날 수 있어요.”
이준은 진병철과 한지웅에게 내공을 운용하는 걸 금지시켰다.
죽기 직전의 사람을 살려놓은 것뿐이지, 지금도 그들의 내부에선 치료가 한참 중일 것이다.
무리해서 내공을 일으키다간 회복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진병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이준을 향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꼭 진경수가 이준을 볼 때마다 보였던 눈빛.
진병철도 아들과 같이 이준의 열혈한 지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걱정되는 건 신기가주님인데 그 몸으로 천외천의 꼭두각시를 찾을 수 있으시겠어요? 약을 복용한 놈들이면 꽤 강할 텐데.”
“할 수 있는 대로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저희 신력이 도와드려요?”
“신력이 말인가?”
“무례한 말이지만 신기지가의 힘만으로는 천외천의 꼭두각시에 위협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당할 여지가 있죠.”
“음… 맞는 말이긴 하네.”
한지웅은 순순히 인정했다.
신기지가는 순수한 무가가 아니다.
신기의 장점은 무공이 아닌 수많은 진법과 방대한 정보, 그리고 머리였다.
순수하게 무공으로는 오대가문의 말석도 아니고 그 밑에 있는 가문들과 비슷했으니.
천외천의 꼭두각시에게 당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힘이 필요했던 것.
이준의 제안은 솔깃했다.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는 대가는?”
권왕이었다면 이를 계기로 신기지가를 먹으려 했을 터.
이준은 권력을 탐하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산 그룹 나눠 가지죠.”
“헉!”
“검산을 말인가!?”
진병철과 한지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씨가문과 더불어 오대가문의 밑에 있는 곳 중 제일 커다란 단체였다.
그런 거대 단체를 나눠 갖자고 하니 두 사람의 눈이 커진 것이다.
패왕도가가 사라진 시점부터 가문들의 균형이 깨지긴 했으나.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세력 확장을 하지 않았다.
세력 확장을 하는 동안 혹시라도 다른 가문이 뒤를 치기라도 하면 낭패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검산 그룹 산하 길드의 반발이 심할 텐데. 그리고 충분히 자네 혼자 검산 그룹을 차지할 수 있을 건데 왜 나눠 먹자고 제안하는 건가?”
“전 신력을 정예화하는 것도 벅차요. 그런데 검산 그룹까지 흡수하는 건 욕심이죠. 오히려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검산이 통제에 벗어날 수도 있어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나눠 갖자는 거지요.”
“그러니까 통제할 수 있는 한도 내까지만 나눠 갖자는 건가?”
“네. 신기와 진씨는 화산이라는 무력을 손에 넣을 좋은 기회죠.”
“그들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긴 하지.”
신기지가가 부족한 건 무력이었다.
강한 무공을 사용하는 각성자의 부재.
한지유가 급성장을 보이곤 있으나 아직은 영향력이 적었다.
적어도 AA급은 되어야 신기지가가 무력에서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거다.
그 전에 부족한 무력을 채우는 수단으로 검산의 일부를 밑에 두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부족하네. 자네가 모든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걸 굳이 우리와 나누겠다는 게 잘 납득이 안 가서 말일세.”
“한민성 이사장님한테도 말씀드렸지만 천외천은 신기가주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놈들이에요.”
“알고는 있지만…”
“아니요. 가주님은 천외천의 극히 일부만 본 거예요. 예를 들어 본진에서 보낸 척후병들만 봤다고 해야 할까요?”
척후병의 역할은 단 하나.
적을 미리 파악하는 역할이다.
그들의 임무는 그걸로 끝이었다.
대부분의 척후병은 발이 빠르지, 무력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한지웅은 천외천의 척후병 같은 존재들을 보고 괴물이라고 말하는 것.
천외천의 진정한 힘인 천주의 세력을 본다면 기절할 터.
그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인주와 지주도 천주에겐 꼼짝도 못했다고 한다.
과거 그와 아주 잠깐 마주쳤을 때가 생각 나자.
지금도 손이 떨려왔다.
천주는 여태 봐 왔던 천외천과는 격 자체가 다른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자네는 천외천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신기가주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하죠.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대가문을 비롯한 한국에 있는 전 각성자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천외천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겁니다. 이건 확실해요.”
새로운 바람이자, 대한민국의 창제가 하는 말이었다.
무지막지한 무력을 가졌으며, 거침이 없는 그가 말이다.
검산그룹을 나눠 갖자고 제안할 때도 흐트러짐 없는 말투 보였던 그가 천외천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준의 음성에는 공포나, 두려움, 경계와 위험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 정도란 말인가?”
이준과 한지웅이 대화를 나누는데 진병철이 살짝 끼어들었다.
“천외천이 누구입니까?”
“진 가주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여길 오셨어요?”
“전 신기가주가 도움을 요청해서 온 겁니다.”
“천외천에 대해선 진 가주님에게 말씀 안 드렸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도 지금 시점에는 모두가 천외천에 대해서 몰랐었다.
검제와 신기학사만 천외천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찾아다녔다.
진병철이 그들에 대해 모르는 건 당연했다.
괜히 천외천의 존재를 알았다간 패닉에 빠질지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랐다.
힘이 없었던 과거와를 달리 천외천에 대항할 실력이 있었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과거가 많이 달라진 상태.
확실한 아군에게 이제는 천외천의 존재를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이세계 놈들이라고 보면 쉬워요.”
“허. 나쁜 놈들 아닙니까?”
“나쁜 놈이자 위험한 놈들이기도 하죠. 무튼 신기가주님은 제 말씀 이해하시죠?”
“자네의 말 잘 이해했네. 철왕과 검제께도 자네의 생각을 전하겠네.”
“그러면 전 검산 그룹을 나눠 갖는 걸로 알게요.”
한지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창고에서 나온 무극대와 두 가주를 배웅하는 이준이 진병철을 불렀다.
“진 가주님.”
“네.”
“잠시 귀 좀.”
“말씀하십시오.”
이준과 진병철이 남몰래 속삭였다.
기막까지 펼쳐진 덕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지웅과 무극대에게 들리지 않았다.
“가주님은 또 뭐 하신데?”
“낸들 알겠습니까?”
“하루만이라도 가주님이 되어 보고 싶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어.”
“봉팔 형님.”
“왜?”
“그냥 관심 끄세요. 그게 편합니다.”
이준의 행동은 언제나 예상 밖이었다.
궁금증을 미치도록 자극하는 행동.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도 계속 생각나게 했다.
다음은 무엇을 할까.
사람을 궁금하게 했다.
김봉팔이 어떻게든 기막을 뚫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이준은 진병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 가주님 오대가문에 들고 싶죠.”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모든 가문은 오대가문에 드는걸 꿈꿀 것입니다.”
“그러면 검산 그룹을 나눠 가질 때 말이에요. 화성시 쪽 영역 안에 있는 독림이랑 화봉사란 게이트는 꼭 선점하세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 두 개의 레드존 게이트에 투존의 무공이 나오거든요.”
투존은 학교에서 배우는 무림사에도 많이 나오는 인물이었다.
1세대의 각성자.
검제보다는 못했지만 다른 오왕보다는 강했던 사내였다.
무엇보다 그는 후계자나 가문을 만들지 않고 사라졌다.
훗날 독림과 화봉사를 클리어하면서 났던 소문.
투존이 게이트에 자신의 무공을 남겼다고 들었다.
애석하게도 투존의 무공을 얻은 각성자는 얼마 안 가 병이 나서 죽었다고 들었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천외천의 손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한다.
“헉! 정말입니까!?”
“쉿! 목소리 좀 낮추세요.”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자세한 건 두 게이트를 선점하면 가르쳐 드릴게요.”
이준의 말이 끝나자 진병철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눈동자에는 경외의 빛이 담겨 있었다.
“제 아들도 그렇고… 저희 진씨가문을 이렇게 챙겨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병철의 눈망울에 물까지 고이기 시작했다.
더 이야기를 나눴다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급히 진병철의 손을 놓았다.
“다 진경수 학생이 절 잘 따르는 덕분이라 해 두십시오.”
“아무렴요. 제가 경수보고 평생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는데… 이제 그만 올라가 보세요.”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선생님.”
진병철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무극대도 이준에게 작별을 고하고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이제 작업을 시작해 볼까?”
“파랑아 기분 좋지?”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높이 올려 울었다.
증기 기관에서 뿜어내는 마기는 이준과 파랑이에게 꽤 도움이 됐으니까.
***
창고 안으로 들어온 이준은 증기 기관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엄청 뿜어 대고 있구나.”
마기를 지닌 알약이 대량으로 기관에 투입되고부터 시간이 흘렀다.
현재까지도 알약은 계속 투입되고 있으니, 증기 기관이 무시무시한 양의 연기를 뿜어대는 건 당연했다.
이준이 감탄하고 있을 때 무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다른 가문과 검산그룹을 나눠 가질 생각이냐?]
“네.”
[내가 아는 제자는 이런 호구가 아닌데 말이지…?]
“사부님. 제자한테 호구라니요.”
[어서 바른대로 말하거라. 무슨 생각이냐.]
“신기가주랑 진가주에게 했던 말 그대로에요. 다만.”
[다만?]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딱 필요한 곳만 제가 다 가질 생각이죠.”
[독림과 화봉사는?]
“그나마 독림과 화봉사가 검산그룹에서 노른자 땅이긴 한데 제가 가질 땅 치고는 별로 값진 곳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과거에 왜 천외천이 신력과 패왕, 검산을 밑에 뒀을까?
세 가문의 가주가 탐욕스러워서?
이 부분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력과 패왕 검산, 이 세 가문의 영역에 엄청나게 좋은 아티팩트가 숨어 있었던 것.
그중 하나가 파멸겁과 혈신의 지도였다.
두 개의 값진 아티팩트는 이미 발견됐고, 나머진 아직 미발견 된 상태.
멍청한 검산그룹은 자기네 땅에 상상도 못 할 아티팩트가 숨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아티팩트는 파멸겁과 더불어 천주도 찾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아티팩트에는 조건이 있긴 했다.
보물찾기하듯 짝을 찾아야지만 발휘되는 물건.
천주는 그 아티팩트를 얻고는 완전한 괴물이 되었다.
아니, 신이 있다해도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아티팩트가 뭐냐?]
무극자 사부는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이준에게 물었다.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을 해줬다.
“드래곤의 심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