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그 무렵.
신기가주 한지웅과 진씨가주 진병철이 로열바이오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있었다.
“허, 가까이서 보니깐 엄청난 마기군.”
진병철이 하늘에 솟아오른 검은 연기를 보며 말했다.
검은 연기는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주위를 어둡게 가렸다.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로열바이오 공장 근처는 밤처럼 깜깜했다.
“더 가까이 접근해야겠습니다.”
한지웅의 말에 진병철이 놀라 물었다.
“저 마기의 정체가 무언지도 모르는데 가까이 가자는 것이오? 너무 위험하지 않소? 혹여나 레드존 게이트라도 여러 개 있으면 우린 전멸을 하고 말 거요.”
“로열바이오의 사장이 검은 연기를 생성했는지, 아니면 게이트가 나타났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허. 평소의 신기학사답지 않소이다.”
한지웅은 무리를 했다.
원래의 그였다면 정보가 확실치 않을 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로열바이오가 천외천의 괴물들과 연결됐다는 걸 알았으니.
멀리서 지켜보기만은 할 수 없었다.
천외천과 관련된 일은 꼭 알아야 하니, 모험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진씨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 생각에도 더는 접근하지 않은 게 좋겠습니다.”
비조도 허현이었다
신기지가의 식객으로 있는 각성자이며 현재 이곳으로 온 무력 부대의 수장이다.
그의 임무는 신기가주를 지키는 것.
신기가주가 위험에 빠지면 모든 책임은 허현, 그가 지게 된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습니다. 로열바이오가 만든 약의 정체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 성분이 저 연기와 관련 있는 듯싶습니다.”
“모두가 반대하는데 꼭 가야겠소?”
“대한민국의 안위가 달린 일입니다.”
“신기가주가 그렇다면… 대구에 위치한 중소 가문에 지원을 요청한 후 로열바이오로 진입하는 게 어떻소?”
“시간이 너무 지체됩니다.”
“나도 여기선 물러날 수 없소이다. 비조도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신기가주의 안위를 책임지는 사람이오. 그대가 잘못되면 우리 진씨가문의 명성이 어떻게 되겠소? 한발 물러나시오.”
진병철의 단호함에 신기가주도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주위에 지원 요청을 한 후 병력이 오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소이다.”
“비조도는 주변 가문에 협조 요청을 하십시오.”
“명을 받듭니다.”
허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고개를 숙인 나머지 한지웅과 진병철은 허현의 음흉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
허현이 대구의 중소 가문에 연락을 취하는 사이.
하늘에 퍼진 검은 연기는 더욱 짙어졌다.
“숨이 턱턱 막히구려.”
“위험한 마기입니다. 주변의 공기를 잡아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기에 닿은 나무와 풀들이 썩어 가고 있습니다.”
한지웅의 말대로 로열바이오 공장 주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은 날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아등바등거리다가 죽었다.
현재는 한지웅이 있는 산언덕까지 검은 마기가 영향을 끼쳤다.
단풍으로 가득했던 나무는 어느새 뼈대만 남았으며, 풀들은 메말라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졌다.
“검은 연기가 게이트에서 나온 게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면 정말 큰 일입니다.”
진병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피부가 따끔거렸다.
꽤 거리가 있는 곳임에도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
일이 생각보다 크다고 여겼다.
“가주님. 10분 내로 지원 병력이 도착한다 합니다.”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대구에 자리한 중소 가문들도 하늘에 퍼진 검은 연기를 보고 조사 차원에 선발대를 보냈다 합니다.”
“조치가 빨라 다행입니다. 저희도 10분 후에 로열바이오로 진입할 테니 준비하십시오.”
“예!”
* * *
한지웅과 진병철은 자신들이 이끄는 병력과 함께 로열바이오의 공장으로 진입했다.
“A조 1동 이상 없습니다.”
-B조. 2동 이상 없습니다.
-C조 또한 같습니다.
무전으로 들어오는 보고에 한지웅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경계 병력이 없는 거지? 확실히 찾아본 것 맞습니까?”
한지웅이 비조도를 향해 물었다.
“다시 한번 수색하라고 하겠습니다. 아아 여긴 신기, 전 병력에게 전한다. 재수색하고 보고 바란다.”
허현이 전 병력에게 무전기로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재수색을 끝낸 이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전과 같은 보고였다.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도망쳤나?”
“그러지 않겠소? 여기 모여 있는 병력만 족히 천 명은 되오. 우리에게 안 잡히려면 도망치는 게 최선이지. 아니 그런가. 비조도.”
“진씨가주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문 연맹의 눈을 피해 뻘짓을 하고 있었는데 들키니 도망을 친 것 아니겠습니까?”
가문 연맹의 병력이 로열바이오로 진입한 이후부터 공장을 경계하는 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기업도 자기 사업을 지키려면 돈과 더불어 힘이 있어야 했다.
못해도 일반 각성자는 있어야 할 텐데 눈을 씻고 봐도 로열바이오 측 각성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말 도망이라도 쳤나?’
자신들의 동선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정말 은밀히 움직였다.
최측근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우리들의 이동 경로가 유출됐을까?’
한지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다.
로열바이오 측 인원이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건 말도 안 됐다.
공장 안에 게이트가 열린 것도 아니었으니 몬스터를 보고 달아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는 건 자신들이 습격을 한다는 정보를 알고 도망을 친 것.
이 이유 말고는 딱히 없었다.
‘주변을 보면 공장이 작동하고 있었던 흔적이 있어. 온기도 아직 남아 있고 말이야.’
그가 1동 공장을 둘러보며 생각을 하다가.
“응?”
“왜 그러시오?”
“이상해서 말입니다.”
“뭐가 말이오?”
“산에서 로열바이오의 공장을 내려다봤을 때는 상당히 컸지 않습니까?”
“그렇소.”
“그런데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작은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정말 같은 것 같소.”
“여길 좀 더 뒤져 봐야겠습니다. 비밀 공간이 있을지 모릅니다.”
“알았소이다.”
1동에 있는 각성자들은 한지웅과 함께 재차 탐색에 나섰다.
한지웅이 공장 외벽을 둘러보며 손을 두드리고 있을 때.
철컥 소리와 함께 외벽의 문이 열렸다.
그가 뒤를 보자 허현이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발로 외벽을 두드렸는데 어쩌다 기관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잘했습니다!”
한지웅이 화색을 하며 새로 나타난 공간으로 들어갔다.
진병철도 그의 뒤를 따랐다.
통로로 보이는 곳을 지나자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여긴!”
“이곳에서 검은 연기가 나간 모양이군.”
“어, 엄청납니다.”
한지웅과 진병철, 허현이 놀란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하나의 커다란 기계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호리병 모양의 기계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검은 연기를 하늘로 보내고 있었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검은 연기가 대구 시내를 덮기 전에 기계를 멈춰야 합니다.”
“아, 그렇지!”
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기계의 작동을 멈추기 위해 스위치를 찾았다.
한지웅은 인상을 찌푸린 채 투명한 호리병 기계를 보고 있는데.
“알…약?”
알약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으로 쏟아졌다.
그러자 검은 증기가 더욱 뿜어졌다.
“저 알약이 원인이었어. 마약 같은 성분의 알약을 대량으로 허공에 뿌려 공기를 오염시키는 시설이라니. 이런 시설이 지역마다 있다면 균열 오염으로 인해 높은 확률로 고등급 게이트가 생길 수도 있어.”
균열 오염은 주변 공기가 마기로 뒤덮인 걸 말한다.
쉽게 말해 지구의 공기가 게이트의 공기로 오염됐다고 할까?
몬스터가 살기 딱 좋은 환경이 균열 오염이었다.
“한국에선 신기학사가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데 생각했던 것보다 멍청하잖아?”
어두운 공간에서 나타난 한 남자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누구냐!”
남자를 본 한지웅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어이쿠. 내 소개를 안 했구나? 난 로열바이오의 사장 주영재다.”
주영재의 소개가 끝나자 숨어 있던 이들이 나왔다.
어림잡아 백 명은 되어 보였다.
데려온 천 명의 인원 중 공장 안으로 들어온 사람만 족히 반은 됐다.
그런데도 정체를 드러냈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천외천과 관련된 놈들인가? 아니면 천외천?’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어차피 여기서 다 죽을 건데.”
주영재의 도발에 진병철이 고함을 쳤다.
“이노오오옴!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
진병철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주영재를 죽일 듯 노려보며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너희같이 하찮은 놈들 따위의 이름을 내가 알 리 없잖아?”
“이놈이!”
진병철이 땅을 박찼다.
“진가주! 안 됩니다!”
한지웅의 만류에도 진병철은 멈추지 않고 그가 자랑하는 철심각을 펼쳤다.
* * *
주영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오 비서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오 비서가 앞으로 나갔다.
구두를 신은 발을 높이 들어 올려 진병철의 철심각을 막았다.
쿵-
진별철의 발과 오 비서의 발이 교차하자 공기가 진동했다.
“윽!”
그와 동시에 진병철의 입에서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세간에 알려지기에 그는 A급 끝자락에 있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의 진짜 경지는 AA급 초입.
AA급에 든 지는 얼마 안 됐지만 한 번의 격돌로 신음을 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낙영각!?”
한지웅이 여자의 각법을 알아보았다.
낙영각은 화산의 각법.
검산 그룹의 회장도 배우지 못한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여자가 지니고 있자, 저들의 정체를 확신했다.
천외천의 괴물들은 발견되지 않은 AA급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낙영각 또한 AA급 무공에 속했다.
‘드디어 천외천을 발견했어!’
기쁨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꼈다.
천외천을 발견한 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다음에서 일어났다.
퍼억!
“크윽!”
여자가 철심각을 막은 상태 그대로 몸을 돌려 진병철의 가슴을 찼다.
여자의 발에는 엄청난 거력이 담겨 있었다.
진병철이 곧바로 손을 올려 막지 않았다면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게 무슨!”
진병철이 당황하는 사이, 실력의 차이가 확연히 나는 걸 본 한지웅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도 강한데 그 뒤에 있는 이들은 얼마나 강할까? 우리의 숫자로는 전멸하고 말 거야.’
한지웅도 A급 끝자락에 서 있는 각성자였다.
그런데 여자의 등급은 어떤지.
경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자신보다 강하다는 이야기.
진병철을 가뿐히 제압하는 걸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여자 한 명이서 이곳에 있는 각성자 절반은 쓸어버리는 게 가능했다.
도망을 치는 것까지 생각을 해야 하나 하는 찰나.
쿵!
입구의 문까지 닫혀 버렸다.
창문은 존재하지 않은 공간.
여기서 벗어나려면 창고를 부수든지, 아니면 천외천의 괴물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진병철에게 전음을 날렸다.
‘진 가주님. 여자를 상대해 보니 어떠십니까?’
‘… 그건 왜 묻소?’
진병철은 자존심이 많이 상한 채 대답했다.
‘진 가주님의 입장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은 저희 쪽이 훨씬 안 좋을 듯합니다만…’
‘강하오. 오대 가주보단 약하나 그에 버금갈 만큼 강하오.’
‘진 가주님이 그렇게 느끼시는 거라면 저희 모두는 죽은 목숨이겠습니다.’
‘……’
진병철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말.
여자의 뒤에 있는 각성자들은 또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와 가문 연맹 각성자들이 시간을 끌겠소이다. 신기가주는 그 틈에 빠져나가시오.’
‘어떻게 저 혼자만 내빼겠습니까?’
‘검제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소? 여긴 통신도 안되는 것 같으니 직접 나가서 이들의 정체를 알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소.’
한지웅도 같은 생각이긴 했다.
그나마 최악은 면하는 방법이었으니까.
이곳에서 모두가 죽는다면 천외천이란 존재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이곳만 나가서 바로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내가 퇴로를 만들어 주겠소. 따라오시오.’
진병철과 한지웅이 서로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신호로 진병철이 몸을 돌려 외벽을 향해 각법을 날리려는 순간!
푹-
“커억…!”
한지웅이 누군가의 검에 찔리고 말았다.
“허현 자네 무슨 짓이야!”
진병철이 허현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한지웅을 찌른 허현이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긴.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