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얼음 감옥 안.
페어리들은 몸을 얼려 버릴 만큼의 냉기로 인해 얼음 감옥을 부수려 했다.
쿵!
쿠웅!
덩굴들이 휘둘러지며 얼음을 강타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꺄아아악!”
페어리들이 악을 지르며 마법까지 사용했다.
그중 푸른 낙원의 지배자 라파비르의 양손에 마법진이 맺혔다.
쌍인장은 마력의 출력을 높혀줄 뿐만 아니라 캐스팅 시간도 단축시키는 기술이었다.
고위 마법사의 전유물.
라파비르는 쌍인장으로 불 속성 마법을 선보였다.
화르륵-
쌍인장 앞에 나타난 하나의 구체.
얼핏 보면 하위 마법사나 사용하는 파이어 볼 같았다.
“키아악!”
라파비르가 소리를 치며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녀석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불의 구체가 번쩍이더니 광선처럼 얼음 기둥을 향해 쏘아졌다.
콰앙!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얼음 감옥이라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하나 기우에 불과했다.
그저 불에 그을린 자국만 있고 끄떡도 없었다.
“끼아악!”
라파비르가 당황했다.
마법을 날렸는데 아무 이상이 없으니 혼란에 빠져 버렸다.
보스 몬스터가 패닉 상태라 낙원 소속 페어리도 똑같은 상태가 됐다.
그러는 사이.
이준네 특별반 학생들은 이준의 떠밀림에 하는 수 없이 페어리와 싸워야만 했다.
특별반 학생 중 아직 내공이 남아 있는 사람은 허수뿐이었다.
허수는 심법을 초기화할 때 먹었던 계승의 꽃을 먹었다.
계승의 꽃이 심법만 초기화하는 효능을 갖췄다면 어디 신의 꽃이라고 불리겠는가.
그 말고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
그건 바로 환골탈태를 했을 때의 효과이다.
즉, 계승의 꽃을 먹고 심법이 초기화되면 각성자 시스템 또한 재능을 다시 측정하는 것.
허수의 육체는 명안을 가진 박혁진도 탐냈다.
재능의 여러 요소에서 허수의 신체는 최상위에 속했다.
환골탈태로 인해 내공도 또래보다 두 배 이상은 많았다.
이곳에서 계승의 꽃을 먹은 사람은 허수 한 명뿐.
종합적인 재능은 박혁진이 훨씬 높다 하더라도 신체와 내공의 정순도를 따지면 허수가 더 나았다.
허수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페어리가 있는 한 가운데에 홀로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홀로 페어리에게 돌진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가주 오빠. 저 오빠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허수라면 괜찮아. 오히려 더 강해질걸?”
“보법이 불안정한데도요?”
“체력에 한계가 왔지만 내공으로 커버 칠 수 있어.”
이준이 허수를 보면서 씩 웃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허수가 들고 있는 참마도의 능력.
각성한 참마도 안에는 숨겨진 효과가 있었다.
마인들을 벨수록 참마도의 능력과 사용자의 내공이 늘어나는 것.
마인을 상대해야 늘어나는 내공의 효과가 어쩐 일인지 페어리에게도 나타났다.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으나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은 계속 늘어났다.
이 때문에 페어리 한가운데에 떨어지고도 자신 있게 도를 휘두를 수 있었다.
“언니, 오빠들이 힘들면 저라도 나가서 싸울까요?”
“괜히 힘들게 뭐하러. 넌 여기서 편하게 구경하고 있어.”
만약 이지안도 몸이 정상이었다면 이 전쟁에 참여해야 했을 터.
음양의 조화가 한 번 깨져서 천만다행인 상황이었다.
“파랑아.”
“뀨우!”
이준이 말을 끝나기 무섭게 파랑이가 움직였다.
허수는 페어리의 마법을 막다가 여러 개의 화살을 놓치고 말았다.
그중 허수의 등.
심장을 노리는 강력한 바람의 화살을 파랑이가 이빨로 물어 아그작 깨 버렸다.
교복이 너덜너덜해져 성난 근육이 보이는 허수.
그럼에도 그는 참마도를 이용해 연환패왕도를 펼쳤다.
그의 참마도에서 뿜어져 나온 호랑이가 페어리를 먹어 치우며 휩쓸었다.
“허수는 조금만 하면 될 것 같고, 나머지 애들만 남았네.”
몬스터를 상대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있음에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건 이제 그들도 도움 없이 나아갈 때였다.
기본 훈련은 마쳐 모두 A급에 도달했다.
이제는 깨달음을 얻어야 할 때.
강제로 실력을 향상시키기에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페어리와의 싸움 이후에는 각자 벽을 깨는 거에 집중을 해야 했다.
그러니 이번 싸움이 이준이 도와주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 * *
기자의 말대로 파란 동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지린다.
- 저 몬스터가 아니었으면 섬전도 진작 뒤졌음.
- ㅆㅇㅈ.
- 페어리를 그냥 찜쩌 먹네…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청하면서 댓글을 남기는 게 시청자의 낙.
한데 그 낙을 즐기지를 못했다.
화면에도 다 담기지 않은 파란 몬스터의 움직임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작은 생명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저 몬스터 뭐임?
- 섬전도가 위험할 때면 나타나서 도와주는 걸 보면 펫일 수도.
- 펫 중에 화이트급 이상이 있음?
-ㄴㄴ. 절대 없어.
-그러면 저 괴물은 뭐임?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그때.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줄 이가 드디어 나타났다.
-님들 모름? 창제 님 펫임.
-창제 펫?
-이 새끼가 창제 님이 니 친구냐? 님 자 못 붙여?
-ㄴ꼰대 새끼.
-질문에 물 흐리지 말고 다들 꺼져. 저게 진짜 창제 님 펫이야?
-ㅇㅇ.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이준의 이명이 나오자 채팅창이 폭발했다.
안 그래도 아시아 학원 대항전이 종료되고 아직도 게시물에 창제를 칭송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데 그 화제가 끝나기도 전에 또 창제의 이명이 거론됐다.
-근데 저 정도로 강할지 우리도 몰랐음.
-난 귀여워서 창제 님이 데리고 다니는 줄 알았다.
-나도.
-원스피릿에 가입하면 저 펫에 대해 자세히 알 수도.
-원스피릿이 어디냐?
-창제 님 팬카페. 아직 모르는 닝겐도 있음?
원스피릿은 이준이 직접 언급한 팬 카페 명이었다.
원래는 이상한 이름이었는데, 그가 별로라고 바꿔 달란 요청을 했다나 뭐라나.
무튼 이준이 간혹 팬 카페에 강림한다 하여 커뮤니티가 활발한 곳 중 하나였다.
-저때도 팬 카페 가입 안 했는데, 진짜 가입해야겠다.
-ㅋㅋㅋ. 저 영물을 모름? 난 알고 있지롱.
-원스피릿이구나? 등급이 어떻게 됨? 전 2등급 우수회원임.
-난 3등급.
-오, 특별임? 레드걸스 유니랑 똑같은 등급 처음 봄.
-너도 노력하면 특별 될 거야. 기분 좋아져서 하나만 가르쳐 줄게. 원스피릿에서는 저 영물에 존칭을 붙인다. 너희들이 막 함부로 말할 급이 아니야.
원스피릿의 특별 회원의 말에 시청자는 더욱 파랑이에 대해 궁금해했다.
-ㅅㅂ. 이러니까 저 파란 몬스터가 더 궁금해지잖아!
-혼자만 알지 말고 가르쳐 줘.
-그래. 화장실 가서 똥 안 닦은 기분이란 말이야.
-알고 싶으면 원스피릿 가입 고. 하지만 가입해서 정보 얻고 다른 커뮤니티에 정보 푸는 짓 하면 끝장이야. 나도 그냥 입 다물고 있으려고 했는데 방송이 되고 있어서 말하는 것뿐이니까.
채팅을 보며 시청자의 반응을 체크하고 있던 기자.
신석재의 눈이 커졌다.
“여, 여만아!”
“말 시키지 마십시오. 앵글 잡기도 힘듭니다.”
“우리 대박이다.”
“시청자 많습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저 청호 창제의 펫이란다.”
“헉! 진짭니까?”
“그래. 창제 팬 카페인 원스피릿에서 말해 줬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찍어.”
“옙!”
신석재의 입이 찢어졌다.
과감한 판단을 한 결과, 시청자 수는 물론 파란 몬스터의 정체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원스피릿이라고 했지? 가입해서 알아보면 더 건질 게 있을지 모르겠어. 회장님께 말씀드리면 좋아하시겠지?’
그는 검산 그룹 산하, KSN 소속 기자였다.
기자들에게 특급 비밀로 하달된 검산 그룹 회장의 명.
이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라는 지시였다.
회장의 명이라 KSN 소속 기자들은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알려진 게 없었다.
그 이외에는 신기지가에서 정보를 다 막아 파 볼 수가 없었다.
한데 여기서 기회를 얻게 된 것.
신석재는 천운이 따랐다고 생각했다.
검산 그룹 회장을 만날 수도 있단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던 찰나.
“당신 미쳤어?”
타 방송국 소속 기자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다짜고짜 미치다니?”
“당신들 지금 저 장면 방송에 내보내고 있는 중 아니야? 여기 증거가 있으니 잡아뗄 생각은 하지 마.”
“생방송을 하고 있으면 뭐?”
“엠바고를 어겼으면서 왜 그렇게 당당해?”
“부럽다고 성질내지 말고 당신들도 방송하든지. 우리가 스타트 끊어 줬으니까 지금 해도 늦지 않잖아?”
신석재의 말에 기자들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굉장한 유혹이었다.
엠바고가 해제되고 기사가 나가면 기자들 입장에선 얻을 게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방송을 하는게 좋았다.
하나 한 여기자가 나섬으로써 기자들은 유혹을 뿌리쳤다.
“당신 제정신 아니군요? 무사고나 신기지가가 무섭지 않은 모양이네요. 검산 그룹이 뒤에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런데 기자 치곤 시야가 너무 좁아서 어째요? 당신이 찍고 있는 펫은 창제 님이 여태까지 꽁꽁 숨겨 두시고 있었던 건데, 엠바고가 떨어진 이유도 이 때문인 걸 몰랐나요?”
그녀는 게이트 정보 매거진의 김서아 기자였다.
“창제 때문에 엠바고가 떨어졌다고?”
“정말 몰랐나 보네요. 어머 불쌍해라.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쯧쯧. 명복을 빌어요. 창제 님 성격 지랄 같으신데.”
김서아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신석재를 보았다.
혀를 차며 자리로 돌아간 그녀.
주변 기자들도 그냥 자리를 떴다.
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생방송을 할까라는 생각을 한 자신의 뺨을 갈겨버렸다.
그들도 창제의 개 같은 성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도련을 멸문시켰다든지.
도왕과 더불어 패왕도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든지.
이준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사건은 꽤 많았다.
* * *
“이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뭔가요? 몬스터라도 나타났나요?”
“그게 아니라… 엠바고가 깨졌습니다.”
“네?”
한민성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는 비서인 남지우를 통해 전 방송국에 공문을 날렸다.
취재나 촬영은 하되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사를 내지 않을 것.
그런데 엠바고가 깨졌단다.
“어디인가요?”
“KSN입니다.”
“하, 또 검산 그룹 산하 방송국이군요.”
“어떻게 할까요?”
“어떤 내용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나요?”
“이준 선생님이 데리고 다니시는 저 동물에 대해서입니다.”
“하, 미치겠군요. 알겠어요. 제가 이준 선생한테 말하죠.”
한민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사실을 이준이 듣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할까.
예상은 갔다.
아주 지랄 같은 반응이.
그가 방어진 앞으로 나서 이준을 불렀다.
“이준 선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게 말하는 게 껄끄러웠다.
차라리 남 비서에게 맡길 걸 그랬다.
“이준 선생!”
조금 더 크게 부르자 이준이 뒤를 돌아봤다.
“저 불렀어요?”
“할 말이 있어서 불렀네.”
“말하세요.”
이준은 전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게 말이네.”
“무슨 말이기에 뜸을 들이세요?”
“이준 선생의 펫, 청호에 대해서 방송이 되고 있네.”
한민성의 말에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목소리도 착 가라앉아 있었다.
“왜요?”
“미안하네. 검산 그룹 산하 방송국에서 약속을 깨 버렸어.”
“이상한 핑계를 씌워 그냥 지워버릴까?”
이준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그 모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너무도 오싹했다.
하긴, 도련도 없애버렸는데 검산그룹 따위가 눈에 보이겠는가.
이준에겐 그저 한순간의 여흥거리일 수도 있었다.
“계속 숨긴다 해도 언젠가는 파랑이의 정체가 밝혀질 거라는 건 예상은 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일이 끝나면 검산에 한 번 들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