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차, 창제!”
“창제 님이 우릴 구하러 오셨어!”
“사, 살았다.”
이준의 등장에 절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안도를 했다.
그는 검제와 더불어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였으니까.
“지안아.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살짝 긁힌 것 외에는 없어요.”
“살짝 긁혔다고 하기에는 네 기가 너무 불안정한데?”
이준이 이지안의 등에 손을 얹었다.
현재 그녀의 몸은 음양의 조화가 깨진 상태.
이대로 있으면 구음절맥을 앓았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 올지 몰랐다.
이준은 그녀의 몸에 흩어져 있는 양기를 끄집어냈다.
양기가 모이려 하자 음기가 방해를 했지만 이준의 기로 인해 가로막혔다.
“으음…”
이지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몸 곳곳에 퍼져 있던 양기를 한곳으로 모으자, 음기가 더욱 활발하게 된 것.
몸에서 지독한 한기가 흘렀다.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양기를 싹싹 끌어모은 이준이 음기를 향해 돌진시켰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양기가 천천히 음기를 상대해 갔다.
음기의 저항은 거셌지만 이준의 보호 아래 양기가 세를 확장했다.
혈도를 타고 몸 전체를 돌았을 때는.
“이제 됐다.”
음양의 균형이 제자리를 찾았다.
창백했던 이지안의 얼굴도 혈색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위험해. 다신 음양의 조화를 깨려고 하지마.”
이준이 이지안을 향해 경고했다.
그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큰일을 치를 뻔했으니까.
치료를 마친 이준이 주변을 보고 중얼거렸다.
“우선 이 필드부터 파괴해야겠다.”
그는 필드의 흐름을 파악했다.
강한 기가 어디서 흐르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때 이준의 기감에 잡히는 한곳.
진법으로 치면 생문, 즉 살아서 나갈 수 있는 문이 이준에게 잡혔다.
“저긴가?”
팟-
이준이 땅을 박찼다.
일직선으로 높이 뛰어오른 그였다.
파멸겁을 역수로 잡으며 생문이 있는 외곽, 운동장 쪽을 향해 던졌다.
쌔애액-!
파멸겁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운동장 구령대에 박혔다.
쾅 소리가 나야 정상이었으나 이준이 힘을 조절한 덕분에 그저 창이 시멘트에 박혔을 뿐이었다.
이준이 바닥에 착지했다.
“됐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덩굴로 된 벽이 허물어져 갔다.
[숲의 미로가 해체되었습니다.]
[페어리의 능력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패널티로 부과된 치유력 저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숲의 미로란 필드가 언제 생성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사이 사상자는 꽤 많이 나온 듯싶었다.
특히 이곳의 보스 몬스터에게 접근한 각성자.
검산그룹의 호위조는 죄다 죽어 있었다.
체내에 있는 수분을 모조리 흡수당한 채 말이다.
보스 몬스터 앞에는 예전에 한 번 봤던 놈이 벌벌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검산 그룹 놈은 구해 주기 싫은데.”
이준의 중얼거림이 들렸을까.
김열찬이 엉금엉금 기며 그를 향해 말했다.
“차, 창제 님! 사, 살려 주세요!”
예전에는 잔뜩 기어올랐으면서 언제 봤다고 창제라 하는지.
사람은 죽을 위기에 놓여야 자신의 분수를 알아차리나 보다.
알아서 눈치껏 행동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것 아닌가.
검산그룹 각성자는 죄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원, 살려 주고 싶지 않았다.
이준이 가만히 보고만 있자.
“제, 제발 저 좀 살려 주 으아아악!”
김열찬이 애원을 하는데 뒤에서 페어리가 다리를 붙잡아 확 끌어당겼다.
그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검산그룹 각성자가 이 페어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내공은 물론 생기까지 모조리 빨아 먹은 몬스터.
마지막엔 심장을 꺼내 간식처럼 씹어 먹었다.
페어리의 입가에 묻은 피는 심장에서 나온 피였다.
그는 C급이지만 아직 중학생이었다.
중학교에선 최고의 고수로 칭송받고 게이트에 대한 경험이 있다 한들 그린존 게이트가 다였다.
그래서인지 블루급 몬스터의 잔인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주,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흑흑.”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김열찬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곳의 보스 몬스터, 숲의 지배자인 실조르는 제 일을 했다.
녀석이 입을 벌리자 김열찬의 동공과 입, 귀, 코에서 나온 하얀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 * *
그 시각.
무사고의 운동장에 쳐진 방어진법이 크게 흔들렸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식물 줄기가 투명한 막을 향해 또다시 내리쳐 왔다.
쾅!
“이, 이러다 방어진이 깨지는 거 아니야?”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방어진이 깨지면 우린 다 죽어.”
“페어리가 이렇게 강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누가 좀 저 몬스터를 죽여 줘!”
학생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페어리는 다른 몬스터와는 달리, 착하고 순했다.
몬스터지만 인간에겐 친화적이었다.
물론 각성자들이 페어리를 속여서 요정의 꿀을 강탈한 적이 있긴 했으나, 녀석들은 한 번도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공격력이 강한 몬스터긴 하지만 안전했던 몬스터.
그런 녀석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와 날뛰고 있었다.
말했듯 블루급에서도 공격력 하나는 최상위에 있는 페어리였다.
무사고로 지원 나온 각성자를 코웃음 치며 죽였다.
특히 거대한 식물 줄기를 조종하는 몬스터는 재앙 그 자체.
가문 연맹 각성자들이 죄다 녀석에게 부상을 당하든지 죽었다.
“크윽… 비상이다. 전 가문 연맹에 레드급 보스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고 전해!”
“아, 알겠습니다.”
“어쩌다 저런 괴물이 밖으로 나온 거야…”
가문 연맹 소속 각성자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손을 떨었다.
레드급 몬스터는 A급 각성자만 상대할 수 있었다.
레드급 보스 몬스터는 어떤가.
오왕급 각성자가 있어야 죽일 수 있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턱도 없는 일.
A급 이상의 각성자로 이루어진 지원 병력이 더 필요했다.
“저 괴물 옆에 있는 놈도 강해.”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페어리가 몇마리나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자칫 방심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저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가문 연맹 각성자의 지휘관 격인 남자의 눈에 푸른 뇌전을 뿜어내는 두 남녀가 보였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주변의 페어리를 처치하고 있는 두 사람.
검룡과 검화였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서 아주 잠깐 나왔던 검룡.
일본 유망주 2위인 미즈시마 요시오라를 일수에 제압한 박혁진은 원래부터 현역 각성자와 겨루어도 뒤지지 않은 실력을 가졌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남자는 검룡이 이 정도로 강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 했다.
강해봤자 유망주였으니까.
번쩍!
파지지직-
검룡의 검이 움직였다.
뇌전이 번쩍일 때마다 식물 줄기가 잘리며 불에 탔다.
“검룡도 검룡이지만 검화의 실력이 무사고 비공식 1위라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어.”
검룡의 검식은 빠르면서도 강했다.
쾌검보다 강검에 중점을 둔 공격이었다.
그런데 검화는 어떤가.
서걱서걱!
원체 빨라서 그런지.
검화가 검을 휘두르는 게 눈이 쫓아가지 못했다.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는 걸 알게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앞에 잘린 식물 줄기들이었다.
얼마나 많이 잘랐는지 바닥에 쿵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울렸다.
검화의 팔이 사선으로 그어지자.
번쩍임과 동시에 한줄기 벼락이 떨어져 페어리를 짖이겼다.
“철혈검가에 저런 무공이 있었던가…?”
남자가 검화를 보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검화가 쾌검을 구사하는 줄 알았다.
박혁진과는 다른 느낌.
허나 하늘에서 떨어진 뇌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낙뢰에 맞은 페어리만이 아닌, 주변의 페어리도 통구이를 만들 만큼의 위력이었다.
뿐인가.
이 두껍고 많은 줄기가 삽시간에 조각나며 불에 타버렸다.
결론은 쾌검도, 강검에 치우친 힘도 아니었다.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한 힘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19살의 나이에 저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굉장해…. 검제님의 피를 괜히 이어받은 게 아니야.”
검제 박춘식의 혈통을 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다.
제일 눈에 띄는 아이들은 박정연과 박혁진이었지만, 다른 아이들도 굉장히 잘 싸우고 있었다.
특히 섬전도 허수와 빙화 한지유, 철룡 진경수.
이 세 사람이 검룡과 검화를 제외하면 제일 잘 싸웠다.
군더더기 없는 살수를 펼치며 몬스터를 쓰러트려 갔다.
“허수야! 누가 제일 많은 몬스터를 잡는지 내기하자.”
“좋습니다. 제가 진 선배님보다 더 많이 해치울 테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건방진, 2년이나 어린 후배한테 질 수 없다.”
조를 이루어 몬스터를 상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 쌤! 제 차례예요!”
“그래! 난 방어로 전환할게!”
홍련권을 비롯한 빙결장과 음양침, 적색쌍검이 진법을 사용하여 몬스터를 격살했다.
오히려 현역 각성자보다 페어리를 더 잘 상대하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학생들.
저들은 창제가 가르친 아이들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저 정도의 강함을 지녔다니, 무섭군.”
연맹에서 파견 나온 지휘관 격인 남자가 홀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뀨우?”
옆에서 파랑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앙증맞게 귀여운 녀석.
남자가 파랑이를 애완동물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여긴 위험하니 저기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거라.”
남자의 말에 파랑이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뀨우?”
운동장에 있는 그 어떤 사람이나 동물보다 안전한 파랑이.
파랑이를 죽일 수 있는 몬스터는 여기에 없었다.
* * *
이준은 숲의 미로의 지배자인 실조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천외천이랑 똑같은 짓을 하네.”
생기를 비롯한 몸에 있는 기를 모조리 빨아들여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는 행동.
천외천의 졸개들이라면 꼭 하는 행동이었다.
“더 기운을 빨리면 정말 죽겠어.”
계속 보고만 있던 그가 드디어 움직였다.
그의 무릎이 굽혀진 순간!
신형은 이미 실조르의 지척에 있었다.
“어디 너는 얼마나 괜찮은 마기를 가졌나 볼까?”
이준이 팔을 뻗었다.
실조르는 김열찬의 기운을 먹다가 갑자기 나타난 이준으로 인해 흡공을 멈춰야 했다.
그의 팔을 피하기 위에 몸을 뒤로 뺀 실조르였지만.
“놓칠 거면 움직이지도 않았어.”
이준의 손아귀에 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크윽!”
실조르가 이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으나 불가능했다.
발버둥 칠수록 손아귀의 힘은 더 강하게 목을 조여 왔다.
“흡자결.”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조르의 기운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오기 시작했다.
[흡혈마공의 흡자결을 사용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조잡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조잡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천외천이 아니라 그런가.
바깥으로 드러난 마기와는 달리, 영양가가 전혀 없는 하찮은 마기였다.
“뭐냐, 이 근본 없는 마기는. 패왕도가의 패왕대도 이보다는 괜찮았는데.”
몬스터에게 어떤 마기를 강제로 주입했는지.
파천멸기의 파편과는 다른 조잡한 마기였다.
“크으으읍!”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 아쉽네.”
그럼에도 흡자결을 끊지 않았다.
조잡한 마기라도 양은 꽤 되기에 실조르의 기운을 먹어 치워 갔다.
어차피 혼원신공으로 깨끗이 정화해서 사용하면 됐으니까.
털썩.
이준이 실조르의 목을 놓자, 녀석이 허물어졌다.
“별것도 아닌 게 힘만 빼게 했어.”
그는 말을 끝내고 실조르의 머리통을 박살내 버렸다.
인간은 몰라도 한 번 마기의 침습을 받은 몬스터는 원래대로 돌려놓기 힘들었다.
차라리 죽이는 게 깔끔했다.
보스 몬스터를 파리 잡듯 죽인 이준.
그가 이지안에게 돌아왔다.
“가자.”
“아직 몬스터가 남았는데…요?”
“내 알 바야? 난 너만 구하면 돼. 나머진 저들이 알아서 하겠지.”
뒤늦게 지원 오는 가문 연맹의 각성자가 무사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인 실조르도 없으니, 남은 페어리는 알아서 잡겠지.
이준이 이지안의 손을 잡고 장내를 떠났다.
우두머리가 사라진 페어리도.
이곳에 있던 학생과 각성자도.
이준이 사라지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고서야.
“그 강하던 페어리가 저항도 못 하고 죽었어…”
“저게… 창제…”
“강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그제야 숨을 쉬며 입을 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