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직접 보기 전까지는 단정할 순 없지만, 내가 아는 게 맞으면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어.”
쿵쿵-
이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금역의 대지가 흔들렸다.
[침입자가 금역의 입구를 강제로 개방하려 합니다.]
[금역 입구가 강제로 개방되기까지의 시간 - 12:00:00]
4대 성지의 금역은 레드존에서도 최상위에 속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제 개방 시간이 1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침입자가 거센 공격을 가했거나, 무방비 상태도 커다란 공격을 맞았다는 것.
“뭐냐 이건. 지금 우리 게이트가 공격받는 거야?”
[꿈의 정원 보스가 이성을 잃고 공격해 옵니다.]
[숲의 미로 보스가 침입을 해 옵니다.]
[푸른낙원 보스가 괴성을 지릅니다.]
다른 메시지는 몰라도 꿈의 정원을 보고 알았다.
게이트를 공격하고 있는 게 페어리라는 걸.
꿈의 정원 주인은 로티틸이 있던 요정의 꽃밭에 들어갔을 때 메시지로 봤다.
로티틸의 말을 들어 보면 이놈이 페어리 왕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보스들은 녀석의 수하일 터.
기가 찼다.
성화의 반쪽도 아닌, 잔챙이가 힘에 취해 금역을 공격해 온 것이다.
“하. 처음 게이트가 공격받았는데 페어리라니.”
이준이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자 샥쿠가 창을 뽑아 들었다.
“주인님. 저와 샤크로아가 나가서 적을 쓸어버리고 오겠습니다.”
“아, 안 됩니다요!”
하지만 테구르가 샥쿠를 말렸다.
“지금 금역이 공격받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냐?”
“금역을 강제로 여는 방법은 게이트 입구를 공격하는 방법뿐입니다요. 금역의 입구는 주인님이 다니시는 학교라 시선이 너무 많습니다요.”
테구르의 목소리에 이준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이 사실이야?”
“정말입니다요. 믿어 주십시오.”
“그럼 얘들은 어떻게 금역으로 왔어?”
“게이트 주인의 승인을 받고 들어오는 공간과 강제 입구 개방은 통로가 다릅니다요.”
이준도 처음 알았다.
설마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방법이 입구를 공격하는 걸 줄 누가 알았나.
게이트간 끼리의 공간으로 이동해 공격해 오는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금역을 통째로 옮겨 다른 곳에 입구를 설치했을 거다.
“게이트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 어? 잠깐!”
이준이 무언가 번뜩 생각난 듯 화들짝 놀랐다.
“성화의 반쪽이 금역으로 쳐들어올 때도 학교를 통해서 오는 거야?”
“블랙급 보스 몬스터는 예외입니다요.”
“후우. 십년감수했네. 나 나갔다 올 테니까 너흰 여기서 푹 쉬고 있어라.”
이준의 말에 뼈가 있었다.
강한 몬스터가 수하로 있으면 뭐 하나.
게이트 안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데.
다 자신이 잘못이었다.
시선 많은 학교에 두 개의 입구와 출구를 뚫어 놓은 게 자신이었으니까.
나중에 입구를 옮기든지 해야지.
몬스터가 수하인데 써먹질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X빠지게 뛰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크윽,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샥쿠가 분해했다.
로티틸 또한 주인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이 얼굴을 보자 피식 웃는 이준.
“농담이야. 수련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페어리 상대로 훈련 좀 해 보지 뭐. 그렇지 파랑아?”
“뀨우!”
파랑이가 이준의 주머니에서 나와 어깨로 가서 앉아 울었다.
파랑이의 전용 자리.
녀석이 전의를 불태우는 게 주변 몬스터에게 느껴졌다.
꼬리가 하나에서 두 개, 두 개에서 네 개로 분리되고 있었으니까.
아홉 개의 꼬리를 가졌을 때는 주변 몬스터가 흠칫 떨었다.
작은 체구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어쭈? 좀 치나 본데?]
마조가 파랑이의 기세를 보곤 중얼거렸다.
“간다. 잘들 있어.”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화이팅입니다요!”
몬스터의 응원을 받은 이준이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바, 방금 청호 아니었나?”
“파랑이 님이요?”
“파랑이?”
“네.”
“처, 청호 중에 최상위 종에 있는 아홉 꼬리 몬스터가 저리 작아?”
“파랑 님이 체구가 너무 작아 놀라셨군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또… 뭐야?”
“파랑이 님은 청호가 아니에요.”
“그러면 뭐냐?”
“파랑이 님의 정체는 블랙급 최상위 몬스터 중에서도 11인의 지배자 중 하나인 십미호세요.”
“컥!”
펠리아스가 로티틸의 이야기를 듣고 기절하고 말았다.
페어리 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11인의 게이트 지배자.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몬스터의 주인이었다.
* * *
그 무렵.
사형준과 무극대는 경공을 펼쳐 대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대주. 갑자기 임무가 떨어지다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나도 모른다. 가주님의 목소리로 봐선 급한 일인 듯 싶다.”
“비조도 허현이면 신기지가의 충신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는데… 뭐지? 뭘까?”
무극대의 부대주인 김봉팔이 경공을 펼치면서도 입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우린 가주님의 명령만 따르면 된다. 궁금증은 넣어 둬라.”
“이래서 대주님이 재미가 없는 겁니다.”
“거 참. 부대주. 우리 대주가 하루 이틀 재미없소? 이젠 포기하시오.”
“이러다 미래의 제수씨를 잃을지 모르는데 그럴 수 없지.”
“제수씨? 경진이를 말하는 것이오?”
“흐흐. 맞아. 경진이.”
“헉! 경진이가 우리 대주와 사귄다는 말이오?”
“말세다 말세야. 우리 경진이가 저 재미없는 대주와 사귀는 사이라니.”
김봉팔과 몇몇 대원들만 알았지, 다른 대원들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차경진은 신력권가에서 인기가 꽤 많았다.
남자만 득실거리는 가문의 홍일점.
무사고의 선생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한때는 같이 훈련을 받은 동료였다.
특히 무극대와는 굉장히 친했다.
차경진의 능력은 신력권가에서도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만약 무사고의 선생직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무극대의 전신인 천왕대에 들었을지도 몰랐다.
이 때문에 나이 많은 무극대의 대원은 차경진을 여동생으로 대했다.
“잡담은 임무에 방해된다. 모두 조용해라.”
대원들이 자신을 놀리는 걸 알면서도 사형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제일 선두에 서서 이동했다.
대주의 말에도 불구하고 김봉팔과 무극대원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무극대의 막내 라인인 세호와 현이.
두 사람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 경진 누나 내 첫사랑이었는데.”
“야 너도? 나도 그래.”
두 막내의 반응에 김봉팔이 흐뭇하게 웃었다.
“크크. 경진이가 한 미모하지. 어디가서 절대 꿀리지 않아.”
“훈련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서 건강미도 넘쳐.”
“우리 경진이 누가 데려갈지 궁금했는데 설마 우리 대주가 채 갈지 누가 알았나.”
“고백이나 해 볼 걸 그랬어요.”
“이하 동문이야.”
“야야. 너희가 경진이한테 고백한다고 넘어 올 거였으면 이신이 고백했을 때 진작 받아 줬겠지.”
김봉팔이 차경진과 이신의 에피소드를 꺼내 들었다.
신입과 막내 라인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귀를 기울였다.
“이신이 경진 누나한테 고백을 했습니까?”
“걔 빙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개차반이 한 명만 좋아할 리가 있나. 여기저기 다 찔러 보는 거지. 그리고 이신 그 잡놈 성격상 경진이는 가지고 놀다 버리려고 했을 껄?”
“X발 새끼네요.”
“발정난 병신이었지. 이것 때문에 경진이가 천왕대가 아닌 무사고의 선생직으로 간 거야. 전 가주께서도 이를 알고 보내셨지.”
“전 몰랐어요. 그냥 누나가 자원해서 무사고 선생으로 간 줄 알았어요.”
“아무튼 너희 같은 핫바리는 우리 경진이 눈에 안 찬다는 말이야. 가주님이나 대주 아니면 고백해도 무조건 차일걸?”
무극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대구 외곽에 도착했다.
“이제 잡담은 그만. 임무에 돌입한다.”
사형준의 말에 희희낙락 떠들고 있었던 무극대가 입을 닫았다.
굉장한 변화.
겉으론 오합지졸같이 느껴지나 그들은 신력권가의 최정예였다.
그것도 이준에게 직접 몸소 배운 전력들이었다.
임무에 들어가자, 진지해진 거다.
탁. 탁. 탁.
무극대의 곁으로 신기지가의 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형준이 비선을 향해 인사했다.
“사형준입니다.”
“신권을 뵙습니다.”
신기지가의 비선들도 사형준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상황을 브리핑했다.
원래의 계획은 신기가주를 비롯한 진씨 가주가 외곽에서 로열바이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한 것.
하나 몇 시간 전 가주가 직접 움직였다 한다.
“신기가주께서 직접 움직인 게 저 연기 때문입니까?”
“예. 저 엄청난 마기를 보고 안 되겠다 싶어 직접 가셨습니다.”
“빠르게 온다고 했는데, 한발 늦었군. 신기가주님의 움직임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까?”
“15분 전에도 확인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절 신기가주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십시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비선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 뒤를 무극대가 따랐다.
* * *
지잉-
이준이 포탈에서 나왔다.
주변은 횡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다.
“여긴 아니네.”
이준이 다시 포탈로 들어가 나온 곳은 학교 본관 지하에 있는 창고였다.
“크르르.”
창고 안에는 페어리가 있었다.
손톱의 날을 바짝 세운 채, 으르렁댔다.
저 모습은 페어리가 아니었다.
이성을 잃은 살육에 미친 몬스터일 뿐이다.
“너희가 개냐? 요정이지.”
이준의 등장에 이곳에 있던 페어리 열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요정답게 공격이 다양했다.
정령을 소환하는가 하면, 수속성 마법도 날아들었다.
손톱을 세워 근접 공격하는 페어리까지.
다양했지만.
푸확!
이준이 파멸겁을 빼들어 휘두르자 공격하던 페어리의 몸이 일제히 반으로 갈렸다.
[파천멸기의 찌꺼기를 흡수했습니다.]
[파천멸기의 찌꺼기를 흡수했습니다.]
……
……
[저급한 마기를 정화합니다.]
파천멸기의 파편도 아닌, 찌꺼기란다.
영양가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였다.
“쳇. 보상도 짜네.”
이준이 시체를 지나 창고 문을 열었다.
지하로 내려오고 있는 페어리들.
그가 파랑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랑아. 처치해.”
“뀨우!”
파랑이가 계단을 올라가며 내려오는 페어리를 공격했다.
“끄아악!”
파랑이가 스치고 지나간 몬스터는 일제히 쓰러졌다.
강인한 이빨에 살이 뜯기고, 심장이 파괴된 모습이었다.
이준도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여기에 이 정도로 몰려 온 걸 보면 학교가 난장판이 됐을 건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아수라장은 아니었다.
건물이 부서지는 정도?
아직까지는 학생들의 부상도 경미했다.
이 모든 게 이준네 특별반 덕분.
홀로 수련을 하러 흩어졌던 특별반이 분전했다.
그들을 본 이준은 팔짱을 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진다. 아주 잘 키웠어. 누가 가르쳤는지 참, 대단하네.”
이준은 자기 입으로 칭찬을 했다.
[그 사부에 그 제자다. 이 이질감 없는 느낌은 뭐지? 작은 주인 놈아는 주인의 환생인 거냐?]
“내가 뭘? 맞는 말을 했구만.”
푹!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페어리를 파멸겁으로 찔러 죽였다.
등을 뚫고 나온 창날을 잡아 페어리의 몸에서 창을 뽑았다.
푸확-!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이제 괴짜같은 성격만 가지면 딱 주인이야.]
[조야. 이상한 소문 퍼트리지 말거라.]
허나 이준은 점점 무극자를 닮아 가고 있었다.
몬스터의 피가 옷에 묻을 걸 대비해.
“이럴 때는 호신강기가 참 편하단 말이야.”
고수만 펼친다는 호신강기로 피를 막았다.
[저 봐라. 저 짓은 주인도 똑같이 했다.]
[큼큼. 그저 무공을 잘 활용하는 것뿐이니라. 안 그러냐 제자야?]
“맞아요. 마조가 아주 고지식하네요.”
[쓸데없는 내공을 소모하는 게 퍽이나 무공을 잘 활용하는 거다. 흥.]
마조가 뭐라 하든 이준은 제 할일을 했다.
파멸겁을 휘둘러 위험한 학생들을 구해 냈다.
“위험하니까 저기 애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으로 가.”
“고, 고맙습니다!”
여학생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장은 비상시에 운영하는 첨단 방어진이 설치된 곳이다.
2, 3학년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미리 운동장으로 대피한 상태.
아직 입학한 지 1년도 안 된 1학년은 모를 사람도 있었다.
“파랑아. 내가 하려는 말 알지?”
“뀨웃!”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특별반 아이들을 향해 번개같이 움직였다.
파랑이의 임무는 언젠가부터 특별반 학생을 보호하는 일이 되었다.
믿고 맡길 만한 게 파랑이 밖에 없어 보모 역할을 시켰다.
“내 수련은 보류해야겠다. 애들이 고생은 하겠지만 못 잡을 수준은 아니니, 파랑이만 곁에 놔두면 수련은 확실히 되겠어.”
페어리가 엄청 강하진 않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준의 기준.
특별반 학생들에겐 그 어떤 상대보다 강했다.
숫자도 숫자인데 페어리들의 등급은 죄다 레드급이었으니까.
아마도 마기의 영향 때문일 거다.
“목숨만 잃지 않으면 되니깐. 그보다 난 다른 쪽으로 가 봐야겠네.”
팟!
이준이 땅을 박찼다.
그가 향한 방향은 무사고의 부속 중학교가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