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페어리들이 방문자들을 치료했다.
방문자들의 상처가 너무 심한 나머지 상처가 빨리 낫지 않았다.
“로티틸 님 여기.”
“고맙습니다. 테구르 님.”
로티틸은 으깬 꽃잎을 받아 들며 펠리아스의 상처에 발랐다.
초록색 기운이 상처에 맴돌다가 갈라진 부위로 쏙 들어갔다.
로티틸은 상처 부위를 향해 마력을 사용했다.
약초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
치료 스킬이 있는 페어리들은 이런 방법으로 방문자를 돌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방문자를 돌본 끝에.
“후우우. 한고비 넘긴 것 같아요.”
로티틸이 얼굴의 땀을 닦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고생하셨습니다요.”
“다 테구르 님의 보필 덕분이에요.”
“아이고, 아닙니다요. 제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요.”
테구르가 허리를 연신 굽히며 웃었다.
칭찬이 좋은 모양이다.
집사직을 맡고 있는 그에겐 최고의 칭찬과 다름없었다.
“정말이에요. 테구르 님과 스케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빠르게 치료가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현재 로티틸과 테구르는 커다란 방에 함께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방문자들과 스케먼, 페어리까지 함께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새로 만든 건물.
타 게이트와 전투 후에 있을 치료실 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미리 만들어 놓은 장소를 방문자를 위해 쓸 줄은 몰랐지만 굉장히 유용했다.
“헤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면 됩니다요. 주인님께서 서로 도우며 있으라고 신신당부하셨지 않습니까요?”
“아차! 달의 호수에서 방문자가 왔다고 주인님께 알려야겠어요.”
로티틸은 곧바로 이준을 호출했다.
[금역의 주인을 불렀습니다.]
[주인의 호출을 기다립니다.]
그는 이준이 대답하길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
다시 호출을 했다.
[금역의 주인을 불렀습니다.]
[주인의 호출을 기다립니다.]
하나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주인님께서 바쁘신가 봐요.”
“주인님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시지 않겠습니까요. 로티틸 님의 호출을 보셨으면 바로 연락을 취해 올 겁니다요.”
테구르의 말에 로티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로 한 시간보다 더 빨리 달빛의 지배자가 금역으로 온 것일 뿐.
이들로 인해 주인의 일정을 변경시킬 순 없었다.
주인의 업무를 줄여 주는 게 참된 수하로서의 본분이었으니까.
때마침.
“으으…”
침상에 누워 있던 페어리, 펠리아스가 신음을 토해 냈다.
기절해 있다가 정신이 깬 모양이다.
“펠리아스 님 정신이 드세요?”
“으으… 누…구?”
“저예요. 로티틸.”
펠리아스는 흐릿한 초점을 맞추며 로티틸을 보았다.
“로… 티틸…! 큭.”
펠리아스가 몸을 일으키다가 가슴의 통증 때문에 고통을 호소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상처가 너무 심해서 잘못 움직였다가는 치료된 부위가 벌어져요.”
“크윽… 여긴 어디냐? 꽃밭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이런 낯선 곳에…”
“제 주인님께서 절 받아 주셨어요.”
“…주인?”
“네. 제 주인님이요.”
“페어리 왕 말고… 후욱… 우리의 주인이 또 있었던가…?”
펠리아스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나마 누워서 말하니 급하게 밀려오던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금역도 제 주인님의 공간이에요.”
“어쩐지… 네가 있는 꽃밭의 이름이 아니길래 의아했다.”
“참.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로티틸의 물음에 펠리아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에 들어온 달의호수의 페어리들.
하나같이 생명이 위중한 부상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수하들을 보고 주먹을 꽉 쥔 펠리아스.
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게 간다고 재키안 님께 말하자 실조르와 라바피르가 날 공격했다.”
재키안은 꿈의 정원의 로드다.
로티틸과 펠리아스가 모시던 페어리의 왕이기도 했다.
실조르와 라바피르는 숲과 낙원의 지배자.
로티틸하고 펠리아스와 같은 4대 페어리에 속한 자들이었다.
“아.”
로티틸은 다른 주인을 섬긴 순간 배신자였다.
페어리끼리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국에 펠리아스 또한 로티틸에게 간다고 하니.
격분한 나머지 펠리아스를 공격한 것이다.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면 언젠가는 싸워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를 대비해 미리 적을 제거하려 한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공격을 가하는 건 신중한 페어리 왕이 할 행동은 아니라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재키안 님이 실망하셨겠네요.”
“우리들의 왕은 페어리 필드란 스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재키안 님은 완전하지 않아.”
페어리 필드는 그냥 페어리의 능력치만 올려 주는 게 아니었다.
모든 페어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
전 페어리를 아우르기 위해선 페어리 필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오히려 내 선택이 옳은 거지. 네가 페어리 필드를 가졌다는 걸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겠어?”
“그게… 제 주인님 덕분에 얻게 되었어요.”
로티틸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펠리아스에게 설명했다.
어떻게 이준을 만났는지.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의 꽃인 계승의 꽃을 먹어 각성을 한 것까지.
그동안 만나지 못해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 * *
이준과 아이들은 박물관에서 나왔다.
각자의 무기를 전부 선택한 상태.
아이들은 빨리 자신의 무기를 휘둘러 보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다.
참지 못한 박혁진이 먼저 나섰다.
“이사장님 전 바쁜 일이 생겨서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준아. 오늘은 자율 학습이니까 먼저 갈게.”
녀석이 뇌령석을 들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한 명이 스타트를 끊으니.
“그럼 나도 이만.”
아이들 전부가 눈치를 보다가 가 버렸다.
오직 허수와 진경수만이 이준의 곁에 남았다.
진경수가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한소리를 했다.
“저 무례한 놈들. 선생님께서 퇴근을 안 하셨는데 먼저 하교를 하다니! 아주 기합이 빠졌어.”
“선배님, 전 가지 않았습니다.”
“이준 선생님께 제일 오래 배웠다고 하더니, 실력과 인품도 갖췄군.”
“과찬이십니다. 선배님 또한 훌륭한 인품을 가지신 듯합니다.”
허수와 진경수는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먹한 관계로 있다가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서부터 급 가까워진 두 사람.
서로 맞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이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두 사람을 더 친해지게끔 했다.
“하하. 오랜만에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군.”
“진짜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감탄한 사람은 이준 선생님 말고 선배님이 처음입니다.”
“선생님 말고 내가 처음이야? 이거 아주 영광인걸? 오늘은 내가 요정의 꿀이 발라진 특제 아이스크림을 사야겠어.”
“얻어먹으려고 말한 게 아닙니다.”
“내가 후배한테 사 주고 싶어서 그래. 이준 선생님. 선생님도 가시겠습니까?”
허수와 진경수를 보고 있던 이준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외로 꿍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이다.
처음에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조합이었는데, 진경수의 태도가 달라진 이후부터 절친이라 믿을 정도였다.
“전 할 일이 있어서 두 사람도 가서 쉬세요.”
“알겠습니다. 저흰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사장님. 저희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서 수고 많았어요. 들어가세요.”
“네.”
진경수가 허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숙소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갔다.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뭔가 허수가 한 명 더 생긴 상황.
자신을 추종해서 좋긴 한데.
‘너무 광적이란 말이야.’
믿음이 과했다.
믿음이 과한 건 평범한 것보다 못하다.
자칫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경수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주의를 주면 되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준이 한민성 이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이사장님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네. 잠시 걷겠나?”
“그러죠.”
이준은 한민성 이사장과 교정을 거닐었다.
교실 밖에서 야외 수업을 하는 학생들.
홀로 수업에 땡땡이치며 운동장에 누워 있는 학생들.
하하호호 웃으며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너무 수업 땡땡이치지 마세요.”
“잠깐 이준 선생님 보러 나왔다구요.”
“이제 봤으니 교실로 들어가면 되겠어요.”
“치. 네에.”
여학생들은 교실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며 이준을 향해 소리쳤다.
“이준 선생님! 볼 때마다 존잘이에요!”
그 말을 하곤 꺄악 거리며 교실로 뛰어갔다.
일반인과 다른 각성자지만 이렇게만 봐서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저 모습 너무 귀엽지 않나?”
“귀엽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내가 이사장을 하는 이유 중 하나지.”
“신기지가에 능력 있는 학생을 스카우트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래서 이유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
한민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옆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손을 저어 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난 말이네. 이 평화가 언제 깨질까 조마조마해. 내 형님이 가주의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만 몰두해 있는 게 처음에는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이해해. 형님도 이 평화가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거지.”
뜬금없는 소리에도 이준은 묵묵히 들었다.
자신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중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고 알았네. 세상에는 몬스터 말고도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걸 말이야. 자네가 여태 상대하고 있던 이들과 형님이 찾는 이들은 동일 단체인가?”
“맞습니다. 예전에 말했던 천외천이란 놈들이에요.”
“얼마나 위험한 단체인가?”
“한국 전체의 전력을 쏟아부어서 싸운다 해도 이기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정도로 강하다니… 자네가 죽인 검존 말이야. 혹 천외천과 관련이 있나?”
“천외천의 끄나풀이에요.”
“너무도 위험한 존재들이군.”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뭡니까?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장님답지 않게 서두가 길어서 말이죠.”
“지방에서 천외천의 흔적을 발견한 것 같네.”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왕을 끝으로 천외천의 끈을 모두 잘라 버렸다고 생각했다.
한데 흔적을 발견했단다.
“어디에요?”
“대구에 있다고 봐야 맞겠지.”
“확실해요?”
“혹, 마기를 사용하는데 그 기운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이지 않나?”
“그걸 알고 계신 걸 보니 확실하네요.”
완벽한 천외천의 구별법이다.
정파의 무공에 마기를 쓰는 자는 천 명 중 한 명꼴로 있을 수 있었다.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확률이 극악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민성 이사장이 한 말은 천외천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정기와 사기, 마기는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
그러나 천외천의 마기는 마치 오징어의 다리처럼 살아 움직였다.
일반적인 마기가 옅은 검은색이라면, 천외천의 마기는 굉장히 짙으며 이질적인 기운이 섞여 있기도 했고.
“비선의 말로는 불기의 느낌도 난다던데…”
“천외천이 확실하네요.”
정기가 아닌, 불기의 느낌이 난다면 빼박이었다.
천외천이라고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기운이다.
“어디에 숨어 있었어요?”
“로열바이오라고 들어 보았나?”
“처음 들어 봐요.”
이준의 기억 속에 로열바이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아나?”
“모르죠.”
“우리 신기지가에서 찾았네.”
“신기지가요? 그쪽은 천외천 소속이 전혀 없을 텐데…”
“우리 신기지가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로열바이오에서 만든 알약을 먹은 후 몰라보게 강해졌어.”
“고독이 반응했군요?”
한민성은 혈족들과 신뢰 있는 각성자만 빼고 전부 소속 각성자의 몸 속에 고독을 심었다.
때문에 고독에 이상이 생기면 그가 제일 먼저 알아챈다.
“그의 몸속에 있던 고독이 죽었네. 그 때문에 우리가 로열바이오를 찾을 수 있었던 거야. 그가 알약을 입수한 경로를 비선이 샅샅이 뒤졌거든.”
“알약을 먹은 사람이 누구예요?”
“흑웅 백대준이네.”
흑웅 백대준은 신력권가의 세작.
패력진권 이민욱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