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우리… 살아남은 거야?”
“그런 것 같은데…?”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상황 파악이 되자.
“사, 살아남았어!”
“우와아아아아!”
그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지옥에서 살아남았다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했다.
각국 인솔자와 학생들은 어떤가.
그들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극도의 긴장이 풀려서였다.
“허…허허…”
“마지막일 줄 알았건만.”
“살아서 다행이오.”
“차나 한잔 합시다.”
몬스터로 인해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
태국과 인도의 인솔자와 학생들이 죽었다.
그뿐이랴, 몬스터에게 뼈째로 씹힌 채 생을 마감한 이들.
같이 살았으면 좋으련만 정말 안타까웠다.
“크흑….”
“일어날 수 있겠소이까?”
“아무래도 안될 듯싶소.”
“누가 의원을 불러 주시오.”
“제가 연락을 해 볼게요.”
중국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칭다병원이죠? 국가 학원 대항전이 열린 경기장 근처에 많은 부상자가 있어요. 응급차 좀 보내 주세요.”
-죄송하지만 불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국가 학원 대항전 경기장 주변에 봉쇄령이 내려져 갈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중국인이 소리를 쳐 보았지만 전화가 끊겼다.
“못 온다 합니까?”
“이 주변에 봉쇄령이 떨어져 올 수 없다고 해요…”
그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자신들을 보호하려다가 다친 사람들이었다.
중국인이 아닌, 타국인.
자신들을 놔두고 그냥 도망칠 수 있었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중국 각성자들이 자국민을 죽이고 도주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부끄러웠다.
레드존 게이트가 열렸다고 봉쇄한 것도 모자라 지원을 올 수 없다고 하니 배신감도 들었다.
자신들이 자국민이 맞나 싶기도 했다.
“레드존 게이트가 네 개나 떴으니 당연한 조치요.”
“그래도 그렇지!”
“중국 가문 연맹에 당장 항의를 합시다!”
“이대로는 분해서 잠도 못 올 것 같아.”
“X발. 개새끼들. 내가 우리 나라 각성자를 욕하게 될 줄이야.”
살아남은 중국인들이 분노를 했다.
버림받았다는 비참함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중국인들은 당장이라도 시위를 할 것처럼 행동하는 그때.
“혜지야. 네가 사람들 좀 치료해 줘.”
“응. 알았어.”
이곳에 있는 단 한 명.
치유 직업을 가진 서혜지가 부상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따끔거릴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고맙네.”
“뭘요. 위험할 땐 서로 도와야죠.”
서혜지가 침으로 사람들을 치료하자, 정예은이 정예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언니 그거 줘.”
“뭘?”
“활독환.”
“어디 다쳤어?”
“아니, 부상당한 사람들한테 주게.”
“안돼! 독공을 익힌 사람한테는 치료약이지만 아닌 사람한테는 맹독이야.”
“괜찮아. 내가 활독환 안의 독을 중화할 방법을 알거든.”
“진짜?”
“응.”
정예은이 품에서 작은 투명한 통을 꺼냈다.
그리고 진경수와 박혁진, 허수를 꼭 짚으면서 말했다.
“세 사람 다 요정의 꿀 줘 봐요.”
“요정의 꿀은 왜?”
“이거 준이가 나만 먹으라고 준 건데?”
“선생님께서 특별히 나한테만 최상급 꿀을 준 걸 어떻게 알았지?”
“잔말 말고 줘 봐요.”
정예은이 세 사람에게 요정의 꿀을 강탈하다시피 했다.
진경수는 절망에 빠졌다.
한국에서 구한 음식.
그는 미식가였다.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를 먹는 게 그의 행복.
맛없는 음식도 이 요정의 꿀을 바르면 천상의 맛으로 변한다.
때문에 그는 중국으로 출국하면서도 요정의 꿀을 챙겼다.
중국의 음식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해서였다.
라면 대용이랄까.
“1학년한테 삥을 뜯기다니… 수치다.”
무튼 소중한 보물을 강탈당하자 울상을 짓는 진경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예은은 요정의 꿀이 담긴 병에 활독환을 하나씩 넣었다.
환이 요정의 꿀에 닿자 사르르 녹았다.
“이 정도면 응급 처치는 되겠지?”
정예은은 요정의 꿀을 들고 부상자들에게 갔다.
큰 상처가 난 부위에 요정의 꿀이 닿자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갔다.
“헐. 요정의 꿀에 저런 효과도 있었어?”
정예나의 눈이 커졌다.
“요정의 꿀에 정화 효능이 있어. 이 효능이 활독환의 독을 없애 주는 거야.”
이준과 정예은이 토론을 하면서 얻은 것 중 하나였다.
효과가 굉장한 건 아니나 응급 처치용으로는 쓸 만했다.
“치사하게 너만 좋은 정보를 알고 있냐.”
“언니도 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봐. 허구한 날 독공만 수련하지 말고.”
“독 종류가 너무 많단 말이야. 머리 아파.”
정예나의 말에 정예은이 고개를 저으며 치료에 집중했다.
짝.
이준이 손을 치며 남은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뭐 해?”
“응?”
“뭐가?”
“일해야지.”
“일? 아아, 우리도 치료 도우라고?”
“아니. 너희는 따로 할 일이 있잖아.”
“그게 뭔데.”
“저기.”
아이들은 이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검은 가루가 날리는 대지 밑에 간혹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이랑 아이템들 주워야지. 빨리 움직여.”
네 개의 레드존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
드랍된 아이템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저걸 다 수거하려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아, 저장 공간이 부족하겠구나. 혁진아, 이거 가져가.”
이준은 박혁진에게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던졌다.
그의 아공간 주머니를 받은 박혁진은 x빠지게 아이템을 수거해야만 했다.
* * *
몬스터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거의 다 회수했다.
“헥헥! 젠자자장! 나 이거 못해.”
박혁진이 뒤로 벌러덩 누웠다.
허리를 온종일 굽혔다 폈다가를 반복했더니.
허리가 뿌셔질것만 같았다.
하필 아이템이 드랍 되도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한곳에 모여 있으면 얼마나 좋아.
진짜 젠장맞을 몬스터였다.
그때.
타다다닥-
대지를 박차고 누군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와, 대단하다. 빨리도 오네.”
“저것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중국이 중국했어.”
“짜장이 하는 짓이 뭐 그렇지.”
이준을 비롯한 아이들이 뒤늦게 나타난 이들을 보며 한심하게 말했다.
전이었다면 이준네 일행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부었을 중국인들이었겠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다.
“진심 중국이 싫어진다.”
“하, 내가 다 쪽팔려.”
“저것들 면상 좀 치웠으면 좋겠다.”
중국인들이 자기들을 고깝게 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원 온 중국 각성자들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레드급 몬스터가 출몰했다고 들었다. 녀석들은 다 어디에 있나?”
“있냐? 저 자식들은 틈만 나면 화를 돋우네.”
이준은 몬스터가 대량으로 떨어트린 아이템으로 흐뭇해하고 있었다.
뒤늦게 나타난 중국 각성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저들이 한 첫마디로 인해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 멍청한 새끼를 죽여 말아?”
이준의 말에 중국 각성자들이 발끈하려고 했지만 선두에 있는 자가 막았다.
“네가 한국의 창왕이냐?”
“알면서 뭘 물어.”
“몬스터는 어디로 사라졌느냐.”
“다 죽었지, 어디 갔겠어. 지금 비상 떨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따위 말이냐.”
“다른 게이트가 열리기도 했고 무기들을 정비하고 오느라 늦었다. 난 마존 석지강이라 한다.”
“그래서? 뒷북치려고 왔냐. 본론만 하고 꺼져. 피곤하니까.”
이준은 자기도 자기지만 저 중국 각성자들이 더 한 놈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어차피 타국 사람.
중국인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이득을 얻기 위해 뒤늦게 나선 것뿐이다.
하나 중국 각성자들의 행태는 어떤가.
더블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도로를 봉쇄했다.
지원은커녕 몬스터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몬스터는 일정한 먹이를 먹으면 게이트 안으로 돌아갔으니까.
그리고 때가 되면 밖으로 다시 나온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원 명목상 뒤늦게 온 거다.
무엇보다 저 눈빛.
무언갈 갈구하는 눈이었다.
“이곳에 아직 몬스터가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그렇지. 너희라면 이렇게 나와야지.’
보물에 눈이 먼 자들은 불나방과 같았다.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날아든 벌레들.
저들에겐 상대가 어떻든 상관이 없을 거다.
보물만 얻으면 인생이 확 필 테니까.
목숨을 걸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길 테지.
“어떻게 생겼는데?”
“작은 새로 하늘에 검은 불꽃을 생성했다고 하던데.”
석지강은 이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눈빛을 마주 본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고개를 돌려 앉아 있는 중국인들에게 말했다.
“얘 좀 죽여도 되나?”
중국인들은 이준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자국의 각성자가 최고라고 여겼지만, 오늘부터 이준은 예외였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느니까.
무지막지하게 강하기도 했다.
검존 진천우를 쓰러트린 게 이해가 갔다.
그의 무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마존 석지강.
천마신교에 속한 각성자로 천마와는 반대편에 속한 인물이었다.
천마가 일반인들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면 석지강은 일반인이든 각성자든 가리지 않고 죽였다.
제일 역겨운 건 돈 되는 일이라면 마약이건 성매매건.
모두 손을 댔다.
범죄자에 속하지만 AA급 각성자에 속해 국가에서 제어하지 못한 각성자 중 하나였다.
“동의한 걸로 알게.”
이준의 말에 중국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무언의 허락이었다.
이준이 바닥에서 발을 뗀 순간!
그의 손에 석지강의 목이 붙잡혀 있었다.
“컥!”
좀 전에 S급 각성자를 두 명이나 없앤 이준이다.
AA급 각성자 석지강 정도면 눈을 감고도 죽일 수 있었다.
“듣보잡 새끼가 어디서 내 마조에 눈독을 들여.”
또한 이준의 기억에 석지강은 없었다.
전생에 석지강의 이름이 없다는 건 죽거나 천외천이 두려워 시골에 짱박혀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AA급 각성자라 하나 정말 하찮은 인간에 불과했다.
“분에 찬 탐욕은 목숨만 앞당기는 일이라고 학교에서 안 배웠냐?”
콰직!
이준의 손이 석지강의 단전을 파고들어 갔다.
“아아아악!”
단전을 단번에 부숴 버린 이준.
그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크으으윽…”
석지강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눈알이 뒤집혔다.
단전 파괴로 인해 기절하고 말았다.
1분도 안 되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뒤를 따라온 각성자들이 주춤거렸다.
“내가 오늘 너무 많이 죽여서 말이야. 살려 줄 테니까 가라.”
주춤.
그들은 뒤로 물러나기만 할 뿐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준의 품에 있는 마조.
강력한 마조만 얻으면 까짓것 도박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철퍼덕.
이준이 석지강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바닥에 처박힌 석지강이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아니면 죄다 단전을 부숴 주랴? 각성자가 단전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 말을 듣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단전이 부서진 각성자의 최후는 아주 비참했다.
차리라 죽는 게 나았다.
그만큼 단전이 부서진 각성자는 최악이다.
“하, 괜히 중국 온 것 같아.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하더니. 딱 그 말이 맞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