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콰아아앙!
무대에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얼마나 강력한 충격이 일어났는지 무대의 단단한 바닥이 먼지와 함께 흩날렸다.
“윽!”
“어떻게 된 일이야?”
관객석에 있는 관중들이 팔로 얼굴을 가렸다.
파편과 먼지바람이 날아왔지만.
파박박팍-
투명한 막이 파편을 모조리 막았다.
무대 주변에 둘러진 방어진이 아니었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먼지가 가라 앉길 기다리는 관중들.
시간이 지나고 먼지가 차차 가라앉자.
“저, 저길 봐!”
한 관중이 소리쳤다.
무대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한 사람.
한국 대표 팀인 정예은이었다.
그녀의 앞,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무대 곳곳에는 살덩어리로 보이는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뭐, 뭐야?”
“잘 싸우고 있다가 왜 이래?”
관중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얼굴이었다.
관중뿐만 아니라 한국 대표 팀도 당황스러웠다.
“자폭 무공 맞지?”
“폭멸공.”
이준의 말에 박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폭멸공! 비행기에서 습격했다던 각성자도 저 폭멸공을 썼다 하지 않았어?”
“어.”
이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상한 결과였다.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이 폭멸공을 운용하려고 한다는 걸 느낀 순간 정예은한테 전음을 날린 게 아닌가.
[저 무공이 왜 여기에 있어?]
마조가 물었다.
녀석은 태어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천외천에 관련된 이들을 모를 터.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이준이 마조의 물음에 대답해 주려고 하는데 무극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외천이란 놈들이 쓰는 무공이니라.]
[그러니까 저 무공을 어떻게 천외천이란 놈들이 쓰냐고. 저 무공은 신마회에서 자살할 때나 쓰는 거잖아.]
듣고 있던 이준이 끼어들었다.
‘신마회?’
[작은 주인은 신마회 몰라?]
‘몰라. 신마회가 어디야?’
[작은 주인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큰 주인아 대답해.]
마조의 음성에 무극자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놈은 아직 모른다…]
[하아? 그러면 큰 주인에 대해서 어디까지 아는데?]
[…….]
[빨리 말해라. 아니면 큰 주인에 대해서 다 불어 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파천혈신이라는 정도…?]
[엉? 파천혈신이란 이명을 알면 큰 주인에 대해서 다 아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신마회를 몰라?]
[…….]
무극자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딴짓을 했다.
민망할 때나 나오는 행동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마조가 어이없어했다.
[설마 입방정을 떤 건가?]
[어허! 입방정이라니! 말은 바로 하거라. 제자에게 사부의 위엄을 알려 준 것이니라.]
[설마설마했는데. 어떻게 옛날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냐.]
아니지.
딱 하나 있었다.
제자를 굉장히 아끼는 것.
이것 말고는 과거와 똑같았다.
이 입방정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던가.
사람이 말이야 제자에게 냉정하고 무심하게 했으면 일관된 행동을 했어야지.
기분이 좋을 때는 저 입이 말썽이었다.
말하면 안 될 걸 미리 발설한다던가.
새로운 무공을 만들고 떠들던가.
천하 병기를 얻었다던가.
입이 근질거려 자기가 떠벌리고 다닌 덕에 제자들에게 뒤통수도 세게 맞지 않았나.
그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고쳐진 게 없었다.
입이 말썽.
그의 곁에 항상 있던 자신이니까 이해하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호구에 병신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마조는 무극자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불쌍히 여겼다.
고독한 혈신.
그는 항상 혼자였다.
수많은 수하를 거느리고 있으나 그에겐 친구가 없었다.
혈신 천하를 연 장본인.
무림이 그의 발 아래에 있어서 인지.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기만 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존재가 없었다.
자신 빼고.
[큰 주인에 대해서 말하려면 다 말하든지 아니면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든지 둘 중 하나만 해.]
[누누이 말하지만 내 위엄을 보이기 위해…]
마조는 무극자를 이해했다.
[그래서 신마회에 대해 가르쳐 줄 거야?]
[아직은… 안 되느니라. 너도 놈이 어떤지 알지 않느냐.]
[걔가 지금도 살아 있어?]
마조의 눈이 커졌다.
유일하게 파천혈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평가받은 인물.
약관(20세)의 나이에 소신마라 불리게 된 무극자의 첫 번째 제자.
신마 진무열이 회주로 있는 단체였다.
무극자는 이준이 듣지 못하게 마조에게만 말했다.
[천외천이 신마회다.]
[진짜!?]
[셋째는 이미 이곳에 와 있다.]
[셋째라면… 그 찌질한 막내 사마영?]
[그래. 나도 이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친 살인귀 자식이랑 신마는?]
[아직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한 듯 싶다.]
[그래서 작은 주인한테 아직 안 가르쳐 준 거구나. 차츰 성장하면서 신마회의 존재를 알아가라고 말이야.]
무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마회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단체이다.
파천혈신이 만든 곳.
무림 역사상 최강이자 최악의 집단.
정,사,마가 한 곳에 속한 유례 없는 곳이 신마회였다.
그들을 이끄는 신마를 미리 알아 둬서 좋을 건 없었다.
지금도 대체를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현재처럼 세력과 실력을 키운다면 저절로 신마회의 정체를 알게 될 거다.
아직은.
신마 진무열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었다.
들어 보니 이준도 진무열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극히 일부라고 여긴 무극자였다.
만약 진무열에 대해서 모든 걸 미리부터 듣게 된다면 회의를 느끼게 될 터.
막내 제자의 자신감을 꺾고 좌절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똑똑. 저기요들. 저 빼고 말하고 있나요?’
이준이 침묵을 깨고 말했지만.
[일없다. 넌 저 일이나 가서 수습하거라.]
[일이 좀 커진 것 같은데 안 가 봐도 돼?]
무극자 사부와 마조가 무대를 가리켰다.
이준도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무대에는 여러 사람이 난입해 있었다.
***
정예은이 감았던 눈을 크게 뜬 사이.
무대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날아왔다.
북경 아카데미의 원장이자 검존 진천우.
일본 대표팀의 인솔자인 권령 이토 준지로 외 각국 인사들이 무대로 내려왔다.
“으음… 참혹하군.”
“어찌 이런 무공이…”
그들은 악취가 고약한 주변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네 무공이더냐?”
검존 진천우가 정예은에게 물었다.
“예? 아, 아니요.”
“거짓을 말할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여기에 모인 사람은 각국에서 유명한 각성자들이다.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 못 알아챌 사람들이 아니야.”
그가 정예은을 몰아쳤다.
“저, 정말 제가 한 짓 아니에요.”
정예은이 격렬하게 부정했지만,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폭멸공을 아는 사람은 이곳에 몇 없으니.
천외천과 관련된 사람들만 이 자폭 무공을 아니, 상대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
무공의 종류를 명확히 알아야지만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또한 진천우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이토 준지로가 바닥의 흔적을 만지며 말했다.
“독에 중독된 흔적이오. 검존께서는 사천당가의 무공을 잘 아시오?”
“알다마다요. 그건 왜 묻소? 혹 이 일과 사천당가의 무공과 연관이 있다고 보시오?”
“제가 알기론 사천당가의 독 중에 내부의 진기를 폭발시키는 게 있다 들었소.”
“구독폭뢰 말이오?”
구독폭뢰는 사천당문의 독술이었다.
아홉 가지 독을 내기와 충돌시켜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기술이다.
“이 아이가 사용하는 무공이 사천당가의 무공 같은데.”
“제가 계승한 무공이 사천당가의 무공이 맞지만 구독폭뢰는 쓰지 않았어요. 그 무공을 배우지도 않았고요.”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겠나. 증거라도 있어야 믿어 주지.”
이토 준지로가 뱀의 눈을 하곤 정예은을 보았다.
한국 대표 팀으로 인해 일본은 예선전에서 떨어졌다.
자국에서는 거의 역적인 상황.
일반인들은 그렇다 쳐도 학생들의 가문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특히 사독 사사키 유우의 엄마는 틈만 나면 전화했다.
일본으로 돌아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차라리 중국에서 오지 말라고 친절히 경고까지 했다.
자신의 위신이 땅에 처박힌 상태.
지금의 처지를 타계할 방법을 찾았다.
이대로 있는다면 일본에서 암살자 부대가 온다 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현재로선 그저 필드 점령전이나 게이트 클리어 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다다.
이 두 경기에서 어떻게든 1위를 따내면 추락한 위신이 어느 정도 회복될 거니까.
그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기회를 줬다.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를!
그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들개같이 물어뜯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을 16강에서 탈락시키고 말 거라는 의지를 보였다.
이참에 룰을 어긴 대가로 한국 대표 팀에 강력한 징계를 내릴 걸 주장할 생각이었다.
“전 절대 악랄한 수법을 쓰지 않았어요.”
“됐다. 검존. 저 아이가 계속 발뺌하는데 두고 볼 것이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응당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겠소. 국가끼리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 대회요. 룰에 생명을 해치면 안 된다고 나왔는데 이를 어기지 않았소.”
이토 준지로는 뻔뻔하게 말했다.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하지 않은 모양.
아주 철판을 깔고 있었다.
“그렇긴 하오만.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도 권령의 말에 동의하오.”
“본인도 마찬가지요.”
각국 인사들은 마치 서로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정예은과 한국 대표 측에 징계를 내렸으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1:1 대인전만이 아니라 점령전과 게이트 클리어전을 모두 휩쓸 것만 같았다.
그들로선 한국 대표 팀 측이 떨어지길 바라는 상황.
천외천 소속이 아니더라도 모두 한 마음이었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지.”
그들의 의견이 일치가 됐을 때였다.
이준이 멀리서 다가왔다.
“선생님!”
그를 보자 정예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똘망똘망한 눈에서 곧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울지 말고 당당히 고개 들어.”
“네….”
이준은 정예은을 뒤로 잡아끌어 등 뒤로 오게 했다.
“눈깔들이 단단히 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
“말을 가려서 해라! 여기에 네놈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전에도 말했을 텐데? 어른 대접을 해 주고 싶어도 너희가 거부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
“이 조센징 놈! 네가 한국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구나!”
“원숭아. 제발 그 입 닥쳐라. 네 목 따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거든?”
“이, 이노오오오옴!”
이토 준지로가 격분했다.
당장이라도 이준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권령. 참으시오. 아직 애라 천지 분간을 못한 거 아니겠소?”
진천우가 이토 준지로를 말렸다.
그러면서 여전히 이준을 낮추며 말했다.
너는 우리들과 같은 자리에 낄 자격이 없다, 라는 듯한 발언.
그의 도발에 이준이 씩 웃었다.
“애송이보다 눈깔이 삐었으면 좀 배울 생각을 해. 남 깎아내리지 말고. 원숭이나 짜장이나 우리 한국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그거 다 열등감이다?”
이준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가 도발하면 그에 상응한 말로 받아쳤다.
물론 손해는 상대가 봤다.
그들이 언제 어린 애한테 이런 치욕을 당하겠나.
도발하고 도리어 자기들이 흥분했다.
“이 싸가지 없는 것이!”
“검존. 이참에 한국 대표 팀과 저놈을 단단히 징계 합시다. 한국 촌구석에만 있더니 어른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소.”
“나도 동의하는 바요.”
“지금 날 겁박하는 거야?”
“겁박이 아니라 교육이다.”
“전 세계로 방송이 나가고 있어. 애 하나 잡겠다고 어른 둘이 합공하면 개 쪽팔릴 텐데 괜찮겠어?”
이준의 말에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렸다.
맞는 소리였다.
경기장 곳곳에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준의 도발에 잠시 흥분을 했던 것.
무턱대고 행동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차라리 폭멸공으로 꼬투리를 잡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진천우였다.
“좋다. 이번만 참으마. 그러나 이 아이가 사용한 악독한 무공은 넘어갈 수 없다.”
“예은이가 악독한 무공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여기 주변이 보이지 않느냐. 설마 창왕이란 이명을 가지고서 공기 중에 퍼진 독 기운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겠지?”
“아, 이 독. 우리 예은이가 사용한 독 아니야.”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안 그렇소?”
“맞소. 저 아이가 안 했다는 걸 증명해야 우리도 물러날 수 있소.”
각국 인사들이 진천우의 편을 들었다.
그 모습에 이준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어렸다.
“그러니까 예은이가 공기 중에 퍼진 독을 사용 안 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는 소리네? 쉽구만. 내가 증명해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