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진짜지 그럼 가짜겠어?”
“넌 대체 어디서 그런 걸 자꾸 얻는 거냐?”
“궁금하지?”
“응응. 빨리 말해 봐 봐.”
박혁진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이준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전부 고급 정보였다.
특히 몬스터의 알 같은 건 희귀에 속했다.
누가 게이트에 들어가서 몬스터의 알을 가져오겠나.
알이 있다면 어미인 암컷이 눈에 불을 켜고 경계할 터.
이때만은 몬스터의 등급이 격상할 정도로 어미가 예민한 시기였다.
단적인 예로는 쌍둥이 늦지대의 하바사가 날뛴 걸 들 수 있다.
이준에게 듣기론 갓 태어난 새끼가 죽어, 보금자리에 있어야 할 하바사가 밖으로 나와 날뛰었다는 것.
이 때문에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갔었다.
만약 새끼가 죽지 않았다면 쌍둥이 늪지대의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이 같은 경우가 있어 애초에 각성자들은 몬스터의 알을 가져오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욕심을 많이 부리면 꼭 죽게 되는 곳이 게이트라는 곳이었으니까.
“비밀이야.”
“악! 나 농락하냐.”
“넌 가르쳐 줘도 못 키우니깐 포기하라니깐 그러네.”
이준이 박혁진을 놀렸다.
녀석은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았다.
만약 욕심이 넘쳐 났다면 자신이 파랑이를 얻었다는 시점에서부터 철혈검가의 각성자들과 함께 온 게이트를 뒤졌을 거다.
박혁진은 다른 금수저들과는 다르게 선을 잘 지키는 녀석.
욕심으로 가문의 각성자를 부리지 않았다.
자신이 몬스터를 키우니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곤 있지만, 그뿐이었다.
“젠장! 하늘도 무심하시지. 동물 학대나 하는 준이한테 너무 많은 걸 주셨어.”
“야. 나 파랑이한테 잘해주거든? 학대는 무슨.”
“파랑이한테 우리 훈련을 맡긴 게 동물 학대지 뭐야. 그러고 넌 쉬었잖아.”
“파랑아, 이 형이 널 학대했니?”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주인을 위해 아니라고 표현하는 모습에.
“…너무 귀여워.”
“히잉. 나도 키우고 싶다.”
정예은이 파랑이에게 푹 빠졌다.
박정연과 한지유를 비롯한 여자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파랑이를 귀여워 했다.
정예은만 파랑이에게 관심이 적었다.
동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
파랑이가 귀엽긴 해도 막 다가가서 만지며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레드존 게이트에서도 파랑이와 친해지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생각이 확 바뀌었다.
주인 바라기.
몬스터인데도 어쩜 저리 마음이 착한지.
정예은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주인의 평판을 위해 아니라고 고갯짓을 하는 게 너무 기특해 보였다.
동물 학대라는 박혁진의 말에 정예은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수야. 넌 파랑이 같은 몬스터 안 키우고 싶어?”
파랑이에 빠진 정예은이 허수를 향해 물었다.
허수는 당연하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생님이시니깐 파랑 님을 키울 수 있는 거다. 우리 같은 범재들은 절대 키우지 못해.”
그는 파랑이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 중 하나다.
파랑이가 레드존 게이트에서 밤의 나락을 가지고 논 건 특별반이 다 아는 사실.
하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파랑이는 샥쿠와 로티틸, 테구르 이 세 몬스터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몬스터였다.
세 종족을 아우르는 보스 몬스터.
고작 밤의 나락과 같은 레벨이 아니었다.
작고 귀여운 얼굴에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수야.”
“뭐냐.”
“넌 왜 파랑이를 파랑 님이라고 해?”
“이유는 말해 줄 수 없다. 하지만 너도 파랑 님이라고 하는 게 좋다. 선생님과 같이 있어서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것뿐이지 네가 모르는 게 있다.”
“그게 뭔데?”
“알려 줄 수 없다.”
“치. 말해 주지도 않으면서 파랑 님이라고 하라면 해야 돼?”
“알아서 해라.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허수가 입을 다물었을 때였다.
마침 바닥에 놓인 알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당소미가 있는 건물은 싸늘한 한기로 가득했다.
“아직도…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거야?”
“죄송합니다.”
으득.
당소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은오를 죽인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은살대가 죽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 이상 지나면 범인을 영영 못 찾을 걸 알기에 화가 났다.
“이곳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화가 나.”
“제가 다 무능해서입니다. 은오와 은살대가 개인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복면을 쓴 사내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당소미, 은오와 사촌인 은일이었다.
은일은 방계 출신이 아닌, 직계였다.
방계 사람만 한다는 살수를 직계 출신으로서 처음 한 사람이었다.
확실히 직계 출신이라 그런지.
방계 출신들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살수로서 최초로 사천당가의 2인자에 오른 인물이었다.
“네가 흔적을 못 찾으면 아무도 범인을 알지 못할 거야.”
당소미의 음성엔 은일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내가 화난 건 무림에서가 아닌 이곳에서 은오가 죽었다는 거야. 이 세계의 각성자들이 은오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절대 없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은오를 죽일 수 있는 건 우리 천외천뿐이야.”
같은 수준의 무인에게만 죽을 수 있다고 믿는 그녀였다.
자신들은 100년을 넘게 살았다.
무림에서 살아남는 동안 터득한 게 많았다.
그중 하나가 싸움에 대한 경험.
각성자와 천외천은 같은 초절정 고수라도 수준이 완전 달랐다.
살아온 연륜과 깨달음, 그리고 무공을 어떻게 펼쳐야 가장 효과적인지.
천외천의 무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인주가 힘을 잃었음에도 이곳의 천마와 활불이라는 자를 가볍게 꺾은 거다.
모든 걸 떠나서 이곳의 살수들은 형편없었다.
살수의 무공을 익혔으나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
살수 무공을 익힌 각성자가 1이라면 은살대는 10에 가까웠다.
현격한 차이를 가졌는데 도리어 사냥을 당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지주 쪽 인물들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놈들 아니면 누구겠어?”
사천당가와 같은 수준의 살수를 보유한 문파는 한곳밖에 없었다.
사파의 유혼루.
지주 쪽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아니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당소미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일본에 있습니다.”
“유혼루의 무공을 배운 아이가 이곳에 있기도 하지.”
“그 말씀은 유혼루의 인물이 중국에 몰래 들어왔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차라리 이준을 의심하는 게 더 현명한…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인주의 무공으론 무리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의 각성자는 무공을 흉내만 내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건 그렇습니다.”
천마와 활불이란 놈들도 무공을 흉내만 냈다.
하늘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는 천마신공을 익혔으면서 자신들에게 별달리 저항도 못하지 않았나.
이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은일은 당소미가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킨 것도 이해가 됐다.
“범인을 찾지 못한 건 열 받지만… 여기서 그만해야겠어.”
“인주 때문입니까?”
“그분이 게이트에서 나올 시기에 맞춰서 일을 끝내 놔야지.”
“이미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들이 계획한 건 무대에 둘러진 진법에 선천지기를 바치는 일이었다.
선천지기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진 기운이다.
쉽게 말해 생명, 목숨줄이었다.
“실수가 없어야 해.”
그래야지만 진법이 실행됐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오직 19살 이하의 선천지기여야만 했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을 몇 달 앞당긴 이유도 다 이 진법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각국 대표 아이들의 목숨이라면.
분명 진법이 실행될 거라 여겼다.
그와 동시에 인주가 블랙존 게이트를 굴복시킨다면?
지주의 측근들이 이 세계로 넘어올 발판이 마련된다.
자신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해 먼저 온 선발대.
오직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 당소미가 명받은 임무였다.
지주 쪽 사람들이 넘어오는 건 탐탁지 않지만 어쩌랴.
라이벌 관계라도 해야 할 건 해야 했다.
“복수는 그다음에 하자.”
“알겠습니다.”
* * *
[마조의 알이 파천멸기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습니다.]
[마조의 알: 파천멸기(100%)]
[부화를 시작합니다.]
[흑염의 마조가 눈을 뜹니다.]
이준의 앞에 뜬 메시지 창과 함께 알에서 뿜어지던 빛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기 새로 보이는 녀석이 나타났다.
하나 그는 아기 새를 볼 정신이 없었다.
‘미, 미친! 이거 왜 이래?’
요란하게 울리는 경고음에 메세지 창을 보았다.
[천상의 동쪽이 화들짝 놀라 합니다.]
[마조의 등장에 천상의 동쪽이 경계합니다.]
[천상과 관련된 모든 게이트에 봉쇄 명령을 내립니다.]
[대지의 서쪽이 화들짝 놀라 합니다.]
[마조의 등장에 대지의 서쪽이 성화의 방향을 보며 눈치를 살핍니다.]
[대지와 관련된 모든 게이트에 봉쇄 명령을 내립니다.]
[빙하의 무리는 마조를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라진 북쪽의 주인을 찾는 것에 분주합니다.]
이제 마지막 메시지였다.
위에 나온 메시지는 넘겨도 될 말들.
하나 이 메시지는 넘길 수 없었다.
[성화의 반쪽이 마조의 존재에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성화의 반쪽이 마조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성화의 반쪽이 4대 성지의 금역에 쳐들어올 시간 - 3개월.]
[성화의 반쪽이 쳐들어오기 전 당신이 먼저 공격을 해도 됩니다.]
‘사부님. 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마조랑 무슨 원수를 졌나.’
이준이 당황했다.
뜬금없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쳐들어온다는 게 아닌가.
무려 블랙급 보스 몬스터가 말이다.
일반 블랙급 보스 몬스터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미치겠는데, 블랙급 중에서도 최상위 존재였다.
사신수 중 하나.
불과 관련된 사신수는 주작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녀석이 4대 성지의 금역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천상의 동쪽.
벌써 사신수 두 마리와 척을 지게 된 것이다.
‘하, 미치겠네.’
[우리 마조가 아주 대단한 녀석이라 그런 것이니라.]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언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사부님은 뭐 알고 있죠?’
[큼큼. 때가 되면 알 것이니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뜬 창 때문에 시선이 돌아갔다.
[서브 퀘스트 ‘흑염을 뿌리는 마조’가 주어집니다.]
이준은 서브 퀘스트를 열었다.
[서브 퀘스트 - 흑염을 뿌리는 마조.]
난이도: S
설명: 마조는 과거 이루지 못한 꿈을 이곳에서 이루길 원합니다. 마조가 꿈을 이루기 위해 주인된 입장에서 마조의 성장을 도우십시오.
완료 조건: SSS급 패시브 스킬 흑염 획득(성화의 반쪽이 쳐들어오기 전.)
보상: ???(해금)
‘마조의 성장을 돕다 보면 알게 되겠지.’
좋은 생각을 가지려는데 퀘스트를 읽을수록 인상이 찌푸려졌다.
완료 조건에 떡 하니 쓰여 있는 문구.
성화의 남쪽이 쳐들어오기 전에 SSS급 패시브 스킬인 흑염을 얻으란다.
‘SSS급 패시브 스킬이 자다가 일어나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성장 등급이라 알려 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키우라는 이야기.
이게 제일 어려웠다.
SSS급 패시브 스킬을 얻는다는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준은 마조를 향해 손을 내리그었다.
마조에 대한 상태창이 떴다.
[기본 정보]
이름: 마조 - 성장도 1%
종: ???
희귀도: 블랙(현재 - 레드)
속성: 화
호감도: 0
영역(0/1): 무
-적대 영역-
성화의 남쪽
[능력치]
공격력: S 방어력: B 속도: AA
특수 공격력: SS 특수 방어력: B
패시브 기술 - 흑염(S)
액티브 기술 - 무
새끼로 태어난 녀석치고는 능력치가 깡패였다.
태생은 블랙급.
현재의 등급도 레드급에 해당했다.
‘흑염의 스킬이 S인데 SSS급으로 올리라는 건 성장형이라는 이야기인데…’
이준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흑염의 스킬 창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