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투둑툭툭.
은오의 몸 내부에서 소리가 났다.
“으으으읍!”
혈맥이 끊기는 소리였다.
은오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건 이준이 손을 움직인 직후.
그의 얼굴에 난 힘줄이 터질 듯 팽창되었다.
“어어?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된다니까?”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은오의 몸에 내기를 주입해 혈맥을 터트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상대는 벌써부터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무극자 사부는 적이 고문을 견디면 무공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준은 적이 고문을 버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버티는 걸 보니, 얼마 못 갈 것만 같았다.
“하, 너 정말 약하구나?”
이준이 은오의 몸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이준과 눈이 마주친 은오는 억울했다.
이준이 한 수법은 내가중수법.
내공으로 혈맥을 터트리는 아주 악독한 수법이다.
어떠한 고문에도 버티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자신이니까 이 정도로 버티는 거지.
웬만한 고수들도 이 같은 고문은 절대 못 버틸 것이다.
그래서 너무 억울했다.
“좀 쉬었으니까 다시 시작하자.”
“읍읍!”
이준의 시작한다는 말에 은오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고개를 젓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눈을 크게 뜨며 강렬히 저항한 거다.
“알았어. 천천히 할 테니까 잘 참아 봐. 내가 쉬는 시간도 줬잖아.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그는 은오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고문을 시작했다.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무극자는 말없이 있었다.
[무서운 제자 놈.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저런 말을 할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독한 제자 놈이구나.]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자이기에 망정이지 적이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제자 놈 같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실력으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놈들이 제일 피하고 싶은 상대였으니까.
무극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켜만 봤다.
투둑툭툭!
은오의 몸에 난 모공이란 모공 속에선 액체가 흘러나왔다.
더러운 노폐물이 아닌, 핏물!
전신이 피로 물든 지 오래였다.
눈에는 얼마나 힘을 줬는지, 실핏줄이 터져 혈안이 된 상태였다.
“이쯤이면 대충 했겠다. 이제 심문을 시작해 볼까?”
파밧-
이준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은오의 몸을 두드렸다.
혈도가 풀리자.
“푸웁!”
은오는 피를 게워 내야만 했다.
내상을 심하게 입어 피와 함께 내장의 찌꺼기가 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준의 눈에는 동정심이라는 게 없었다.
“이제 말할 마음이 생겼어? 난 네가 말 안 했으면 좋겠어.”
진심이었다.
중국은 천외천의 영역.
앞에 있는 적 말고도 무수히 많은 천외천의 인물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 정보를 알아내나,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알아내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이준이었다.
차라리 입을 꾹 다물어 사부와 한 내기에서 자신이 이겼으면 더 좋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이준의 생각과는 달랐다.
내가중수법의 고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살수인 은오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의 무대….”
“아, 그냥 안 들을래.”
이준이 손을 움직여 은오의 혈도를 틀어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오히려 은오의 말이 빨라졌다.
“에 폭멸진이란… 쿨럭쿨럭…. 진법이 펼쳐져 있다….”
은오는 기침을 하면서도 말을 끝까지 했다.
창백한 안색.
언제 죽어도 괜찮을 만큼 아파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유는 유망주를 희생시켜 블랙존 게이트를 열려는 수작이지?”
“어, 어떻게?”
은오가 입을 떡 벌렸다.
자신들의 계획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고문으로 인한 고통은 지금도 느껴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당소미 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당소미가 주시하고 있던 이준이 천외천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것.
천외천에게 아주 큰 악재로 찾아올지 모른다고 여긴 순간.
“확인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죽어.”
퍽!
이준의 주먹이 은오의 심장을 강타했다.
은오는 가슴이 뻥 뚫려 죽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수하인 은살대가 이준의 손에 전멸했다.
그 누가!
AA급 초입의 집단을 박살낼 수가 있나.
중국의 검존도 못하는 일이었다.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만 앞당겨졌지 과거랑 똑같네.”
다행이었다.
전생과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골치 아팠을 터.
알고 있는 사실대로 시간이 흘러가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이제 돌아가야겠어.”
요란하게도 싸웠다.
거의 강진을 예상할 만큼의 규모인데도 아직까지 해안가로 출동하는 각성자가 없었다.
그 말인 즉슨.
모두의 시선이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가 있다는 말.
그만큼 이번 대회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난장판을 쳐놨으니, 언젠가는 중국 측 각성자가 파견될 터.
흔적을 지우고 자리를 뜨는게 상책이었다.
* * *
그 시각.
당소미는 대회를 보다가 인근 도시로 왔다.
그녀가 공손한 자세로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인주 사마영이었다.
“이준이란 놈은 알아봤어?”
“개의치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은오의 은신도 알아채지 못한 놈이에요.”
“백영창법을 익힌 놈이 은오의 은신도 못 알아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군.”
“제가 처리할 것이니 인주께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하나의 게이트.
허공에 둥실 떠 있는 포탈의 색은 무려 검은색이었다.
블랙존 게이트였다.
“빨리 처리해. 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게 영 신경 쓰여서 말이지.”
“알겠습니다. 갔다 오시는 동안 처리해 놓겠습니다.”
“소미 너만 믿으마.”
“외람 되는 말씀이지만 혹, 며칠 정도로 예상하고 계세요?”
“몬스터를 굴복시키는 거 말이냐?”
“예.”
“흐음….”
인주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힘이라면 일주일이면 블랙존 게이트를 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한 힘이 아닌 상황.
무림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그의 힘은 절반이나 소실되었다.
다시 되찾는 건 일도 아니나, 최고의 실력을 갖췄을 때와는 현저하게 격이 낮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인주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인주는 당소미뿐만이 아니라 천외천의 그 누구와도 실력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괜히 무신이란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한 달은 걸릴 듯싶구나.”
“섬멸이 아니라 복종이라 오래 걸리시는군요.”
“그렇지. 몬스터를 죽이는 거였으면 나에게 한 달은 수치다.”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소미가 물어본 거니까 봐주지.”
“감사합니….”
쿠우우우웅!
바닥의 진동이 꽤 거셌다.
심상치 않은 대기의 파동에 인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이 거지 같은 느낌을 여기서 받는다고?”
잔뜩 찌푸려졌던 인주의 얼굴이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파동에 기분이 나빠졌다.
“저 파동을 일으킨 범인이 누군지 당장 알아봐.”
“네! 들었지? 어서 알아….”
“소미 네가 직접!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존명!”
당소미가 부하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인주와 남은 측근들.
그들은 인주가 당소미만 예뻐하자, 자리에 없는 그녀를 헐뜯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데 당소미만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소미가 어때서?”
“‘그’의 신물인 마겁도 회수 못 하지 않았습니까.”
“혈불도 가져오지 못한 거잖아. 소미라고 가능하겠어?”
당소미와 혈불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고수였다.
천외천 쪽에선 당소미보다 혈불을 더 고수로 쳐주는 상황.
혈불이 실패했다면 당소미가 마겁을 회수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응당 벌을 내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밑에 있는 아이들의 기강이 해이해질지 모릅니다.”
“됐어.”
“인주님!”
“내가 됐다하지 않았나. 네가 내 상관이라도 되는 거나?”
인주가 눈을 번들거렸다.
혈안에서 흑안으로 바뀐 그의 기세는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선을 넘어 버린 측근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 인주께서 나중에 지주에게 책이 잡힐까 봐…”
“나도 알아. 그 빌어먹을 둘째 사형이 지랄하겠지. 그런데 어쩌겠어. 마겁이 어디 뉘 집 개 이름이라고. 우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마겁은 ‘그’가 죽었을 때부터 힘을 잃은 게 아니었습니까?”
“마겁이 힘을 잃어? 큭큭. 그건 첫째 사형이 만든 개소리지. 마겁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어. 오히려 노괴가 지녔을 때보다 더 강해졌어. 제어를 하지 못해, 누구도 가지지 못하게 봉인한 것뿐이야. 그러다 잃어버린 거고 아무튼 소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인주가 블랙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가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 맡은 임무는 하나.
게이트를 이용해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여는 것.
블랙존 게이트의 몬스터를 복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은 타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당소미와 혈불이 알아낸 고급 정보.
블랙급 몬스터 중 사신수만이 타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한다.
사신수는 전설의 동물.
녀석들을 만나기 위해선 밑에 등급의 애들부터 복종을 시켜야 했다.
또한 아시아 학원 대항전의 폐막식에 맞춰야한다.
수준 높은 아이들의 내공과 함께 목숨 값을 바친다면.
필시!
무림에서 이곳으로 넘어 올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하나의 방법만 시도 해도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방법을 쓴다면?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달라질 터.
어쩌면 이번 일로 인해 둘째 사형까지 넘어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갔다 올 동안 잘하고 있어. 괜히 소미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측근들이 인주를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인주는 혼자 블랙존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인간이 혼자 블랙존에 뛰어든 건 전무후무한 일.
모든 걸 최초로 하던 이준이 이때만큼은 인주에게 선수를 뺏기고 말았다.
* * *
웅웅.
파멸겁이 울었다.
[녀석도 싸우고 싶나 보구나.]
이준은 은살대를 사냥하는 동안 파멸겁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마지막에서야 사용하는 정도?
피를 좋아하는 마병이라 그런지.
주인이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울어 댔다.
은살대로 인해 파천멸기도 흡수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싸우고 싶어 하는 걸지 모른다.
‘곧 원 없이 싸우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웅웅.
파멸겁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제 좀 잠잠해졌다.
‘그런데 말이죠 사부님.’
[말하거라.]
‘저한테 무공 전수하는 횟수 끝나셨다면서요?’
[그렇지?]
‘그러면 왜 저한테 내기를 제안하셨어요?’
[홀홀. 내가 내기에 졌느냐?]
‘아니요. 사부님이 이기셨죠?’
[상대가 실토할 것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끌끌.]
‘애초에 안 가르쳐 줄 생각이셨네요.’
[당연하지! 그 무공은 네가 절대 배워선 안되느니라. 자칫 파멸을 몰고 올 수 있어.]
무극자 사부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니까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무공이길래 저리 언성을 높이실까.
혼원신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사부가 걱정할만큼의 무공.
알고 싶었지만 참았다.
때가 되면 넌지시 가르쳐 주시지 않을까.
사부는 이런 사람이었다.
자기가 말하고 싶어서 안 달난 사람.
무공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
입을 한시도 쉬지 않고 놀리는 그런 분이셨다.
아니나 다를까.
[큼큼. 궁금하느냐? 이건 절대 가르쳐 줄 수 없느니라. 뭐? 이름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흐음… 이 어리석은 제자를 어찌할꼬.]
역시나.
예상이 한 치도 빗나가지 않은 사부였다.
괴짜 중의 괴짜.
누가 이런 사람을 고금제일인이라고 생각할까.
후우우우.
사부의 목소리만 들어도 수명이 주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