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213화 (213/705)

제213화

한 번씩 꺼내는 사부의 말.

저 소리가 싫었다.

그래서 애써 무시해 왔다.

박혁진을 제외하면 항상 외톨이었던 적에 찾아온 기적.

무극자 사부는 기연이기도 했지만, 친구이자, 부모 같은 존재였다.

가족조차도 버린 자신을 보살펴 준 사람.

영혼뿐이나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사부가 곁에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꼭 사라질 것 같은 사람처럼 말하네요,’

[사부가 혼원신공에 잠든 세월만 천년을 훌쩍 넘었느니라.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이치이지.]

‘천년을 넘게 사셨으면 100년만 더 살면 되겠습니다.’

[끌끌. 이 사부가 그리 좋으냐.]

‘사부 등골 다 빼 먹으려고 그러죠. 그러니까 저한테 모든 걸 주기 전까지는 안 돼요.’

[욕심도 많은 제자 놈이구나. 끌끌.]

그렇게 사부는 웃기만 했다.

‘괜한 소린 이제 금지입니다.’

화장실을 나온 이준이 밖으로 나왔다.

“야. 똥을 하루 종일 싸냐.”

“변비다. 이 새끼야.”

박혁진의 말에 이준이 당당히 말했다.

“화장실을 가는데 파랑이는 왜 데리고 가냐. 너 때문에 귀여운 파랑이가 고통이잖아.”

“파랑이는 나와 한 몸이야.”

이준의 말에 박혁진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파랑이는 몬스터.

이준을 굉장히 잘 따랐다.

거기다가 강하기까지.

너무도 탐나는 몬스터였다.

박혁진은 이준이 부러워 몬스터를 길들이는 야수공까지 알아봤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로는 화이트급 몬스터가 끝.

그 이상의 등급은 길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결국 몬스터를 키우는 건 포기.

그래서 이준이 미친 듯 부러웠다.

“나도 블루급 몬스터를 얻었으면 좋겠다.”

“넌 꿈 깨. 바랄 걸 바라야지.”

“파랑이 있다고 나 무시하냐.”

“무시가 아니라 현실 직시.”

“몬스터 키우는 거 포기했는데, 너 때문에 안 되겠다. 내가 꼭 파랑이보다 귀여운 몬스터를 길들이고 만다.”

“그래. 이 형이 기도해 주마.”

이준이 끝까지 박혁진을 놀리고는 남선호를 향해 물었다.

“선호. 준비됐지?”

“어… 응…”

“긴장하지 마. 네 특기인 방어를 살려. 상대를 최대한 도발해서 약점을 노출시키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최선을 다해 볼게.”

그가 남선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곧이어 두 번째 시합이 있겠습니다.]

[명왕도 미즈시마 요시오라와 적색쌍검 남선호는 무대로 올라와 주십시오.]

방송이 나왔다.

긴장한 얼굴이 역력한 남선호가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선호야. 죽이고 와!”

“선배님. 이준 선생님을 믿고 자신 있게 하시면 됩니다.”

박혁진과 허수가 자신감을 심어 줬다.

“가자.”

이준이 대표팀을 이끌고 대기실에서 나왔다.

경기장으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는데 이준이 우뚝 섰다.

“왜?”

이준의 행동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화장실 좀 가야겠다. 갑자기 배가.”

“으…”

“더러워.”

“우리 먼저 대기석에 앉아 있을 게 빨리 갔다 와.”

“어. 먼저 가.”

이준이 남선호와 아이들을 보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던 그가 입을 뻥긋거렸다.

‘거기. 그대로 멈추지?’

그가 누군가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아이들은 사라지고 복도에 혼자 남은 이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감은 있네. 아니었으면 그냥 목을 따버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박은비에게 붙은 아주 은밀한 기운.

다양한 기운이 섞여 있어 구분을 못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준은 S급 각성자였다.

특히 마기는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익숙한 마기야. 감시자의 실력이 AA급 초입이면 천외천이겠군.’

만독암가의 은신술과는 차원이 다른 은밀함이다.

평범한 경지의 각성자들은 감시당하고 있단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대단한 은신술을 펼치는 곳은 한 곳뿐.

천외천의 사천당가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외천이 왜 내가 아니고 은비에게 붙었지?”

대답은 무극자 사부가 해 줬다.

[전륜살상진 때문일 것이니라.]

‘뭐 때문에요?’

[전륜마멸진은 전륜살상진보다 앞선 진법. 저들이 전륜살상진에 대해 잘 알면 경계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전륜마멸진은 마기의 저항에 특화된 진법 아니겠느냐. 마기를 지녔으니 전륜마멸진을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은비에게 접근했다는 거네요.’

자신에게 천외천이 붙었으면 괜찮을 텐데.

하필 박은비한테 붙었다.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

설마 전륜마멸진으로 인해 천외천이 붙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이들의 실력을 높여 놓긴 했으나, 아직 천외천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적어도 AA급 각성자는 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태로 천외천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

그럼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천외천의 텃밭인 중국으로 온 이유는 보호할 방법이 있어서였다.

이준에겐 개사기 특성인 게이트의 주인이 있지 않나.

그는 이 하나만 믿고 아이들을 중국에 데려온 거다.

위험하다 싶으면 게이트를 열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아이들을 보내면 되니까.

혼자라면 천외천에게서 살아나갈 수 있는 이준이었다.

‘이참에 천외천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

천외천 놈이 나타나기도 했겠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기만 하면 이곳에서의 운신이 폭이 넓어질 거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고, 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안 나오면 내가 찾으면 돼.”

이준의 무릎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 * *

남선호가 무대에 섰다.

반대편에 있는 상대를 보았다.

명왕도 미즈시마 요시오라.

사파의 도법인 명왕도법을 익힌 도수.

강중강으로 그의 도를 막을 자는 일본 유망주 중에서도 손을 꼽는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싸움의 경험이 많다고 한다.

일본 배틀 서바이벌의 승자.

배틀로얄에서 참가자 모두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을 만큼 싸움에 일가견이 있었다.

다른 때였으면 잔뜩 쫄아서 쳐다도 못 봤을 테지만, 자신은 한국 대표팀.

상대에게 지면, 한국이 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도 은비처럼 해낼 수 있어. 후우우우.’

남선호는 그동안 했던 수련을 떠올렸다.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팔다리에 각각 수백 킬로짜리 철환을 차고 있었다.

도합 1톤은 가뿐히 넘는 무게.

이준은 아직 철환을 떼는 걸 승인해 주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이 상태로 이기라는 말이다.

‘레드존 게이트에서도 살아 나온 나야. 상대가 배틀로얄의 우승자라도 내 밑이 분명해.’

아니었다면 일본도 유망주들이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고 소문을 내지 않았을까.

국제 미디어에 유망주가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한 건 한국이 처음이었다.

‘이긴다!’

남선호가 손에 든 쌍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쌍검에는 파란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호오. 아직 시작하라는 신호가 안 떨어졌는데, 투지가 대단해.”

미즈시마 요시오라는 허약해 보이는 남선호를 비꼬았다.

그가 보기에 남선호는 도에 한 방이면 나가떨어질 만큼 약해 보였다.

파리 목숨과 같은 놈이 투지를 태우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지.

남선호는 여흥 거리도 안된 상대.

미즈시마 요시오라는 한껏 여유를 부렸다.

“심판님. 시작해도 되는지요?”

심판이 고개를 끄덕인 후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 소리와 동시에 공격할 줄 알았던 남선호는 가만히 있었다.

“공격할 것처럼 행동하더니 뭐 하냐?”

“와, 와라.”

남선호의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말을 더듬는 버릇에 그가 잔뜩 긴장했다고 생각한 미즈시마 요시오라가 피식 웃었다.

“하필 걸려도 이런 겁 많은 놈이 걸렸냐. 너 정말 운 안 좋다.”

“너, 넌 입으로만 싸워?”

남선호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할 말은 했다.

그의 행동에 미즈시마 요시오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상대의 도발.

하필 상대를 쓰러트려도 명성에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인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있는 게 못마땅 했다.

“죽여달라고 소리치는데 죽여줘야지!”

미즈시마 요시오라는 평소에는 점잖은 태도를 보였지만, 싸울 때는 180도 달라졌다.

돌진하는 황소.

다르게 말하면 고삐 풀린 망나니라고 해야 하나.

성격이 완전히 변한다.

지금처럼.

쿵!

미즈시마 요시오라의 디딤발이 바닥에 족적을 남겼다.

허리춤에 차여진 도를 벼락같이 꺼내 휘둘렀다.

일본 특유의 발도술.

명왕도법에 발도술을 가미한 거다.

이 수법에 쓰러진 일본 유망주만 수백 명.

미즈시마 요시오라는 남선호도 이 한 수에 두 동강이 날 거라고 자신했다.

까아아앙!

“호오.”

미즈시마 요시오라는 상당히 놀랐다.

남선호가 쌍검으로 자신의 발도술을 막은 것.

겁쟁이에 약골 같아 보였던 놈의 반전이었다.

그래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승리는 일본의 것.

이번 경기에서 한국은 승리가 아닌 패배를 맛볼 것이다.

왜 자신이 명왕도인지.

세계인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이것도 받아 봐라!”

미즈시마 요시오라의 도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혔다.

도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갈래의 줄기들이 남선호를 향해 덮쳤다.

* * *

쾅!

이준의 진각에 의해 복도의 바닥이 부서졌다.

동시에 한 그림자가 위로 튀어나왔다.

복면을 쓴 남자.

전형적인 암살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를 향해 이준의 팔이 전광석화같이 움직였다.

손을 활짝 펼쳐 복면인의 목을 움켜쥐려는데, 아슬아슬하게 피한 복면인.

이준과 거리를 빠르게 벌렸다.

그가 이준을 쳐다봤다.

눈동자가 떨리는 걸 보면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자라, 당황한 기색을 재빨리 감췄다.

암살자의 행동강령.

미행이 들키거나 대상의 암살에 실패하면 곧바로 도망치는 것.

뛰어난 살수일수록 행동강령을 굉장히 잘 지켰다.

복면인 또한 마찬가지.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경공을 펼쳐 도망쳤다.

이준은 그가 도망칠 때까지 보고만 있었다.

“이만하면 놀랐겠죠?”

[놀라다마다. 식겁했을 것이니라.]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에 큰 자부심을 가졌으나.

은신술도 그에 못지않게 자신했다.

직계가 아닌 방계의 인원일 경우 독과 암기보다 은신술을 선호하기도 했다.

독과 암기는 직계 혈통 아니면 상승의 무학을 익히지 못하나.

은신술은 직계가 아니어도 상승의 무학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놈은 방계 출신에 해당할 터.

이곳에 와서는 은신술을 한 번도 들키지 않았을 텐데, 자신에게 발각당해 혼란스러울 거다.

“천천히 따라가야겠네요. 과연 누가 나올까.”

이준의 행동은 여유로웠다.

확실히 AA급에 있을 때와 움직임이 달랐다.

원래도 의지에 따라 내공이 몸속을 돌았으나 지금은 그 세 배였다.

자신이 강해졌다는 게 가슴에 와 닿을 정도.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복면인을 잡을 수도 있었다.

강해졌다는 게 느껴지자 조급한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근질근질했다.

빨리 누군가와 제대로된 손속을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지.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기술!

허공섭물을 마음껏 써보고 싶었다.

고작 도망치는 적을 끌어당기는 게 아닌 대규모 허공섭물을.

AA급일 때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한 단계 높은 수준도 될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기술을 자신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이준이 허공섭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하나.

오로지 멋 때문이었다.

사람이나 물건을 손짓 하나만으로 허공에 띄우거나 처박을 수 있는 기술.

상대를 압도하고 주변을 열광시키기에 허공섭물만 한 건 없었다.

“흐흐. 생각만 해도 미쳤네.”

이준이 헤벌레 웃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음이 무극자 사부에게 전해졌을까.

그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부도 한참 때는 한 허공섭물을 했지. 크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