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일본 대표팀의 의무실.
사사키 유우가 침상에 고이 누워 있었다.
일본 대표팀 닥터는 그녀의 상태를 살피는 중이다.
이토 준지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사키 유우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큰일이군. 사사키 가문에서 난리 치겠어.”
아니나 다를까.
이토 준지로의 폰이 울렸다.
국제 전화였다.
심지어 일본이었다.
“사사키 미나미냐.”
-‘사사키 미나미냐’? 내 딸이 다쳤는데 넌 태평하게 전화 받아?
“나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상대는 한국의 무명 각성자였어. 그리고 유우가 사독연도 쓰는 걸 TV에서 보지 않았나. 상대의 전력을 알지 못한 게 패착이다.”
이토 준지로의 말에 사사키 유우의 엄마인 미나미의 목소리가 커졌다.
-입 닥쳐! 내 딸 반드시 정상으로 만들어서 데려와. 아니면 너희 이토 가문을 일본에서 지워 버릴 거야. 알았어?”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이토 준지로와 사사키 유우의 엄마인 미나미와는 소꿉친구.
어렸을 적부터 동네에서 같이 자란 절친이다.
만약 가문의 정략결혼만 아니었다면 그녀와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운명.
아직도 마음 한편에 그녀를 간직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예의 없게 나와도 참았던 이유였다.
이토 준지로는 사사키 유우를 치료하고 있는 팀 닥터를 봤다.
“상태가 어떤가.”
“내상을 입은 게 전부일 뿐 문제 없습니다. 다만…”
“다만?”
“얼굴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가?”
“환골탈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심각하군. 골치 아프겠어.”
그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일본으로 돌아가서 미나미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고 자신을 죽이려 하겠지.
미나미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유우를 원래의 얼굴로 돌려놔야 한다.
“음양쌍두사의 내단을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음양쌍두사 말입니까?”
팀 닥터가 놀랐다.
양기와 음기를 지닌 두 마리의 뱀이 한 몸으로 되어 있는 영물이다.
음양쌍두사를 먹으면 단번에 AA급이 된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보물이었다.
그런 영약을 입에 올리니 놀란 거다.
“음양쌍두사의 내단도 안 되나?”
“무조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그냥 회복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나아질 것입니다. 단…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요.”
“어쩔 수 없군. 대회가 끝나면 중국에서 게이트 공략을 해야겠어.”
“음양쌍두사가 중국에 있는 겁니까?”
“내 정보로는 이 광동성 내 레드존 게이트에 있다더군.”
“헉!”
이토 준지로가 몸을 돌렸다.
2시간 쉬었다가 시작되는 다음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아이 발작 못 하게 잘 보살피게.”
“네!”
대표팀이 있는 대기실로 돌아온 이토 준지로.
대기실은 굉장히 고요했다.
예상 밖의 패배.
그토록 무시했던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다.
그것도 유망주 랭킹 2위가 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이다.
일본 대표팀에겐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다음 시합은 미즈시마 요시오라인가.”
“예. 선생님.”
일본 유망주 3위에 빛나는 남자.
염왕도법이라는 파괴적인 무공을 익힌 그가 손을 들었다.
“사사키 유우가 당한 걸 봤지? 무명이라고 방심하면 진다.”
“명심하겠습니다.”
“나가서 상대를 죽이고 돌아와라.”
아시아 학원 대항전은 서로 간이나 보는 시합이 아니다.
그 어떠한 짓도 가능했다.
설령 치졸한 수법이라도 반칙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사키 유우처럼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다 해서 상대 국가에게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다.
당장 자신들도 한국 대표팀들을 잔혹하게 손봐 줄 생각이었다. 예상외의 전력에 되레 당한 건 자신들이었지만.
딱 하나 있는 규칙이라면 시합 중, 심판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
하나 이따위 룰을 지키고 싶은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받은 대로 돌려줄 뿐이다.
“그래도 됩니까?”
“뒤는 내가 책임지겠다. 저 조센징놈들이 다신 우리 일본 제국을 내려다볼 수 없게끔 해라.”
“맡겨만 주십시오.”
이토 준지로의 단호한 명령에 미즈시마 요시오라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마침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스태프가 들어왔다.
“준지로 님. 다음 시합 상대가 나왔습니다.”
“누구냐.”
“이번에도 적색쌍검이라는 무명의 각성자입니다.”
“우리 일본을 X로 보고 있군.”
“요시오라.”
“예!”
“확실히 끝내라. 심판이 개입하더라도 너라면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 *
일본 대표팀의 대기실 분위기와 반대로 한국 대표팀의 대기실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은비야 멋있더라.”
“그냥 찜 쪄 먹던데?”
“은비 언니가 이렇게 강할지 몰랐어요. 축하해요.”
“모두 감사합니다.”
박은비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일 기뻐한 사람은 그녀의 단짝 친구인 서혜지였다.
“은비야! 네가 일본 유망주 2위를 이긴 거야. 꺄아아아.”
서혜지는 자기가 이긴 듯 진심으로 좋아했다.
무사고 학생들은 자신과 박은비, 남선호는 깍두기로 여겼다.
한지유의 친구니까.
이준이 빛을 발하기 전, 같은 조여서 특별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천무 대전은 순전히 운이며,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도 무사고 학생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창왕인 이준과 박 씨 남매.
빙화 한지유.
패력진천을 단숨에 꺾어 버린 섬전도 허수.
독화와 암화 자매.
이들이 다 했다고 생각했다.
깍두기인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로 구성된 조는 선생인 차경진이 보조를 해 줬고.
위험한 순간에는 이준이 나서서 보호를 해 주지 않았을까.
레드존 게이트 공략 방송을 보고도 무사고 학생들은 속으로 믿고 싶지 않았다.
세 사람을 향한 질투심이 안목을 가린 거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이젠 달랐다.
국제 대회에서의 승리.
그것도 일본 유망주 2순위에 달한 학생을 이겼다.
막상막하의 싸움도 아닌, 일방적인압도적인 승리였다.
언제 한국이 국제 대회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일본이나 중국을 이길 수 있었던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오왕이 유망주 시절에도 일본에겐 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한국으로선 꼭 넘고 싶은 곳이 중국과 일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사고 애들이 널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럴까?”
“당연하지. 이제 당당히 특별반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겠다.”
두 사람의 말에 한지유가 말했다.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거야?”
“우린 지유 너나 정연 선배처럼 천재가 아니잖아.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다 천재들인걸.”
“일반 각성자인 우리가 기죽을 수밖에 없지.”
박은비와 서혜지의 말을 들은 이준이 피식 웃었다.
저들은 F, E급 반에서 최상위 성적을 지닌 학생들.
폐급이었던 시절의 이준에게 오히려 그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노력 여하에 따라 등급을 높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서자에 혈족 계승도 못 받았다.
하필 계승을 받아도 삼재심법이라는 희대의 쓰레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무극자 사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전생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터.
박은비와 서혜지는 자신의 처지보다는 괜찮았다.
또한 자신은 권왕의 아들이라 해서 백으로 무사고에 들어왔지 않나.
두 사람은 명백히 제 실력으로 명문 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이 학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너희는 일반 각성자보다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 셈이야. 그리고 말이야.”
이준이 박혁진과 박정연, 한지유와 정예나, 정예은을 차례차례 보며 말했다.
“저 괴물들과의 재능을 비교하지 마. 괜히 현타 와서 무공 때려치우고 싶을 거니까.”
“누가 할 소린데.”
“참나. 진짜 미친 괴물이 우리한테 재능 있다고 하니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박혁진과 박정연이 한마디 했다.
“선생님. 저는 왜 빼고 말씀하시는지….”
진경수는 자신을 호명해 주지 않은 이준에게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준의 대답은 없었다.
뻘쭘한지 진경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잘했어. 전륜마멸진을 사용해 본 소감은 어때?”
이준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박은비에게 향했다.
“한마디로 미쳤어.”
“누가 만든 건데 안 좋을 수가 없지.”
[암. 내 제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것이니라.]
무극자 사부가 뿌듯해했다.
사부의 시대 때 혈마가 사용했던 전율스러운 진법이 현대에 강림한 것.
아직은 미숙하고 서투르지만 완벽히 적응하면 일인 군단이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만큼 전륜마멸진의 효과는 뛰어나다는 말이 민망할 정도의 진법이었다.
“어떤 면이? 경기를 지켜보니까 한빙심법의 한기가 엄청나던데 증폭 효과가 미쳤다는 거야?”
“아니면 부 속성 말인가요? 사사키 유우의 얼굴에 화상이 난 걸 보면 화 속성으로 한 것 같았는데 대체 언제 화 속성을 쓴 거예요?”
박혁진과 정예은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박은비의 대답을 기다렸다.
주 속성은 모두가 느꼈던 것 같은데 부 속성은 전혀 느끼지 못한 눈치였다.
쏟아지는 질문에 박은비가 대답을 못 하자 이준이 주위를 정리했다.
“자자.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다음 전략을 짜야지.”
“전략이 뭐 필요하겠어. 은비 보면 우리가 필승일 것 같은데. 다음 상대는 사사키 유우보다 약한 요기요 뭐시기라며.”
전생을 몰랐다면 이준도 박혁진과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하나 이준은 전생을 알고 있다.
명왕도법을 사용하는 미즈시마 요시오라란 놈에 대해서도 안다.
천외천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국에서 패왕도가와 신력권가가 앞잡이 노릇을 했다면.
일본에서 천외천의 앞잡이 노릇을 한 곳은 미즈시마 가문이었다.
7년 후의 일이지만, 그때는 사사키 유우보다 미즈시마 요시오라가 더 강했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지금도 사사키 유우보다 미즈시마가 더 강할지도 몰라.’
본래 자기의 힘과 천외천에게 받은 힘을 계속 숨기고 있었을지 누가 아나.
훗날을 생각했을 때는 미즈시마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가정이 제일 들어맞았다.
미래에 사사키 유우와 미즈시마 요시오라의 차이는 엄청났으니까.
괜히 미즈시마가 천외천의 선봉으로 나서 일본의 절반을 먹은 게 아니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서 천외천의 존재가 있다는 걸 각인 시키는 것도 중요해.’
천외천은 전 세계에 숨어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
천외천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경각심을 가질 필요 있었다.
“상성이 좋지 않아.”
“어떤 상성?”
“게임으로 치면 선호의 포지션은 탱커인 전사야. 그런데 무기는 쌍검이지. 쌍검이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 알지?”
“메인 딜러. 그것도 극딜 포지션인데 그게 왜?”
“상대도 하필 극딜 포지션이야.”
“아, 명왕도!”
“명도에 분류된 도를 선호의 쌍검이 얼마나 버티냐, 인데…”
“전륜마멸진으로는 커버가 안 되려나?”
“말했다시피 선호는 극딜 포지션을 가지고 있지만, 메인은 탱커야. 전륜마멸진으로도 무기와 무공의 완전한 상성은 전부 커버하지 못해.”
박혁진이 그제야 이해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론은 쌍검의 특징을 다 버리고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리네.”
“맞아. 아니면 애매한 공격으로 당할지 몰라. 그리고… 사사키 유우로 인해 일본이 이를 갈고 있을 거야.”
“인정. 어쩌면 선호를 죽이려 할지도.”
“그 말은 너무 갔다.”
박은비가 애써 부정했으나, 박혁진의 이야기는 이준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일본 종특은 속내가 음험하다는 거야. 그토록 자랑하던 유망주가 전 세계 앞에서 망신을 당했으니 되갚아 주려고 할 게 분명해.”
이토 준지로라면.
그에 못지않은 혐한파인 미즈시마 요시오라면.
상대인 남선호를 죽이려 할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