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중국 대표팀 측 숙소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쾅!
검존 진천우의 손에 의해 탁자가 박살났다.
“아직도 원인을 못 찾아?”
“죄, 죄송합니다.”
중국 대표팀을 관리 감독하는 선생이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대표팀 인원들이 갑자기 집단 설사를 하는 게 아닌가.
음식을 잘못 먹어서 이러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확인해 본 결과 음식에는 이상이 없었다.
여러 방면으로 대표팀이 설사병에 걸린 이유를 알아봤는데,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현재도 학생들은 훈련을 하지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훈련은 무슨, 출전했다가 쪽만 당하게 생겼다.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니. 허 우리 북경 아카데미의 수치야. 각성자가 설사병이라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각성자는 내공으로 생리 현상을 조절할 수 있었다.
복통 같은 가벼운 병증을 가라앉히는 건 껌.
그런데 고작 설사 하나 때문에 제대로 된 수련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중국 대표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워, 원장님!”
진천우가 있던 방으로 한 남자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북경 아카데미의 선생 중 한 명인 당운이었다.
“무슨 일인가.”
“원인을 찾았습니다.”
“찾았어? 그래 원인이 뭔가?”
“이겁니다.”
당운의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다.
쟁반 위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음식들.
진천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음식? 음식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하지 않았나?”
“화, 확인을 했는데…”
“백 선생 잘못이 아닙니다. 저 또한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지 뭡니까.”
“음식에 독이 뿌려졌기라도 했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나 자네가 찾지 못할 리가 없는데?”
진천우는 AA급 각성자.
중국에서 최상위에 속한 각성자였다.
그런데 그의 눈엔 음식에 독이 뿌려져 있는 게 보이지 않았다.
기감 또한 마찬가지.
만약 음식에 독이 뿌려져 있었다면 기로 느끼지 않았을까.
“저도 원장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음식을 셰프에게 먹게 했는데….”
“했는데?”
“학생들과 똑같은 현상을 보였습니다.”
“이 또한 백 선생이 확인 했다고 하던데.”
진천우의 질문에 백 선생이라는 작자가 당황해했다.
그도 음식을 철저히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에나, 기감으로 보나 별문제가 없어 보여 음식 말고 다른 것이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음식이 문제라 해도 중국 대표팀뿐만이 아니라 각국 대표팀이 다 먹은 음식.
음식에 독이 들었다면 호텔 전체가 난리가 났을 거다.
한데 오직 중국 대표팀 측만 설사병에 걸려서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쯧.”
진천우가 백 선생을 보며 혀를 찼다.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이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당운이 재빨리 말했다.
“저도 음식에 원인이 있다고만 생각할 뿐, 아직 명확한 이유를 찾진 못했습니다.”
“음식에 설사를 일으킨 독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음식에 어떤 성분의 독이 들어가 있는지도 알기 어려울뿐더러 누가 범인인지도 밝혀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네도 말인가?”
“예…”
진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운은 사천당가의 무공을 계승한 계승자다.
이 세상의 독이란 독은 다 아는 사람.
그런 그가 음식에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좀처럼 알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가 못하면 중국의 어떤 각성자도 원인을 밝혀내진 못 할 터.
골치가 아팠다.
진천우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자.
당운이 말을 이었다.
“그나마 의심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한국 대표팀 측입니다.”
“한국 대표팀?”
“예. CCTV를 돌려봤는데 저희 측과 한국 대표 측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장 한국 대표팀을 소환하게!”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없긴 왜 없나. CCTV와 이렇게 독이 든 음식이 남아 있는데.”
“그게…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조금 전부터 이 음식을 먹어도 설사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뭐?”
“셰프에게 먹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성분이 남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진천우는 기가 찼다.
당장 한국 대표팀을 압박하려 했건만 남아 있는 증거가 사라졌단다.
지금까지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어이가 없었다.
진천우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그때.
안으로 당소미가 들어왔다.
앉아 있던 진천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밖이 많이 시끄럽던데.”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당소미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소미는 당연한 듯 진천우가 앉아 있던 소파로 가서 앉았다.
“신경 쓰지 않고 싶어도 요번 대회는 나한테도 중요하거든.”
당소미가 고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세 사람.
바짝 얼어붙은 채로 긴장을 했다.
영혼을 사로잡는 마력이 당소미의 미소에 어려 있었다.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혼이 나갈 것만 같아 급히 고개를 숙인 세 사람이다.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했다.
“어머, 이 맛있는 음식을 두고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녀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제일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음식이다.
무림과는 달리 다양한 먹거리로 풍성했다.
맛은 또 얼마나 일품인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녀가 음식을 집어 입으로 넣는 순간!
“퉷!”
곧바로 음식을 뱉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입에선 놀라운 말이 나왔다.
“무형지독이 왜 이 음식에 느껴지는 거야?”
S급 각성자에 해당하는 그녀조차 음식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입 베어 물고서야 뒤늦게 독을 알아챈 것이다.
“예에? 무, 무형지독이라니요?”
제일 놀란 사람은 당운이었다.
독과 암기의 대가인 사천당문의 무공을 계승한 그라 무형지독이 얼마나 굉장한 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무형지독의 몇 가지 성분이 이 음식에 들어 있어.”
“헉!”
“누가 여기에 독을 넣은 거야?”
“아직 범인을 밝혀내진 못했지만… 한국 측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측이라…”
“잡아 올까요?”
진천우가 살며시 물었다.
그녀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됐어. 한국 쪽에서 무형지독을 풀었다고 해도 잡아떼겠지.”
“제깟 놈들이 발뺌하면 뭐합니까. 저희에게는 소미 님이 계신…데.”
진천우는 말을 하다가 당소미의 싸늘한 눈빛을 받았다.
“넌 무형지독을 개나 소나 쓰는 줄 알아?”
“아, 아닙니다.”
“입 닥치고 애들이나 잘 준비 시켜놔. 내가 준 환은?”
“이미… 먹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당소미가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냈다.
“해독제야. 애들한테 먹여.”
“가, 감사합니다.”
해독제를 놔둔 당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계획하고 있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방을 나가기 전 몸을 돌린 그녀가 손을 튕겼다.
“원래 너희한테는 안 주려고 했는데, 무형지독을 보니 너희도 먹어야겠어.”
세 사람에게 날아간 단환.
금박지로 싸여 있었다.
비싸고 귀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단환을 받아든 세 사람이 감격에 빠졌다.
“가,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은 마치 강력한 마약에 중독된 듯.
단환을 보물 같이 다루었다.
단환을 보는 눈엔 탐욕이 번들거리기도 했고.
“대신 실수라도 하는 날엔 내 손으로 너희들 심장을 으깨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 말을 남기고 당소미가 밖으로 나갔다.
‘중국에서 모르고 있는 무형지독의 성분을 한국 쪽에서 알고 있었던 거야?’
확인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한국에서 무형지독을 알고 있다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한국… 굉장히 거슬려.’
***
아시아 학원 대항전 당일.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대회를 개최한 국가의 대표인 검존 진천우가 단상에서 연설을 했다.
‘준아. 정말 무형지독에 대해서 안 가르쳐 줄 거냐?’
박혁진은 이준에게 전음을 보냈다.
중국과의 마찰이 있었던 이후, 줄곧 그에게 무형지독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완성형이 아니고 무형지독의 성분이라니깐.’
‘그게 그거 아니야. 이것도 네 사부님이 가르쳐 주신 거?’
‘그래그래. 사부님이 가르쳐 주셨으니까 좀 묻지 마라.’
‘네 사부님이라는 분 정말 대단하시다. 난 언제 만나게 해 줄 거야? 친구의 사부님인데 절친인 내가 인사를 드려야지.’
박혁진의 전음을 듣고 있던 무극자가 굉장히 흐뭇해했다.
[끌끌. 고놈 아주 된 녀석이구나. 어쩐지 뇌전검왕의 무공을 계승할 때부터 알아봤느니라.]
‘사부님을 띄워 줘서 그런 게 아니고요?’
[무슨 소리! 딱 봐도 아주 영민하게 생겼지 않느냐. 내 저 아이에게 한 수 가르쳐 줘야겠구나.]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는 엄청 밝았다.
좋아 죽겠다는 게 느껴질 정도.
박혁진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만 같은 음성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제일 궁금한 것도 있어.’
‘뭐?’
‘이명! 너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무형지독도 알고 계시는 거면 엄청난 이명까지 지니고 계시겠지?’
‘무극자라고 가르쳐 줬잖아.’
‘무극자는 정체를 숨기려는 이명일 거야. 분명 엄청난 이명을 가지고 계실 게 분명해!’
박혁진은 거의 추종자에 가까웠다.
무극자 사부를 직접 대면한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몇 마디 정도 들은 게 다다.
한데 어떻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준이었다.
[이런 게 바로 천재의 감이니라. 제자는 따라올 수 없는 이끌림이라고 할까. 홀홀홀.]
사부의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진 채였다.
정말 거짓말은 못 하는 무극자 사부다.
[어서 무시무시한 이 사부의 이명 가르쳐 주거라. 내 특별히 파천과 혈신이란 별호를 부르는 걸 허락하겠노라.]
‘굳이 파천혈신이란 이명을 말해요?’
[그럼 무얼 가르쳐 주려 하느냐.]
‘무신이란 이명도 있잖아요.’
[어허! 사부가 특별히 허락한대도! 어서 말하지 못할까!]
사부도 파천혈신이 제일 강렬하다는 걸 아는지.
무신이란 이명이 아닌 극구 파천혈신이란 이명을 가르치라고 했다.
심지어 제발 말해 달라고 호통까지 치는 게 아닌가.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 험난한 무림에서 살아 남으셨데? 진짜 불가사의다.’
그것도 위명과 악명이 공존하는 지고 무상한 존재로 말이다.
자신이 봤던 무협지와 사부가 살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무극자 사부의 감정은 밖으로 다 드러났다.
‘그렇게 좋으세요?’
[전혀 좋지 않다. 이딴 걸로 고금제일인의 사부가 좋아할 거라 여기느냐.]
‘아니죠. 설마 고금제일인이 시덥잖은 말로 좋아하겠어요?’
[아, 아무렴. 이 사부는 아부 따위엔 전혀 흔들리지 않은 극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느니라. 큼큼.]
이 투명한 사부를 어찌하면 좋을까.
자기의 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한 사부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제자의 입장에서 되레 미안해졌다.
“어? 시작한다.”
이준은 그만 떠들고 앞으로 나갔다.
개회식이 끝나고 바로 조 추첨식이 시작됐다.
각국 인솔자들이 앞으로 나와 다양한 색깔을 공을 뽑는 것이다.
검은 박스에 손을 짚어 놓고 같은 색의 공이 나오면 붙게 되는 룰.
이준을 포함한 각국 대표팀이 공을 뽑았다.
한국 측이 뽑은 공의 색은 노란색이었다.
그것도 1번.
조 추첨이 끝나면 바로 시작되는 순서였다.
이준은 자신과 같은 색의 공을 뽑은 사람을 찾았다.
‘어느 나라지?’
그러다 노란색 공을 쥐고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첫 상대부터 일본이네.’
눈앞의 상대는 이준도 알고 있는 인물이다.
“쯧. 조센징인가.”
AA급 각성자면서 권령으로 불리는 남자.
이토 준지로였다.
특히 그는 한국을 극도로 싫어했다.
월령검 마츠모토 아카기가 친한파라면 이토 준지로는 혐한파.
한국과는 옛날부터 라이벌이자 앙숙 관계라 만나면 으르렁거리기 바빴다.
“애송이를 대표팀 인솔자로 선정했다는 건 대회를 포기 했다는 말이군. 중국팀을 만나기 전에 힘을 아껴서 다행이야.”
한국 대표팀 인솔자인 이준의 나이가 어리자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이토 준지로의 목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이준이 아니었다.
그가 한국을 무시했던 것처럼 이준도 똑같이 받아쳤다.
“전에는 중국이 지랄하더니, 이젠 별 시덥잖은 일본 원숭이 새끼까지 깝치네.”
“뭐얏?”
“어른다워야 공경을 해 주지, 중국이나 일본이나 인성 수준하고는. 시대가 어느 땐데 조센징거리고 있어. 뒤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