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박혁진의 눈동자에 한줄기 뇌전이 맺혔으나.
진가경과 조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큭큭. 무게 잡으면 어쩔 건데.”
“한 대 치려고? 쳐 봐.”
그들의 태도에 박혁진이 천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무시해. 남의 나라 와서 분란 일으키지 말자.”
“쟤들이 먼저 시비 걸었잖아.”
“비무에서 죽여 놔야지. 지금은 아니야.”
박정연이 동생인 박혁진을 말리며 자리에 앉혔다.
한국 측 대표팀이 도발에 넘어오지 않자 진가경이 비열하게 웃었다.
“비무에선 우릴 이길 수 있고? 일본이나 꺾고 올라올 수 있으려나.”
“없지. 딱 봐도 인도 애들한테도 지게 생겼잖아.”
“큭큭. 저렇게 약한데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참가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러게 말이야.”
중국 측 대표팀 학생들이 한국 측을 비웃었다.
갑자기 머리채를 잡힌 인도 팀을 비롯하여 다른 나라 대표팀도 중국 대표팀의 예의 없는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중국은 아시아에서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국가.
심지어 대회도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거라 애써 무시했다.
한편 중국 측에서 비웃는 사이, 정예나와 정예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예은아. 쟤들 엿 좀 먹여 봐.’
‘그래도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 자기들이 먼저 와서 시비 걸었는데.’
‘정연 언니가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잖아.’
‘넌 저 짱깨들이 도발하는 걸 참을 수 있어?’
‘못 참지.’
‘그러면 언니 말대로 해.’
‘…알았어. 뒤는 책임 안 져.’
언니인 정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예은의 눈빛이 착 가라앉더니 팔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쌔애액-!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온 암기가 조염을 스쳐 지나가며 호텔 벽에 박혔다.
작은 바람이 분 건 덤이다.
조염의 작은 눈이 커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거다.
그러다 자신의 추태를 인지했다.
고작 한국 측 대표팀의 공격에 놀란 것.
중국 측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수치였다.
“이 미친년이!”
조염이 정예은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니인 정예나가 화들짝 놀라며 정예은에게 버럭 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정예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네가 암기를 날려 저 실눈 뜬 사람 공격했잖아! 빨리 사과해.”
“공격 아니야.”
“그러면 뭔데!”
“바퀴벌레가 있어서 잡은 것뿐이야.”
“뭐?”
“저기.”
정예은이 가리킨 곳.
비접이 벽면에 박혀 있는 곳엔 그녀의 말대로 바퀴벌레가 몸이 꿰뚫려 죽어 있었다.
중국 측 대표팀에서도 확인을 했다.
“정말이야.”
“그래도 예고도 없이 암기를 날린 건 사과해.”
“미안합니다.”
정예은이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조염은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사과를 받았다.
“어? 으으응.”
정예나와 정예은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정예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정예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난 입맛 떨어져서 올라갈 건데 너희는 더 먹을 거야?”
“아니. 바퀴벌레 때문에 더는 먹고 싶지 않아.”
“으으. 호텔에서 바퀴벌레가 뭐야.”
“조금 전에 중국 돈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퀴벌레 하나 처리 못 하나.”
“어떤 놈들처럼 쓸데없이 생명이 질겨서 그래.”
“하긴 바퀴벌레 생명이 오죽 질겨. 누구같이 진절머리 치게 만들긴 하다.”
한국 측 대표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그들은 말을 하면서도 중국 측 대표팀에세 시선을 보냈다.
한국 측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마치 바퀴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을 하고 말이다.
“저 새끼들이 지금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X발. 내가 오늘 끝장내고 올게.”
조염이 뒤늦게 깨닫곤 발끈했다.
팔을 걷어붙이며 한국 측 대표팀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진가경이 말렸다.
“놔둬. 도발은 충분히 했어. 비무가 끝나고 나선 네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조염에겐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손을 섞은 상대와 내기를 하는 것.
그 대상은 남자가 아닌, 꼭 여자여야만 했다.
“흐흐. 난 저년 찜할래. 한국에 저렇게 반반한 것이 있었단 말이야?”
조염이 정예은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미친 새끼. 밥이나 먹자.”
진가경과 중국 측 대표팀은 식사를 하기 위해 접시에 음식을 뜨기 시작했다.
* * *
식사를 하고 있던 조염은 갑자기 배가 아파 옴을 느꼈다.
“윽! 나 화장실 좀.”
“더럽게, 조용히 갔다 와.”
“어. 미안.”
조염이 화장실로 가고 얼마 후.
“나, 나도 화장실.”
“설사 각이야.”
중국 측 대표팀이 차례대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갔다.
진가경이 이마를 찌푸렸다.
“정신력이 썩어 빠져서는 고작 설사 가지고 저 난리니.”
그는 식사를 마저 했다.
조염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았으나.
“악! X발. 또 배 아파.”
엉덩이를 붙잡고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체로 설사병이 난 듯.
밥은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진가경도 예외는 아니다.
제일 마지막 순서로 신호가 왔다.
꾸르륵!
꾹꾹!
그의 배가 요동쳤다.
안에 든 배설물이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시위를 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국 대표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았지만.
이건 참을 수 있는 설사가 아니었다.
진가경은 내공으로 배변욕을 누르려고 했으나.
뿌직-
그럴수록 항문의 힘이 풀리고 밖으로 변이 새어 나왔다.
19살이 되어 팬티에 똥을 싸는 건 수치!
특히 이곳엔 많은 나라의 대표팀이 있기에 태연한 척을 했다.
“어디서 똥 냄새 안 나?”
“구린내가 아까부터 나긴 했어요.”
“방귀 냄새겠지.”
“며칠 똥을 안 쌌나? 냄새 한번 지독하군.”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괄약근의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진가경이 고함을 지르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씨이이이바아알!”
* * *
잠시 후.
중국 측 대표팀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진가경과 조염의 얼굴은 핼쑥했다.
몸무게가 한 3, 4kg은 빠진 얼굴이다.
그들은 밥도 먹지 못한 채 화장실을 오갔다.
장을 비우고 나오면 다시 신호가 오고, 끝났다 싶으면 신호가 왔다.
그 결과는 초주검이었다.
“셰프… 당장 셰프 나오라고 해!”
진가경은 호텔 요리사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얼마 되지 않아 수석 요리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요리사는 일반인.
각성자이며 검존의 아들인 진가경이 부른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뛰어온 것이다.
“요리 뭘로 했어?”
“네?”
“요리 뭘로 했냐고! 네가 만든 음식을 먹고 단체로 설사병에 걸렸잖아!”
진가경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요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단체로 설사를 하겠나.
“예에에?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억!”
“입 안 닥쳐?”
조염이 아버지뻘 되는 요리사의 멱살을 잡았다.
“재료 재탕한 거 아니야?”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호텔 사장님께서 최고로 신선한 재료만 엄선해서 제공해 주셨는데….”
“그런데 우리가 왜 설사병에 걸려!”
그들은 화가 난 나머지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
타국의 대표팀은 잘만 식사를 했다.
그들처럼 설사병에 걸리지 않았고 맛있게 먹었다.
유독 중국 대표팀만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설사를 했다.
“저, 저야 모르지요.”
요리사는 두려움에 가득했다.
각성자는 수가 틀리면 일반인도 그냥 죽였다.
특히 인구가 많은 중국에선 흔한 일.
무협지에서 봤던 무림이 그대로 옮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현재의 중국이었다.
중국은 그만큼 살벌한 곳이다.
“젠장!”
“억!”
조염이 요리사를 내팽개쳤다.
“조사해서 신선한 재료가 아니란 게 들통나면 넌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예? 예.”
요리사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중국 측 대표팀은 담당 선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응? 분위기가 왜 이래?”
뒤늦게 방에서 내려온 진경수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했다.
방으로 올라갔던 아이들과 만나지 못했던 모양.
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접시에 담으려는 그때!
그의 눈에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접시와 집게를 놔두고 나열해 있는 음식을 지나쳤다.
“억! 디저트 예술이다. 선생님. 이 안에 든 건 따로 계산해야 합니까?”
진경수가 유리 안에 든 디저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등치에 안 맞게 그는 예쁜 디저트를 좋아했다.
레스토랑 직원은 잠시 멍해 있었다.
험악한 분위기를 인지 못하고 있나.
어떻게 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있지?
직원이 멍을 때리고 있자.
“선생님?”
진경수가 재차 불렀다.
멍하니 있던 직원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참석한 인원이라는 것만 증명해 주시면 공짜입니다.”
“진짜요? 저 한국 측 대표팀이에요. 여기 보이시죠. 철룡 진경수. 저 이 안에 든 거 하나씩 다 주세요.”
진경수가 눈을 빛내면서 유리 안에 있는 디저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배가 잔뜩 고픈 상태였는데 예술이 담겨 있는 디저트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레스토랑 직원에게 디저트를 잔뜩 받은 그가 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먹기 시작했다.
“으음~! 딜리셔스!”
* * *
“지금쯤이면 폭풍 설사를 하겠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을 거예요. 제가 장난삼아 개발할 설사약인데 효과가 시중에 나와 있는 것에 거의 100배에 달하거든요.”
“내공으로 보호하면?”
“독이 섞여 있는 거라 그러면 더 죽을 맛일걸요?”
정예은이 작게 웃었다.
정예나와 정예은, 두 자매가 이야기를 끝낸 시점에서 전음을 날려 모두에게 설명을 했다.
괜히 여기서 발끈하지 말고 엿을 먹이자고.
뷔페식으로 나열된 음식에 특제 설사약을 뿌리잔 제안에 모두 찬성했다.
뷔페식이지만 그들은 엿 먹이는 것은 간단했다.
조심스럽게 내공을 담아 비접을 조정하여 중국 대표팀이 있는 자리에만 설사를 유발하는 가루를 뿌리는 것.
모두가 동의하자 정예은이 실행에 옮겼다.
비접에 가루를 뿌려 날렸다.
조염을 스치고 지나간 신호에 맞춰서 바람을 일으킨 정예나.
각성자로서 작은 바람을 일으킨 건 문제도 아니었다.
바람에 설사 가루가 날려 음식에 안착하고 끝.
연기는 종료가 됐다.
“설사병 난 짱개들 못 보고 온 게 아쉽다.”
“다음을 기약하자. 비무에서 발라 버리면 되지.”
“내 눈도 못 마주치게 할 거야.”
“저도 형님의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박혁진의 말에 허수가 동조했다.
“그냥 박살을 내 버리자고.”
“예!”
“그런데 음식에 설사 가루 뿌린 거 안 걸리겠지?”
박정연이 뒤늦게서야 걱정했다.
“헤헤. 괜찮을 거예요. 이준 선생님이 이 가루는 누구도 눈치 못 챌 거라 하셨거든요.”
“준이가? 어째서?”
“레드존 게이트에 갔다 오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가루에 무형지독의 성분을 추가하면 어떻겠냐고 하셨거든요.”
“무, 무형지독!?”
“만독암가에서도 무형지독은 못 만들지 않아?”
정예나를 비롯한 아이들이 놀랐다.
언니인 그녀조차 몰랐던 사실이다.
“자, 자세히 말해 봐.”
“지금도 무형지독은 못 만드는데 몇 가지 성분은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헉!”
“말이 돼? 준이가 무형지독의 성분을 어떻게 알아?”
“내 말이. 걔 정말 미스터리하다니깐.”
박정연과 박혁진이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했다.
독과 암기의 대가인 그들보다 이준이 무형지독에 대한 단서를 안다는 게 충격이었다.
“안 되겠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준이한테 가서 물어봐야겠다.”
“나도!”
띵!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들은 이준에게 무형지독의 단서를 묻기 위해 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