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화
이준이 일등석으로 돌아왔다.
파랑이가 복도를 어슬렁거리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형 빨리 왔지?”
“뀨우!”
“무슨 일 없었고?”
“뀨뀨!”
파랑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대답을 했다.
이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들과 차경진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운이 일어날 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일정치 않았다.
특히 박정연과 박혁진의 기운은 강력해서 자칫 비행기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영약을 먹이고 운공을 시킨 이유는 파랑이 때문이었다.
파랑이의 영역.
녀석의 영역 안에서는 아이들의 강력한 기운도 통제가 되었다.
그래서 파랑이를 이곳에 놔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다.
“중국에 도착할 동안 수고해 줘.”
“뀨!”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이준의 품에 안겼다.
잠시 후.
비행기가 이륙했다.
몸이 뒤로 기울였다.
귀가 먹먹해졌다.
침을 꼴깍 삼키자 귀가 뻥 뚫렸다.
이준은 고개를 내려 파랑이를 봤는데.
“푸웁!”
웃음이 빵 터졌다.
태생이 블랙급 몬스터가 이륙하는 게 무서운지 얼굴을 자신의 품속에 파묻고 있었다.
“뀨우!”
그러면서 무섭지 않다고 부정했다.
[행동과 말이 꼭 내가 아는 누구와 닮은 듯 하구나.]
‘저는 아니겠죠?’
[사부는 제자라고 말 안했다. 찔리나 보구나.]
‘전혀 안 찔리는데요.’
비행기가 최고점에 도달하자 그제야 파랑이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잔뜩 경계한 모습.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비행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녀석이 제 모습을 찾았다.
다시 활발해진 녀석이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주둥이를 활짝 열었다.
아이들은 현재 영약을 흡수하고 있는 상태.
영약의 기운이 차고 넘쳐 대기 중으로 내기가 흘러나왔다.
파랑이는 쓸데없이 소모되는 기운을 먹이 삼고 있었다.
[파랑이가 영약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파랑이가 영약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애들도 크고 파랑이도 크고 좋구만.”
생각대로 일이 척척 잘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이대로 시간을 보낸다면 중국에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
1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다만, 중국이라는 변수가 있을 뿐.
그들 사이에 숨어 있을 천외천만 조심하면 된다.
팟!
“뀨우우!”
고개를 들고 대기의 기운을 야금야금 빨아들이고 있던 파랑이가 일어서서 낮은 자세를 취했다.
녀석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듯 이준도 똑같이 느꼈다.
“또 무슨 일이래. 파랑이는 여기 있어. 너 없으면 비행기에 충격이 가버려서 따라오면 안돼. 알았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을 부르려는데.
“크, 큰일 났습니다.”
때마침 승무원이 이준이 있는 곳으로 허겁지겁 왔다.
“무슨 상황인가요?”
“스, 승객들이 단체로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네? 아이고야….”
높은 등급의 각성자들이 단체로 기운을 뿜어내다 보니, 파랑이 하나만으론 전부 갈무리하지 못한 모양인걸까.
본의 아니게 테러를 저지른 것 같아 이준이 속으로 이마를 치며 물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의사는 없나요?”
“네. 의사나 힐러 계열 각성자는 명단에 없었습니다.”
“저희 쪽에 있긴 한데…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준이 서혜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라면 도움이 될 테지만 현재는 영약을 흡수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지금 움직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먹었던 영약이 헛되게 된다.
철혈검가에서 지원해 준 영약이 어떤 것인데.
절대 중간에 끊게 놔둘 순 없었다.
“제가 한 번 보죠.”
이준이 승무원을 따라 움직였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볼 생각이었다.
일등석이 있는 공간을 나온 순간, 이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승객들이 단체로 기절한 건 아이들 탓이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다.
“잠깐 기다리세요.”
공기 중에 꺼림칙한 게 퍼져 있었다.
눈으론 보이지 않지만, 그의 감각이 이상을 감지했다.
이준이 승무원의 팔목을 붙잡았다.
자신의 몸 뒤로 숨기고는.
“아무래도 공기 중에 독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네?”
“승무원 누나도 독에 중독되었을 수도 있으니 제가 봐 볼게요. 가만히 있으세요.”
승무원의 몸으로 혼원신공의 내기를 보냈다.
역시나.
소량의 독기가 몸속에 잠복해 있는 상태였다.
언제 발작해도 문제없는 상태였다.
“아파도 참으세요.”
승무원이 이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몸으로 흘려보낸 내기를 통해 잠복해 있는 독기를 공격했다.
“악!”
승무원이 비명을 빽 질렀다.
그녀는 일반인.
자신의 몸에서 내기와 독기가 싸우는 건 처음 겪는 일일 터.
비명은 당연했다.
그녀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도 잠시.
혼원신공의 내기가 그녀의 독기를 말끔히 제거했다.
“다 됐어요.”
독기를 비롯한 몸 안의 노폐물까지.
싹 빼내어 버리자 승무원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자기가 위험한 것도 몰랐던 그녀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준에게 고맙단 인사를 했다.
“여기 이상은 넘어오지 마세요. 아니면 위험해요.”
이준이 허리춤에 걸린 파멸겁을 꺼내 바닥에 세웠다.
단봉 형태로 있는 파멸겁.
비행기가 흔들려 세워지지 않을 텐데도 파멸겁은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
공기 중에 퍼진 독기가 파멸겁에 다가왔지만 닿기도 전에 소멸했다.
고작 독기 따위에 영역을 침범당할 파멸겁이 아니었다.
이준은 자신의 무기를 놔두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어떤 개자식이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한 거야.”
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들 대부분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심한 사람은 발작을 일으킬 정도.
처음에 승객들이 기절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단순히 강한 기운에 놀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승무원들이 발작을 일으킨 승객을 케어했지만, 그들 또한 독에 중독되어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폭탄을 제거하니 이젠 독이다.
배후는 모르겠고,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독 푼 새끼 나와.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있어.”
게거품을 물고 있는 승객들을 향해 이준이 말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준은 이 일을 꾸민 놈을 향해 재차 말했다.
“안 나와? 내가 너 못 찾을 것 같아?”
그가 말하면서도 눈을 반짝 빛냈다.
회안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에선 살기가 가득했다.
* * *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하고, 승객들에게 독을 푼 여자.
백결경은 독에 중독된 것처럼 기절해 있었다.
아니, 진짜로 독에 중독됐다.
이준의 눈을 피하려면 어지간한 연기로는 안 될 터.
실제로 독에 중독되는 것밖에 그의 감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그녀에겐 이 독을 해결할 방법도 있었으니, 과감하게 독에 중독된 거다.
‘네 무력함을 느껴 보거라.’
승객들을 중독시킨 독은 일반적인 독이 아니다.
절심화란 독초에서 추출한 성분을 토대로 독공을 운기 했다.
아무도 모르게 공기 중으로 퍼진 독기.
시전자만 아니면 독공을 쓴지도 모를 만큼 은밀했다.
‘이러면 굳이 최후의 무공도 쓸 필요 없겠어.’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은 승객들을 중독시키는 게 아니었다.
비행기가 하늘 높이 떴을 때, 폭파시키는 게 최종 목표.
하지만 그녀는 원래의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대체 이준이란 오랑캐가 뭐라고 자신의 주인이 경계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직접 그를 마주보고 느낀 감정은 하나.
강했다.
나이에 비하면 완전 괴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감상은 그게 끝.
강해도 비명횡사하는 곳이 그녀가 살았던 강호였다.
그런데 여긴 어떤가.
아주 평화로웠다.
특히! 같잖은 놈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꼴은 눈뜨고 못 봐줬다.
그녀는 이준 또한 자신이 봤던 놈들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시킨 대로 행동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굳이 최후의 무공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이준의 행동으로 보아 중독된 사람들로 인해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들이 약점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약점이 많은 사람은 해치우기 가장 쉬웠다.
그녀가 백년 넘게 강호에 살면서 깨달은 내용이었다.
“안 나와? 그럼 내가 찾아 주지.”
이준이 회안으로 번들거리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백결경은 기척을 최대한 숨긴 채 숨도 죽였다.
이러면 이준이 못 찾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 그건 백결경의 착각.
이준의 진면목을 몰라 생긴 큰 착오였다.
“너구나.”
이준의 목소리에 고저가 없었다.
감정이 배제된 음성은 듣는 사람으로서 소름끼치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도 잡아뗀다 이거냐?”
그가 가차없이 백결경의 목을 움켜잡았다.
“커억!”
“너잖아? 왜 모른 척해?”
“저 아닌… 커허어억!”
“어라? 게거품 물고 있었으면서 언제 정신을 차렸데?”
이준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차가운 미소에는 냉기가 가득 흘렀다.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자.
‘뭐, 뭐야?’
순간 흠칫했다.
자신의 주인인 당소미보다 강했다.
주인이 모시는 사람의 눈을 마주친 것만 같았다.
‘이래서… 소미 님이….’
잘못하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다.
그녀는 시치미를 떼는 걸 그만뒀다.
“크헉… 날 죽이면… 이 사람들… 살리지 못해.”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잠시나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승객들에게 향하자.
“…흐흐… 날 놓아주는 게 좋… 악!”
백결경은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 버려 이준을 도발했다.
“이게 재밌냐? 어?”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가녀린 그녀의 목이 끊길 듯 가늘어졌다.
“크으으윽!”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얼굴에 핏대는 물론 눈동자까지 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누가 이런 짓을 시켰지?”
“…크으으…”
백결경은 이준의 손아귀 힘 때문에 입을 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신음뿐.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헛짓거리였다.
“너도 협박했듯이 나도 협박할 무기가 있는데 한 번 봐 볼래?”
이준의 차가운 미소가 짙어지며 회안이 번들거린 순간!
백결경의 내력이 이준의 손을 타고 빠져 나가버렸다.
[흡혈마공을 시전하셨습니다.]
[상대의 내공을 빨아들입니다.]
“크… 안… 돼애애…!”
각성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
단전에 열심히 쌓아둔 내력을 잃는 게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거다.
“내공을 뺏기기 싫으면 대답해.”
“…크어억!”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준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녀의 정체를 알 게 되었다.
흡혈마공으로 내공을 흡수할수록 흑발이었던 머리가 점점 백발로 변해가는 게 아닌가.
흡혈마공이 내공과 생기를 모조리 빨아간다지만, 이준은 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결론은 하나.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단 소리.
이런 부류의 인간이 속한 곳은 딱 한 곳밖에 없었다.
“너 천외천이구나?”
“크윽… 네가… 어떻게!?”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놀라웠다.
이준이 천외천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
주인인 당소미는 잘못 알고 있었다.
‘주인께서 이… 사실을 알아야할텐데.’
그녀는 적에게 잡혀 있을 뿐더러 상공에 있었다.
지상이면 어떻게든 도망쳐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을 터.
현재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후 무공을 썼을 텐데.’
그랬으면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진 않았을 거다.
이게 다 자신의 자만 탓.
이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아니면 자신의 주인에게 피해가 갈테니까.
‘무공을 쓸 틈이 있어야 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 항복을 하겠…다… 크윽….”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내공을 봉쇄… 하면 될 것 아니… 냐.”
“흠….”
이준은 잠시 여자를 보고 생각에 빠졌다.
승객들을 가장 빠르게 치료하는 데엔 그녀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천외천의 존재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이니까.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준이 망설이고 있다 생각한 건지 백결경이 다시 애원했다.
“고민하는 건가? 내가 널 돕는다니까? 뭐든 다 할 테니까, 목숨만 살려줘.”
“웃기고 있네. 뭘 믿고 너를?”
이준은 단박에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그러자,
“큭큭.”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자신이 죽는대도 웃는 미친년.
천외천은 모두가 어디 나사 빠진 놈들 같았다.
전생에 봤던 천주도 그렇고 말이다.
“하, 그렇단 말이지. 내가 너한테 순순히 죽을 것 같아?!”
그녀가 허리를 펴자 몸이 한껏 팽창했다.
“이런 X발!”
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다 같이 지옥으로 떨어져라! 신마회 만세!”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콰아앙!
풍선으로 부풀어 올랐던 몸이 폭탄처럼 터졌다.
육신의 파편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모든 걸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