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우와-”
“나 일등석 처음 타 봐.”
“나도.”
박은비가 자리에 폴짝 앉으면서 감탄했다.
좌석 왼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의자가 뒤로 젖혀지더니 침대로 변했다.
일반 고객이 아닌, vvip 고객만 탄다는 럭셔리 항공기였다.
“이래서 사람은 성공을 해야 해.”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뿐만 아니라 허수도 눈을 반짝였다.
몸을 요리조리 돌리며 신기한 걸 구경하는 모습에 정예은이 물었다.
“너 일등석 처음 타 봐?”
“비행기 자체가 처음이다.”
“정말?”
정예은은 허수에게 어떻게 비행기를 처음 타 보냐란 눈빛을 보냈다.
“난 너와 달리 평범한 곳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각성자니깐 돈은 많이 벌잖아.”
“넌 애들을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지? 그리고 현역 각성자가 아니면 게이트 출입도 자유롭지 못해 돈을 벌 수 없다. 나 같은 일반 각성자는 무사고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버텨야 하지.”
학생들에게 지원해 주는 돈은 적지 않았다.
다만 허수에겐 동생들이 많았다.
3명의 자녀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성년이 될 때까지 수억이 든다.
그런데 허수의 동생은 무려 7명.
그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는 건 그에게 사치였다.
“너한테 그런 가정사가 있는 줄 몰랐어.”
정예은은 허수가 자신과 같은 특별반에 들어서 같은 입장이라 생각했다.
일반 각성자와 가문 소속 각성자의 차이.
가문에서 태어나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첫 번째로 배우는 게 이 차이였다.
일반 각성자와는 태생부터가 다르다는 우월감을 느끼라는 뜻.
정예은도 이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허수에게 말했는데 그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일 줄 몰랐다.
“미안.”
“괜찮다. 신경 쓰지 않아.”
허수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정예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만 떠들고 각자 받… 아.”
이준이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병을 학생들에게 넘기려는데 신경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삑- 삑-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들렸던 기계음.
‘확인해 봐야겠어.’
굉장히 거슬렸다.
우선은 이 소리를 확인하기 전에 끝마쳐야 할 일이 있었다.
“이건 뭐야?”
“철혈검가에서 지원해 준 영약.”
박혁진의 질문에 이준이 친절히 대답해 줬다.
“내 손에 든 게 정말 영약이라고?”
“받았을 때부터 영롱하더니.”
“어떤 영약이지?”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몬스터가 환장하는 게 계승의 꽃이라면, 각성자가 환장하는 건 영약이었다.
내공을 높여 줄 뿐만이 아니라 모든 능력치를 소폭 상승시켜 주는 게 영약.
영약의 등급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지만 못 먹어서 안달이었다.
“화령초랑 적웅의 내단, 인면지주의 내단, 천년설삼 등. A급에 해당하는 영약이야.”
만년설삼이나 극빙하수, 만년금구의 내단 같은 AA급 영약에는 손색이 있었다.
하지만 A급 또한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힘든 수련으로 인해 녹초가 됐을 때.
최대한의 효과를 보는 적기였다.
“내가 달라고 할 땐 그렇게 안 주더니.”
박혁진이 투덜거렸다.
행동과는 달리 대번에 영약을 들이켰다.
숨을 크게 마시면서 호흡을 참는 박혁진이 운기에 들어갔다.
“시간 지나간다. 청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집중해. 그래야 더 강해지지. 강해지기 싫으면 덜 집중하던가.”
이준의 말이 자극됐을까.
학생들이 너도 나도 영약을 마셨다.
영약을 보고 놀라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행동들이었다.
“차 선생님도 드세요.”
“저까지 말입니까?”
“학생보다 약하면 선생으로서 무시를 받아요.”
이준의 말에 차경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모두 운공에 들어갔다.
“파랑아, 이제 나와.”
“뀨!”
파랑이가 이준의 주머니에서 얼굴을 쏙 뺐다.
덩치가 작아서 아이들도 파랑이가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파랑이는 현재는 레드급이라도 태생이 블랙급 보스 몬스터라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했다.
“애들 운공하고 있으니까 누가 다가오지 못하게 지켜 줘.”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렸다.
자기만 믿으라는 행동이었다.
“귀여운 녀석.”
이준이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곤 몸을 돌렸다.
그의 목적지는 기계음이 들렸던 곳.
비행기의 끝 부분을 향해 움직였다.
***
“독나찰 님. 아이들에게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서른 살로 보이는 여자가 당소미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뜯어 읽는 당소미.
폭멸
딱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내용은 그게 다였다.
안의 내용을 본 당소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슨 일이시길래 표정이 좋으신 겁니까?”
“한국의 오랑캐에게 장난질을 쳐 놨어.”
“장난질이라 하시면?”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참가하는 놈들의 비행기 안에 폭탄을 설치해 뒀지.”
“아….”
여자가 무언갈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마음속 말을 했다간 상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수하의 마음을 아는지.
당소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폭탄가지고 되냐고 묻고 싶었지?”
“…예.”
“당연히 어림도 없지.”
이준이 중국으로 오기 전의 환영 인사였다.
자신이 준비한 선물로 인해 중국에 오지 못한다?
그 날로 이준의 목숨은 파리를 잡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중국에 힘겹게 도착한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순 없었다.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놈이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했다.
이곳엔 인주란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살아남아 고향 땅을 밟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폭탄을…?”
“자극하는 게 재밌잖아. 과연 폭탄을 찾으면 어떤 반응을 할까 내가 배후라고 의심을 할까 이런 것들?”
“독나찰께서 일을 진행시켰다고 의심은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겠지. 우리 천외천만 이준이란 놈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당소미는 이준이 천외천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혈불이 죽은 건 우연.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서 축출해 내려는 움직임이 아닌, 게이트를 클리어하다가 혈불과 충돌을 했다고 여겼다.
혈불이 기거하는 곳은 자신들이 있는 세상이지만, 이곳에선 게이트로 통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정말 폭탄이란 기계에 의존할 거라 생각해?”
당소미가 눈웃음을 쳤다.
그녀의 눈엔 짙은 살기가 맺혀 있었다.
그녀가 독나찰이라 불린 이유.
이명에도 붙여 있듯 성격이 굉장히 악독해 독나찰이라고 불렸다.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참가한 한국 비행기에 폭탄만 설치할 리 없었다.
“폭탄 말고 다른 장치도 해 놓으신 겁니까.”
당소미가 웃으면서 편지를 수하에게 보여 줬다.
편지 안의 내용을 본 수하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래서 폭탄을 심어 뒀다고 하셨군요.”
“재밌을 것 같지?”
“확실히 이준이란 놈에 대한 시험은 될 것 같습니다.”
“과연 중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
* * *
이준이 자리를 떠나 통로로 움직이자 승무원이 그를 불렀다.
“손님. 비행기가 곧 이륙할 예정입니다. 자리에 앉아 대기해 주십시오.”
이준의 뒷모습만 봐서였을까.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이준을 못 알아봤다.
그가 등을 돌리자.
“어머!”
승무원이 화들짝 놀라며 토끼 눈이 되었다.
“잠시 10분만 이륙을 미뤄도 될까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네?”
“잠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규정상…”
“비행기 내에 폭탄이 감지 돼서 말이에요. 그래도 이륙하시겠어요?”
“폭탄이요!?”
동료 승무원이 커다란 목소리를 냈다.
항공사 행동 강령에 승무원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동요하면 안 된다는 게 쓰여 있었는데, 그 규칙을 어긴 것이다.
이 때문에 수속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웅성거렸다.
“아직 비행기가 뜨기 전이고 제가 살펴볼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승객들을 밖으로 대피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길어야 10분이면 끝납니다.”
이준이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통로를 걸었다.
통로 끝, 승무원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자 기계음이 요란하게 들렸다.
비품이 쌓여 있는 곳을 뒤지자.
‘여기에 있네.’
폭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설치했을까?’
[딱 봐도 너에게 원한 있는 놈 아니겠느냐.]
‘왜 저예요? 다른 사람도 많잖아요?’
[여기서 원한을 제일 많이 산 사람이 과연 누구일꼬.]
이준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 원한을 가장 많이 산 사람을 꼽으라면 자신일 거다.
그간 들쑤시고 다닌 곳이 여간 많았어야지.
자신의 손에 궤멸한 곳은 대표적으로 패왕도가와 도련
그 외에도 자잘하게 악감정이 있는 곳은 사마련과 15가문 연맹이다.
‘이렇게 보면 죄다 안 좋은 감정을 만들어 놨네요.’
[잘하지 그랬느냐.]
‘언제는 힘으로 다 해결하면 된다면서. 전 사부님이 말한 대로 실천한 것뿐인데요?’
[가아아알!]
‘악! 귀청이야!’
[이, 이녀석이! 어디서 위대한 사부 앞에서 큰소리냐!]
‘이젠 저도 안 당할 겁니다.’
[가아아아아아아알!!!!]
무극자 사부가 처음 연속으로 두 번 대노했다.
첫 번째 불호령에는 얼추 버틸 만 했는데 두 번째는…
‘크윽… 잘못했어…요!’
게거품을 물 뻔했다.
조금만 늦게 용서를 빌었다면 폭탄도 해체하지 못하고 골로 갔을 것이다.
[이 녀석이 한 번만 더 사부에게 깝쳐 보거라. 아주 혼꾸녕을 내줄 테다. 알겠느냐!]
‘네…’
이준은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폭탄 해제 작업을 시작했다.
폭탄을 제거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공을 가진 각성자로선 껌.
폭탄과 이어진 선 중 전류가 흐르는 선만 찾아서 끊으면 클리어.
그에게 폭탄 제거는 식은 죽 먹기였다.
폭탄과 이어진 노란색 선을 끊어 버리자.
시간이 가던 시계가 멈췄다.
이준은 승무원 휴게실에서 폭탄을 가지고 나왔다.
“안전하게 제거했습니다.”
폭탄을 흔들어 보이는 이준.
승무원과 승객들이 기겁했다.
그가 사람들을 지나쳐서 비행기 탑승구 쪽으로 가서 폭탄을 밖으로 던졌다.
손에 장력을 집중시켜 폭탄을 향해 쏘아 보냈다.
쾅!
하늘 위에서 폭죽처럼 터진 폭탄의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폭탄은 저게 다입니다. 이제 비행기 이륙할까요?”
폭탄물 처리반을 불러오지 않고도 혼자서 해결한 이준.
원래대로면 전문가를 불러다 혹시나 남은 위험 요소가 있는지 체크하는 게 맞았지만, 각성자들은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는 존재였다.
특히, 이준 정도로 뛰어난 각성자는 기감만으로도 폭탄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처리까지 한 번에 해 버리니 존재만으로도 아주 든든했다.
왜 이 시대에 각성자란 존재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보다 인기 높은지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이준이 일등석으로 들어갔다.
승무원들은 자기보다 어린 이준을 아이돌 보듯 몽롱한 눈빛으로 봤다.
“어쩜 좋아.”
“선배님.”
“응?”
“이준님 팬 카페 가입하실래요?”
“넌 가입했어?”
“전 우수회원이에요.”
“진짜? 정회원 되기도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다시 시도해 봐요.”
“그래야겠다.”
이렇게 이준의 팬이 한 명 더 늘었다.
작은 해프닝이 끝나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떴을 때,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던 여자의 손이 초록색으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