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이준은 특별반으로 돌아와서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집합!”
그의 외침에 진경수가 제일 빨리 앞에 섰다.
“빨리빨리 안 와? 이준 선생님께서 모이라잖아!”
그리곤 뒤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특별반 학생들이 레드존 게이트에서 돌아온 이후.
아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걸 보고 나서 이준의 추종자가 된 진경수였다.
“소리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늘 같은 선생님이 부르시는데 느릿하게 오다니요. 절대 안 될 말씀입니다.”
“예나야, 쟤 아침밥 잘못 먹었대?”
“요즘 선생님한테 푹 빠져 살고 있어. 선생님이 1초라도 안 보이면 어딨는지 찾더라.”
“우욱! 왜 저래.”
박정연이 오바이트를 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진경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는 오직 우상인 이준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을까.
이준이 은근슬쩍 진경수의 눈을 피했다.
‘테구르가 여기도 있네요.’
[널 열렬히 좋아하는 이가 있어서 좋겠구나. 제자야. 끌끌.]
‘사부님. 오해의 요지가 다분한 말씀을 하십니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경외입니다만.’
그랬다.
진경수의 눈빛은 이준을 우러러보는 것.
경외가 가득 담겨 있는 시선이었다.
좋아하는 것과는 결을 달리했다.
[끌끌. 그게 그것이니라.]
‘아니거든요!’
이준과 무극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특별반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어제는 각자 훈련 잘했어?”
“예!”
“넵.”
진경수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들렸다.
허수 또한 그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듯 큰 소리를 내었다.
“훈련에 있어서는 포상이 따르는 법. 차 선생님. 나눠 주세요.”
이준이 차경진을 향해 새 냄새가 가득 나는 책을 넘겼다.
차경진은 저도 모르게 책 앞에 써진 제목을 중얼거렸다.
“전륜마멸진…?”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섬뜩했다.
마치 마공서를 잡은 것처럼 묘한 마력이 느껴졌다.
백호연격진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충격!
느낌 자체가 달랐다.
비유하자면 백호연격진은 정공의 무공을.
전륜마멸진은 마공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래서 일까.
차경진이 진법서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받은 책을 학생들에게 전해 줬다.
특별반 학생들 또한 차경진과 같은 얼굴.
학생들 전부 다 뭐에 홀린 듯 진법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안쪽 내용은 펼쳐 보지도 못한 채 표지만 보고 있었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내용을 봐야지.”
이준의 말에 암시라도 걸렸나.
학생들은 그제야 진법서를 펼쳤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그들의 눈에 떴다.
[전륜마멸진(S)]
“X발. 이게 뭐야!?”
박혁진이 화들짝 놀라 했다.
벌레를 잘못 만진 듯 전륜마멸진을 공중으로 던져 버렸다.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진 전륜마멸진을 그가 토끼 눈이 되어 쳐다봤다.
“뭐긴 진법이지.”
“그, 그러니까 지, 진법이 무슨 S급이야!?”
박혁진이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딱 하나.
진법의 등급이 너무나도 높았다.
오대 가문, 특히 진법에 특화된 가문인 신기지가에서도 A급 이상의 진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은 어떤가.
자신들이 무공의 원류라고 자부한 중국 또한 AA급인 태극검진 빼곤 죄다 A급 진법이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준이 S급 진법을 내보이는 게 아닌가.
대체 이런 귀한 보물은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걸까.
마치 보물 보따리를 가진 것 같았다.
“S급 진법 가지고 왜 놀라. SS급 무공도 가진 놈이.”
“아니, S급 진법이 뉘 집 개 이름처럼 꺼내니깐 그렇지. 그리고 진법이라고. 태극검진보다 한 단계 높은 진법 말이야.”
“나도 아니까 그만 흥분해.”
“흥분 안 하게 생겼냐. 내 무공이 S급 진법에 녹아든다고 상상만 하면….”
박혁진이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때였다.
“방금 S급 무공이라고 했더냐.”
학생들과 똑같이 놀란 한 사람.
철혈검가에서 나온 검제 박춘식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
“혁진아. 다시 말해 보거라. 네가 S급 무공을 가지고 있어?”
SS급 무공을 S급으로 잘못 들은 박춘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박춘식은 이 세상에 S급 이상의 무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S급 중에서도 서열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그게 말이죠…”
박혁진이 말을 더듬으면서 박정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예기치 못한 상황.
박혁진은 왜 할아버지가 이곳에 나타났는지 이유를 묻지 못했다.
자신이 철혈검가의 무공을 버리고 다른 무공을 선택했다는 게 걱정이 될 뿐.
아직 가문에 말하지 않았는데 하필 할아버지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할아버지 제가 말씀드릴게요.”
우물쭈물하던 박혁진과는 달리 박정연이 당차게 나와 말했다.
“그래. 정연이 네가 말해 보거라.”
“저와 혁진이 천뢰제왕신공을 버리고 새로운 무공을 배웠어요.”
천뢰제왕신공은 철혈검가에선 최고의 무공이었다.
아니, 한국에 있는 전 가문을 통틀어 제일의 무공이다.
한데 그런 무공을 버렸다니.
박춘식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다.
“내 귀가 어떻게 된 듯싶구나. 다시 말해 보겠느냐.”
“천뢰제왕신공뿐만 아니라, 무한보와 창궁무애검법도 버렸어요. 혁진이도 마찬가지예요.”
“허, 허허.”
박춘식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가문의 다른 손자와 손녀들이 그랬다면 백 번을 양보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혁진과 박정연은 달랐다.
자신보다 천재인 남매.
천뢰제왕신공을 가지고 있으면 10년 후에는 무조건 AA급에 들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무공을 손자와 손녀가 버린 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유를 물었다.
“너희가 배운 무공이 어떤 무공이길래 천뢰제왕신공을 버리면서까지 익혔느냐.”
“뇌신공이란 무공을 새로 익혔어요.”
“뇌… 신공?”
박춘식이 뇌신공이란 무공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아는 무공을 죄다 떠올렸지만 뇌신공이란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의 무공이 아닌, 완전 새로운 무공.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공이었다.
과연 S급 천뢰제왕신공을 버리면서까지 택할만큼 매력적인 무공일까.
“이준 선생. 잠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소?”
이미 박춘식이 끼어들어 수업을 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세요. 저희는 멀찍이 떨어져 있겠습니다. 잠시 휴식하자.”
박춘식이 이준에게 양해를 구한 후, 박정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뇌신공을 보여 보거라.”
검제인 할아버지의 말.
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천뢰제왕신공보다 뇌신공이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야 해.’
아니면 이후는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동생인 박혁진.
차기 철혈검가를 이끌어갈 후계자인 동생에겐 더 치명적일 거다.
어쩌면 후계자 자리에서도 쫓겨날지도 모른다.
천뢰제왕신공은 철혈검가에서 가진 상징성은 대단했으니까.
‘뇌신공을 최대로 끌어 올린다.’
박정연의 생각이 머리에 닿기도 전에 뇌신공이 먼저 반응했다.
파지직-
그녀의 주위에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뇌신공의 뇌기가 주변의 공기를 소멸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맑던 하늘에 먹구름까지 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시야는 여전히 맑은 하늘.
이 주변은 박정연이 뿜어낸 뇌기의 영향으로 어두웠다.
“천뢰제왕신공과 맞먹는 뇌기를 뿜어내고 있구나. 몇 성으로 운용하고 있느냐.”
박정연의 천뢰제왕신공의 경지는 4성의 경지였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4성의 천뢰제왕신공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 박춘식이었다.
“2성 정도예요.”
“헛!”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에 박춘식이 헛바람을 일으켰다.
손녀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2성밖에 안된 내기를 운용하는데 4성의 천뢰제왕신공과 맞먹는단 말인가.
자신이 여태껏 봐 왔던 무공으론 어림도 없었다.
그나마 견줄 수 있는 무공이 있긴 했다.
‘천마신공과 달마역근경. 이 두 개의 무공만이 천뢰제왕신공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같은 뇌속성을 가진 무공이었다.
그렇다는 건 천뢰제왕신공보다 윗줄이라는 소리.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천뢰제왕신공을 버릴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더 기운을 보일 수 있느냐.”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에요.”
“그렇구나. 뇌신공 말고도 다른 게 있느냐.”
“뇌운보란 보법은 혁진이도 익혔고, 검법만 달라요. 전 뇌신검법을, 혁진이는 전뢰검법을 익혔어요.”
“이 할아비한테 네가 새로이 배운 무공을 보이거라.”
박춘식이 허공에 대고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특별반 주위에 심어진 나무의 나뭇가지가 잘려 둥실둥실 떠 왔다.
손날로 만들어 낸 검기에 허공섭물까지.
검제와 같은 S급 각성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유 기술이었다.
박춘식이 나뭇가지를 들어 보였다.
맞은편에 있는 박정연 또한 자신의 검인 벽운을 뽑았다.
파지직-
검을 뽑았을 때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공기를 파괴하는 강력한 뇌기가 몰아쳤다.
안 그래도 뇌신공으로 인해 강력했던 뇌기가, 벽운으로 인해 한층 강해졌다.
“예사롭지 않은 검이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할아비의 검도 가져왔을 터인데.”
손녀가 검을 꺼내기 전에는 나뭇가지로도 충분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검을 잡자마자 기운이 증폭된 상태.
뇌운공이란 무공.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오거라. 어디 네가 익힌 무공이 어떤지 보자꾸나.”
박춘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정연이 있던 자리에는 잔상만이 남아 있었다.
파직-
한 줄기 빛이 번쩍인 순간, 그녀가 박춘식의 지척에서 벽운을 내리긋고 있었다.
뇌운보.
번개가 가득한 구름 안을 걷는다 하여 만들어진 보법이다.
박정연의 신형은 한 줄기 뇌전이었다.
눈을 반쯤 감겼을 때 지근거리에서 나타난 박정연.
S급 각성자인 박춘식이라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한 거지.
다른 각성자였으면 반응도 못 하고 죽었으리라.
박춘식은 내리그어진 검을 향해 나뭇가지로 맞섰다.
벽운과 교차한 나뭇가지에서 불꽃이 튀었다.
까앙!
나뭇가지에는 천뢰제왕신공의 내기가 주입되어 있었다.
여느 강철검보다 단단했다.
‘단순한 움직임의 단점이 극한의 속도로 보이지 않는다.’
단점을 알고 있으나 대응하기에는 불가.
뇌운보의 특징이기도 했다.
‘검법도 빠르고 강해. 극쾌와 극강을 동시에 지닌 검법이 있다니.’
제왕검형도 극쾌와 극강을 동시에 지니진 못했다.
두 개의 특징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극강에 속한 제왕검형.
하나 천마신공의 강기와 일지선보다 약했다.
무공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법.
아쉬운 말이었지만 철혈검가가 계승한 무공의 서열은 천마나 소림 방장이 익힌 무공보다 낮았다.
‘어디서 저런 엄청난 무공을 발견했을까.’
“할아버지. 방심하지 마세요!”
박정연의 검에 담긴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선명하진 않지만 강기의 형상을 보이려 하는 게 아닌가.
“강…기?”
박춘식이 놀라면서 나뭇가지를 휘둘러 손녀의 검을 막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검에 의해 나뭇가지가 잘려 나간 것.
박정연의 검은 멈출 줄 몰랐다.
“위험해요!”
전력을 다해 휘둘러서인지.
제어가 안 된 것 같았다.
박춘식은 손녀의 검에 위협을 느끼고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활짝 펴진 그의 손바닥이 박정연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쾅!
날아왔던 속도 그대로 반대편으로 처박힌 박정연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휘둘러진 손에 박춘식이 놀라며 황급히 손녀를 불렀다.
“정연아! 괜찮느냐.”
심지어 정통으로 공격이 들어갔다.
갈비뼈는 물론 장기가 파손되어도 될 만큼의 공격이었지만.
“으윽… 괜찮아요.”
박정연이 얼굴을 찡그린 채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박춘식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손녀의 내기가 엉망진창으로 변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멀쩡한 게 아닌가.
마치 그냥 가볍게 넘어졌다가 일어난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