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중국의 사천 지방.
그곳에 열린 게이트 앞에 당소미와 천외천의 인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길 기다렸다.
지잉-
때마침 나오는 한 인물.
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
인주 사마영이었다.
그가 게이트에서 나오자 붉은색이었던 게이트가 하얗게 변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미가 마중 나와 있었군.”
“게이트를 클리어하신 걸 축하드려요.”
“이것보다 더 강한 놈들 없나?”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천천히 즐기시면 됩니다.”
사마영이 들어간 레드존 게이트는 그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 곳이었다.
세계 랭킹에 있는 각성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천마와 활불은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 깨지 못하는 난이도였다.
중간 난이도에 속한 레드존 게이트라면 몰라도 최상위 난이도는 격이 다른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곳보다 더 강한 놈들이 아직도 많단다.
“아주 좋군.”
사마영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이 세계에서 천마와 활불이라 불린 자를 상대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한 놈들.
하지만 게이트는 달랐다.
이상하게 생긴 괴생명체들.
이곳에선 이놈들을 몬스터라 부르는데 요상한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공으로 쌓은 마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닌 기운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그놈들은 몸집도 거대했으며 인간과는 달리 저항도 꽤 있었다.
잡을 맛이 있는 몬스터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와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어쩌면 그동안 무료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새로운 것에 재미를 느낀 건지도 모른다.
또한 몬스터 말고도 흥미를 끈 게 있었다.
“그리고 이것. 내 눈에 보이는 요상한 것들 말이다.”
“각성자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게 각성자 시스템이란 말이지… 재밌어. 새롭기도 하고. 내가 처음 무공을 배웠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사마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수백 년의 내공이 사라짐과 동시에 생긴 각성자 시스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당소미의 설명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여기는 자신이 살았던 곳과는 다른 곳.
내공이 없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자리를 각성자 시스템이 대신했는데, 한 달가량 몬스터를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내공이 차근차근 쌓였다.
기존에 있었던 내공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었으나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이곳에 사는 각성자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내공이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달하면 뭐하나.
무공을 알맞게 쓸 줄 모르는데 말이다.
제일 강하다는 천마와 활불이란 놈도 천마신교의 무공과 소림의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진정한 천마의 무공은 힘없이 쓰러질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하나 그런 허접한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도 여기에선 왕 노릇을 하고 있단다.
얼마나 가소로웠던가.
강하다 해서 잔뜩 기대했건만, 녀석들을 만나고 기대가 산산조각 나 버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으니까.
오히려 게이트의 몬스터가 더 강하고 상대하기 재밌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게이트에 있어요.”
“물러터졌군. 나와 같이 백 년을 넘게 살았건만. 쯧.”
“그들은 괴물인 인주 님과 다르답니다.”
당소미의 말이 맞다.
인주는 괴물.
아무리 그와 같이 100년을 넘게 살아와서 싸움에 대한 경험이 엄청나다지만, 재능의 차이는 무시 못 했다.
인주는 고금제일인이 인정한 천재였다.
그러니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에서 천마와 활불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공이 하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해서 말이다.
남들이 들었으면 기겁할 내용.
세상에 알려진다면 공포의 도가니로 변할 만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보다 곧 이준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나와 같은 무공을 사용하는 놈 말이냐?”
“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마침 잘 됐군. 게이트에서 먹어 치운 마기도 수습할 겸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 * *
이준이 몬스터들에게 공략 명령을 내린 지 이틀이 지났다.
‘슬슬 최종 보스 몬스터 방에 들 때가 됐는데.’
중간 보스 지점을 지났다는 메시지는 하루 전에 떴다.
그렇다면 이제 최종 보스 몬스터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고 메시지가 나와야 했다.
뭔가 잘못된 건가 란 생각이 들었을 때.
[샥쿠가 족장 헬롬마쉬와 맞닥뜨렸습니다.]
[로티틸이 족장 헬롬마쉬와 맞닥뜨렸습니다.]
[테구르가 족장 헬롬마쉬와 맞닥뜨렸습니다.]
[세 몬스터가 최종 보스 몬스터와 전투를 시작합니다.]
드디어 원하던 메시지가 떴다.
전장의 상황이 눈에 안 보이긴 하지만 얼추 상상력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메시지가 전장의 상황을 일일이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족장 헬롬마쉬의 몽둥이에 테구르가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테구르의 체력이 -15% 깎였습니다.]
[안 되겠다 싶은지 테구르가 마법 공학 대포를 만듭니다.]
[테구르의 전장 이탈 시간: 00:30:00]
‘아이고, 테구르야.’
이준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최종 보스 몬스터와 싸우기 전에 모든 준비를 갖춰야 하는데 녀석은 이제야 스킬을 사용했다.
계승의 꽃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지능.
열심히는 하는데 좀 모자란 녀석이라 해야 하나.
등급이 높아졌다 한들 싸움에 특화된 몬스터가 아니라 저러는 것 같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으니까.
이준은 다른 녀석들이 해 줄 거라고 믿었다.
[로티틸이 요정왕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요정왕의 영역에 있는 페어리의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했습니다.]
[로티틸이 페어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페어리들이 최종 보스 몬스터를 향해 달려 나갑니다.]
이후로도 계속 메시지가 올라왔다.
족장 헬롬마쉬의 공격에 맞았다든지.
오크 사제를 소환했다든지.
페어리가 달콤한 꽃가루를 뿌려 상태 이상으로 만들었다든지.
아주 자세히 나왔다.
마치 싸움 중계를 보고 있는 것 같을 정도로.
샥쿠와 샤크로아들도 페어리들을 도왔다.
[샥쿠가 얼음 마력을 뿜어 댑니다.]
[대지가 얼음으로 잔뜩 얼어붙었습니다.]
[얼음 마력의 필드가 생성되었습니다.]
[샤크로아의 기세가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샥쿠가 얼음마력참을 사용했습니다.]
[족장 헬롬마쉬에게 얼음마력참이 전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좋아 좋아. 이대로 2페이즈 가자.’
1페이지는 패턴이 없었다.
그렇기에 공략이라고는 2페이즈로 가기 전에 체력을 1/3 떨어트리는 것.
지능이 좋은 로티틸과 샥쿠에게 공략 방법을 말해 놨더니 알아서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2페이즈에 들어가기 전, 족장 헬롬마쉬의 마지막 기술.
‘분노의 망치질이었나.’
[족장 헬롬마쉬가 분노했습니다.]
[스킬 대분화의 춤을 사용했습니다.]
일명 두더지 게임이라 부르는 스킬.
족장 헬롬마쉬가 들고 있는 거대한 몽둥이로 땅을 무자비하게 강타하는 걸 말한다.
꼭 두더지를 잡는 것 같은 행동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1 군단 사령관인 샥쿠의 명령으로 페어리와 샤크로아, 스케먼이 뒤로 몸을 뺍니다.]
[샥쿠가 얼음 마력으로 방벽을 세웠습니다.]
[얼음 마력 방벽의 체력: 100%]
[얼음 마력 방벽과 대분화가 격돌합니다.]
[얼음 마력 방벽의 체력이 깎이고 있습니다.]
샥쿠의 얼음 마력과 대족장 헬롬마쉬의 대분화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얼음과 불의 대결.
아무리 샥쿠가 태생이 블랙급 일반 몬스터로 격상됐다고 하나, 상성을 극복하긴 어려웠다.
[족장 헬롬마쉬가 스킬 대분화의 춤을 계속 사용합니다.]
[얼음 마력 방벽의 체력: 40%]
샥쿠의 방어막이 점점 감소했다.
40%에서 10%로.
거의 깨지기 일보 직전!
[테구르의 마법 공학 대포가 완성되었습니다.]
[테구르가 마력 물대포를 발사했습니다.]
[샥쿠의 얼음 마력 방벽의 체력이 물대포로 인해 증가합니다.]
테구르의 마법 공학 대포로 인해 기사회생했다.
다시 체력이 채워진 얼음 마력 방벽.
철옹성이 되어 아군 몬스터를 지켜 주었다.
테구르가 발사한 마법 공학 대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 발 더 발사되었다.
[족장 헬롬마쉬의 몸에 물대포가 적중했습니다.]
[족장 헬롬마쉬의 체력이 -9% 깎였습니다.]
[족장 헬롬마쉬의 전신이 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샥쿠의 절대영도의 사용 조건에 부합니다.]
[샥쿠가 스킬 절대영도를 사용합니다.]
‘어?’
이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다.
1페이즈는 데미지만 깎으면 됐다.
2페이즈로 넘어가는 스킬만 넘기면 되는 상황.
그런데 절대영도라니.
샥쿠의 절대영도는 상대를 100% 꽁꽁 얼리는 기술.
절대영도를 맞은 상대는 즉사한다.
하나 족장 헬롬마쉬의 경우, 아직 페이즈가 남아 있는 상황.
평범한 몬스터 공략이 아니라, 보스급 몬스터의 공략이기에, 공략법을 따르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절대영도가 통한다면 몇 단계를 단번에 패스하는 것.
‘이러면 어떻게 되지?’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이준도 다음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지라 침을 꼴깍 삼키며 메시지에 집중했다.
[족장 헬롬마쉬에게 절대영도가 적중했습니다.]
[족장 헬롬마쉬의 전신이 얼어붙었습니다.]
[샥쿠가 최후의 일격으로 얼음마력참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족장 헬롬마쉬를 쓰러트렸습니다.]
[레드존 게이트인 ‘대족장의 묘’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0,0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게이트에 있는 보물들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회수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회수해야지.
이준은 게이트에 있는 보물들을 가져오게 했다.
그중에는 무극자 사부가 구해오라는 사살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에도 레드존 게이트답게 귀한 것들로 수두룩했다.
* * *
세 몬스터가 4대 성지의 금역으로 귀환 요청을 해서 승인을 해줬다.
그리고 뜬 질문.
게이트의 주인이 될 거냐는 메시지에는 거절을 했다.
현재 오크와의 우호도는 -50.
족장 헬롬마쉬를 죽여서 더 떨어질 터.
여기서 오크의 영역인 게이트까지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호도는 더 땅에 처박힐 거다.
생각 없이 적을 많이 만들어 놓은 상태.
-50, 혐오까진 그럭저럭 괜찮지만 그 이상은 위험했다.
무엇보다 ‘대족장의 묘’는 딱히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게이트였다.
그런 게이트를 차지하려고 우호도를 깎는 건 미친 짓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정보를 얻었네요. 그렇죠 사부니이임?’
[큼큼. 그러냐. 사부는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아아, 그러셨어요? 전 사부님께서 각성자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하신 줄 알았죠.’
정곡을 찔렸을까.
무극자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고, 고금제일인 노부가 설마 이깟 각성자 시스템조차 파악하지 못할까. 이렇게 쉽게 게이트를 클리어할 줄 알고 말 안 했느니라.]
말이 길어진 걸 보니 모르고 있었던 게 확실했다.
하긴 사부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알까.
착하고 배려심 깊은 제자가 모르는 척해야지.
‘그렇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모를 리가 없지요. 이번에도 제자가 손수 알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셨죠?”
[무, 물론이니라. 무릇 훌륭한 사부는 제자가 홀로 성장하길 바라는 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느니라. 크흠.]
이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할까.
고금제일인은 무공이 아닌 이런 걸 지칭하는 듯싶었다.
그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서, 선생님 어디를 가십니까?”
철룡 진경수의 보충 수업을 하고 있던 이준.
그가 팔짱을 낀 채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자 당황한 건 진경수였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이준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
진경수는 조마조마하며 수련을 하고 있는데 이준이 몸을 돌리니 화들짝 놀란 것이다.
“계속 수련하고 있어요. 교무실에 중요한 물건을 놔두고 와서요. 바로 올게요.”
“그, 그런 겁니까. 얼른 다녀오십시오.”
이준의 말에 진경수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