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도왕은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행동했다.
강한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검제가 그토록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던 이유기도 했다.
그도 S급에 들자, 모든 이들이 아래로 보였다.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각성자도 눈에 차지 않았다.
오직 검제.
대한민국에서 최강의 전력이라 평가받은 그 노인네만이 자신을 상대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였다.
그가 느긋하게 전방을 보고 있는 사이.
최태민이 사형준 앞에 섰다.
“오래간만입니다. 신권.”
“서로 인사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들은 바로는 이신의 호위를 하던 당신이 이준 그 쥐새끼한테 붙었다더군요.”
이신과 절친이면서 사촌지간인 최태민.
원래대로라면 사형준은 최태민에게도 예의를 차려야 했다.
그게 가문의 법도였으니까.
“이곳에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신권은 여전히 제 말만 하십니다.”
최태민의 말마따나 사형준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신력은 패왕도가에서 전쟁을 선포했다고 인지하면 되겠습니까?”
“전쟁이라 할 게 있습니까? 보시다시피 신력이 쪽도 못 쓰고 쓰러지는데.”
최태민이 광기를 번득이면서 웃었다.
15가문 연맹회에서 파견 나온 각성자와 신력의 각성자들.
그들의 절반이 바닥에 드러누워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한데 패왕도가의 전력은 어떤가.
죽은 사람은커녕 부상자도 몇 명 없었다.
이게 다 아버지인 도왕이 최전방에 있었기 때문.
고등급 각성자 한 명 덕분에 이 만큼의 차이가 난 것이다.
“패왕도가에서 먼저 선언한 전쟁. 신력의 방패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화아악-!
사형준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천왕신공이 아닌, 그보다 윗줄에 서 있는 수미천왕신공의 힘이었다.
사형준이 밟고 있는 지면이 수미천왕신공의 힘으로 인해 쩌억 갈렸다.
파스스-
부서진 지면의 잔해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가루가 되었다.
느긋하게 보고 있던 도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천왕신공? 아니다. 그보다 더 양강의 기운을 지닌데다가 훨씬 안정적이야.”
천왕신공은 강력한 화기를 지닌 무공이다.
다만 강한 대신 내기가 불안정했다.
마치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미완의 무공 같았다.
그래서 권왕이 미완의 무공을 완성시키겠다고 폐관 수련을 밥 먹듯 한 게 아닌가.
한데 사형준의 무공은 천왕신공과는 달랐다.
권왕이 말했던 단점이 보완된 내공 같아 보였다.
“설마 수미천왕신공!?”
도왕도 S급 무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끽해봐야 AA급 무공이 전부였다.
AA급에서 S급.
이 하나의 등급은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둘 사이의 수준의 격차를 단번에 줄여줄 만큼 고등급의 무공은 무시할 게 못 됐다.
“태민아 조심하거라!”
“염려 마십시오!”
최태민은 도왕의 우려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의 자신감을 가득 채워 준 힘.
그 힘이 최태민을 교만하게 했다.
그가 도에 묻은 피를 핥았다.
눈이 혈광으로 빛나는 순간!
팟!
앞을 향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사형준은 목소리에 내공을 잔뜩 실어 외쳤다.
“무극대는 신력에게 상처를 입힌 적을 섬멸하라!”
“명!”
그 말을 끝으로 사형준 또한 최태민을 향해 쏘아져 갔다.
* * *
무극대의 참전으로 전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그들은 A급 각성자지만 무공만큼은 S급인 벽력신장을 익혔다.
아예 위력을 내지 못할 삼재심법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벽력신장은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뿜어내는 공격 무공이다.
그래서인지 무극대의 활약으로 인해, 연신 밀리던 신력이 활력을 되찾았다.
거기에는 도왕이 가만히 있는 것도 한몫했다.
그의 눈은 오직 사형준과 최태민에게 있었다.
“이거나 처먹어라!”
무극대는 김봉팔을 필두로 전장 곳곳을 휩쓸었다.
“야야, 어딜 보냐? 무극대의 부대주인 날 앞에 두고 말이야!”
김봉팔의 벽력신장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적사자단원 한 명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전장에서 한눈을 판 대가였다.
“흐흐. 벽력신장 죽여 주구만.”
그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상대를 찾으려는 때.
적사자단의 도가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정말 박히기만 했다.
살이 무기에 베인 게 다였다.
“왜, 왜 도가 아, 안 들어가?”
오히려 공격한 적사자단원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봉팔은 방어 특성을 얻었다.
기본 100%의 방어력.
엄청난 공격을 뿜어내는 건 아니지만, 몸 하나는 굉장히 단단했다.
“피이이?”
김봉팔이 눈을 부릅떴다.
두 손에서 붉은 양강의 장력이 뭉쳤다.
자신의 어깨에 박힌 도를 향해 벽력신장을 뿜어낸 결과.
쾅!
적사자단원의 도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파동으로 적은 나가떨어졌다.
“쿨럭쿨럭! 홧김에 멍청한 짓을 했어.”
김봉팔이 기침을 하며 먼지를 손으로 날렸다.
그 모습을 본 무극대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형은 정말 무식하게 싸운다니까.”
“부대주랑 고결한 우리 무극대와는 스타일이 안 맞는 것 같아요.”
“그건 그래. 이참에 가주님께 말해서 봉팔이 형 따로 부대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떻냐고 건의를 해야겠어.”
무극대원들의 말을 들었을까.
김봉팔이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꿈도 꾸지 마! 나 무극대에 뼈를 묻을 거거든?”
말을 하면서도 안심이 안 됐는지.
찰칵!
김치를 하며 셀카를 찍었다.
“저건 또 뭔 미친 짓이래?”
“놔둬라. 부대주의 똘끼 짓이 어디 한두 번이냐.”
무극대원들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하곤 싸움에 집중했다.
김봉팔은 셀카를 어딘가로 전송을 하곤 전의를 불태웠다.
“내 상대는 누구냐? 너냐?”
그가 적사자단원 한 명을 꼭 집었다.
그는 무기도 안 먹히는 신체.
금강불괴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보니까 성격도 아주 지랄 같은데, 그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적사자단원이 뒤로 몸을 뺐다.
“어이어이. 날 보고 도망친다 해도 소용없다고.”
“오, 오지 마!”
소리를 치는데도 김봉팔은 그를 따라갔다.
다른 적사자 단원을 지나치면서도.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많잖아!”
“크큭! 난 내가 찍은 놈부터 죽여.”
김봉팔은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 * *
쿵!
쿠쿵!
허공에서 육중한 소음이 울렸다.
두 개의 신형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각성자들 또한 두 사람의 신형을 눈으로 쫓지 못했다.
그저 뒤늦게 파공성이 난 방향으로 고개만을 돌릴 뿐이었다.
막상막하의 싸움.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30분이 지날 무렵.
누구 하나 밀릴 것 같지 않았던 균형이 무너졌다.
퍽! 소리가 나며 한 그림자가 땅에 처박혔다.
“컥!”
그림자의 주인공은 최태민이었다.
신음을 토한 그가 도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으아아악!”
최태민이 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게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고작!
이준도 아닌 그의 수하인 사형준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죽여 버리겠어!”
살기를 가득 뿜어내며 사형준을 향해 재차 뛰어들려는 찰나.
사형준의 신형이 눈앞에 나타났다.
살기를 뿜어낸 것과는 상관없이 사형준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최태민이 바닥을 짚었던 도를 사형준에게 휘두르려는데.
그보다 사형준이 더 빨랐다.
사형준의 손에는 이준에게 배웠던 벽력신장이 깃들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최태민의 복부를 향해 손을 뻗은 사형준에게 예리할 정도로 날카로운 도기가 날아왔다.
‘손을 회수하지 못하면 내가 당한다.’
사형준은 하는 수 없이 공격하던 걸 멈춰야만 했다.
뒤로 몸을 뺐음에도.
‘빨라!’
방금 느꼈던 도기가 본인의 예상보다 더 빨랐다.
서걱!
“윽!”
사형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팔을 가로지른 도기가 그도 모자라 바닥에 선명한 선을 남겼다.
엄청난 위력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형준은 재빨리 응급처치를 했다.
상처 치료약을 상처가 난 팔에 뿌린 그.
하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독?”
팔에 난 상처 부위에서 따끔한 고통이 올라왔다.
내공을 끌어올려 독이 팔 주위로 퍼지는 걸 막으려는데.
‘독기가 더 빠르게 퍼지고 있어.’
내공으로 몸을 보호할수록 팔 주위로 퍼지는 이상한 기운.
독 같으면서도 마기의 성질을 띠는 기운이었다.
사형준이 고개를 돌렸다.
도기를 날린 주인은 도왕 최강규였다.
이준과 비슷한 기운을 지닌 위험한 인물.
사형준이 청안을 뜨자, 도왕의 몸에는 검은 선이 가득했다.
그런 그가 천천히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수미천왕신공에 벽력신장이라. 그동안 우릴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던가?”
“속인 적 없습니다.”
“그럴 테지. 남에게 모든 패를 보이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 그런데 괘씸해. 나도 못 얻은 S급 무공을 신력권가 따위가, 그것도 너 같은 게 얻었으니 말이야!”
쌔액-
퍽!
바닥에 떨어진 검을 찬 도왕.
그의 발에 맞은 검이 사형준의 어깨에 박혔다.
“큭!”
“호오, 그걸 피해?”
그의 공격에 반응한 덕분에 죽지 않았다.
원래의 목표는 사형준의 심장이었으니까.
도왕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유희.
그의 패왕도가 움직였다.
번쩍임과 동시에 검은색의 짙은 도기가 허공을 갈랐다.
두 가닥의 도기.
목표는 사형준의 어깨였다.
‘피하는 건 늦어.’
도기를 막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저 강맹한 도기를 막을 수 있을지 이마저도 확신하지 못했다.
콰쾅!
도왕의 도기가 사형준에게 폭사했다.
“쿨럭쿨럭!”
도기를 피하진 못했으나 막았다.
사형준이 기침을 했다.
내상을 입었는지 입을 막은 손에 선혈이 묻어나왔다.
“피한 것도 모자라 막아?”
도왕은 사형준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A급 절정 끝자락에 있는 각성자.
S급 무공을 두 개나 배웠으니 AA급 각성자와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무공 숙련도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실력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하나 자신과는 아니었다.
AA급도 아니고 S급.
무공의 차이를 메꿀 만큼의 실력이 아니다.
피한 건 살기 위한 감이라고 치자.
한 발 물러나 운이 좋았다고 칠 수도 있었다.
하나, 막는 건 달랐다.
두 개의 도기는 8성의 벽력도법을 운용해 공격했다.
사형준의 두 팔이 잘려야 정상.
그런데 고작 내상이 끝이었다.
사형준에겐 치명상이었으나 도왕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래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보는지 보자.”
도왕은 이번에도 전과 같이 두 개의 도기만을 날렸다.
하지만 상이하게 달랐다.
두 가닥의 도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서 여러 가닥으로 나뉘는 게 아닌가?
‘저건… 막을 수 없다.’
청안이 위험을 알렸다.
맞으면 죽을 거라고.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뒤에는 수많은 신력의 각성자와 타 가문에서 지원 나온 이들이 있다.
저들을 죽게 할 순 없지 않나.
막아야 한다.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아쉬운 건.
‘진심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만났건만.’
이준을 오래도록 모시지 못한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랴.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인 걸.
사형준은 가진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단전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두 손에 벽력신장을 가득 담아 도기를 향해 뛰어들려는 순간!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말게나.”
동의각주 이의태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이의태가 자신이 가진 침을 허공에 모두 날렸다.
“대주. 신력의 최강의 방패를 놔두고 뭐합니까? 다른 때 말고 이런 때에 부려먹으십시오.”
무극대의 부 대주인 김봉팔의 목소리도 또한 들렸다.
“안 된다! 위험해!”
동의각주인 이의태는 AA급.
그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김봉팔은 자살행위와 같았다.
자신보다 약했다.
그런데 어떻게 도왕의 공격을 막겠나.
아무리 절대 방어 특성을 얻었다지만.
너무 무모했다.
“저만 믿으시랑께요.”
김봉팔이 무식하게 도왕의 도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부대주!”
사형준이 그를 불렀지만.
콰콰쾅!
이미 도기가 그를 집어삼킨 후였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가 걷히고 그 안에 가려졌던 모습이 드러났다.
“크윽!”
“으음…”
“……!?”
이의태와 사형준의 몸은 처참했다.
도기로 난도질을 당한 듯.
옷 몸이 찢겨 혈인이 되었다.
천만다행인건 치명적인 부위는 전부 빗나갔다.
이의태가 고통을 참으며 비상용 침을 꺼내 상처 부위에 꽂아 넣었따.
“미치겠군….”
이의태가 굳은 얼굴을 했다.
그의 침술로도 상처 부위의 기운이 제어되지 않았다.
“…자네의 움직임이 굼떴던 게 이건가?”
“으윽… 선배님께…서도 느끼셨…습니까? 도왕의 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응급처치라도 해 줌세.”
그가 사형준의 팔에도 침을 놓았다.
만신창이가 된 두 사람과는 달리.
아주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
그들과 달리 김봉팔은 눈만 끔뻑였다.
“어라? 난 왜 아프기만 하지?”
몸을 둘러봐도 다친 구석은 없었다.
옷이 찢기고 먼지만 잔뜩 뒤집어썼을 뿐이다.
김봉팔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메시지.
[기본 특성 ‘불굴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기존 방어력 100%에 방어력 100%를 상승시킵니다.]
[상대의 스킬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기본 특성의 쿨타임이 활성화됩니다.]
[00:00:01(24:00:00)]
A급에 올라선 김봉팔이 S급인 도왕의 도기를 막은 이유였다.
불굴의 의지는 A급 특성이지만 방어 특성 중 최상위에 속해 있었다.
단점이 너무 뚜렷해 A급에 머무는 것뿐.
적재적소에 특성을 사용하는 각성자라면 꽤 좋은 특성에 속했다.
“악! 대주를 위해 내 목숨 하나를 사용한 거나 다름없다는 거잖아!?”
김봉팔이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