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붉은 산맥 게이트를 가려해요.”
“부, 붉은 산맥?”
“설마… 다크 엘프가 있는 레드존 게이트를 말하는 거야?”
이준의 목소리에 선생들이 술렁였다.
레드존 게이트 중에서 최상위 난이도에 속하진 않지만 그래도 등급 자체가 너무 높았다.
거기다가 최소 아무리 못해도 B급 완숙은 도달한 100인 이상의 각성자로, 공략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 레드존 게이트다.
그런데 이준네 특별반 학생들은 고작 10명 아닌가.
아무리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100명을 10명이서 대신할 순 없었다.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혼자라면 도망 나올 수 있지만 학생들하고 함께라면 도망도 쉽지 않을 텐데.”
선생들의 마음과 같은 한민성 이사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이준에게 물었다.
“꼭 붉은 산맥 게이트에 가야겠어요?”
“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저와 저희 특별반 학생들이 수련하기에 딱 적합한 수련 장소이니까요.”
“허.”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수련을 블루존 최상급 게이트도 아닌, 레드존 게이트에서 한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른 선생들은 블루존 최상급 게이트도 위험하다 판단했다.
학생들의 현 수준은 딱 블루존 게이트.
그 이상은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아니, 하다못해 공략법이라도 있는 게이트라면 모를까, 지금 그가 가려고 하는 게이트는 미공략 게이트였다.
“다른 레드존 게이트도 많은데, 굳이 미공략 게이트를 깨려는 이유라도 있나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붉은 산맥이 저희 특별반에겐 최고의 수련 장소가 될 거예요.”
이준의 음성은 단호했다.
한민성 이사장이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어림없었다.
이준의 마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한민성 이사장은 잠시 이준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지금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도 더 확신에 차 있었다.
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였다.
“저는 더 이상 이준 선생을 말릴 수 없군요. 좋습니다. 이준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단, 다른 선생들의 동의가 필요해요.”
이준이 선생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준 선생의 마음이 완고하니, 소승은 말릴 생각이 없소.”
청운 스님이 이준의 편을 들었다.
이곳에서 제일 영향력이 있는 그라 그런지.
“저도 딱히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준 선생이 원하는 대로…”
반대하는 선생이 없었다.
마지막 한 사람만이 남았다.
아미파의 무공을 계승한 대정그룹에서 파견 나온 나혜원이 입을 열었다.
“저도 반대할 생각 따윈 없지만, 특별반 학생들의 학부모 동의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칫 잘못되는 날엔 그 화살이 무사고로 올지도 몰라요.”
“학부모 동의, 그건 당연히 받아 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들 반대는 안 하시는 거죠?”
이준의 물음에 선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이준네 특별반 학생들은 붉은 산맥 게이트에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학부모 설득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있긴 하나 문제없다.
‘따라 올 놈만 오는 거지.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게 아니란 말씀이야.’
[암. 옳은 말이니라.]
기초 체력 훈련을 왜 하는지 충분한 이유도 보여 줬다.
이만큼 떠 먹여 줬으면 알아서 잘 따라와야 하는 게 이준의 생각이었다.
실전을 나갈 게이트가 정해지고, 회의가 끝났다.
“이준 선생네 반은 언제 나가오?”
“내일 바로 나가려고요.”
“청운 스님네 반은요?”
“우린 삼일 내로 나가려 하오.”
“청운 스님네 반이 갈 게이트가…”
“독나의 숲이라오.”
“아, 독나의 숲.”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운 스님과 회의장을 나왔다.
그때 문득 독나의 숲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숲의 주인이 독나란 거미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었지?’
독나의 숲, 보스 몬스터는 따로 있었다.
거미가 아닌 전갈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스칼피온이었나?’
독나의 거미들을 이용해 게이트를 공략해 온 사람을 잡아다가 잘근잘근 씹어 먹는 몬스터.
독나의 독이 1이라면 스칼피온의 독침은 10에 가까운 맹독을 지녔다.
트릭을 모르고 독나의 숲에 가면 무조건 죽은 목숨이다.
전생에서도 트릭을 모르고 들어간 각성자들은 모두 죽었다.
‘웃긴 건 각성자가 많이 죽었음에도 미공략 게이트가 아니라는 거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독나의 숲이 리젠 게이트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준이 아는 사실과는 달랐다.
가짜 보스 몬스터인 독나가 죽고 클리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페이크.
진짜 보스 몬스터는 뒤에 숨어 있는 스칼피온이었다.
진짜 보스 몬스터가 죽지 않았으니, 독나가 계속 리젠되는 것뿐.
이를 오해하고 독나의 숲을 리젠 게이트라고 확정지었다.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겠네.’
아니면 모두 전멸이다.
청운 스님이 있다 해도 말이다.
스칼피온은 굉장히 똑똑하다고 들었으니까.
A급 각성자도 죽이는 보스 몬스터였다.
“저 스님.”
“말씀하시오.”
“독나의 숲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으세요?”
“자세히 알고 있냐는 게 무슨 말이오?”
“예를 들어 독나의 숲이 리젠 게이트가 아니라던가, 보스 몬스터가 따로 있다던가.”
이준의 말에 청운 스님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리젠 게이트가 아니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독나는 가짜 몬스터고 스칼피온이란 전갈이 진짜 몬스터예요. 이것만 인지하고 가시면 덜 위험할 겁니다.”
“보스 몬스터가 따로 있다니…! 이미 공략이 완료된 게이트라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오? 그게 정말이라면 이준 선생은 어찌 아셨소?”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신력권가에서 최근 들어 어렵게 찾아낸 정보에요.”
“허, 어렵게 찾아낸 정보를 빈승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가르쳐 준 게요?”
청운 스님이 이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소. 염두에 두고 있겠소. 이준 선생이라면 헛말을 할 이유가 없겠지. 하마터면 중요한 정보도 모른 채 갔다가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릴 뻔했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별말씀을. 몸 조심히 다녀오길 빌게요. 그럼.”
이준이 고개를 숙이곤 사라졌다.
그 뒤를 청운 스님이 뚫어져라 봤다.
“오왕에 필적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겸손과 배려를 갖춘 인성이라… 앞으로 신력권가와 잘 지내야겠어. 아니지. 이럴게 아니라 사형에게 연락을 해야겠어.”
그가 폰을 꺼내 신룡사의 주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
이준네 특별반이 있는 운동장.
그곳에서 아이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연아. 정말 붉은 산맥에 갈 거야?”
“가야지.”
“레드존에 미공략 게이트라고! 그곳에서 수련했다간 정말 죽을지 몰라.”
철룡 진경수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열변을 토해 냈다.
박정연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이건 아니라고 어필을 했지만.
“굳이 안 가도 된다잖아. 목숨이 아까우면 여기에 남아 있던지.”
박정연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마음먹은 듯 보이자 타깃을 변경했다.
단짝인 독화 정예나였다.
“예나, 너도 정연이와 같은 생각이야?”
“난 아직 모르겠어.”
“그치? 너도 레드존 게이트는 좀 그렇지?”
진경수는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혼자 안 간다고 했다가 이준에게 찍히기라도 하는 날엔 인생 나락이다.
옆에 든든한 동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예나가 마음을 돌릴까봐 그가 속사포로 말했다.
“우린 목숨만 걱정해야 할 게 아니야. 가문도 생각해야지. 여기 후계자가 몇 명인데.”
“맞는 말이긴 해.”
“여기에 남는다고 우리에게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하니깐 나랑 학교에 남자.”
“그럴… 까?”
정예나도 한편으로는 가기 싫었다.
이준의 훈련이 엄청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건 안다.
하나 붉은 산맥은 차원이 다른 곳이다.
천중호수의 난이도보단 못하지만 붉은 산맥 또한 위험하긴 매한가지.
그런 곳을 고작 10명의 인원이 간다고?
나 죽여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진배없었다.
정예나의 마음이 가지 않는 쪽으로 기우는 사이.
그녀의 동생 정예은은 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넌 갈 거야?”
“당연하지.”
“왜 당연해?”
“난 이준 선생님께 충성을 다짐한 몸. 그분이 가는 길이라면 가시밭길이라도 갈 수 있어.”
“풉!”
정예은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뭐지? 날 비웃는 거냐?”
허수가 진지한 얼굴로 되묻자 정예은이 배를 잡고 깔깔댔다.
“아, 푸흐흡! 그만 좀 웃겨. 연극 보는 줄 알았잖아.”
“난 진지하다.”
“너 보면 볼수록 귀엽구나?”
“내가…? 귀여워??”
허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정예은이 자기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운동장 담벼락 위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정예은이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허수의 앞으로 간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정했어.”
“뭘?”
“붉은 산맥에 가기로.”
“왜지?”
“궁금해서.”
그 ‘궁금하다’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준에 대한 궁금증, 붉은 산맥이란 레드존 게이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허수란 아이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곰 같은 덩치며, 멍청해 보일 정도로 단순한 허수였지만 시선이 자꾸만 끌린 정예은이었다.
그녀가 허수를 지나쳤다.
그녀의 발걸음은 언니인 정예나에게 향했다.
“언니. 나 붉은 산맥에 갈래.”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난 마음 정했어. 내가 갈 테니까 언니는 안 가도 돼.”
정예은의 확고한 표정에 정예나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예은이, 네가 가면 나도 가야지.”
“둘 다 제정신이야? 너희들이 갈 곳은 레드존 게이트라고!”
“오빠는 빠져요. 저희 자매의 일이에요.”
정예은의 말에 진경수가 움찔했다.
세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정예나는 독화란 별명을 가졌으나 성격이 활발하고 좋았다.
그렇다고 동생인 정예은이 성격이 안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만독암가만의 성격.
사천당문의 무공을 계승해서 그런가.
그들의 특징과 성격을 고대로 따랐다.
원수에겐 백배의 고통을 주고, 은혜는 무조건 갚는다.
만독암가의 가훈이었다.
이를 제일 잘 따르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여자아이.
암화 정예은이었다.
어렸을 때 골탕 좀 먹였다고 얼마나 지독하게 괴롭혔는지.
커서도 어렸을 적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달까.
진경수가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너희가 잘못 되도 난 모른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두 자매의 참석이 정해졌다.
한 명씩 게이트에 간다고 하니, 혼자 똥줄이 탄 진경수였다.
그가 한지유 팸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희를 쳐다봐도 얻을 게 없을 거예요. 전부 수련에 참석하기로 했거든요.”
한지유가 칼같이 대답했다.
* * *
그 시각.
이준은 4대 성지의 금역에 왔다.
“뀨우!”
주인이 나타나자 바로 빨빨 달려오는 파랑이.
땅을 밟고 점프를 해 이준의 품에 안겼다.
“군기 잘 잡고 있었어?”
“뀨웃!”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로 올라가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마치 사자의 포효를 흉내 내는 모습 같았다.
자기 딴엔 위엄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이준의 눈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추우우웅!”
스케먼의 대장 테구르가 각을 잡은 채 경례를 했다.
“보고.”
“경계 이상 무입니다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도록.”
“맡겨만 주십시오!”
테구르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다음은 로티틸의 차례였다.
“곡식이 잘 자라고 있어요. 이대로 수확하면 식량이 창고에 넘칠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요.”
“필요한 거 있어?”
이준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페어리는 4대 금지의 성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녀석들 때문에 사람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푸르게 변해 있었다.
식량은 덤.
만약 게이트 밖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이곳이 쉘터가 되지 않을까.
이 모든 게 페어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창고를 넉넉히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테구르, 들었지?”
“바로 실행하겠습니다요!”
옆에서 듣고 있던 테구르가 스케먼들을 불러 일을 시작했다.
누가 일꾼 몬스터 아니랄까 봐.
일 하나는 기가 막혔다.
“네 판단 하에 짓고 싶은 걸 지어.”
“헤헤. 감사해요.”
이제 샥쿠의 차례였다.
“넌… 알아서 잘하겠지. 전과 같은 실수만 하지 말고.”
“맡겨만 주십시오.”
샥쿠의 일은 하나였다.
허수의 집과 연결된 게이트로 가서 동생들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역할이다.
레드급 중간 보스 몬스터가 보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또한 아주 중요한 일.
동생들을 돌보느라 허수가 훈련에 집중할 수 없으면 자신만 손해였으니까.
모든 보고를 듣곤 해산시켰다.
아니, 로티틸은 남게 했다.
“너한테 시킬 일이 있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이번에 내가 레드존 게이트에 들어가거든.”
“네.”
“그곳에 텐트치고 야영할 건데, 이주일치 식량 좀 싸 줄래?”